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속 성 고정 관념을 측정하기 위해 총 25개의 언어를 가지고 남성Male과 여성Female이 각각 가정Family과 직업Career 중에 어떤 단어와 연관성이 더 높게 나오는지 분석했습니다. 남성-직업, 여성-가정의 연관성이 더 크면 성 고정 관념이 강한 언어로 보는 것이죠. 여기에 개인의 문화적 고정 관념을 파악하는 데 주로 사용하는 내재적 연관 검사 IAT 데이터와의 관계까지 살펴봤습니다. 위의 그래프에서 알 수 있듯 두 데이터는 양(+)의 상관관계가 있었습니다. 성 고정 관념이 강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 개개인의 성 고정 관념이 더 강했다는 거죠.
유모차를 유아차로
우리나라의 성차별 언어는 얼마나 될까요? 한국어는 독일어와 프랑스어처럼 성별이 박혀 있는 언어보다 상대적으로 성중립적이기 쉬운 언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곳곳에서 성차별적 언어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18년 여성가족부가 조사한 ‘일상 속 성차별 언어 표현 현황 연구’
[9] 결과를 보면, 성차별 언어 표현을 한 번이라도 접해 본 사람의 비율은 응답자의 90퍼센트를 넘었습니다. 특히 성 역할에 관한 차별 표현이 91.1퍼센트로 가장 많았어요. 여성을 지칭할 때만 ‘여’ 자를 따로 붙이는 ‘여배우’, ‘여의사’, ‘여경’ 같은 단어들이 그런 예가 되겠죠.
가족 호칭에서도 남편 쪽의 친척에게는 ‘도련님’, ‘아가씨’로 높여 부르지만 아내 쪽은 ‘처남’, ‘처제’로 부르고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을 병렬적으로 배치할 경우에 ‘남녀노소’, ‘아들딸’, ‘남녀 공학’ 등 남성이 먼저 위치하지만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할 땐 ‘연놈’과 같이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 먼저 오기도 하고요. 여성이 앞에 와 있는 ‘Ladies and Gentlemen’을 ‘신사 숙녀 여러분’으로 뒤바꿔 번역하기도 하죠.
- 유모차 → 유아차 ; 여성(母)만 포함된 단어로 평등 육아 개념과 맞지 않습니다. 아이가 중심이 되는 유아차가 성중립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스포츠맨십 → 스포츠 정신 ; 스포츠를 하는 누구나 가져야 하는 스포츠 정신에 남성(man)만 포함된 단어는 성평등에 어긋납니다.
- 자매결연 → 상호결연 ; 상호 간의 관계 형성의 사회적 의미를 ‘자매’라는 여성적 관계로 표현해 여성에 대한 인격적 편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적 표현입니다.
이러한 성차별적 표현을 바꾸기 위한 노력은 곳곳에서 보입니다. 앞에 정리해 둔 건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에서 2018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평등 언어 사전의 일부 내용입니다. 서울시는 시민들과 함께 성중립 언어 개선안을 만들어 공표하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은 가족 호칭에 대해 아내 쪽 친척을 남편 쪽 친척의 호칭처럼 ‘님’을 붙여 부르는 방식을 권고했습니다.
가장 보수적인 언어가 통용되는 법령 용어도 성차별적 언어 표현이 성중립 언어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법 조문에는 여전히 ‘미망인’과 같이 성차별적 표현이 있거든요. 이를 바꿔 보려고 한국법제연구원이 법률을 전수 조사해서 차별 언어를 검토했습니다. 2022년 3월,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전문위원회는 ‘성적 수치심’이라는 단어를 성중립적 용어로 변경하라고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성평등은 어디쯤?
스포츠 용어, 법적 용어, 그리고 우리 일상생활 용어 곳곳에 여전히 성차별 표현이 남아 있습니다. 사회 곳곳에 묻어 있는 성차별 표현은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 구조가 남긴 흔적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의 성평등 수준은 어디까지 와 있는지 한 번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관련 지표 두 개를 분석했습니다. 하나는 UN 산하 기관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제공하는 성불평등 지수(GII·Gender Inequality Index)이고, 또 하나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하는 성격차 지수(GGI·Gender Gap Index)입니다.
두 지표는 약간 다른데, 우선 GII는 여성이 어떤 수준의 삶을 살고 있는지를 판단한 절대 평가 점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GGI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차이를 가지고 만든 상대 평가 점수죠. 또 활용하는 데이터도 차이가 있어요. GGI에는 사회 경제적 지표가 포함돼 있습니다. 사회 경제 분야에서 남성과 여성의 지위를 비교할 수 있는 직업 내 성비, 임금 격차, 여성 장관 수 등의 수치가 GGI에는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반면, GII에는 포함돼 있지 않아요. GII에는 건강과 교육 데이터가 중심입니다. 모성사망비와 청소년 출산율처럼 조금 더 직접적으로 여성의 삶의 질을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를 포함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