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달리는 사람들
9화

마리 레오테 ; 달려서 세계 일주

2년 6개월간 4대륙을 달린 여성 러너


지구 한 바퀴를, 그것도 달려서 도는 게 가능할까. 역사적으로는 노르웨이인 선원이자 장거리 러너 멘슨 에른스트(Mensen Ernst)가 1832년 프랑스 파리에서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2575킬로미터를 14일 만에 주파한 기록이 남아 있다. GPS 등 어떠한 장비도 없던 시절, 오로지 달려서 몇 개국을 지난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약 200년이 지나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도 수년간 뛰어서 수만 킬로미터를 횡단하는 것은 무모해 보인다.[1]

세계 일주 달리기를 비준하는 세계러너협회(WRA)는 이른바 ‘월드런’의 기준 몇 가지를 두고 있다. 연속된 방향으로 최소 2만 6232킬로미터를 달려야 하고, 최소 네 개 대륙을 횡단해야 하며, 시작과 종료가 같은 장소여야 한다. 단, 한 대륙의 가장자리에서 출발해 다른 대륙의 가장자리에서 끝나는 경우도 공식 인정된다. 가령 포르투갈의 대서양 연안에서 시작해 아르헨티나의 남대서양 연안에서 마칠 수 있다.

2021년 8월 아웃도어 전문 팟캐스트 채널 ‘Always Another Adventure’에는 세계 일주 중인 여성 러너 게스트가 나왔다. 프랑스 국적의 40대 중반 마리 레오테(Marie Leautey)였다. 그의 애칭은 루티(Lootie)다, 그의 인터뷰가 소개된 것은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튀르키예 이스탄불로 이어진 횡단을 마치고 두 번째 대륙인 미국 시애틀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35분간의 팟캐스트 방송 내내 그는 활기가 넘쳤는데, 지난 약 일 년 반 동안 거의 매일 마라톤 거리를 달렸다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루티는 2022년 9월 뉴질랜드 오클랜드를 마지막으로 월드런을 완주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봉쇄로 네 달간 일주를 멈출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음은 루티의 세계 일주가 남긴 기록이다.
  • 총 거리: 2만 8249킬로미터
  • 일 평균 러닝 거리: 40.5킬로미터
  • 총 기간: 825일(697일 러닝, 128일 휴식, 코로나로 인해 중단된 176일은 소요 기간에 미포함)
  • 세계 일곱 번째 월드런 완주
  • 사용한 신발 개수: 16켤레
  • 세계 기록: 최단 기간 월드런에 성공한 여성
그는 글로벌 노마드 생활을 하면서 월드런을 구상했다고 말한다. 해외 각국에 거주한 경험이 세계 일주 달리기의 아이디어가 됐다. 루티는 학업으로 1998년 프랑스를 떠난 이래 줄곧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스위스, 그리스, 싱가포르 등지에서 일하고 거주해 왔다. 이 때문에 무려 4개 국어를 구사한다. 그랬던 그는 오로지 월드런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풀타임 러너’가 됐다.
ⓒ레오테

마리 레오테 인터뷰 ; “러너는 메신저다”


월드 러너 루티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모험담을 직접 듣고 싶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멀쩡한 직장에 사표를 내고 전업 러너가 된 배경이 궁금했다. 가늠조차 안 되는 롱런을 계획하고 실행한다는 것, 무수히 많았을 변수를 극복하고 결국 2만 8200여 킬로미터를 달려 완주에 성공한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동력이 알고 싶었다. 루티의 2년 6개월 여정의 모든 기록이 담긴 월드런 스케줄을 보며 그의 꼼꼼한 기질을 엿볼 수 있었다. 시작지, 도착지, 달린 거리, 누적 고도, 코멘트 등이 일 단위로 적혀 있었다.

단지 원 없이 뛰고 싶어서, 일에 지쳐서, 체력 단련을 위해 지구 한 바퀴를 뛰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어떠한 영리적 목적 없이 온전히 달리기에 집중하는 그에게 ‘왜’를 물었다. 몇 가지 키워드가 있었다. 모험, 여성, 메신저.

월드런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마흔 살이 됐을 때였다. 성인이 되고 지난 20년간 해온 것과는 다른 노마드 생활을 이어 가고 싶었다. 그것이 가능할지, 이전 사례가 있는지 몰랐다. 방법을 구상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월드런을 알게 됐다. 완주한 인원이 전 세계 여섯 명에 불과했다. 남성 다섯 명, 여성 한 명이었다. 전 세계를 가로질러 다양한 문화와 국가, 사람을 만나는 게 유일무이한 경험이 되리라 생각했다. 실제 그 경험들은 내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풀코스 거리를 2년 넘게 매일 뛰었다.

2019년 12월 유럽에서 출발해 북미, 남미를 거쳐 호주까지, 서에서 동으로 네 개 대륙을 가로지르는 전 세계 달리기를 시작했다. 세계러너협회의 월드런 규정을 준수했다. 일주일 중 6일, 하루 평균 40.5킬로미터를 달렸다. 총 거리는 2만 8249킬로미터다. 완주하는 데 2년 6개월이 걸렸다. 나는 달리기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일곱 번째 러너이자 두 번째 여성이 됐다. 세계 일주를 가장 빠르게 완주한 여성이라는 세계 기록을 세웠다.

