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의 얼굴
6화

에필로그 ; 새로운 가면 앞에서 물어야 할 것

프랑스의 문화인류학자 벵자맹 주아노(Benjamin Joinau)는 책 《얼굴: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1]에서 상상과 의미의 근원에 뿌리를 두는 특별한 ‘기호’로서 얼굴의 의미를 다각도로 탐색한다. 그에 따르면 얼굴은 “개인으로서의 ‘나’를 두드러지게 해 주는 내 몸의 출발점이자 내 존재를 부각시키는 육체적인 서명”이다. 동물들의 얼굴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는 데서 보이듯, 얼굴은 대부분의 문화에서 인간에게만 특별히 쓰이는 개념이며, 감정을 표현하고 역사를 축적한 인간성의 상징이다.

동시에, 얼굴은 사회적인 장소다. 얼굴에는 사회가 부여하는 역할과 표지가 새겨지고, 개인은 사회가 그에게 부여하는 모습에 맞춰 얼굴로 표현되는 개성을 조정하며 ‘체면(體面)’을 차린다. 이 점에서 얼굴은 개인의 주관성이 그가 속한 집단과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얼굴이 지닌 역사성과 사회성을 두루 살피며 벵자맹 주아노는 얼굴을 “육체적 존재와 상상적 공간이 만나는 특별한 장소”라 정의한다. 세계의 신화와 전설, 예술을 두루 살핀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얼굴이 “인간과 신, 자아와 세계, 개인과 사회 간의 본질적 결합”이라는 사실이다. 얼굴은 “근본적으로 모호하고 복잡”하며 “명백한 동시에 신비한” 이중적인 영역이다.

이렇듯 얼굴이 신비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얼굴을 가리거나 바꾸는 것은 인류 역사 속에서 원칙과 금기, 그리고 금기의 파괴를 동반하는 사회적 과정이었다. 가면(假面·mask)은 이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원시 사회에서 가면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죽은 조상의 영혼이나 신과의 소통을 위한 수단이었고, 가면무도회의 목적은 나의 존재를 잠시 감추기 위한 것을 넘어 특정한 세력과 내 몸이 동등하게 소통하도록 하는 것이었다.[2]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에 따르면, 가면을 쓴 사람은 가면이 상징하는 영혼을 가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영혼이 되며, 가면을 쓴 ‘배우’는 자신의 존재를 ‘잠시 멈추고’ 가면에 재현된 얼굴 그리고 영혼을 다시 살아나게 만든다. 가면이 가진 힘은 가면을 통해 세상에 직접적인 공간을 갖고 있지 않은 공간으로 육체를 들여보냄으로써 육체를 신의 세계와 소통하는 상상적 공간의 단편으로 만드는 데 있다. 가면을 걸침으로써 몸은 ‘위대한 유토피아적 배우’가 된다고 푸코는 말한다.[3]

이와 같은 신비로운 힘 때문에 역사적으로 가면에는 수많은 금기가 덧붙었다. 가면을 두는 장소와 보관법, 가면을 착용할 수 있는 주체와 상황, 장소 등에는 수많은 규칙이 있었다. 가면은 영혼을 표현한 것을 넘어 영혼 그 자체로서 간주됐기 때문이다. 가면은 존재와 부재, 즉 지상으로 내려온 영혼의 ‘존재’ 및 배우가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잠시 멈추는 ‘부재’에 작용한다.[4] 가면은 이를 이용하는 생물학적 개인뿐 아니라 이를 착용하는 사회적 인물, 그리고 가면이 재현하는 특정한 영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주체와 ‘타자성’을 내포하는 기호인 셈이다. 따라서 가면을 다룬다는 것은 곧 생물학적 개인과 사회적 자아 그리고 가면이 나타내거나 소개하는 타자성을 다룬다는 것과 같다.

딥페이크가 원본 이미지에 덧씌운 ‘가짜 얼굴’은 어떨까? 딥페이크를 통해 합성한 얼굴 또한 ‘가면’의 일종이라 할 수 있을까?

벵자맹 주아노는 가면을 용도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한다.[5] 첫째는 얼굴을 가리기 위한 가면이다. 스파이더맨의 가면은 ‘진짜’ 존재를 잠시 괄호 안에 넣기 위한 것이다. 둘째는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가면이다. 아프리카의 소수민족 도곤족은 자신만의 가면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평생 간직하는데, 이는 가면이 일종의 주민등록번호처럼 개인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호하기 위한 가면이다. 착용자를 상징적, 육체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목적의 가면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마스크도 넓게 보면 이에 해당한다.

