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입니다. 대중문화, 특히 영화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20세기 할리우드를 지배한 건 새로운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영화계 대세는 속편, 아니면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히어로물이죠. 대부분 원작을 둔 영화가 만들어지고, 또 흥행도 잘 됩니다. 과거엔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했다면 익숙한 캐릭터를 더 견고하게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는 셈입니다. 과학, 기술의 접근과 유사하지 않나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전 세계 박스오피스 상위 10개 영화
[6]를 모아서 분류해 봤습니다. 속편은 색을 칠하고, 원작을 각색한 작품은 빗금으로 칠해서 구분했습니다. 새롭게 만들어 낸 오리지널 영화는 칸을 비웠는데, 결과는 어떨까요? 총 50편 중 오리지널 영화는 단 여섯 편에 불과합니다. 그마저도 〈보헤미안 랩소디〉는 프레디 머큐리의 전기 영화고, 중국의 프로파간다 영화와 중국 전쟁 영화를 제외하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 정도만 남죠. 나머지는 속편 아니면 코믹스 원작을 뒀거나 리메이크 작품입니다.
챗GPT는 세상을 바꿀 파괴적 발견일까?
무엇이든 물어보면 대답해 주는 챗GPT부터 무엇이든 그려 달라고 하면 그려 주는 DALL-E2, 미드저니 같은 인공지능까지.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바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도화된 인공지능은 인류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뚝딱뚝딱 만들어 내는 혁명적인 기술인 걸까요? 아니면 점점 고도화되는 기술들을 조금 더 다듬은 훌륭한 서비스일까요?
They가 3인칭 단수로 쓰인다고?
반팔티라는 단어, 어떻게 들리나요? 혹시 불편함을 느껴 본 적 있나요? 아마도 없을 겁니다. ‘반팔티’에 특별히 문제가 보이진 않으니까요. 그런데 신체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반팔’이라는 단어를 들을 땐 어떨까요. 실제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반팔티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상처가 된다고 합니다. ‘반팔’ 대신 ‘반소매’라고 표현하는 게 덜 차별적이겠죠.
앉은뱅이책상, 외발 자전거, 결정 장애 등 일상 속 단어 중에 차별적 표현이 담겨 있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특정 언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 불편함 혹은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사용해 왔던 언어에 대해 이야기해 봅니다. 특히 성차별적 언어와 그 차별을 없애기 위해 등장한 성중립 언어에 집중했습니다. 질문을 던집니다. They가 3인칭 단수 대명사로 쓰인다는 사실, 알고 있나요?
성중립 언어란 무엇인가
2018년 유럽의회에서 보고서를 하나 냈습니다. 보고서의 이름은 ‘GENDER NEUTRAL LANGUAGE in the Parliament’. 유럽의회에서 유럽연합 의 법률을 만들거나 서로 의사소통을 할 때 성중립 언어를 사용하자는 취지로 만든 겁니다. 그리고 의원, 직원들에게 배포했습니다. 일종의 가이드북을 만든 거죠. 대표적인 예는 이렇습니다. 과거 EU의 법률에는 인류mankind, 인력manpower과 같은 용어를 표현할 때 남성man의 뜻이 담긴 단어를 썼는데, 앞으로는 성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자는 겁니다. 이를테면 인류는 humanity로 인력은 staff로 말이죠. 이처럼 성중립 언어는 성별로 대상을 특정하지 않는 걸 의미합니다.
물론 이 보고서가 법적 구속력이 있거나 무조건 써야 한다는 강제 규정은 아닙니다. 권고 차원에서 만들어진 보고서거든요. 유럽의회가 성중립 언어를 사용해서 좀 더 공정하고 포용적인 의미를 담고, 젠더 고정 관념을 줄여 성평등을 달성해 보자는 차원에서 접근했다고 보면 됩니다. 언어에서 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걷어 내자는 게 이 보고서의 지향점입니다.
대표적인 성중립 언어가 바로 They입니다. “남자를 지칭할 때는 He를 쓰고, 여자를 지칭할 때는 She를 쓰고, 그리고 여러 사람을 지칭할 때는 They를 쓴다”는 문법이 바뀌고 있습니다. 3인칭 복수 인칭 대명사로 쓰여 온 They가 3인칭 단수 대명사로도 쓰이고 있거든요. 성별을 모르거나 혹은 성별을 알리고 싶지 않은 개인을 가리킬 때 They라고 부르는 식으로 말이죠. 여기에 성별을 규정하지 않는 정체성인 논바이너리를 지칭할 때도 대명사 They를 사용하고 있어요.
사실 성중립 언어에 대한 논의는 꽤 오래됐습니다. 3인칭 단수로 쓰이는 They는 이미 2015년 미국언어연구회에서 올해의 단어로 뽑을 정도니까 말이죠. 《워싱턴 포스트》 역시 2015년부터 They를 단수 대명사로도 활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인 메리엄 웹스터 사전에도 이 용례가 올라 있기도 해요. 2019년에는 영국 가수 샘 스미스가 자신의 정체성이 논바이너리라고 커밍아웃하면서 자신을 지칭할 때 언론에서 He나 She 대신 They를 써 달라고 요청한 일도 있었습니다.
성중립으로 변하는 언어들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도 성중립 언어를 사용하려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15년 스웨덴 학술원은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는 성중립 인칭 대명사를 공식 국어사전에 포함하기도 했습니다. 스웨덴어로 남성을 가리킬 땐 Han을 쓰고, 여성은 Hon을 쓰는데, 성별을 밝히지 않거나 확인되지 않을 때, 혹은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들을 지칭할 때 사용할 대명사로 Hen을 포함한 겁니다.
스웨덴에선 일찍이 1960년대부터 남성 대명사 Han을 포괄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있었습니다. 2010년대 들어서면서 성평등과 성중립을 위한 노력으로 성중립 대명사인 Hen이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관공서뿐만 아니라 법원 판결문에도 Hen이 등장했죠. 마지막으로 스웨덴 학술원이 2015년에 공식적으로 인정을 해준 셈입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어와 스웨덴어는 상황이 조금은 다릅니다. 사실 영어, 스웨덴어는 상대적으로 성중립 언어를 적용하는 게 쉽거든요. 왜냐하면 영어와 스웨덴어는 성별이 구분된 단어가 인칭 대명사와 일반 명사 정도로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독일어과 프랑스어는 문법 안에 성별이 들어 있는지라 상대적으로 고쳐 나가기 힘든 거죠.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프랑스어는 일반적으로 남성형 명사에 e를 붙여서 여성형 명사로 만듭니다. 남성인 친구를 뜻하는 단어는 ami인데, 여성인 친구는 amie 이렇게 쓰는 거죠. 그런데 복수형으로 만들 땐 남성형 명사가 우선되는 법칙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