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자본주의
1화

프롤로그; 변환하는 자본, 경계로 내몰리는 노동

기술의 진보는 언제나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과 나선으로 이어져 있다. 임금 노동 중심의 자본주의 생산 양식에서 기술은 필연적으로 자동화를 향하며, 자동화는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동시에 노동의 탈숙련화를 야기한다. 노동과정에서 기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인간 노동은 점점 단순하고 주변적인 것으로 변해 간다. 생산성의 증대는 일정 시간 이윤을 극대화하지만, 탈숙련화로 인해 점진적으로 과잉 생산과 과소 소비의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내외적인 상쇄 요인을 찾아낸다. 상품화, 특히 인간 정동과 인지를 상품화하는 과정은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던 영역을 시장의 영토로 탈바꿈시킨다. 도시가 성장하면서 교외를 창출하는 것처럼, 자본의 회전은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의 상품화를 넘어 문화와 마음의 상품화를 가속했다. 소비 자본주의 문화 산업의 전성시대를 지나며 우리는 이 로직을 깊이 내면화했고, 비판적인 좌파 학술 진영은 이를 ‘비물질적인 것의 헤게모니’, ‘인지자본주의’, ‘정동 자본주의’ 등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0년대 이후, 자본주의는 더욱 진보된 사이버네틱스 기술에 의해 대격변을 맞이하고 있다.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을 위시한 새로운 형태의 자동화, 마음과 생각의 생산을 극대화하는 기술 진보가 이뤄지는 것이다. 이제 자동화는 기계류·제조업 영역이 아닌 정보 및 커뮤니케이션 기술 환경에 적극적으로 도입된다.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이 복잡하게 연결된 디지털 플랫폼은 인간 사고와 감각의 자동화, 즉 인지의 자동화와 탈숙련화가 첨예하게 뒤엉키는 공간이자, 그로 인해 노동이 끝없이 외주화되고 삶의 불안정성이 항구화되는 파열 지점이다. 소셜 미디어, 유튜브, 전자 상거래, 배달, 모빌리티, 콘텐츠 서비스에 이르는 기술 혁신은 인지를 자동화한다. 마음을 읽어 내는 인지 기계들은 어디에나 편재한다. 그것들은 좋아할 법한 음악을 자동으로 재생해 주고, 욕망하던 상품 광고를 띄우며, 내가 즐길 법한 영화나 게임, 음악, 뉴스까지도 추천해 준다. 이와 더불어 욕망을 실현하고 운반하는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 라이더, 우버 기사, 유튜브 편집자 등 새로운 플랫폼 노동이 등장했지만, 그것이 재편한 삶은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 기계류가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이 형체 없는 기계들은 이제 문화·서비스 노동 부문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플랫폼과 알고리즘의 그물망 속에서 행해지는 인간 마음·사고의 자동화, 그리고 인간-기계의 신경망을 둘러싼 새로운 비인간노동 기술 생태계를 탐구한다. 인지 자동화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생산과 노동 영역, 즉 우리가 문화를 향유하거나, 혹은 콘텐츠를 창조하고 소비하는 영역의 추상화와 자동화를 촉진한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는 인간의 육체가 기계의 부품이 되어 가는 소외를 그렸지만, 이제 그 기계의 역할을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이 넘겨받았다. 우리의 뉴런은 점점 알고리즘과 플랫폼, 인공지능이 자아내는 기계 신경망의 일부가 되어 간다. 어떤 사물을 머리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광고가 송출되고, 느낌을 상상하기만 해도 비슷한 모양새의 콘텐츠들이 나를 둘러싼다. 비슷한 견해,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수없이 연결되지만 언제나 외롭다고 느낀다. 이 수많은 영상과 광고,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누가 그것들을 만들고, 누가 통제하는가? 마음과 정보 기계들의 네트워크 사이에 보이지 않는 톱니바퀴들이 있고, 우리는 이 기계들이 생산하는 생각의 상품들 속에서 노예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르크스는 19세기 산업 공장을 연구하면서 죽은 노동(기계)이 산 노동(인간)을 지배하고 있지만, 가치의 원천은 산 노동으로부터 나오고 죽은 노동은 단지 가치를 자본으로 이전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통찰했다. 요즘 굴뚝 없는 디지털 공장 —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틱톡 등 — 의 상품들, 무수한 영상과 게시물은 누가 만드는가? 그 영상들을 실어 나르고, 광고를 끼워 넣으며 우리의 머릿속에 집어넣는 기계들을 누가 통제하는가? 가면을 쓰고 1인 방송을 하는 크리에이터들, 로켓 배송과 자동화 물류 시스템 이면에서 과로로 죽어가는 물류 노동자들, 전자 상거래 사이트에서 끝없이 제 살을 깎아 먹는 자영업자들, 인공지능 학습을 위해 데이터 라벨링을 하는 미세 노동자들,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자유롭지 않은 모빌리티 노동자들(라이더, 우버 기사, 운송 노동자)의 현실은 오늘날의 자동화가 무의식이나 욕망과 같은 영역에까지 닿아 있음을 보여 준다. 반면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네이버와 다음카카오 등 빅테크 자본은 비밀스럽게 빅데이터를 흡입하고, 알고리즘을 도입해 엄청난 부를 쌓아 올리고 있다. 플랫폼과 알고리즘, 인공지능의 포위망에서, 문화 창조·향유와 관련된 활동들은 철저히 상품화되어 전에 없는 인지 및 사고의 탈숙련화를 야기한다. 이제 우리는 손을 뻗어 물질을 변화시키는 육체 활동의 감각뿐 아니라, 생각이나 욕구가 진정 나로부터 온 것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알고리즘 감옥에 사로잡힌 것이다.

