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패션의 날갯짓
한겨울도 초봄처럼 느껴질 만큼 지구가 따뜻해졌습니다. 기후 변화 때문이겠죠? 2022년 겨울, 유럽은 기온이 올라 스키장에 눈이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알프스 스키장이 대목에 문을 닫을 정도였습니다. 계절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날씨가 풀리니까 새 옷을 장만하고 싶다는 기운이 마구마구 솟기도 합니다. 마부뉴스는 ‘나비효과’ 특집을 진행하는데요, 내가 고른 이 아이템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작은 소비의 날갯짓이 저 먼 곳에 어떤 태풍을 일으킬 수 있는지, 데이터로 정리해 설명합니다. 우리가 사서 입는 옷의 날갯짓은 지구에 어떤 태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패션의 나비효과를 살펴봅니다. 여러분은 ZARA, H&M에서 옷을 얼마나 사나요?
빠르고, 다양하고, 값싸게
흔히 우리가 옷을 사는 무신사나 탑텐, ZARA 등을 스파 SPA 브랜드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지칭하는 또 다른 말, 패스트패션입니다. 최신 유행하는 디자인과 아이템을 바로바로 반영해서 생산, 유통하는 패션 산업을 뜻합니다. 주문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처럼 말이죠. 다양한 디자인의 옷을 만들어 빠르게 회전시키는 시스템이다 보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최신 유행의 옷을 다양하고 값싸게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ZARA, H&M 등 패스트패션 업체는 길게는 3주, 짧게는 2주 안에 신상 제품을 찍어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패스트패션을 넘어 ‘울트라’ 패스트패션을 지향하는 브랜드가 등장했습니다. 쉬인SHEIN이라는 브랜드 들어본 적 있나요? 쉬인은 기존 패스트패션의 2주 사이클을 5일로 줄였습니다. 압도적인 물량 공세에 힘입어 쉬인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매출이 폭증했습니다. 2021년 6월엔 ZARA와 H&M을 제치고 세계 최대 패스트패션 업체로 올라섰습니다. 2021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한 패션 애플리케이션이 바로 쉬인이었을 정도입니다. 아마존을 제치고 말입니다.
쉬인이 새로 만드는 옷의 양은 얼마나 될지 마부뉴스가 직접 정리했습니다. 기간은 2023년 1월 3일부터 1월 9일까지 일주일입니다. 국내 쉬인 홈페이지에 신상품이 얼마나 올라오는지 분석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일주일간 쉬인이 쏟아 낸 신상품은 무려 3만 8025개였습니다. 많게는 하루에 7000개가 넘었고 적어도 3500개 이상의 신상을 찍어 냈습니다. 이 기세로 52주를 채우면 쉬인이 1년 동안 새롭게 만들어 내는 제품은 197만 개가 넘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양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합성 섬유입니다. 물론 중국 광저우 전역을 제작 공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쉬인이 물량을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오죽하면 중국 패션 생산 시설의 30퍼센트가 쉬인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추정 자료가 나올 정도입니다. 합성 섬유는 석유나 석탄에서 추출한 성분을 활용해서 만든 섬유를 뜻합니다.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아크릴이 대표적입니다. 세상에 합성 섬유가 처음 등장했을 땐, 신세계가 열린 듯했습니다. 면을 제조할 때보다 물이 적게 들고, 목화를 재배하면서 사용하던 독성 살충제를 더 이상 쓸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폴리에스테르 섬유 제조 과정에서 화석 연료가 훨씬 많이 쓰인다는 점이었습니다. 2015년 MIT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섬유용 폴리에스테르 생산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탄소가 배출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5년 생산된 폴리에스테르 중 섬유에 사용된 건 약 80퍼센트입니다. 섬유용 폴리에스테르 제작 과정에서 배출된 온실가스는 무려 7060억킬로그램입니다. 이 정도 양은 185개의 석탄 발전소가 연간 배출하는 탄소량과 맞먹고, 1억 4900만 개의 자가용이 연간 배출하는 탄소량과 같은 수준이죠.
쉬인과 같은 울트라 패스트패션 기업에 힘입어 2015년에 비해 훨씬 더 많은 합성 섬유 옷들이 나오고 있으니 탄소 배출량도 그보다 더 늘었을 겁니다. 유엔에 따르면 전 세계 의류 산업이 배출하는 탄소량은 전 세계 배출량의 10퍼센트 정도입니다. 이런 흐름으로 패션 산업이 계속 굴러간다면 2050년엔 26퍼센트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경고가 담긴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세탁기에서 빠져나오는 미세 섬유
합성 섬유로 만들어진 옷의 또 다른 나비효과는 세탁 과정에서 등장합니다. 바로 합성 섬유 의류를 세탁하면 미세 플라스틱이 나온다는 겁니다. 미세 플라스틱은 플라스틱 제품이 분해되면서 생기는 아주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말합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과 유럽 화학물질청은 크기가 5밀리미터보다 작으면 미세 플라스틱으로 봅니다. 기준에 따라 더 작은 조각들만 미세 플라스틱으로 보기도 합니다. 합성 섬유는 곧 플라스틱입니다. 합성 섬유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섬유도 당연히 미세 플라스틱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합성 섬유에서 나온 미세 플라스틱은 미세 섬유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합성 섬유에서 미세 섬유는 얼마나 나올까요? 마부뉴스가 영국 플리머스대학교의 연구팀이 2016년 진행한 연구 데이터[1]를 가져왔습니다. 연구팀은 세탁기를 한 번 돌릴 때마다 얼마나 많은 미세 섬유가 나오는지를 살펴봤는데요. 기준은 세탁량 6킬로그램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4인 가족 1회 평균 세탁량은 7킬로그램 정도, 1인 가구의 일주일치 세탁량은 5킬로그램 정도입니다.
