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와 기술
8화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 나의 자취방에 여전히 없는 것

멀리 갈 것도 없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구했다. 아주 높은 언덕에 위치한 주택이었다. 계단을 오르다 멈춰 뒤돌아서면 도시의 야경이 보였다. 하늘이 가까워 서울에서도 별이 잘 보였다. 그렇게 숨을 고르고 남은 계단을 다 오르면 나의 첫 자취방이 보였다. 여기까지 들으면 꽤나 낭만적일지도 모르겠다.

이쯤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지만 그럴 순 없었다. 내게 허락된 공간은 2층을 쪼개고 쪼개 만들어진 다섯 개의 방 중 하나였다. 약 여섯 평 남짓이었다. 화장실과 싱크대가 차지하고 남은 공간, 침대와 책상을 놓으면 끝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은 스무 살에겐 너무나 작은 공간이었다.

침대, 책상 아래가 됐든 싱크대 위 선반이 됐든 조금의 틈만 있다면, 그곳은 수납공간이 됐다. 침대에 누우면 방이 한눈에 보였는데, 구석구석에 들어찬 물건들이 언제 무너져 내릴까 불안했다. 조건에 비하면 턱없이 높은 월세가 빠져나가는 날이면 더욱 그랬다. 자려고 누운 머리맡에 바퀴벌레가 나타난 날, 처음으로 혼자 울었다.

그럼에도 첫 자취의 기억이 우울하지만은 않은 것은 주변에서 자취하던 친구들 덕분이다. 그들은 나와 비슷한 혼삶을 살고 있었고, 바퀴벌레 잡는 데 직방인 약부터 동네 맛집까지 혼자 사는 데 필요한 팁들을 공유했다. 그렇게 첫 자취방에서 3년을 살았다. 원룸 이사 팁에 따라 이삿짐은 박스 대신 일회용 종량제 봉투에 쌌다. 그렇게 하면 이사 후에 정리할 때도 쓰기 좋다는 것이었다. 버리고 버려도 줄이고 줄여도 3년 동안 쌓인 살림살이는 제법 됐다. 100리터 짜리 종량제 봉투 두 개를 가득 채웠다.

그렇게 얻게 된 나의 두 번째 자취방은 열 평 원룸이었다. 침대를 놓고 소파를 놓고도 공간이 넉넉했지만, 문제는 벽이 정말 얇았다. 옆집에는 할머니가 혼자 사셨는데, 아침이면 할머니가 보시는 연속극 소리가 들렸고 밤이면 뉴스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와 난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생활 소음을 공유하며 사는 동안 딱 한 번 마주쳤다.

1인 가구로서 연차가 쌓일수록 바퀴벌레는 사라지고 방은 커지는 등 조건은 나아졌지만, 나의 자취방에 여전히 없는 딱 하나, 그건 바로 ‘관계’였다. 자취하며 가장 그리웠던 것은 하루와 끝에 자리한 인사였다. ‘좋은 아침’, ‘잘 자’와 같은 인사를 건넬 사람이 없으니 하루가 며칠이고 이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뜨고 지는 해만이 하루의 경계를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혼사 사는 사람에게도 관계가 필요한 이유다.

각각의 혼삶은 벽을 사이에 두고 살아간다. 열 집 중 네 집이 1인 가구인 시대, 관계의 벽을 허물 필요가 있다. 1인 가구가 연결되어야 동네가 생기고, 동네가 유지되어야 로컬 나아가 우리 사회가 지탱되기 때문이다. 기술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다. 기계의 객관성 또는 중립성이 새로운 ‘관계 맺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책 속의 문장에 기대를 품는다.

정원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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