준비는 어떻게 했나.

아이디어를 떠올린 순간부터 실행하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신체, 물류, 재정이라는 세 가지 기준을 세우고 준비했다. 일단 매일 저녁 퇴근길을 러닝 코스로 삼았다. 당시 직장과 집이 20킬로미터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아주 좋은 데일리 훈련이었다. 평일뿐만 아니라 주말, 휴가에도 월드런 준비에 전념했다. 5일간 마라톤 5회, 8일간 마라톤 8회 같은 자체 트레이닝을 수행하며 나의 월드런 컨디션을 테스트했다. 물품 운반 역시 어떠한 도움 없이 자급자족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완벽한 준비가 필요했다. 캠핑 장비, 음식, 물 등을 담은 유모차를 밀면서 달렸다.

물류에 있어서는 단계별로 전체 경로를 계획했다. 기본적으로 구글 지도와 엑셀 파일을 사용해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기록했다. 경로 유형, 고도, 킬로미터 수, 숙박 장소, 소모품 구입 위치 등이다. 2년을 준비한 후 계획한 것의 100퍼센트를 갖췄다. 세계 곳곳의 세부 경로와 물자 보급 장소 등 정보를 숙지했다.
레오테의 월드런 경로 ⓒ레오테
이 정도 장거리 러닝이라면 재정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자금이 충분히 마련됐을 때 시작하고 싶었다. 돈 때문에 포기하는 상황은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축으로 모든 경비를 자체 마련했다.

이전 세계 일주 러너들과는 어떤 점이 다른가.

달려서 세계 일주에 성공한 사람은 전 세계에 일곱 명이 전부다. 이유는 각자 달랐다. 예스퍼 올센(Jesper Olsen)은 월드런의 선구자다. 그는 중간 휴식 기간 없이 완주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월드런의 길을 열었고 일부 경로에서 공동 주자와 동행했다. 나는 그가 호기심과 개척 정신으로 비범한 무언가를 성취했다고 생각한다.

로지 스웨일 포프(Rosie Swale Pope)은 두 번째 월드런 완주자이자 첫 번째 여성이다. 포프는 모험과 스포츠의 삶을 살아왔다. 그녀가 세계 일주를 시작한 때는 남편을 암으로 막 잃었을 시기였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고, 암 검진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달렸다.

세르주 지라드(Serge Girard)는 월드런의 규정된 규율이 제정되기 전에 이미 여러 대륙을 달렸다. 그의 여러 차례로 나눠 세계 일주를 진행했다. 지라드는 평생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먼 거리를 달렸다. 그는 상당한 예산을 가지고 있었고 마사지, 음식 준비, 도로 정찰 및 도로 지원을 담당하는 팀을 꾸려 동반했다.

나의 월드런은 100퍼센트 자급자족 방식이었다. 나의 주요 목표는 독특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경험하는 것이었다. 매일 새로운 목적지에 도달할 때마다 나는 그 자체로 ‘보상’받았다.

거기에 특별한 의미가 더해진 달리기였다.

내가 월드런을 한 이유 중 하나가 WFWI(Women for Women International)의 활동을 알리는 것이었다. WFWI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여성을 돕는 NGO로, 지역 사회를 재건하는 것을 돕고, 필수품 등을 제공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나는 어려움에 부닥친 여성들의 현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는 것을 도왔다. 동시에 그 지역의 여성들이 이루고자 하는 것에 장벽이 없음을 강조했다. WFWI에 킬로미터당 기부금 1달러를 모을 것을 약속했다. 달리는 내내 이것에 집중했다.

왜 여성을 위해 달리나.

나는 1980년대에 자랐다. 당시의 스포츠 영웅, 모험가, 탐험가 중에는 여성 인물이 적었다. 이는 우리 세대의 소녀들에게 대단한 업적은 ‘여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인식을 심었다. F1처럼 여성의 진입이 제한적인 스포츠 종목이 있다. 테니스, 수영 등 일부 영역에서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종목이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진다. 바뀌는 속도가 너무 더디다. 나는 월드런 과정에서의 인내와 성과를 여성들에게 바치고자 했다.
2021년 7월 미국 워싱턴주 스포캔(Spokane)에서 ⓒ레오테
여성은 남성보다 흔히 덜 강하고 덜 빠르다고 여겨진다. 물론 육체적으로 근육량과 호르몬이 다르다. 다만 이런 차이는 엘리트 러너에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아마추어 러너와 일반인에게 성별의 차이는 크지 않다. 누가 됐든 스포츠에 참여하는 이유는 건강하고 활동적인 방식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고 기쁨을 누리기 위함이다. 달리면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드는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이것은 과학이며 약물보다 낫고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시작하길!

고수한 러닝 스타일이 있나.