6킬로그램의 아크릴 소재 옷을 세탁했을 때 나오는 미세 섬유의 양은 무려 72만 8789개입니다. 폴리에스테르와 면 혼방 직물에 비하면 5.3배, 폴리에스테르보다는 1.5배 많은 수치입니다. 아크릴은 울과 같은 모직물을 대체하는 합성 섬유인데 양모와 혼방해 쓰이곤 합니다. 따뜻하고 폭신한 니트의 라벨을 살펴보면 아크릴이라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물의 온도, 세제 종류 등에 따라 세탁 과정에서 나오는 미세 섬유 개수는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위에서 나온 연구팀의 수치는 6킬로그램의 세탁물을 기준으로 평균 예측 수량을 계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전 세계 규모로 본다면 미세 섬유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요? 1950년부터 2016년까지 전 세계의 합성 섬유에서 나온 미세 섬유를 누적하면 그 규모가 무려 560만 톤에 달합니다. 1950년엔 122톤 정도에 불과했지만 2016년엔 그 규모가 360킬로톤으로 증가했습니다. 당연히 합성 섬유를 많이 사용할수록 미세 섬유도 많이 나올 테니까요. 2016년까지 누적된 미세 섬유 양의 절반 가까이가 이전 10년 동안 만들어진 미세 섬유였습니다.
묻으면 안 썩고, 태우면 유독 가스
유행에 따라 쉽게 산 옷들은 몇 번 입고 나면 다시 장롱에 고이 모셔 두기 십상입니다. 패스트패션이라는 게 워낙 유행에 민감하고 회전율이 빠르기 때문입니다. 유행에 따라 휙휙 바뀌는 만큼 몇 번 입지 않고 버려지는 경우가 많죠. 게다가 상대적으로 값싼 옷이라는 인식 때문에 옷을 버리는 것에 대한 부담도 적습니다. 그 영향으로 전 세계적으로 배출되는 의류 폐기물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2007년부터 2020년까지 우리나라에서 나온 폐의류 현황[2]을 살펴봅니다. 오른쪽 그래프를 보면 과거에 비해 그 규모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2007년만 하더라도 하루에 122톤 정도의 헌 옷이 나왔습니다. 100톤이 넘을 정도면 그 양이 상당하다는 뜻인데요. 그 이후 계속해서 폐의류 양은 늘어났습니다. 2014년엔 처음으로 일일 배출량이 200톤을 넘겼고, 2020년엔 역대 최고치인 하루 평균 225.8톤을 기록했습니다. 연 단위로 보면 2020년 한 해에만 8만 2423톤의 헌 옷이 나온 셈입니다.
이렇게 버려진 의류 폐기물 중에 중고로 되팔리는 옷은 10퍼센트 언저리. 일부 매립되거나 소각되는 옷을 제외한 나머지 옷은 해외 개발 도상국으로 수출하고 있습니다. 201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헌 옷 수출국 5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개발 도상국 입장에서는 선진국에서 버려졌지만 아직 더 쓸 수 있는 옷을 값싸게 수입해 자국민들에게 나눠 줄 수 있으니 이득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수입해 온 헌 옷 중 팔리지 못한 옷은 그냥 버려진다는 겁니다. 사실상 개발 도상국이 선진국의 헌 옷 매립지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게다가 합성 섬유는 잘 썩지도 않습니다. 폴리에스테르 섬유가 완전히 분해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무려 200년! 그리고 소각하면 플라스틱을 태우면서 생기는 유독 가스 때문에 추가 처리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재활용하면 좋을 텐데, 재활용하더라도 합성 섬유에 천연 섬유가 혼합되어 있다면 소재를 일일이 분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또 실로 만들어서 재활용하려고 해도 섬유 속 염료를 하나하나 제거해야 하고요. 그러다 보니 헌 옷을 활용해 가방이나 에코백 같은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정도의 재활용만 이루어질 뿐, 합성 섬유 자원을 말 그대로 ‘재활용’ 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우리가 입고 버린 헌 옷뿐 아니라, 패션 업체가 팔고 남은 재고도 문제입니다. 패스트패션으로 한 달에도 몇 번씩 새 옷을 찍어 내면 재고량은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국내 패션 산업의 연말 재고액 동향을 살펴보면, 2007년엔 4조 원 규모였던 게 2019년엔 7조 5335억 원으로 늘었습니다. 이렇게 남은 재고는 대부분 소각 처리되고, 그 과정에서 추가로 환경 오염이 발생합니다.
