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권력, 그리고 소리 없는 전쟁
완결

화폐, 권력, 그리고 소리 없는 전쟁

달러 헤게모니는 미국이 철저히 지켜내고 있다. 확장의 열망을 가진 중국으로서는 용인할 수 없다.

©Art Rachen


1. 다가오는 미래, CBDC


세계 주요 강국들이 세계 제일의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를 개발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CBDC 발행을 통해 결제 효율성을 높이고 자금 세탁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정부가 지원하는 디지털 화폐와 개인의 자유는 서로 양립할 수 없다며 경고한다.

각국 정부의 CBDC 개발에 대해 소리 높여 반대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마르타 벨처(Marta Belcher) 변호사로, 시민적 자유 옹호론자이다. “저는 CBDC가 프라이버시와 시민적 자유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합니다. CBDC로 인해 각국 정부가 모든 거래의 중심에 서고, 그들이 금융 거래를 완전히 들여다보거나 기존의 돈을 무효화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돈을 디지털화하려는 각국 정부의 열의가 왜 우려스러운 것일까? 현재에도 우리는 직불카드와 디지털 결제 앱 등을 광범위하게 사용하면서 이미 디지털 방식으로 거래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가 이미 디지털 화폐를 사용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현금 이동은 분절적인 단계로 나뉘어 있고, 여러 금융기관이 중개하고 있다. 직불카드나 결제 앱을 통한 각각의 거래들은 결제 업체, 은행, 금융 정산소(clearing house), 그리고 SWIFT(국제 은행 간 통신 협회)와 같은 국제 금융 거래 체계의 복잡한 시스템을 통하여 검증이 이루어진다.

CBDC 시스템은 그러한 모든 과정을 극도로 간소화하고 더 효율적으로 만들 것이다. 즉, 인간의 개입이 거의 필요 없이 완전히 자동화된 결제 시스템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런데 CBDC의 자동화된 방식은 암호화폐 업계에서 개발된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을 활용한다. 중앙집권적 당국으로서는 일반 대중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돈을 소비하는지 통제할 수 있게끔 프로그래밍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각국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이라고 불린다. 그들은 이런 새로운 유형의 화폐를 개발하고 시험하도록 전 세계의 금융기관들을 압박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2020년 국제통화기금(IMF) 정상 회의에서 국제결제은행의 아구스틴 카르스텐스(Agustin Carstens) 사무총장은 정부가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가 프로그래밍 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인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현재 누가 100달러의 지폐나 1000페소의 지폐를 사용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CBDC가 불러일으킬 가장 큰 변화는, 중앙은행들이 완전한 통제권을 가지고 자금이 어떻게 사용될지 결정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그러한 규제를 시행할 수 있을 만큼 발전되어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90개국 이상의 중앙은행이 CBDC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2019년에 페이스북(Facebook)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리브라(Libra)라는 디지털 화폐를 도입하겠다고 계획을 발표한 이후, 각국의 금융 조직들이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한편 규제 당국들은 페이스북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나 잉글랜드은행(BOE) 등 통화 정책 입안자들의 권한을 벗어날 것을 두려워했고, 결국 그들에 의해 리브라 출시는 좌절되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과 같은 암호화폐들이 유명해지면서 디지털 자산 시장은 급속하게 팽창했다. 은행 관계자들은 CBDC가 팽창한 시장 발전을 활용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파일코인 파운데이션(Filecoin Foundation)의 이사장이기도 한 마르타 벨처 변호사는 CBDC를 P2P 결제 시스템의 변형된 형태로 보고 있다. P2P 결제 시스템은 비트코인 개발자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가 2008년 비트코인 백서를 발표한 이후 개발된 것이다. 당시 사토시 나카모토는 “전통적인 통화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통화 시스템이 작동하려면 완전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는 격언을 남겼다.

그리고 2022년 초부터 제도 금융은 우주 개발 경쟁에 버금가는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다.