딥페이크가 만드는 얼굴은 원본 이미지의 존재를 지우고, 합성한 이미지의 존재를 드러내며, 다큐멘터리 〈웰컴 투 체첸〉 사례처럼 때때로 특정 존재를 보호한다는 점에서 현대의 새로운 가면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덧씌워지는 가면이 착용자의 몸과 행동, 그리고 의지와 아무런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원시 사회의 제례의식에서 가면을 착용함으로써 주체가 사회적 자아로서 자신을 인식하고 가면, 혹은 가면이 재현하는 대상과 깊이 소통했던 것과 달리, 딥페이크라는 가면은 몸과 얼굴, 자아와 타자, 개인과 사회와 같은 연결을 만들지 못한다. 딥페이크의 효과는 가면을 쓰는 자(원본 이미지의 주체)가 아니라 합성된 이미지를 보는 자에게서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딥페이크를 통한 얼굴 바꾸기가 사회적 행위라는 자각이 적은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얼굴 바꾸기와 관련한 수많은 원칙과 금기는 딥페이크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는 딥페이크가 얼굴을 합성하거나 생성하기 위해 사용된 ‘타자’의 얼굴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딥페이크라는 기술의 간편함 속에서 인류 역사가 지속해 온 얼굴 바꾸기 혹은 가면 쓰기의 의미를 손쉽게 잊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딥페이크가 조작, 합성하는 대상은 영혼을 드러내는 ‘얼굴’이다. 딥페이크가 인공지능 기반의 여타 이미지 조작, 합성 기술들과 다른 점은 얼굴의 문제와 관련된다는 점이며, 따라서 우리는 기술 자체를 넘어 얼굴 및 개인에 대한 사회의 통제와 관련해 딥페이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딥페이크를 통한 이미지 조작의 세계는 얼굴에 대한 사회적 판단을 드러내는 장으로서, 기술적으로 합성된 이미지가 야기하는 결과를 넘어 얼굴의 가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딥페이크,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가면일까? ⓒGerd Altmann
딥페이크 합성 이미지를 볼 때 우리는 ‘이 얼굴이 진짜인가?’라는 질문을 가장 먼저 던진다. 그간 우리는 가짜 얼굴이 전하는 정보를 우리가 믿는 것은 아닌지, 가짜 얼굴이 진짜 얼굴보다 더 경제적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것은 아닌지를 물어 왔다. 그러나 딥페이크 이미지의 진위 여부를 가려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얼굴에 숨은 내면과 역사, 정체성과 주체성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딥페이크가 어떤 얼굴을, 왜 바꾸는지를 더 많이 물어야 할 것이다.

딥페이크의 얼굴은 어떤 기호로서 왜 만들어지는가? 그로 인해 우리가 경험하는 얼굴 가치의 변화는 무엇인가? 왜 딥페이크로 스타의 얼굴, 예쁜 얼굴, 호감형 얼굴, 돈이 되는 얼굴이 더 많이 합성되는가? 왜 어떤 얼굴은 합성에서 배제되고 생략되는가? 이렇게 만들어진 얼굴(가면)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 많은 질문들이 답변을 받지 못한 채 쌓여 있다.

얼굴의 수수께끼에 유일한 답도, 명백한 답도 없듯이[6] ‘딥페이크의 얼굴’ 또한 하나의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술 자체의 새로움에 대한 소란(buzz)이 어느 정도 잦아들고 다양한 사례들이 계발되고 있는 지금이 이전과는 다른 질문들을 딥페이크의 얼굴에 대해 던지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는 사실 만큼은 분명하다. ‘이 얼굴 진짜인가?’, ‘누구의 얼굴인가?’를 넘어 ‘어떤 얼굴인가?’, ‘왜 바꾸는가?’를 지속적으로 묻고 답해야 한다. 그것이 딥페이크가 폭력으로 훼손된 얼굴이 아니라 ‘유토피아적 얼굴’을 더 많이 만들어 내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1]
벵자맹 주아노(신혜연 譯), 《얼굴: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 21세기 북스, 2011.
[2]
 Michel Foucault et al., 〈Utopian body〉, 《Sensorium: Embodied experience, technology, and contemporary art》, 2006, The MIT Press, pp.229-234.
[3]
벵자맹 주아노(신혜연 譯), 《얼굴: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 21세기 북스, 2011, 47쪽.
[4]
벵자맹 주아노(신혜연 譯), 《얼굴: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 21세기 북스, 2011, 50쪽.
[5]
벵자맹 주아노(신혜연 譯), 《얼굴: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 21세기 북스, 2011, 87-95쪽.
[6]
Dominique Baqué, 《Visages》, du regard,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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