숨을 과하게 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말할 수 있는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속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지속하는 것이었다. 검증의 목적으로 GPS 장치를 착용했지만, GPS 데이터로 페이스나 속도를 확인하진 않았다. 편안함이 가장 중요했다. 월드런을 하기 전에 편안한 러닝을 위해 미드풋과 포어풋 착지를 익혔다. 기존 나의 주법은 리어풋 착지였으나, 장기간 지속하면 부상 우려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충격을 최소화하는, 매우 낮은 보폭을 연습했다.

누적 피로가 상당했을 것 같다. 초장거리를 달리는 노하우가 있나.

월드런을 준비하면서 나의 생체 시스템을 이해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포어풋 방식으로 앞발로 착지하면 발에 있는 26개의 뼈와 100개의 근육이 착지 충격을 흡수하면서 안정화되고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다만 밑창이 두꺼운 신발은 초장거리 달리기에 오히려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실수였다. 또한 매일 마라톤 거리를 뛸 수 있는 최적의 페이스를 찾았다. 킬로미터당 6분 38초 또는 시간당 9.1킬로미터다. 위험 영역으로 나 자신을 밀어붙이지 않았던 게 주효했다.

신발은 몇 켤레를 신었나.

열여섯 켤레의 신발로 2만 8200여 킬로미터를 달렸다. 한 러닝화로 평균 1765킬로미터를 달렸는데, 그중 일곱 켤레는 2500킬로미터 이상을 신었다. 더 이상 신을 수 없는 지경이 됐을 때 새것을 장만했다. 가능한 한 밑창이 얇은 신발을 찾았다.

식사, 영양 보충은 어떻게 했나.

배고프지 않고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한,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먹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여정을 시작하기 한 시간 전에 일어나서 아침을 든든히 먹었다. 일단 달리기를 시작하면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러닝 후반부 쉬는 시간에 가끔 탄산음료를 마셨다. 계획한 거리를 마치고 나면 점심을 든든하게 먹었다. 맥주는 그날의 러닝이 끝날 때마다 마셨다. 저녁은 보통 가볍게 해결했다. 대륙별로 식습관이 다양했다. 구할 수 있는 음식이 무엇인가에 따라 바뀌었다. 식단의 차이가 달리기나 회복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22년 8월 말 호주 시드니. 다음날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2년 6개월간의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는 월드런 스토리를 담은 책 《Le Monde Sous Mes Pieds》(직역: 내 발 아래 세상)을 2023년 9월 출간했다. ⓒ레오테
지루하지는 않았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장거리를 반복적으로 달릴 때 마음속에서 많은 일이 일어난다. 어떤 날은 몸의 소리를 듣는 데만 집중하고,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발끝에서 머리까지 천천히 스캔할 수도 있다. 경치를 구경하고, 새, 나무 등 보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전업 러너가 되기 전엔 무엇을 했나.

기업의 최고 재무 책임자 CFO로 일했다. 나는 재무학 석사와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재무 관리자, 회계 감사자, 재무 이사로 경력을 쌓았다. 달리기는 스물여섯 살에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나 자신을 즐기고, 내가 사는 곳을 새로이 발견하고, 더 많은 세상을 보는 방법이었다. 일하는 동료들과 팀워크를 위해 로드 레이스, 철인 3종 경기에 참여하는 것을 즐겼다.

온전히 러닝에 집중하는 생활은 어땠나.

달리기는 삶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한다. 자부심을 유지하고, 자신감을 얻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월드런을 통해 세상을 구석구석 볼 수 있었다. 출장 때 세상을 보던 관점과는 전혀 달랐다. 세상을 보고, 독특한 경험을 얻는 게 내가 달리는 가장 큰 이유다. 나는 나 스스로를 세계, 문화, 사람을 연결하는 메신저라고 생각한다.

달리면서 어떤 사람들을 만났나.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만나는 게 여행의 목적 중 하나였다. 매일 일찍, 때로는 일출 전에 달리기 시작해 점심시간 이전에 마쳤다. 낮잠을 자고, 회복하고, 걸어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 물론 달리면서도 여러 사람을 만났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에 올린 콘텐츠를 보고서 연결된 사람들도 많았다.

다양한 환경, 직업, 스토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세계 일주를 하고 있다는 말은 그들 안의 ‘보편적인 무언가’를 건드렸다. 그건 바로 ‘꿈’이었다.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꿈과 포부를 들려줬다. 놀라웠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경험, 지식에 대한 탐구, 연결을 희망했다. 지난 2년 6개월간 어느 대륙, 어느 지역을 가든 보편적인 감정을 느꼈다. 특별한 경험이었다.

월드런 이후의 계획이 궁금하다.

나의 모험이 나와 세상과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책을 쓰는 데 몇 달을 보냈다. 스포츠계 콘퍼런스의 기조연설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 경험하고 싶은 것이 많다. 또 여성 권리 향상을 위한 활동에 집중하고, 의미 있는 NGO에 참여하고 싶다. 항상 달리고 스포츠에 참여할 것이다. 일련의 활동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씨앗이 될 것이라 믿는다.
프랑스 언론 르 파리지앵Le Parisien에 소개된 레오테 ⓒ르 파리지앵
[1]
토르 고타스(석기용 譯), 《러닝》, 책세상,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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