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성기를 가진 야심가
1화

확성기를 가진 야심가

미국 대선이 끝났다. 머스크가 승리했다.

우리는 지금 반세기마다 다가오는 완전히 새로운 변화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혁명보다 더 크고 더 강력한 혁명이 오고 있습니다. 바로 AI입니다. 디지털 대량 생산은 물질 대량 생산처럼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AI won’t save us’ 시리즈는 AI가 가져올 경제, 사회, 문화 변화의 징후를 포착합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미국 대선의 결과가 일론 머스크의 다양한 사업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게 될지를 전망합니다.
 
일론 머스크는 사업가다. 정치인이 아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했다. 테슬라는 물론, 스타링크에서 X에 이르기까지 머스크의 사업을 곧 정치다. 출처: BUSINESS INSIDER

변화와 징후


변화: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 2기가 시작된다. 이번 선거에서 막대한 돈을 쏟아부은 일론 머스크가 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징후: 혁신적인 기술이 자리잡는 과정에는 적절한 규제가 필요할 수 있다. 일론 머스크는 규제로부터의 해방을 원한다.

일론 머스크의 승리


일론 머스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번에는 정치가가 되어 미국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지난 7월, 도널드 트럼프가 펜실베이니아 유세 중 피격당했던 것이 계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머스크는 이미 지난 6월 트럼프 캠프에 후원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정치자금 모금 단체인 ‘아메리카PAC’을 만들었다. 일찌감치 트럼프에 걸었던 것이다. 물론, 피격 사건은 머스크에게 더 강한 확신을 심어주었고, 행보는 대담해졌다. 쇼맨십의 귀재답게 지원 연설에 나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돈도 퍼부었다. 공화당 상, 하원의원 후보 지원을 포함해 이번 선거를 위해 머스크가 쓴 돈은 최소 1억 3천2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말도 쏟아부었다. 440억 달러에 인수한 옛 트위터, ‘X.com’이 머스크의 확성기 역할을 했다. 머스크의 X 게시물이 일반 사용자 피드 상단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될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머스크는 이번 판에서 크게 땄다. 이제 남은 것은 배당금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의 문제다.

시장은 알고 있다. 트럼프의 당선과 함께 테슬라의 주가는 15퍼센트 급등했다. 좀 이상하다. 아무리 머스크가 이긴 판이라 해도, 트럼프와 전기차는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트럼프는 과학을 믿지 않는 인물이다. 1기 집권 당시에는 지구 온난화가 조작된 주장이라며 파리 기후 협약 탈퇴를 감행했다. 2기 집권 기간에는 그러한 기조가 더욱 강화할 전망이다. 트럼프가 무지하기 때문은 아니다. 탄소 감축 정책이 미국의 제조업에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테슬라는 지금 미국이 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미국산’ 제품이다. 중국과 멕시코, 독일에도 공장이 있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공장은 미국 캘리포니아 프리몬트에 위치한 ‘테슬라 팩토리’이다. 텍사스 오스틴, 네바다, 뉴욕에도 생산 기지가 있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테슬라야말로 가능한 한 밀어줘야 할 ‘MADE IN USA’ 기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테슬라를 단순히 ‘전기차’ 기업으로만 본다면 애매한 지점이 있다. 트럼프는 취임과 함께 IRA를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미국산 전기차 보조금이 폐지되거나 축소된다. 머스크에게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니다. 테슬라가 보조금을 받고 안 받고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의 전기차 비중은 채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그중 절반이 테슬라 차량이다. 전기차 파이가 커져야 테슬라 입장에서도 유리하다는 얘기다. 다만, IRA가 미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제한했고, 그동안 테슬라 상하이 공장에서 생산했던 자동차는 미국 국내 시장에서 거의 판매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상황이 반전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테슬라로서는 손익 계산이 좀 복잡해지는 셈이다. 다만, 이런 계산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일론 머스크는 이미 선포한 바 있다. 테슬라는 ‘자동차 제조사’가 아니라 ‘AI 로봇 공학 기업’이라고.

새로운 도시의 도래


미래로 나아갈 것인지, 과거에 머물 것인지를 결정할 칼자루는 정치가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우버’와 ‘타다’가 시장에 안착할 수 없었던 까닭은 기존 택시 업계의 반발을 의식한 정치권의 결정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로보택시’는 도입될 수 있을까. 역시 정치가 결정하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모빌리티를 둘러싸고 새로운 미래가 시작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10월, 테슬라는 ‘위, 로봇(We, Robot)’ 행사에서 로보택시, ‘사이버캡’을 공개했다. 생각보다 구체적인 것은 없었다. 양산 시점도 2026년이다. 하지만 만약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되었다면, 2026년 로보택시가 양산된들 미국 전역을 누빌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자율주행이 풀어야 할 난제는 기술뿐만이 아니다. 규제야말로 자율주행 시대로 진입하기 위해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이다.

