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달리는 사람들
10화

에필로그 ; 왜 달리는가

나는 늘 혼자 달렸다.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뛰는 실용성이 내 기질과 맞았다. 규칙적인 편은 아니라 일찍 눈을 뜨면 일출 전 집을 나섰고, 석양을 보러 언덕을 오르기도 했다. 마라톤 전 준비 기간을 빼곤 킬로미터당 5분 30초~6분 페이스의 조깅을 즐겼다. 친구, 직장 동료와 한강변을 달리고 대회에 나갔으나 그것도 가끔이었다.

혼자 달리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다. 수년 전 겨울, 여행차 방문한 밀라노의 도심은 뛰기에 좋은 곳은 아니었다. 바닥엔 온통 자갈이 깔려 있고, 두오모를 중심으로 뻗은 방사형 거리에는 트램 라인과 차도가 어지러이 섞여 있었다. 번드러운 돌멩이와 철길에 미끄러지기에 십상이었다. 당시에도 여느 때처럼 도착 다음 날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왔다.

15분이 지나자 거대한 회백색 건축물이 보였다. 밀라노 두오모였다. 동이 트기 전 내 등의 열기가 식을 때까지 드높은 첨탑을 올려다봤다. 600여 년이 걸려 완성한 3000여 개 조각을 독차지한 느낌이었다. 밀라노에 머무는 동안 두오모를 볼 기회는 더 있었지만, 그날 아침의 독대와는 비교되지 않았다. 여전히 출장과 여행을 갈 때면 러닝화를 챙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고 아내와 러닝 클럽 PRRC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팀 스포츠로서의 러닝이 궁금했다. 2022년 5월, 우리는 정기 그룹런 공지를 확인하고 집결지인 남산공원으로 향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약 일 년 반 만에 열리는 수요일 그룹런이었다. 페이스별로 그룹을 나눠 남산 정상까지 6킬로미터를 달리는 방식이었다. 혼자 또는 둘의 러닝과 정기적으로 30여 명이 함께 달리는 것은 많은 부분이 달랐다.

첫 구간인 북측 순환로 3.5킬로미터 남짓을 일정 속도로 달렸다. 반복되는 업힐과 다운힐에 호흡이 가빠지고 심박수가 치솟았다. 이어지는 남측 순환로에서 정상까지의 오르막. 발 빠른 A, B그룹 멤버들이 고갯길 너머로 하나둘씩 사라졌다. 타워까지 업힐이 계속됐다. 타워 전망대 하부 지점에 이르자 양 갈래로 선 멤버들이 보였다. 마지막 30여 미터는 불암산 암릉이 떠오르는 마의 구간이다. 종아리 근육에 부하가 걸릴 무렵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멤버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걷거나 중도 포기했을 것이다. 그날 이후 수요일 저녁은 그룹런을 위해 가급적 비워 둔다.

달릴 때 응원이 주는 힘은 실로 놀랍다. 주로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 주자와 비주자는 연결된다. 팀의 응원 하나하나가 동력이 되고 주자는 ‘함께 달리고 있음’을 느낀다.

긍정심리학의 대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전 시카고대학교 교수는 저서 《몰입Flow》 에서 이러한 현상을 ‘집단 몰입’이란 용어로 설명한다. 집단 몰입의 개념은 사실 칙센트미하이 전 교수의 제자 키스 소여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교수가 처음 소개한 것으로, 그는 재즈 밴드의 협주에서 착안해 모두가 하나의 목표에 집중할 때 집단 몰입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동반되는 모든 팀 스포츠는 구성원들이 몰입 경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축구나 농구 경기를 할 때 대화를 나누지 않고도 팀 전체가 공을 언제 어느 위치에 둬야 하는지 단번에 아는 것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집단 몰입이 이와 같은 모습의 원천일 수 있다.[1] 함께 달릴 때도 마찬가지다.

러닝 클럽 일원으로 달리며 멤버들은 함께 몰입하고 성장한다. 함께 달릴 때 러닝의 효용은 극대화된다. 그룹런은 도시를 달리는 좋은 방법이다. 동반주가 없는 날엔 트랙 훈련, 마라톤 역주를 응원하며 멤버들은 함께 주로에 선다.

그렇다고 늘 즐거운 것만은 아닌 게 또 달리기다. 목표 없는 러닝, 싫증, 부상, 이유는 다양하다. 일이 많아서, 날이 추워서, 도무지 발이 안 떨어지기도 한다. 같은 코스, 같은 페이스, 나만의 루틴은 의미 없는 반복이 돼버린다. 어느새 러닝화는 신발장 한구석을 차지하게 된다. 러너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패턴이다. 적어도 함께 달리기 전까진 그렇다.

‘권태’로 러닝을 쉬고 있다면 그룹런이 처방이 될 수 있다. 함께 달릴 때의 응원, 성장, 경쟁은 확실한 동력이 된다. 그룹런을 시작으로 솔로런으로, 그렇게 자신만의 리듬과 페이스를 다시 이어 가면 된다.
다양한 기회로 국내외 러너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 모두는 자기만의 길을 달리되 함께 달렸다. ‘함께’의 힘은 달리기에서도 유효하다. ‘왜 달리는가’를 묻는 내게 그들은 저마다의 답을 내놨다. 다만 메시지는 같았다. ‘왜 달리지 않는가.’

달리면 매일이 특별하다. 함께면 더욱 그렇다. 달리듯 나아가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1]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외 2인(제효영 譯), 《달리기, 몰입의 즐거움》, 샘터,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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