영국에서는 2021년에 재무부와 잉글랜드은행이 슬그머니 ‘CBDC 태스크포스’를 설립했고, 불과 1년 뒤에 재무부는 ‘CBDC 국장’이라는 직위를 만들었다. 이번 주에 영국 재무부와 잉글랜드은행은 국가가 지원하는 디지털 파운드(£)가 2020년대 후반에 출시될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영국 재무부의 제러미 헌트(Jeremy Hunt) 장관은 그것이 “신뢰할 수 있고 이용하기 쉬운” 지불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잉글랜드은행 부총재 존 컨리프(Jon Cunliffe)가 거기에 2만 파운드의 한도를 적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유럽연합(EU)은 현재 영국의 발전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유로존 경제권에서 사용하기 위한 디지털 유로(€)를 개발하고 있다. 디지털 유로는 중개 은행들의 감시를 받는 프로그래밍 된 결제 방식을 채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유럽중앙은행(ECB) 경제학자인 파비오 파네타(Fabio Panetta)는 최근 발표에서, 유럽중앙은행이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디지털 유로가 지불되어야 하는지 프로그래밍 된 제한을 도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것은 돈이지 바우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2. 미국과 중국의 CBDC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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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CBDC 개발과 관련하여 가장 뜨거운 경쟁이 펼쳐지는 곳은 미국과 중국이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 최전선에 있는 자국 달러화로 인해 생기는 자신들이 기득권을 가진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다. 덕분에 미국은 통화 발행량에 의해 평가절하되는 일 없이 마음껏 화폐를 찍어낼 수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대규모의 달러화 외환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가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달러 지폐를 더 찍어낼 때마다 줄어든다.

중국이 소위 말하는 미국의 ‘달러 올가미’로부터 벗어나려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한 세계의 준비 통화로써 미국의 지위를 안전히 지켜내고 다른 나라들의 잠재적 위협에 맞서기 위해, 미국 국회의원들이 당파를 가리지 않고 연방준비제도로 하여금 디지털 달러화의 발행을 촉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나 중국은 이미 ‘디지털 위안화’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현재 중국 전역 15개 성(省)과 도시들이 디지털 위안화 시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2022년 11월에 발행된 국제결제은행 보고서에 의하면, 국경 간 결제에 있어서 CBDC의 쓰임새를 테스트한 2200만 달러(1800만 파운드) 규모의 시범사업에서 중국의 디지털 화폐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으며 역시나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었다고 한다.

2021년 6월, 달러의 디지털화와 관련하여 미국 하원에서 열린 회의에서 법률 전문가인 제니 게슬리(Jenny Gesley)는 정책 입안자들에게 경고했다. 다른 나라들이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를 수용하면서 달러화 이탈을 부추길 수도 있다는 위협에 관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나라들이 중국의 CBDC를 채택하면서, 이것이 달러화를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당시 부각되었던 위협 요소들 가운데 하나는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중국의 결제 플랫폼 알리페이(Alipay)였다. 만약 알리페이 앱이 디지털 위안화에 통합되고 중국 공급 업체들이 베이징의 새로운 CBDC로 주문을 받기 시작하면 달러화 이탈 위협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는 미국 달러화의 지배력을 서서히 잠식시키고 글로벌 상거래에서 중국 디지털 화폐의 사용량을 늘린다는 중국의 목표를 앞당길 수도 있다.

달러 헤게모니는 미국이 철저히 지켜내고 있다. 미국은 이 기득권을 통해 더욱 넓은 수출 시장에 진출하거나, 세계 금융기관들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각종 제재 및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참고로 세계 대부분의 무역 거래는 미국의 중개 업체를 통해서 이뤄진다.

이러한 제약은 확장의 열망을 가진 중국으로서는 장기적인 차원에서 용인할 수 없다. 중국은 자국 통화를 전 세계에 통용시키겠다는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디지털 위안화를 광범위하게 보급하여 그런 양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

중국은 일찍이 2014년부터 디지털 위안화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모든 산업화된 경제권을 제치고 CBDC 경쟁에서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다. 중국은 이미 상하이, 선전, 청두를 포함한 주요 도시들에서 CBDC를 테스트 해왔다. 또 국경을 초월한 결제에 자국 CBDC를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고, 달러 위주의 세계 무역 내에서 가해지는 미국의 향후 제재에 대한 반발로 작용할 수도 있다.

런던대학교 동양·아프리카연구대학(SOAS) 스티브 창(曾銳生) 교수는 내게 중국의 야심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중국이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에 협력하는 국가들로 하여금 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하도록 독려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참고로 일대일로 사업은 베이징에서부터 출발하는 세계적인 무역로를 건설하겠다는 거대한 인프라 프로젝트이며, 그 비용은 무려 1조 달러를 넘는다.

창 교수는 중국 당국이 디지털 위안화와 중국의 사회신용체계(社會信用體系)의 연계를 모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참고로 사회신용체계는 전체주의로 왜곡된 버전의 신용등급 개념이다. 그 안에서는 시민들의 행동 및 신용에 대한 모든 측면이 평가된다. 이처럼 ‘프로그래밍 가능한 돈’과 당에 대한 충성도를 수치로 측정할 수 있는 방식의 결합은 전체주의의 천국에서는 완벽한 궁합이다.

