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의 착각
완결

빌 게이츠의 착각

게이츠의 주장은 현실을 오인하는 몇 가지 착각에 기반하고 있어 위험합니다. 

빌 게이츠가 말을 바꿨습니다. 게이츠는 10월 28일 자신의 블로그 ‘게이츠노트(GatesNotes)’에 〈기후에 관한 세 가지 엄연한 진실〉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COP30 개최를 앞두고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며 쓴 A4 용지 9장 분량의 글인데,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기후 변화는 심각한 문제이고 특히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 큰 타격을 주겠지만, 인류 멸망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또한 그는 “기온은 우리가 기후 대응에서 이룬 성과를 측정할 최선의 기준이 아니다”라면서 “인류의 건강과 번영이야말로 기후 변화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방어 수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요약하자면 게이츠는 기후 변화로 당장 지구가 멸망하진 않으니, 지구 온도에만 집착하지 말고 삶의 질 향상과 혁신 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추자는 낙관론을 펼친 겁니다. 기술 혁신을 통해 탄소 배출을 줄이면 기후 문제와 빈곤, 질병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기술과 시장의 힘을 활용해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을 20년 넘게 고민해 온 게이츠의 선의를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현실을 오인하는 몇 가지 착각에 기반하고 있어 위험합니다. 기후와 인간 삶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게이츠는 두 문제를 따로 보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지난 25년간 건강과 개발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왔습니다. / 사진: 게이츠노트

종말은 아니다?


게이츠가 말하는 “기후에 관한 세 가지 엄연한 진실”의 첫 번째는 “기후 종말론은 없다”입니다. 게이츠는 극단적인 기후 종말론을 일축하며, 기후 변화가 인류 문명을 완전히 파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한마디로 지구가 더워지면 사람들이 살기 더 힘들어지겠지만, 인류가 멸종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빌 게이츠가 이런 말을 하니 얼핏 안심이 되기도 하지만, 게이츠는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는 하룻밤 사이에 세계가 폭망하는 식의 종말이라기보다, 문명을 구성하는 복합적인 시스템이 서서히 무너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문명이 일순간에 사라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 과정에서 벌어질 막대한 피해와 불안정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엘 고어가 말했듯 수많은 기후 과학자는 게이츠의 주장을 “어리석다”고 지적합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거죠.

유엔 IPCC는 말합니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이 1.5도 상승하면, 전 세계 도시 거주자 3억 5000만 명이 극심한 물 부족에 시달리게 됩니다. 1.5도에서 2도로 상승 폭이 커지면, 추가로 17억 명이 극한의 폭염 환경에 노출됩니다. 2도를 넘어 3도에 근접할 경우, 전 세계 생물종의 절반에 가까운 종이 서식지의 50퍼센트 이상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지구 온도가 몇 도만 올라도 인류 사회와 생태계의 기반에 파괴적 영향이 불가피합니다. 실제로 IPCC 종합 보고서는 “기후 변화는 인류 복지와 행성 건강에 대한 위협”이며 “모두가 살 수 있는 미래를 지킬 기회의 창이 급속히 닫히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멸망까지 안 가더라도, 우리가 아는 문명의 생존 기반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재난의 연결성입니다. 기후 충격은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연쇄적으로 번져 나갑니다. 예컨대 한 지역의 가뭄이나 폭염은 곡물 생산을 타격해 세계 식량 가격과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리고, 사회 불안을 촉발할 수 있습니다. 세계 코코아 생산량의 60퍼센트를 차지하는 가나와 코트디부아르에 심각한 가뭄이 들어, 2024년 초 세계 코코아 가격이 300퍼센트 폭등한 사례처럼 말입니다.

기상 이변은 국제 식량과 원자재 가격을 출렁이게 해 각국 경제에 충격을 주고, 물가 상승은 정치적 불안과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당장 미국만 해도 생활비가 지난해 대선과 올해 미니 중간 선거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기상 이변이 지속되면 물과 식량을 둘러싼 분쟁과 이주, 정치적 극단화도 증가합니다. 기후는 정치와 경제의 토대이며, 기후 불안정은 곧 사회 시스템의 불안정으로 직결됩니다.

지구가 내일모레 완전히 멸망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이미 문명 시스템의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글로벌 공급망은 기후 충격에 취약해지고, 식량과 에너지 가격은 변동성이 커졌으며, 폭염과 홍수 같은 기후 충격이 누적되며 사회 곳곳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은 지금 경로로 가면 “살기 좋은 미래를 확보할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다”고 강조합니다.

종말은 아니니까 괜찮다는 게이츠의 주장은, 기상 이변과 재난의 일상화를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기후 위기는 당장 인류를 절멸시키지 않더라도, 살아 있는 모두의 삶을 조금씩 침식하는 위기입니다.
새로운 작물 품종과 기타 기술 혁신으로 농부들이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된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 사진: 게이츠노트

가난과 질병이 더 큰 위협이다?


게이츠가 주장하는 두 번째 진실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기후 변화가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큰 피해를 주기는 하지만, 정작 그들의 삶을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빈곤과 질병이다.” 게이츠는 한정된 자원을 고려할 때 당장 티가 나지 않는 기후보다 빈곤 퇴치나 공중 보건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후와 빈곤·질병 간의 상호 작용을 간과한 주장입니다. 기후 변화 자체가 빈곤과 질병을 키우고 앞당기는 증폭기이자 가속기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은행은 기후 변화로 인해 2030년까지 최대 1억 3200만 명이 추가로 극빈층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에 집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극심한 가뭄이나 홍수는 농작물을 잃게 만들어 농촌 생계를 파탄내고, 이는 그대로 빈곤 인구의 증가로 이어집니다.

