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원래 난민 문제에 무지했다. 그런데 외국인 센터에 근무하는 지인도 있고 주변에서 난민 관련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관심이 갔다. 지금은 남편이 된 당시 남자친구가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수복 당시 ‘난민의 섬’으로 유명한 그리스의 레스보스섬(Lesvos)에 다녀와 현장 사진을 보여줬다. 그곳엔 모리아 난민 캠프라는 그리스 최대 난민 수용소가 있는데 아프간 난민이 굉장히 많더라.
마음이 복잡해졌겠다.
안타까웠다. 국내에 들어온 아프간 난민은 그래도 ‘미라클 작전’이라는 국가 차원의 작전을 통해 입국하지 않았나. 그곳의 난민들은 아무 기반 없이 자력으로 탈출한 사람들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 남은 가족들이 걱정되어 마음대로 사진 한 장조차 찍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하더라. 아프간 특별 기여자 지원 사업 인력을 뽑길래 바로 지원했고 다행히 좋게 봐주셔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주변에서도 많은 격려와 지원이 있었다. 남편과 작년에 결혼했는데 지원 사업 때문에 결혼 준비를 거의 못 했음에도 남편이 대신 준비를 도맡고 배려해 줬다.
울산은 흔히 외국인이 많은 공업 도시의 이미지가 있다. 이주 배경 청소년들도 많은 편인가?
전체 학생 수의 감소에 비해 다문화 학생 수는 증가하는 양상이 있다. 2021년 기준 5년새 40퍼센트가 늘었다는 보도를 봤다. 하지만 동구의 경우 인구 자체가 다른 구에 비해 많은 편이 아니라 절대적인 숫자가 많진 않다. 다만 기업체들이 사업을 확장해 외국인을 더 고용할 경우 다문화 가정의 수가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울산 동구 건강가정 다문화 가족 지원센터는 어떤 일을 하나.
울산 동구에 거주하는 모든 가족이 건강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포괄적으로 지원한다. 원래 다문화 가족 지원센터로 2010년 개소했다가 2018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통합됐다. 1인 가구, 한부모 가족 등 가족의 유형에 상관 없이 보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상담이나 생애 주기별 교육을 진행하기도 하고 다문화 가정의 한국어 수업이나 방문 교육 프로그램, 자립 지원도 하고 있다. 현재 센터 이전을 계획 중인데 이후엔 이름이 ‘동구 가족 센터’가 될 예정이다.
특별 기여자들이 들어오며 사업에도 변화가 생겼는지?
일단 아프가니스탄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육이나 사회 적응 교육이 새로 생겼다. 이에 더해 주민과의 소통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지역 주민들, 가족들과의 교류 프로그램도 만들어졌다. 올해부터는 지역 주민들과 연계한 학습 멘토링도 운영 중이다.
울산 교육청의 결단이 만든 변화
처음 특별 기여자들이 입국했을 당시 동구의 분위기는 어땠나?
사실 동구 주민이 아니다 보니 입국 당시의 여론은 언론에서 주로 접했다. 특히 울산교육청이 특별 기여자 아이들의 서부초등학교 입학을 결정했을 당시의 지역 사회의 반대 목소리는 엄청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뉴스에서 사진만 봐도 여론의 중간값이 어떨지 느껴졌다. 노옥희 교육감님이 당시 최종 결정권자였는데 결단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거다.
노옥희 당시 교육감의 결정이 아이들에게 실제 도움이 됐나?
교육감님이 결정해 주신 덕에 아이들이 지금처럼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특히 특별 기여자 아이의 손을 잡고 등교하시는 모습이 지역 사회에 큰 울림이었다. 보여주기식으로 아이들을 데려오고 입학시키고 끝낸 게 아니었다. 학교 선생님들과 통역사분들의 지원까지 아끼지 않으셨다. 게다가 원래 교육청엔 통역사가 없었다. 정부 합동지원단에 소속되어 있어 지원 사업에 따라 지원 기간이 정해져 있었다. 그랬던 것을 울산교육청에서 필요를 느끼고 아예 부처로 배치하기도 했다. 놓칠 수 있는 부분인데 정말 세심하게 챙겨주셔서 감사했다.
현장의 실무자로서 감회가 남달랐겠다.
사실 특별 기여자라고 하면 어머니, 아버지들만큼 아이들이 항상 눈에 밟히고 안쓰럽다. 특별 기여자 아이들 외에도 신경 써야 할 아이들이 많을 텐데 철저하게 사회적 약자인 이 아이들을 위해 마음 쓰신 것이 느껴졌다.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고’ 최우선으로 챙기겠다는 교육감님의 모토를 정확히 실현하신 것이 아닌가 싶다.
주민 여론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현장에서 체감한 일은 없는지.
아프간 지원 사업을 시작한 뒤 주민 여론을 느끼게 된 대표적인 일이 있다. 작년 8월 우리 센터에서 진행한 ‘함께하다’라는 이름의 파트너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게 됐다. 초등생 자녀를 둔 아프간 가정과 내국인 가정 각 열 가정을 1:1로 매칭해 외국인 가족들의 리드로 다양한 교류 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결국 잘 마무리했지만 처음 신청을 받을 당시엔 곤혹스러웠다. 아프간 가정은 열 가족이 넘게 모집이 됐으나 내국인 가족은 모집 초반에 두세 가족만 신청했기 때문이다.