패션 기업은 바뀌고 있나요?
지속 가능한 패션 산업을 위한 목소리는 이곳저곳에서 나옵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패션 사업은 옷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세탁하고 버리는 모든 과정에서 환경에 피해를 줍니다. 그래서 각성의 목소리가 큰 상황이죠. 그렇다면 기업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여전히 많은 양의 옷들이 과다 생산되고 있는데 말이죠.
잠깐 페이지를 앞으로 넘겨 우리나라 의류 쓰레기 그래프를 기억해 두세요. “2020년 폐의류가 하루에만 220톤 넘게 나온다.” 그런데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데이터가 있습니다. 바로 폐섬유 쓰레기죠. 폐섬유는 옷을 생산하는 과정 중 공장에서 버려지는 것인데, 뒤에 나오는 그래프를 보면 엄청납니다. 폐의류와는 비교가 되질 않습니다. 하루에 나오는 폐섬유는 1089.7톤으로 폐의류량의 다섯 배에 가깝습니다. 1년 단위로 보면 폐섬유만으로만 39만 톤이 넘는 쓰레기가 나오는 거죠.
해외 다국적 기업의 악명은 더 높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패션 기업의 각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입니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이 그 결과 중 하나인데요.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패션 산업 헌장’이라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여러 글로벌 패션 브랜드가 헌장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나이키(Nike), 케링(Kering), 리바이스( Levi’s), ZARA, H&M 등을 포함해 모두 110개 기업이 지속 가능한 패션 산업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헌장에 서명한 기업은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중간 목표로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30퍼센트 감축하겠다고는 했는데요. 아직도 갈 길이 먼 상황입니다. 전 세계 판매량이 높은 열 개 회사를 대상으로 스탠다드 얼스(STAND.earth)라는 환경 단체가 검증했는데 유일하게 리바이스만이 배출량 감소 흐름을 나타냈을 정도입니다.
기업이 알아서 움직이지 않으니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겠죠? EU와 미국에선 패션 기업, 특히 패스트패션 기업을 향해 몽둥이를 들고 나섰습니다. EU는 2022년 3월 패스트패션을 규제하는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EU 공동체의 법령을 발의하는 집행위원회에선 2030년까지 재활용 섬유를 일정 비율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고, 팔리지 않는 재고품 폐기를 금지하는 규정을 제안했죠. 미세 플라스틱을 배출하는 섬유는 사용을 제한하는 등 강력한 규제도 포함했습니다. 프랑스는 2025년부터 신규 출시되는 모든 세탁기에 미세 섬유 필터망 설치를 의무화하기도 했습니다.
미국도 비슷한 흐름입니다. 미국 뉴욕주는 연 매출 1억 달러가 넘는 패션 기업들을 대상으로 모든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시해야 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생산 단계에서 이뤄지는 직간접적인 탄소 배출을 규제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발송을 포함한 전 과정에 걸쳐 패션 기업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겠다는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는 실제로 입을 옷보다 더 많은 양의 옷을 사고 있습니다. 기업은 팔릴 옷보다 더 많은 양의 옷을 만들고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현실입니다. 패션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심각한 만큼 변화가 필요합니다. 지속 가능한 패션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먼저 변해야 하는 건 기업일 겁니다. 기업이 그렇게 움직일 수 있도록 제도를 변화시키는 정부의 노력도 뒤따라야겠고요.
우리나라가 변화하는 속도는 EU를 비롯한 환경 선진국에 비해 느린 편입니다. 그래도 느리지만 변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2022년 말, 환경부는 의류와 섬유에 생산자책임재활용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라는 이름은 무시무시하지만 단어를 하나하나 따져 보면 어렵지 않습니다. 생산자 책임과 재활용제. 즉, 재활용의 의무를 생산자인 기업에 두고 책임지게 하겠다는 제도인 거죠.
기업과 국가 말고 소비자 차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변화는 뭐가 있을까요? 세탁 반대 운동 들어 봤나요?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는 의류 세탁을 반대하는 운동을 하고 있어요. 이름에서 눈치챘을 수도 있겠지만 맞습니다. 스텔라의 아버지는 록 밴드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입니다. 스텔라는 물로 흘러가는 미세 섬유를 막기 위해서라도 세탁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세탁에 의존하기보다 옷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거죠.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옷을 빠는 게 아니라 먼지를 털고, 마찰이 많아 미세 섬유가 더 나오는 가루 세제 대신 액체 세제를 사용하는 거죠. 얼룩이 묻은 경우에만 세탁하는 식으로 세탁을 줄이자는 겁니다.
패스트패션의 반대 개념인 슬로우패션을 지향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죠. 옷을 사기 전에 깊이 생각하고 살 옷만 골라 적게 소비하는 겁니다. 튼튼하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사는 것도 환경을 위한 선택입니다.
