케네디에 패했던 닉슨은 나중에 다시 대통령에 출마해 당선됐다. 하지만 재선 때까지 TV 토론을 줄곧 거부했다. 이후 미국 대선에서는 TV 토론에서 보여준 이미지 덕에 당선되고, 반대로 실언 때문에 낙선한 후보들이 적지 않다. 미국 선거 때마다 볼 수 있듯이 미국의 유력 대선 후보들은 토론에 능숙하고, 특히 위트가 넘친다. 학창 시절부터 토론과 연설로 단련이 된 까닭이다. 물론 말만 논리적으로 잘한다고 해서 토론에서 상대를 이기지는 못한다. 말하는 태도와 표정 등 많은 것들이 토론 결과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 모두 대선 TV 토론은 정책 대결이 되기보다는 이미지 정치를 부각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유권자들의 관심이 워낙 높아 선거 때마다 판세를 좌우하는 중요한 이벤트가 되고 있다.
일찌감치 대통령 선거에서 TV 토론을 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사회에서는 오래전부터 정치 토론이 활발했고, 이벤트도 많았다. 가장 전설적인 정치 토론 가운데 하나는 진보 논객인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과 보수 논객인 윌리엄 버클리(William F. Buckley)가 1965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University of Cambridge)에서 맞붙었던
토론이다.
작가인 볼드윈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와 동시대 인물로 활발한 저술 활동과 토론 및 강연을 통해 흑인 인권 운동에 앞장섰다. 역시 작가이자 평론가였던 버클리는 보수 잡지인 《내셔널 리뷰(National Review)》를 출판하며 미국의 보수주의 운동을 이끌던 인물이었다. 볼드윈과 버클리는 ‘아메리칸 드림이 미국 흑인들의 차별과 희생에 기반한 것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케임브리지대학교 학생들 앞에서 공개 토론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