내국인 가정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겠다.
온라인으로 홍보도 하고 전단지도 부착해 보고 학교에 공문도 보내고 설문지를 만들어 학교 앞에서 나눠주기도 했다. 어느 정도 선의가 전제되어야 신청할 수 있기에 강요할 수도 없었다. 당시 아이들 하교 시간에 학교에서 설문지를 돌리던 중 아프간 어머님들이 아이를 데리러 오셨는데, 아프간 아이들이 몰려오는 순간 주변 한국인 어머님들의 시선이 확 바뀌더라. 흘겨보시는 분도 있고 자녀를 품에 숨기는 분도 계셨다. 특별 기여자 가족들이 입국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 인식이 좋지 않다는 것을 그때 처음 피부로 느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내국인 가정과 아프간 가정 간 관계가 개선되는 걸 느꼈나?
내국인 가족을 대상으로 익명 만족도 조사를 했는데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하시더라. 자신도 특별 기여자 자녀들이 서부초등학교에 입학할 당시 반대 서명을 했는데 후회된다고. 직접 마주하고 소통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해나갈수록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는 게 보였다. 제일 머리 아팠던 만큼 제일 뿌듯한 사업이었다.
마음의 벽을 허물다
내국인 만큼이나 특별 기여자도 마음의 벽을 허무는 시간이 필요했을 터다.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의 마음은 어떠했나.
사람마다 차이가 있으나 아버지들 가운데 마음의 벽이 강한 분들이 좀 있다. 전반적으로 과묵하셔서 처음엔 무섭기도 하고 다가가기 어려웠다. 유독 적응을 어려워하셔서 많이 신경 써서 관리했던 집이 있다. 그 집 아버님이 우리 노력이 많이 기억에 남으셨는지 이제는 센터에 굉장히 호의적인 분이 됐다. 아직 주변 사람들은 그 아버님을 예민하고 차가운 분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요새는 나와 마주칠 때마다 늘 웃으신다.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으시는구나 생각했다.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도 있으니 움츠러드는 부분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런 시선은 특별 기여자들이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전제 위에 자리하는 것 같다.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특성, 우리와는 많이 다른 모습, 처음엔 언어도 잘 통하지 않았으니 불신이 컸다고 생각한다. 실제 특별 기여자가 법적인 문제를 일으킨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비자 연장이 최우선인 분들이다. 알고 짓는 죄보다, 제도적 차이로 인해 모르고 짓는 죄가 있을까 봐 세세히 알려드리고 신신당부했다. 특별 기여자들도 늘 이런 점에 대해 노심초사한다.
가장 힘든 것은 언어 아니겠나. 특별 기여자들이 한국어를 익히는 데 어려움은 없나?
새 언어를 배우는 것도 어려운데 어머님 중에 문맹자가 많다. 한국어 습득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자녀를 돌보고 남편을 보필하며 살아오셔서 개인 시간이 적은데 언어까지 익혀야 하니 굉장히 힘드셨을 거다. 어머님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 지원 사업도 했지만 사업이라는 건 결국 멈추는 시점이 있지 않나. 한 사업이 마무리되고 다시 시작되기까지의 공백에 그간 올려놓은 어머님들 한국어 실력이 떨어질까 봐 별도로 자원봉사자까지 모집했다. 다행히 자원봉사자분들이 꾸준히 와주셔서 올 1월부터 100회가 넘는 멘토링을 진행할 수 있었다.
특별 기여자가 한국에 온 지 1년 반이 지났다. 이들은 잘 적응하고 있나.
가족마다 편차가 있으나 대체로 잘 적응하고 있다. 최종 목표는 자립이다. 언제까지고 걸음마를 못 떼게 해선 안 된다. 한국 사회에서 스스로 걷고 뛸 수 있게 만드는 게 우리 역할이다. 일례로 올해부터는 버스를 직접 타고 다니시라 못을 박았다. 원래 버스 타는 걸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아 몇 번 교육을 진행했었다. 이젠 버스를 어려움 없이 타시는 분들이 꽤 많이 늘었고 내게 자랑도 하신다. 아이들이 처음 유치원 입학할 당시에도 아버님들이 취직한 회사의 도움으로 이미 입학 신청을 다 마쳤더라. 그것도 모르고 입학 자리를 혼자 열심히 알아봤었다. (웃음)
특별 기여자의 가장 가까운 벗이다. 소회는 어떤가.
가정 방문도 많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 바쁘고 고된 게 사실이다. 그래도 다들 너무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힘이 난다. 최근엔 라마단 기간이었는데 이 기간에 무슬림은 물도 못 마신다. 그런데 가정 방문을 가니 나를 대접한다며 견과류와 과자, 빵, 차를 꺼내오시더라. 여러분이 마시지 않으면 안 먹고 안 마시겠다고 해도 늘 내 눈치를 보며 차 마시겠냐고 물어본다. 베푸는 데 인색함이 없고 온정이 넘치는 분들이다.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자 우리 모두의 친구가 될 것이라 믿는다.
특별 기여자 아이들과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