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DE들은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는 코드를 작성하는 경향이 있다. 그 말은 곧 — 점잖게 표현하자면 — 기술적 부채(technical debt)와 임시방편적인 우회로(hacky workaround)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 PD 엔지니어들은 확장 가능하고,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고,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든다. 팔란티어의 핵심적인 ‘비밀’ 중 하나는, 지속적이고 깊이 있는 기업 가치를 창출하려면 이 둘이 모두 필요하다는 점이다.
FDE들은 대체로 고통에 대한 내성이 강하고, 다른 조직 내부에 깊이 파고들어 고객의 신뢰를 얻는 데 필요한 사회적·정치적 감각, 그리고 빠른 실행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고객이 ‘아, 이 사람들 진짜다’라고 느끼게 하려면, 일단 짧은 시간 안에 핵심 가치를 제공하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
다행히도 고객 대부분은 소프트웨어 외주 업체에 대한 기대치가 터무니없이 낮았다. 대부분 SAP 같은 솔루션을 도입하거나, 수년 단위의 ‘워터폴’ 방식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업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20대 초반의 어설픈 팀이 나타나, 1~2주 만에 실제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보여 주면 고객들은 깜짝 놀랐다.
이 양방향 모델(two-pronged model)은 매우 강력한 성장 엔진이었다. 고객사에 파견된 팀들은 대개 4~5명 규모의 소수 정예였고, 빠르고 자율적으로 움직였다. 이런 팀들이 여러 곳에 있었고, 모두가 빠르게 학습하고 있었다. 핵심 제품 팀은 이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주요 플랫폼을 만들었다.
우리가 어떤 조직 내부에서 실제로 일할 수 있는 허가를 받기만 하면, 이 모델은 대체로 아주 잘 작동했다. 문제는 대부분 정치적인 장벽이었다. 정부가 작동하지 않는 웹사이트 하나 만들겠다고 딜로이트에 1억 1000만 달러를 주는 장면이나, healthcare.gov 같은 대형 참사
[2], 샌프란시스코 교육청이 급여 시스템 하나 구축하는 데 4000만 달러를 쓰고도 역시나 실패하는 사례를 볼 때마다, 우리는 실력이 정치에 패배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스페이스X와 나사(NASA)의 차이를 비교해 봐라. 또 하나의 사례다.
세상에는 더 많은 스페이스X와 팔란티어가 필요하다. 정치적 줄타기를 하거나 단편적인 솔루션을 만드는 게 아니라, 실행력과 결과로 차별화되는 회사들 말이다.
비밀
FDE들이 수행한 또 다른 핵심 업무는 ‘데이터 통합(data integration)’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지루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이 작업이야말로 팔란티어가 하는 일의 핵심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이 작업의 중요성은 오랜 기간 외부의 평가에서는 과소평가되어 왔다. AI 시대가 도래한 지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깨끗하고 정제된, 접근하기 쉬운 데이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있다. 참고로 AI 모델의 진짜 핵심은 바로 데이터셋이다.
간단히 말하면, ‘데이터 통합’이란 다음을 의미한다. ①기업 내부의 ‘데이터 소유자’들과 협의해 데이터 접근 권한을 확보하고 ②데이터를 사용 가능한 형태로 정제하거나 때로는 가공한 뒤 ③모든 사용자가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배치하는 것이다. 팔란티어의 주요 소프트웨어 플랫폼인 파운드리의 기반이 되는 소프트웨어 대부분은 이 과정을 더 쉽고 빠르게 만들기 위한 도구들로 구성되어 있다.
데이터 통합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데이터가 컴퓨터가 쉽게 분석할 수 없는 다양한 형식으로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PDF, 노트북 파일, 엑셀 파일(정말 셀 수 없이 많다) 등 온갖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진짜 걸림돌은 기술보다는 조직 내부의 정치인 경우가 많다. 특정 팀이나 부서가 핵심 데이터 소스를 통제하고 있는데, 이들이 조직 내에서 존재 가치를 입증하는 방식이 바로 그 데이터의 ‘문지기(gatekeeper)’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종종 해당 데이터를 분석해 제공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데이터 접근 권한을 독점함으로써 조직 내 위상을 유지한다.