동양·아프리카연구대학의 중국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창 교수는 이렇게 덧붙인다. “시진핑이 모든 것들에 대하여 공산당의 장악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중국을 몰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직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 둘의 연계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하나의 방안입니다.”

정치학자인 창 교수는, 사생활이 줄어들고 감시가 늘어나는 하향식 정책을 중국 시민들은 현실적인 차원에서 바라본다고 강조한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감시 국가에서 살고 있으며, 디지털 위안화는 또 다른 감시 수단이 하나 늘어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전자결제가 널리 쓰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에 익숙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3. CBDC 경쟁의 이면


원활하고 비용 효율적인 국경 간 거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디지털 위안화는 실용적인 대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으로부터 경제 제재를 받고 있거나 그런 위협이 제기되고 있는 이들에게 더욱 그렇다. 디지털 위안화를 대규모 채택함으로써 미국의 반대편들은 제재를 우회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현재로서는 그러한 제재들로 경제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미국 달러화의 위력을 지정학적인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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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제재 조치들은 미국의 잠재적인 경쟁자들에게 글로벌 경제가 여전히 달러화 위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엄중히 상기시킨다. 그러나 제재 조치들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전 지구적으로 상호 의존적인 세계를 만들기 위한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진전이 오히려 역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 응용경제학 교수이자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경제 고문이었던 스티브 행키(Steve Hanke)는 미국의 제재 조치가 중국 디지털 화폐의 출현을 앞당길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중국의 디지털 화폐는 미국 달러화 헤게모니에 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 국제 통화인 미국 달러화가 현재로서는 매우 막강하며 그 안전한 지위로부터 미국이 혜택을 얻고 있지만, 달러화를 무기화한다면 도전자들을 불러들일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다른 모든 제재 조치들과 마찬가지로, 제재는 수많은 의도치 않은 비용을 야기해 왔습니다. 그 비용은 제재를 가한 당사자들에게 되돌아왔고요.”

2022년 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의 미국 달러화 외화 보유고가 동결되었고, 달러가 지배하는 글로벌 시스템 내에서 러시아가 제대로 기능할 수 없게 만드는 수많은 제재가 잇따랐다. 이는 중국으로 하여금 그들이 달러 지배적인 세계 무역 체제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 이는 마치 중국의 목을 감싼 올가미 같은 것이다. 이 상황은 언제든 달러 주도 체제가 조여오는 경우, 중국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부각시킨다.

2022년 6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발표한 문서에 의해 중국의 불안감은 더욱 심해졌다. 나토는 중국이 경제적 레버리지를 활용해서 영향력을 더 크게 행사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해당 문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중국은 우주, 사이버, 해양 영역을 포함하여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를 전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 관계는 우리의 가치와 이익에 역행하고,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를 약화시키려는 양국의 노력을 더욱 강화한다.”

러시아를 상대로 한 세계 금융 시스템의 무기화와 나토의 매파적 발언들은 서양 강국들이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을 나타낸다. 중국은 목에 감긴 달러 올가미가 더욱 조여진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러시아를 겨냥한 제재 조치들은 중국으로서는 달러 지배적 금융 인프라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 위안화 출시를 가속화할 수 있다.

CBDC 경쟁의 결과는 글로벌 금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세계 각국은 가까운 미래에 SWIFT나 미국의 결제 시스템과 같은 중개 기관을 거치지 않고 디지털 통화를 직접 교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경쟁의 주도권을 차지하고 CBDC의 인프라 및 운영 결정권을 갖게 될 국가는 선점자로서의 상당한 우위를 비롯하여 이 분야 다른 혁신들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 현재 CBDC 시행에 앞서 있는 것은 중국이다. 이는 달러화 패권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의 디지털 달러화 개발에 대해 신중하던 미국의 기존 입장은 바뀔지도 모른다. 

그런데 달러를 디지털화한다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은 중국을 따라잡기 위해 디지털 위안화의 감시, 프로그래밍 가능성, 개인정보 추적 기능을 모방할 수도 있다. 아니면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개방형의 무승인 CBDC를 개발할 수도 있다.

전자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 이미 존재하는 암호화폐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후자는 USDC나 USDT처럼 달러화에 고정된 스테이블 코인 형태로 이미 존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민간 부문의 혁신을 장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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