라면, 립스틱, 치약의 공통점
2022년 4월, 인도네시아가 팜유 수출을 중단했습니다. 이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우크라이나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최대 해바라기씨유 수출국입니다. 그런 우크라이나가 전쟁의 화마에 휩싸이면서 해바라기씨유를 제대로 수출할 수 없게 됐고, 해바라기씨유가 필요한데 물량이 없으니 그 대체재인 팜유의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팜유 생산량 1위 인도네시아의 상황을 볼까요? 팜유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가격도 덩달아 뛰어올랐습니다. 국제 가격이 오르자 수출이 확 늘었습니다. 인도네시아 내에서 거래할 물량도 부족할 정도였죠. 결국 인도네시아 정부가 자국 내 팜유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출 중단을 선언할 지경이 된 겁니다. 팜유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환경 이야기에 집중해 봅니다. 역시나 질문으로 시작하죠. 혹시 라면, 립스틱, 치약, 초콜릿의 공통점을 알고 있나요?
올리브유 말고 팜유
장을 보러 마트나 편의점에 갔을 때 우리가 쉽게 접하는 식용유는 대부분 콩으로 만든 기름일 겁니다. 콩기름 외에는 올리브유, 카놀라유 정도겠죠. 그런데 시선을 전 세계로 넓혀 보면 식용유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보이는 건 콩기름이 아니라 팜유입니다. 팜유는 기름야자나무 열매에서 추출할 수 있는 기름입니다. 열매 속 종자를 압착해서 뽑아낸 기름은 팜핵유라고 부릅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데이터를 보면 2019년 전 세계에서 생산된 식물성 기름은 모두 2억 2603톤입니다. 이 중 팜핵유를 포함한 팜유가 36.7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죠. 콩기름은 33.6퍼센트로 2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가정용으로 쓰이지 않을 뿐, 대두유로 만들어진 콩기름 다음으로 많이 생산되는 기름입니다.
야자나무 열매에서 뽑아내는 기름인 만큼 팜유 생산은 야자나무 서식지인 적도 부근에 몰려 있습니다. 특히 아시아 국가의 비율이 높죠. 2019년에 생산된 8294만 톤의 팜유 가운데 아시아에서만 88.4퍼센트인 7331만 톤이 생산될 정도입니다. 그중 압도적인 생산량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입니다. 2019년 기준으로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 팜유 생산의 57.2퍼센트를 차지하고 있고, 말레이시아는 26.7퍼센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생활 곳곳에 숨어 있는 팜유
팜유의 활용 범위는 무궁무진합니다. 우선 식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팜유는 고온으로 가열하더라도 잘 변하지 않고 오랫동안 보관해도 산화하지 않아서 튀김 요리를 만드는 기름으로 적합합니다. 우리가 자주 먹는 라면과 과자를 만드는 데 팜유가 쓰이고 있어요. 마가린과 쇼트닝의 원료로 쓰이고 초콜릿을 만들 때도 팜유를 사용합니다. 치약, 샴푸, 립스틱에도 팜유가 들어가고 비누와 액상 세제에도 들어가 있죠. 세계자연기금 이 우리가 슈퍼마켓에서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의 절반가량에 팜유가 들어 있을 거라고 얘기할 정도입니다. 서두에서 던진 질문의 답, 라면, 립스틱, 치약, 초콜릿의 공통점은 바로 팜유입니다.
그렇다면 인도네시아가 팜유 수출을 금지한 게 우리나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관세청 데이터를 보면 2021년 우리나라 팜유 수입 물량 중 56퍼센트는 인도네시아, 나머지 44퍼센트는 말레이시아산입니다. 수입량이 상당한 만큼 적지 않은 피해가 우려됐습니다. 다만 식품업계가 주로 사용하는 팜유는 말레이시아산이고 이미 보관하고 있는 식용유도 있어서 즉각적인 피해가 오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습니다. 교촌, BHC, BBQ 이른바 치킨 메이저 3사도 팜유 대신 다른 기름으로 튀기고 있고요. 다만 팜유 수출의 장기화는 식용유 가격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기업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입니다.
이렇듯 팜유 가격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같은 대외적 환경에 영향을 받습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 곳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팜유를 생산하는 기업입니다. 이런 상황을 탐탁지 않게 보는 곳도 있습니다. 바로 EU와 환경 단체입니다. EU와 환경 단체는 예전부터 팜유 생산과 소비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거든요. 지금부터 왜 그들이 팜유를 부정적으로 보는지, 그 이야기를 해봅니다.
팜유는 원래 서아프리카에서 주로 재배됩니다. 1960년대의 생산량을 비교해 보면 나이지리아와 콩고 공화국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죠. 말레이시아에선 곤충을 통한 수분 기술이 도입된 1970년대부터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거기에 정부 차원에서 빈곤 퇴치 수단으로 팜유 사업에 뛰어들면서 규모가 크게 확장됐죠. 기름을 추출하는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팜유 농가에 세금 혜택을 주기도 했습니다. 국제 사회에서도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팜유 생산에 큰 관심을 보이고 세금 공제나 대출 지원 등 금융 혜택을 주면서 산업이 급속도로 커졌습니다.