이런 정치적 장벽은 만만치 않은 장애물이 되는데, 때로는 웃지 못할 상황을 낳기도 했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가 8~12주짜리 파일럿 프로젝트를 발주했는데, 우리는 그 시간의 대부분을 오직 데이터 접근 권한을 얻는 데 써버렸다. 마지막 주가 되어서야 겨우 시연용 결과물을 허둥지둥하며 만들 수 있었다.
팔란티어가 일찍이 간파한 또 다른 ‘비밀’은, 데이터 접근을 둘러싼 갈등이 단순한 권한 다툼이 아니라 실제 보안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많다는 점이었다. 팔란티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플랫폼의 데이터 통합 계층 전반에 보안 통제를 내장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이 접근 방식은 역할 기반 접근 제어(RBAC), 행 단위 정책(row-level policies), 보안 등급 표시(security markings), 감사 추적(audit trails) 등 수많은 보안 기능을 포함한다. 이 분야에서 팔란티어는 여전히 다른 기업들이 따라잡지 못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팔란티어를 도입하면 데이터 보안이 약화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강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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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회사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이라기보다는 메시아적 컬트에 가까웠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비판이 매우 관대하게 받아들여졌고 오히려 환영받았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막 입사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디렉터와 이메일로 공개적으로 논쟁을 벌인 기록을 보여 준 적이 있다. 메일 수신자에는 1000명쯤 되는 회사 전체가 참조로 걸려 있었다.
합리주의적 사고를 가진 철학 전공자로서, 나에게는 이 점이 매우 중요했다. 나는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맹목적인 컬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안에서 소프트웨어가 존재론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문제를 두고 논쟁하길 주저하지 않는 회의주의자들의 컬트라면, 그건 충분히 흥미로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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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근무할 당시에는 입사자에게 책 몇 권을 보내 줬다. 《즉흥연기(Impro)》, 《문명전쟁(The Looming Tower)》(9·11 관련 책), 《Interviewing Users》, 《끝도 없는 일 깔끔하게 해치우기(Getting Things Done)》. 나는 여기에 더해, 훗날 《원칙(Principles)》으로 출간된 레이 달리오 원고의 초창기 PDF 버전도 받았다. 이 세트는 회사의 문화를 암시했다.
《문명전쟁》을 보내 준 이유는 명확했다. 회사 자체가 9·11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설립된 측면이 있었고, 피터 틸은 이후 필연적으로 벌어질 시민 자유 침해를 우려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팔란티어의 창업 맥락을 이해하는 데 유용했다. 하지만, 《즉흥연기》는 왜 줬을까?
성공적인 FDE가 되려면 사회적 맥락에 대한 비범한 감수성이 필요했다. 사실상 FDE가 해야 할 일은 기업 또는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그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었는데, 이건 대개 정치적 게임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즉흥연기》는 그런 게임을 이해하는 데 유용했다. 이 책은 ‘너드’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사회적 행동을 메커니즘적으로 해부해 설명하기 때문이다. 팔란티어 내부의 언어는 즉흥연기식(Impro-isms) 표현으로 가득했는데, 예를 들어 ‘캐스팅(casting)’이라는 표현이 그중 하나였다.
저자 키스 존스톤(Keith Johnstone)은 같은 배우라도 신체 동작의 몇 가지 요소만 바꾸면 고지위(high status)나 저지위(low status) 역할을 모두 연기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말할 때 머리를 고정하고 있으면 고지위,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면 저지위로 보인다. 등을 곧게 펴고 손을 드러낸 채 서 있으면 고지위, 구부정하게 서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으면 저지위로 해석된다. 그 외에도 다양한 신호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모르고서는 고객 현장에서 성공하기 어려웠고, 그렇다는 것은 곧 고객 데이터를 통합하지 못하고, 그들이 우리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었으며, 그 말은 실패를 의미했다.
