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이었다. 명동성당에서 쇼핑 거리로 이어지는 완만한 고지를 달리는 이를 본 적이 있다. 30대 후반쯤 되어 보였을까. 가을의 초입, 정오의 햇빛이 아직은 따가운 9월이었다. 잘 갖춰 입은 운동복과 러닝화, 일정한 호흡법이 숙련된 러너임을 가늠케 했다. 평일 밤의 천변이나 경의선 숲길, 주말의 여의나루에서나 볼법한 산뜻한 뜀박질은 한 손에 프랜차이즈 커피를 든 수많은 오피스룩 사이로 유유히 사라졌다. 치열한 직장인들 사이 그의 모습에서는 별다른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장면에 속한 모두가 각자의 삶에서 자신의 레이스를 펼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기는 각자에게 다양한 의미가 있다. 건강을 위한 투자라 생각하면 시간이 시드머니다. 효율이 극대화된 현대인의 바쁜 시간표 속 달리기는 늘 망설여지는 투자 종목이다. 자기 관리를 위해 어떤 형태로든 운동을 즐기는 이들에겐 심폐 지구력을 강화하고 체중을 감량하기 위한 보조 운동이다. 헬스인들은 근손실 우려와 귀찮음을 무릅쓰고 유산소 운동으로서 달리기를 수행한다. 이 의미 변화를 모두 경험하며 가끔씩 당산에서 여의도까지의 한강변 10킬로미터를 뛰어다니는 동안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 있다. 누군가와 함께 달리는 즐거움이다. TV에서 육상 경기를 보면서, 조금씩 짧아지는 랩 타임을 보면서 막연히 달리기는 자기와의 싸움이라 여겨 왔다. 저자는 다르게 말한다. 이 모든 개인의 서사가 사실은 연결된 것이라고 말이다.
나이키는 2017년 도매 판매(wholesale) 중심의 유통 구조를 D2C(Direct to Customer)로 전환했다. 그 배경엔 2012년 출시한 NRC(나이키런클럽) 앱이 있었다. 1000만 회 이상 다운로드된 이 앱은 달리기 기록과 운동 목표를 부여하고 함께 뛸 사람을 만나는 장이다. 나이키에겐 핵심 소비자가 데이터를 발생시키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렇게 형성된 러닝 커뮤니티는 문화의 국경을 초월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러닝 앱 시장은 2021년 5억 6200만 달러로 급격히 확대됐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건강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고 실내 운동보다 실외 운동을 선호하게 된 탓이다. 비대면 방식의 확신이 IT 기술 성장을 견인했고 그 과정에서 웨어러블 등의 기기가 발전한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 비즈니스리서치인사이트에 따르면 2028년까지 러닝 앱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무려 14.2퍼센트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단지 특정 기업이 주도한 일시적인 피트니스 트렌드가 아니다. 지금 세계는 달리기로 이어지고 있다. 저자는 나이키의 홈타운 오리건의 러닝 문화를 소개하며 달리기가 한 지역과 사회를, 세계 곳곳에서 뛰는 수많은 이들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 조명한다. 저자가 인터뷰한 이들은 각자 배경도, 달리기를 삶에 들인 계기도, 달리는 방식도 다르다. 어떤 이에겐 달리기가 세계인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방식이다. 어떤 이에겐 달리기가 곧 비즈니스이며 반대로 달리기를 비즈니스의 동력으로 삼는 이도 있다. 세계 일주나 까마득히 높은 산을 달리는 이들의 성장 서사, 육아와 울트라 마라톤을 동시에 해내는 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느슨한 연대(weak ties)가 느껴진다. 러닝 앱이 사람들을 모으고 재밌게 달리는 방법을 제시한다면 이 책은 그 느슨한 연대에 뛰어들고픈 마음을 자극하고 자신만의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지침서가 돼줄 것이다.
이현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