EU는 왜 팜유를 거부할까?
환경 단체와 EU에선 팜유 생산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팜유 생산이 생물 다양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팜유 수요가 늘자 동남아시아의 많은 농장이 너도나도 팜유 생산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에 있던 열대 우림을 없애고 기름야자나무를 심고 있죠. 열대 우림이 기름야자나무 농장으로 바뀌면서 종의 다양성은 크게 감소했습니다. 국제자연보전연맹 IUCN은 팜유 생산이 최소 193종의 멸종 위기종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열대 우림을 개간하면서 사라지고 있는 대표적인 종이 오랑우탄, 호랑이입니다. 특히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주요 서식지인 오랑우탄이 큰 수난을 받고 있죠. 1999년부터 2015년 사이에만 서식지 파괴로 무려 10만 마리의 오랑우탄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 팜유 생산에 방해되는 동물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사냥당하기 일쑤였죠. 대신 기름야자나무 열매를 먹고사는 쥐와 다람쥐, 그리고 설치류를 먹고사는 뱀과 야생 돼지는 개간의 이점을 누렸습니다.
탄소 배출에도 약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열대 우림을 갈아엎을 때 화전, 즉 숲에 불을 질러 태워 버린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인도네시아에는 일반 산림보다 탄소를 18~28배 보유하고 있는 이탄지가 많습니다. 석탄처럼 완전히 탄화되지 않은 진흙 형태의 이탄이 쌓여 있는 지대에 불이 날 경우 어마어마한 양의 탄소가 발생합니다. 2015년 10월, 인도네시아는 산불로 약 260만 헥타르의 산림을 잃었습니다. 그중 33퍼센트가 이탄지였죠. 당시 인도네시아의 일일 평균 탄소 배출량이 미국을 넘어설 정도였습니다. 탄소 배출량 세계 1위인 중국을 넘어선 날도 14일이나 될 정도였습니다.
산불 연기가 동남아시아 다른 국가로 퍼져 나가면서 국가 간 분쟁으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2015년 산불로 발생한 연무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을 휩쓸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당시 국제선 항공기가 취소되면서 동남아시아 국가의 항공 및 관광업이 피해를 겪기도 했습니다. 심한 지역은 임시 휴교령을 내리기도 했고요. 싱가포르에선 대기 오염을 초래한 인도네시아 회사들에 벌금을 내릴 수 있는 법적 조치를 고려했고, 태국은 인도네시아의 산불을 감시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1위
환경 파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도 도대체 왜 팜유는 계속해서 생산량이 늘어날까요? 이유는 바로 팜유를 대체할 만한 식용유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팜유만큼 경제성이 뛰어난 기름이 없습니다. 가성비를 따지면 팜유는 다른 어떤 식용유보다 월등히 좋습니다.
주요 품목별로 1톤의 기름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토지가 어느 정도인지 살펴봅니다. 콩기름 1톤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2헥타르의 땅이 필요합니다. 카놀라유 1톤을 생산하려면 1.2헥타르의 토지가 필요하죠. 반면 팜유는 0.25헥타르면 끝입니다.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탁월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보존 기간이 길고 고온에서 잘 변하지 않아서 상품 가치가 높죠.
팜유를 생산할 때 토지를 적게 사용한다는 점은 생산하는 입장에서 돈이 덜 든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환경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만일 팜유 생산 과정에서의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팜유 대신 콩기름으로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요? 팜유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토지의 여덟 배가 더 필요하게 될 테니까 오히려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IUCN에서도 식물성 기름에 대한 수요가 줄지 않는 상태에서 팜유를 대체할 식용유가 없다고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IUCN의 사무총장이 “유일한 해결책은 지속 가능성을 약속한 팜유를 생산하도록 협력하는 것뿐”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팜유 전쟁은 진행 중
팜유 생산에서의 환경 파괴 문제가 계속 화두에 오르자 팜유업계도 자구책을 마련했습니다. 팜유업계는 2004년에 지속 가능한 팜유산업협의체(RSPO)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이 단체는 팜유의 지속 가능한 생산 원칙을 만들었고, 이 원칙을 준수하는 기업을 인증하는 제도를 도입해서 환경 친화적인 팜유 산업을 만들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환경 단체에서는 RSPO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팜유 산업을 위한 규칙을 만들어 놓았지만 어겼을 경우 벌칙 조항이 애매하기 때문입니다. 2018년 그린피스는 RSPO가 삼림 벌채를 금지했음에도 여전히 허쉬, 켈로그, 하인즈 등 팜유를 사용하는 주요 25대 기업이 열대 우림을 파괴하고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EU는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 지속 가능한 팜유 산업을 만들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의 경우엔 100퍼센트 RSPO 인증을 받은 팜유만 구입하고 사용하겠다고 선언할 정도죠. 유럽의회에선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바이오디젤 원료에서 팜유를 제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EU 회원국의 콩기름, 카놀라유, 해바라기유 산업 활성화를 위한 조치라고 반발했습니다. 친환경의 탈을 쓰고 있지만 자신들의 산업을 키우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인 거죠. 무역 보복을 경고할 정도입니다. 말레이시아는 팜유 사용 금지가 가시화될 경우 EU에서 구입하려고 했던 전투기를 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행동하는 기업이 늘어나도록
누텔라, 킨더 초콜릿, 페레로 로쉐로 유명한 이탈리아 제과 업체 페레로가 2022년 4월부터 말레이시아의 1위 팜유 업체 사임다비의 팜유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사임다비는 팜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강제 노동과 노동자 학대를 벌였다는 논란이 있습니다. 이 선언은 불법 행위를 저지른 업체의 팜유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세계 2위 제과 업체의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페레로뿐만이 아닙니다. 허쉬 초콜릿의 허쉬, 하겐다즈의 제너럴 밀스도 사임다비의 팜유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팜유를 이용하는 바이어 업체에서 지속 가능한 팜유만 사용하겠다면 생산 업체가 눈치를 안 볼 수 없겠죠.