이것이 바로 전직 FDE들이 훌륭한 창업자가 되는 이유다. 실제로 와이콤비네이터(Y-Combinator)의 각 기수에는 구글 출신보다 팔란티어 출신 창업자가 더 많다. 구글 직원 수가 팔란티어보다 50배쯤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훌륭한 창업자는 공간의 분위기, 집단의 역학, 권력 구조를 직관적으로 읽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건 창업 관련 글이나 조언에서 흔히 언급되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능력이다. 성공적인 창업이란 결국 끝없이 이어지는 협상 속에서, 전체적으로 우위를 점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채용, 영업, 투자 유치, 이 모든 것은 결국 협상이다. 그리고 인간 행동에 대한 본능적 감각 없이는 훌륭한 협상가가 되기 어렵다. 이것이 바로 팔란티어가 FDE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며, 실리콘밸리의 다른 테크 기업들에서는 배우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FDE는 이해력이 뛰어난 사람이어야 한다. 고객의 언어를 얼마나 빨리 익히고, 그들의 비즈니스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얼마나 깊이 파고들 수 있는지가 성과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병원과 함께 일할 경우, 단순히 “의료 서비스를 개선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병상 운영(capacity management)’이나 ‘환자 처리량(patient throughput)’ 같은 정확한 용어로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약 개발, 건강 보험, 생물정보학, 암 면역 치료 등도 마찬가지다. 각 분야에는 고유한 전문 용어가 있다. 성과를 내는 사람들은 대개 그 언어를 빠르게 습득한다.
타일러 코웬의 책 《Talent》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통찰 중 하나는, 가장 재능 있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어휘와 밈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이 어휘와 밈은 그들이 구축한 지적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한다. 타일러 본인부터가 대표적 사례다. 그의 블로그 ‘Marginal Revolution’ 독자라면 누구나 10개 이상의 ‘타일러리즘(Tylerism)’을 말할 수 있다. 예컨대 “이 문제를 모델링해 봐라(model this)”, “맥락은 희소한 것이다(context is that which is scarce)”, “균형점을 찾아라(solve for the equilibrium)”, “위대한 정체(the great stagnation)” 등이 그렇다.
이런 능력을 지닌 이들은 더 있다. 피터 틸이 그렇고, 일론 머스크도 그렇다. 예컨대 “다행성 종족(multiplanetary species)”, “의식의 빛을 보존하라(preserving the light of consciousness)” 같은 표현들은 모두 일론이 만든 밈이다. 트럼프, 유드코스키(Eliezer Yudkowsky), 그웬(gwern), SSC(Slate Star Codex), 폴 그레이엄(Paul Graham) 등도 밈을 자주 창조하는 인물이다. 이런 밈 창출 능력은 ‘영향력’을 측정하는 훌륭한 지표이기도 하다.
이 통찰은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팔란티어 역시 방대한 자체 용어 체계를 갖고 있었고, 그중 일부는 너무도 난해해서 “팔란티어는 대체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가?”라는 온라인 밈이 생겨날 정도였다. 예를 들어 ‘온톨로지(ontology)’는 잘 알려진 용어지만, 그 외에도 ‘impl’, ‘아티스트 콜로니(artist’s colony)’, ‘복리(compounding)’, ‘36개의 방(the 36 chambers)’, ‘도트(dots)’, ‘고통의 대사화(metabolizing pain)’, ‘감마 방사선(gamma radiation)’ 등 수많은 표현이 있었다.
이 용어 하나하나는 저마다 복잡하고 방대한 통찰을 압축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 모든 뜻을 일일이 설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이렇다. 만약 당신이 새로운 회사를 찾고 있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흥미롭게 만들어 주는 풍부한 내부 언어나 사유의 어휘를 가진 조직이야말로, 충분히 합류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