따라서 시급하게 요청되는 것은 혁신이라는 미명하에 무차별적으로 도입되는 정보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먼 산 보듯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변화하는 자본과 노동의 역학에 대한 냉철한 형태 분석이다. 기후 위기와 더불어 마주할 전례 없는 재앙, 즉 전에 없던 디지털 불평등에 대비할 수 있는 진지가 구축되어야만 한다.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미래의 진지들을 탐색한다. 첫째, 수많은 플랫폼과 알고리즘이 겹쳐져 하나의 신경망을 이루는 플랫폼-알고리즘 신경망을 구조화하고, 그 안에서 가치가 생산·실현되는 경로들을 노동가치론의 관점에서 추적하는 것이다. 예컨대 유튜브의 광고 수익은 유튜브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유튜브는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 구글의 페이지랭크 알고리즘, 페이스북의 피드, 영상 편집자들이 함께 만들어 내는 위상학적 공간이다. 이용자들의 활동과 피드백, 그로 인해 발생하는 방대한 비정형 데이터들 속에서 ‘구독과 좋아요’는 광고와 누적 시청 시간을 포착해 가치를 생성·실현해 낸다. 우리는 2장과 3장에 걸쳐 플랫폼-알고리즘 신경망에서 부가 집적되는 방식을 구조화해 자본주의가 점점 수수료·구독료 중심의 지대(rent)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체질을 바꾸고 있음을 논증할 것이다.

둘째, 이 책은 플랫폼-알고리즘 신경망에서 실질적으로 행해지는 특수하고 이질적인 노동과정을 추적한다. 물리적 실체가 뚜렷한 플랫폼 고용 형태들에 대해서는 이미 알려진 바가 많다. 모빌리티 플랫폼의 배달, 운송, 물류 노동의 경우 그 형태보다는 고용과 매개의 방식이 플랫폼이 운용하는 알고리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1인 방송이나 유튜브 등에서 행해지는 노동은 그 형태부터 과정에 이르기까지 이질적인 양상으로 나타난다. 알고리즘에 노출되기 위해 내용보다 섬네일이나 키워드 연관성에 방점을 두고 제작되는 영상 콘텐츠 등이 좋은 예제다. 자동화를 추동하는 기술과 그에 따른 탈숙련화는 실질적인 노동과정이 어떻게 수행되는지를 들여다봄으로써만 이해될 수 있으며, 우리는 특히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에서의 노동과정 분석을 통해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는 플랫폼 노동의 실체를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이 책은 추상의 수준이 아닌 구체의 수준에서 ‘알고리즘 자본주의’를 그려 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나는 개별 플랫폼들을 관찰하며 디지털 에스노그라피를 수행했고, 추가로 인플루언서·영상 편집·1인 방송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심층 면접을 진행했다. 살아 있는 경험과 감정에 대한 이해는 어떤 정치의 가능성을 발굴하는 출발점이다. 이러한 질적 연구를 바탕으로 우리는 ‘잉여’를 섭취하며 성장하는 자본주의가 어떤 노동과정을 은밀히 잉여 부문으로 밀어내는지에 대한 밑그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4장의 핵심은 플랫폼-알고리즘 신경망에서 행해지는 노동과정을 구체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알고리즘 자본주의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명확한 부조를 떠내는 데에 있다. 또한 5장에서는 플랫폼-알고리즘에 의한 인지 자동화의 최종 지점, 인공지능을 다룸으로써 노동과 잉여가치의 새로운 관계, 그리고 자본-노동 사이에 비인간노동과 인간-기계의 하이브리드 신경망이 만들어 내는 ‘제3 섹터’의 윤곽을 그려 내고자 한다. 6장에서는 대안과 전망을 구축하고자 빅테크 자본이 전파하는 ‘자본주의 소셜 픽션’을 비판하고, 나아가 탈중앙화 기술과 시민 플랫폼, 커먼즈의 신경망에 대한 시론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기술 사회주의의 새로운 청사진을 그려 내 디지털세나 보편적 기본 소득 등과 같은 제도적 수준의 구호보다 구체적인 투쟁의 방향을 알아내게 될 것이다.

마르크스는 《1844년 수고》에서 자본주의하 노동은 자본가에게 궁전을 만들어 주지만 노동자에게는 움막집을 지어줄 뿐이라고 적었다. ‘알고리즘 자본주의’는 플랫폼이라는 궁전을 만들어 사람들을 모이도록 유혹한 다음, 주변에 각자 움막을 짓고 생존하도록 만든다. 움막 속의 사람들이 마을을 건설할 수 있도록 궁전의 신기루를 걷어 내는 것이 이 책이 지향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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