WWF는 전 세계에서 팜유를 사용하는 227개 기업을 대상으로 팜유 스코어를 계산해 발표[3]하고 있습니다. 바이어 기업들이 얼마나 지속 가능한 팜유를 사용하고 있는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판단해 보겠다는 겁니다. 아래 그래프가 바로 2021년 팜유 스코어를 나타낸 자료입니다. X축이 점수, Y축이 각 기업의 팜유 구매량을 의미합니다. 24점 만점에 평균 점수는 13.2점. 기업들의 적극적인 기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20점을 넘는 업체는 단 아홉 개. 1위는 스위스의 유통사 쿱 스위스였고, 페레로가 21.71점으로 3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번 분석에는 처음으로 한국 기업도 포함됐어요. WWF는 국내의 열네 개 회사에 참여를 요청했고 그중 다섯 개(아모레퍼시픽, 삼양, 롯데푸드, AK켐텍, 동남합성)만이 정보를 공개했죠. 나머지 아홉 개 회사(농심, 효성, LG생활건강, 대상, CJ제일제당, 미원상사, 오뚜기, SFC, 한송)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평균 점수는 4.5점. 전 세계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그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곳은 14.5점의 아모레퍼시픽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정보를 공개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다른 해외 기업의 점수와 비교했을 때 아직 많이 낮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팜유 산업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앨범 vs 스트리밍
학교나 회사에 갈 때, 혹은 공부와 일에 집중할 때, 언제나 음악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아마 음악과 우리의 삶은 떼려야 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더 열정적인 팬들은 음반도 구매하고, 좋아하는 가수의 굿즈를 사 모으기도 합니다. 그런데 앨범이 골칫거리가 됐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찾아 보면 집에 쌓여 있는 앨범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게 다 쓰레기가 될 텐데 말이죠. 음악 시장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데이터로 살펴봅니다. CD 뿐만 아니라 부활한 LP, 그리고 스트리밍까지. 질문을 던집니다. 앨범과 스트리밍, 무엇이 더 친환경일까요?
포토 카드를 얻기 위한 노력
좋아하는 아이돌이 생기면 관련 굿즈도 모으고 싶은 게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포토 카드가 랜덤으로 들어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멤버의 포토 카드를 얻기 위해선 앨범을 많이 사야 합니다. 팬 사인회도 비슷하죠. 팬 사인회 응모권은 앨범 한 장당 하나씩 들어 있는 만큼 팬 사인회에 가려면 앨범을 많이 사야 유리합니다. 안정적으로 팬 사인회에 갈 수 있는 앨범 구매량, 이른바 ‘팬싸컷’이라는 말도 나올 정도죠.
음악 청취용 앨범 한 장을 제외하면 나머지 수십 장의 앨범은 모두 쓰레기가 될 겁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CD로 음악을 듣지 않으니 앨범 전부가 사실상 쓰레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그 규모는 얼마나 될까요? 우리나라 앨범 판매량[4]을 살펴보면, 2021년 연간 판매 상위 400위 안에 든 앨범 판매량이 무려 5708만 9160장입니다. 우리나라 인구수보다 많은 규모입니다.
CD는 폴리카보네이트라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는데, 이건 매립지에서 자연 분해되는 데 무려 100만 년이 걸립니다. 사실상 분해가 되질 않는 거죠. 그 탓에 CD는 매립지나 소각로에서 처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폴리카보네이트 제작 과정에 환경 호르몬의 주범이 되는 가소제가 포함됩니다. 그래서 소각 과정에서 엄청난 유독 가스가 발생합니다. 여기에 앨범 포장용 비닐과 앨범에 포함된 다른 부속물들까지 포함한다면? 앨범 판매로 생기는 환경 부담이 상당합니다.