완전 자율주행 자동차가 도로 위를 누빌 수 있으려면 얼마나 안전해야 할까. 사람이 운전하는 것보다 사고 발생률이 낮으면 될지, 단 한 명의 피해도 용납하지 않을지는 규제 당국이 정하게 된다. 결국, 언제부터 로보택시가 현실화할지는 정하는 것은 정치다. 트럼프 2기 행정부와 일론 머스크가 지금처럼 끈끈한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다면 상황은 머스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갈 수 있다. 내가 집에서 편히 쉬는 동안 나의 테슬라 차량이 ‘알아서’ 택시 영업을 하며 돈을 벌어오는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모빌리티의 개념이 바뀌게 된다. 미래의 얘기다. 현재 상황은 녹록지 않다. 테슬라가 판매 중인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FSD(Full Self Driving)는 아직 ‘완전한(Full)’ 자율주행을 허락하지 않는다. 게다가 미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테슬라 FSD의 안전성을 조사 중이다. 가시성이 좋지 않은 환경에서 FSD 작동 중 교통사고가 발생했고, 인명 피해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파구가 생겼다. 트럼프의 당선은 테슬라에게 기회다.

일론 머스크의 야망은, 물론 미국에 머물지 않는다. 지구도 좁다. 머스크의 궁극적인 목표는 화성 정복이기 때문이다. 우주를 향한 야심에도 트럼프의 재집권은 득이 된다. 가깝게는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미국 정부와의 계약 규모를 더 늘리며 세력을 확장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는 스페이스X의 성과를 잘 알고 있다. 2018년 재임 당시 스페이스X의 대형 로켓, ‘팰컨 헤비’ 발사 성공을 직접 축하한 일도 있을 정도다. 사실,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우주 개발은 트럼프 입장에서 실익이 적은 분야다. 하지만 민간 기업이 추진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실제로 2017년 1기 집권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우주정책명령 2호’를 발표한 바 있다. 우주 개발의 상업화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머스크가 무엇보다 바라는 바다.

AI를 양육하는 방식


테슬라와 스페이스X 다음으로 머스크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는 바로 생성형 AI다. 머스크의 xi가 내놓은 AI 모델, ‘그록’은 챗GPT나 클로드 등 경쟁 모델보다 가드레일이 꽤 낮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어떤 방향으로든 부적절한 질문을 챗GPT에 던지면 답변을 거부한다. 하지만 머스크에 따르면, 그록은 훨씬 ‘유쾌하게’ 받아친다. 다만, 누군가의 유쾌함이 타인의 혐오나 거짓을 담보로 발생하게 된다면 문제다. 지난 8월 선보였던 그록-2의 이미지 생성 기능이 화제를 모은 것처럼 말이다. 미키 마우스나 심슨처럼 저작권이 있는 캐릭터를 베끼거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테일러 스위프트의 속옷 차림 이미지를 생성하는 등 상상을 뛰어넘는 ‘퍼포먼스’를 보였던 것이다. 머스크가 강조하는 ‘표현의 자유’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된다.

트럼프 2기 기간은 생성형 AI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기와 겹칠 것이다. AI 모델은 어린아이에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떻게 가르칠지,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알려줄지 기준을 정해야 한다. 이 과정의 차이가 강력하고 안전한 AI 모델의 개발 여부를 가른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가 한창 성장기를 맞은 AI의 양육을 담당하게 된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AI 산업의 발육을 촉진하기 위해 각종 지원책을 내놓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막대한 전기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는 등의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AI 관련 규제책을 어떻게 마련해 나갈 것인지가 관건이다. 인성 교육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트럼프의 열광적인 지지자 집단, ‘MAGA’에는 좀 뒤틀린 신념이 작동하고 있다. 빅테크 플랫폼이 보수의 발언을 검열하고 통제한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트럼프가 줄기차게 주장해 왔던 레거시 언론들의 ‘가짜 뉴스’, ‘대안적 진실’의 논리가 빅테크로 옮겨간 셈이다. 인종차별적 발언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게시물이 차단당하면, 보수를 탄압하는 메타의 언론 탄압으로 받아들이는 식이다. 생성형 AI에 대해서도 비슷한 신념이 작동할 수 있다.

실제로 몇몇 공화당 의원들은 ‘AI 검열’을 비난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3년 ‘AI 행정명령’을 발동하고, 기업이 AI 개발 과정에서 미국 표준 기술 연구소(NIST)에서 실시하는 AI 안전 테스트를 시행하도록 했다. 기업은 그 결과와 개발 과정에서의 민감 정보를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이와 같은 규제가 보수 성향의 발언을 검열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텍사스주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는 최근 NIST가 제시한 ‘AI 안전 기준’이 “모호한 사회적 해악에 근거해 발언을 통제하려는 계획”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물론, 생성형 AI는 규제 당국이 완벽히 이해하기에 너무나 복잡한 문제다. 트럼프는 결국 머스크에게 자문을 구하게 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쾌한’ AI 모델을 자랑하는 머스크의 조언이 어떤 방향일지는 쉽사리 예상할 수 있다.

사유


머스크는 제멋대로다. 다음을 예측하기 힘들다. 하지만 트럼프는 더하다. 트럼프 2기가 머스크에게 호시절이 될지, 그 반대가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다만, 트럼프 2기 초반에는 머스크의 입김이 어느 정도 유효할 것이다. 과연 그래도 될까. 우리는 이미 머스크의 스타링크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양상을 쥐고 흔드는 모습을 목격한 바 있다. 이번에는 머스크가 이 시대의 무엇을 쥐고 흔들게 될까.

신아람 에디터
#AI #테크 #aiwontsaveus #경제 #테슬라

2화 ‘This Week in AI’에서는 이번 주의 가장 중요한 AI 뉴스 3가지를 엄선해 맥락을 해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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