한정판 LP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이닐이라고 부르는 레코드판은 없어서 못 팔 정도입니다. 한정판으로 발매하면 팬들이 너도나도 구매해서 매진 행렬은 기본이고 더 비싼 값에 되파는 경우도 많습니다. LP의 유행은 국내에 그치는 게 아닙니다. 아래 그래프는 미국의 음반 매출액을 나타낸 그래프[5]인데, 2020년에는 1986년 이후 처음으로 LP 매출이 CD를 넘어섰습니다. LP가 맞은 제2의 전성기라 할 만하죠.
그런데 이 LP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플라스틱이 상당히 질 나쁜 플라스틱으로 유명합니다. 바로 PVC인데, PVC의 주요 원료인 염화 비닐은 WHO의 국제암연구소에서 지정한 1급 발암 물질입니다. CD처럼 LP도 소각할 때 독성 가스와 환경 호르몬이 대량으로 발생합니다. 음반 판매량이 늘어나는 만큼 버려지는 플라스틱의 양도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플라스틱과 함께 춤을
LP에서 카세트, 그리고 CD까지……. 시대가 발전하면서 음반의 형태는 조금씩 달라졌고, 소비도 그에 맞춰 변했습니다. 앞에서 봤던 그래프처럼 LP의 시대가 지고 카세트가 떠올랐고, 또 어느새 CD가 등장하면서 다른 모든 음반을 압도하기도 했습니다. 그에 맞춰 소비가 이뤄졌고 음반을 만드는 데 쓰인 수많은 플라스틱은 폐기물로 버려졌습니다. 그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요?
영국의 글래스고대학교와 노르웨이의 오슬로대학교가 공동으로 연구한 자료[6]가 하나 있습니다. 음악 소비가 얼마만큼의 환경적 비용을 초래했는지 음반 시장을 분석한 건데, 마부뉴스가 이 데이터를 가지고 그래프를 그렸습니다. 시점은 각 음반의 최고 전성기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우선 1977년, 미국에서 LP 판매가 정점이었던 때를 봅니다. 이때 음반 시장에서 사용한 플라스틱은 무려 5만 7884톤입니다. 그중 71.3퍼센트가 LP에서 나왔습니다. 1~3곡 정도의 적은 곡만 수록한 LP 싱글까지 포함하면 그 비율은 95.1퍼센트까지 올라갑니다.
1988년 음반 시장에서 배출된 플라스틱은 1977년보다 감소한 5만 5544톤입니다. 이때엔 카세트가 전체 음반 시장에서 배출된 플라스틱 양 중에 64퍼센트를 차지했습니다. 그로부터 12년 뒤인 2000년엔 CD가 다른 모든 매체를 압도해 버립니다. 2000년 한 해에만 6만 1096톤의 플라스틱이 나왔는데 이 중 89.4퍼센트가 CD였습니다. 이제는 대부분 음악 소비가 스트리밍과 다운로드로 이뤄지는 만큼 플라스틱 배출이 확 쪼그라들었습니다. 2021년에 배출된 플라스틱은 7487톤으로 2000년의 12.3퍼센트 수준이죠.
음반뿐만이 아닙니다. 콘서트와 페스티벌도 환경 오염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코첼라 페스티벌은 미국 최대 음악 축제로 불리는데, 이 페스티벌에서만 연간 1612톤의 폐기물이 발생합니다. 페스티벌 기간에는 하루에 107톤의 폐기물이 쏟아지죠. 하지만 이 중 재활용되는 건 20퍼센트에 불과합니다. 세계 최대의 록 페스티벌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이 열리는 영국은 더 심각합니다. 여름에 열리는 축제만 따져 봤을 때 매년 2만 3500톤의 폐기물이 나올 정도죠.
스트리밍에 숨겨진 환경 오염
이제는 덕질이 앨범과 굿즈로 끝나질 않습니다. 스트리밍과 뮤직비디오가 음악 방송 순위에 영향을 주는 만큼 팬들은 음원 재생 수와 영상 조회 수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이죠.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스트리밍이나 유튜브로 음악을 즐길 겁니다. 앞에서 계속 이야기한 것처럼 기존 음반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야 하니 폐기물 문제가 있지만, 스트리밍은 실물이 없으니까 환경 오염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술이 환경을 보호해 준다고 말이죠.
그런데 사실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스트리밍할 때도, 유튜브로 영상을 볼 때도 탄소가 배출됩니다. 탄소가 어디서 배출되는지 우선 스트리밍의 원리부터 살펴봅니다. 우리가 스트리밍으로 듣는 음악 파일은 기업의 데이터 센터에 저장돼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검색하면 데이터 센터에 있는 음악 파일이 네트워크를 통해 중계 장치인 라우터로 전송됩니다. 이 라우터가 와이파이를 통해 스마트폰으로 파일을 전송하면 비로소 음악이 들리는 겁니다. 그런데 와이파이를 가동하고 데이터 센터, 라우터 등의 시설을 운영하는 데 전력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전력을 생산하면서 탄소가 배출되죠.
CD가 최고점을 찍었던 2000년에 음반으로 인해 발생한 온실가스는 15만 7633톤이었습니다. 그런데 2016년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20만 5607톤의 온실가스가 발생했습니다. 음원을 스트리밍하고 다운로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기업들은 서버를 늘렸고,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속도를 높여 왔습니다. 음악 산업에 막대한 전력이 사용되면서 오히려 과거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스포티파이와 애플 뮤직 같은 구독 서비스로 인해 매년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규모는 20만 톤에서 35만 톤 정도로 추산됩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공연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음악 팬들은 그 아쉬움을 스트리밍 서비스로 달랬습니다. 2021년의 수치는 2016년의 그것보다 훨씬 크겠죠.
음악뿐만 아니라 다른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때도 온실가스는 발생합니다. 당장 이 글을 인터넷 기사로 읽는다면 최소 72밀리그램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됩니다. 인터넷과 컴퓨터를 비롯한 수많은 IT 기기는 네트워크 단계뿐만 아니라 모든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이걸 디지털 탄소 발자국이라고 부릅니다. ‘아무리 디지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도 탄소 배출량이 얼마나 될까’ 하며 과소평가할 수 있지만, 국제에너지기구 IEA는 전 세계 데이터 센터와 데이터 전송 네트워크에 드는 전력이 전 세계 전력 수요의 2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보고 있어요. 이건 전 세계 항공 산업에 사용되는 전력량에 필적하는 수준입니다.
죽은 행성엔 음악도 없다
앨범을 사면 플라스틱이 나오고, 스트리밍을 하면 탄소가 나옵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죠.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음악계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해외에선 지속 가능한 LP를 생산하는 레이블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니드-낫 포 프로핏 Needs-Not for Profit 레이블은 재활용 가능한 LP를 만들고 있습니다. 인디 레이블을 중심으로 자체적으로 탄소 발자국을 50퍼센트까지 감축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가수들도 환경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영국 록 밴드 콜드플레이는 2019년 발매한 〈Everyday Life〉 앨범을 프로모션 할 때 탄소 중립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투어에 나서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아예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댄스 플로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팬들이 공연장에서 뛰어야만 전력이 생산되고, 그래야 무대에 불이 켜지는 식으로 말이죠.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빌리 아일리시는 앞으로 본인의 공연장에서 빨대를 금지하고 일회용 물병을 없앨 계획을 밝혔습니다. 관객들은 빌리 아일리시의 공연을 즐기기 위해선 물병을 들고 와야 합니다. 빌리 아일리시는 “No Music On A Dead Planet”이라는 문구가 적힌 옷을 입고 공연을 하기도 했죠.
스트리밍 업체들도 가만히 있는 건 아닙니다. 스포티파이는 과거 일곱 개의 데이터 센터를 두고 서버를 운영했는데, 미국의 데이터 센터를 모두 폐쇄하고 재생 에너지로 운영하는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으로 바꿨습니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과감한 선택이죠. 하지만 클라우드 기업이 재생 에너지를 사용해서 데이터 센터에 전력을 공급한다고 대외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화석 연료를 사용하고 있는 곳도 많아서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K-POP의 상황은?
그렇다면 K-POP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K-POP은 나날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굳이 아이돌 팬이 아니더라도 K-POP의 위상이 달라진 건 많은 사람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겁니다. 2021년 우리나라의 음반 수출액은 2억 2084만 달러였습니다. 우리 돈으로 무려 2624억 원이죠. 2017년엔 4418만 달러였는데 5년 사이에 다섯 배 가까이 늘어난 겁니다.
국내 음반 판매량을 통해서도 K-POP의 성장세를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100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량을 구경하기 어려웠던 음반 시장이었는데, 어느새 100만 장이 많아졌거든요. 가온차트 기준으로 2017년에 오랜만에 100만 장 앨범이 등장했고, 2022년엔 무려 열한 장이 100만 장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 수치가 건강한 판매량이라고 보긴 어려울 겁니다. 우리나라의 음반 구조는 굿즈나 팬 사인회를 위해서 앨범을 더 구매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니까요. 앨범을 구매하자마자 버리는 팬들이 많아서 판매처에서 아예 따로 버릴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할 정도입니다. 요상하게 뒤틀린 K-POP 음반 시장을 바꾸기 위해 팬들이 먼저 움직이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EXO 팬 누룰 사라파 Nurul Sarifah가 만든 ‘KPOP 4 Planet’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이 단체는 K-POP 팬들이 환경을 지키면서 마음 편하게 덕질을 할 수 있도록 앨범 제작사에 목소리를 냅니다. 팬들이 굿즈를 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구매한 앨범들을 모아서 소속사에 보내는 식으로 말이죠. 또 2022년에 열릴 콘서트는 친환경 콘서트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고 일회용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요. 팬의 목소리를 듣고 일부 소속사와 가수들은 친환경 재질의 앨범을 내고 있지만 구조적인 변화까지 이어지기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