기후 변화는 식량 안보와 영양 상태도 악화시킵니다. 103개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극심한 더위와 가뭄이 결합되어 2020년에 중등도 이상의 식량 불안, 즉 굶주림을 겪은 사람이 1981~2010년 평균보다 9800만 명 더 많았습니다. 이상 고온이 이미 1억 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식탁을 엎어 버린 것입니다.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경우, 기후 변화로 곡물 생산이 줄고 가격이 폭등해 아동 영양 실조와 발육 부진이 심화하고 있습니다. 요악하자면, 기후 충격은 가난과 굶주림을 앞당기고 키웁니다.

질병도 마찬가지입니다. 게이츠는 기후 대응보다 질병 퇴치를 우선하지만, 기후 변화가 전염병 위험을 악화시킨다는 사실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말라리아, 뎅기열 같은 모기 매개 질병이 확산되어, 2040년경에는 말라리아 위험 인구가 50억 명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또한 폭우와 홍수가 일상이 되면서 콜레라 같은 수인성 질병이 창궐할 위험이 높고, 폭염은 심혈 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을 증가시킵니다.

더구나 폭염은 노동자의 건강과 생산성을 떨어뜨려 소득을 줄이기도 합니다. 폭염으로 인한 전력망 붕괴는 병원이나 백신 냉장 시설 가동을 마비시켜 보건 시스템을 무력화할 수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나이지리아, 소말리아 등 이미 기후-보건 복합 위기가 현실화된 나라들이 있습니다. 결국 기후 변화는 가난과 질병의 발생 확률을 전방위로 높이는 증폭기입니다.
청정 에너지 분야에서도 혁신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 사진: 게이츠노트

기술 혁신으로 극복할 수 있다?


게이츠는 기후 문제 해결의 열쇠로 기술 혁신을 제시합니다. “향후 10년 안에 값싼 무탄소 기술들이 대거 상용화될 수 있는데, 이 기술이 인류의 번영을 지속시킬 것”이라는 낙관론입니다. 실제로 지난 10~20년간 태양광·풍력 에너지 가격이 급락하고 전기차가 보급되는 등 기술 진보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게이츠의 주장은 기술만 있으면 된다는, 일종의 기술 만능주의에 치우쳐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기술 개발보다 보급이 더 어렵습니다. 기술 개발은 실험실에서 이뤄질 수 있지만, 그 기술을 보급하려면 제도와 구조를 바꾸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니까요. 기술 혁신과 그 기술의 사회적 확산은 별개의 도전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제시한 2050 넷제로 시나리오에 따르면, 현재 상용화된 기술을 총동원해도 2050년 탄소 감축 목표의 65퍼센트밖에 달성하지 못합니다. 나머지 35퍼센트 감축은 아직 개발 단계에 있어 상업적 규모로 시장에 출시되지 않은 기술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예컨대 탄소 포집 및 저장, 그린 수소, 차세대 원전, 무탄소 시멘트, 합성 연료 등은 하나같이 비용이 너무 높거나 규제 장벽, 사회적 수용성 문제 등에 막혀 있습니다. 기술은 나왔지만, 경제성이 없거나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아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기술 혁신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정부와 사회의 의도적 지원 없이는 시기 내 상용화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청정 에너지 혁신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가 낙관적으로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딘 여정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태양광 발전 효과는 1830년대 후반에 이미 발견되었지만, 최초의 태양광 전지 시제품은 50년이 지나서야 나왔습니다. 기술 발전은 1950년대 이르러 가속화되었고요. 그리고 마침내 2015년이 되어서야 전 세계 전력 생산량의 1퍼센트에 도달했습니다.

결국 청정 에너지 기술의 발전 속도를 높이려면,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규모의 연구 개발 및 실증 사업 투자가 추가로 이뤄져야 합니다.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기업에만 맡길 수 없는 문제입니다. 투자금이 회수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자금을 국가가 지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가가 정책 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근거 혹은 동력은 기후 위기의 심각성과 시급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겠죠. 그런데 게이츠의 주장은 이 심각성과 시급성을 과소평가합니다.

게이츠가 즐겨 쓰는 개념인 ‘그린 프리미엄(친환경 기술에 들어가는 추가 비용) 제로’는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재생 에너지나 전기차가 지금의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까지, 세계 각국의 정책 개입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은 2000년대 초반부터 재생 에너지 발전차액지원제도(FIT)와 엄청난 보조금, 송전망 투자, 탄소 배출권 거래제 등을 결합해, 태양광·풍력 산업의 성장을 의도적으로 견인했습니다.

그 덕분에 생산 규모가 확대되었고 학습 곡선 효과로 단가가 급락했습니다. 미국 역시 2022년 바이든 정부 때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향후 10년간 3690억 달러에 이르는 기후 기술 보조금을 풀기로 했었습니다. 경제성이 낮았던 그린 수소 같은 친환경 연료가 세액 공제 지원에 힘입어 화석 연료와 가격 격차를 빠르게 좁혔죠. “IRA의 보조금이 여러 청정 기술의 경제성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는 프린스턴대의 분석도 있습니다.

즉, 혁신 기술의 확산은 시장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정책의 지렛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게이츠가 그리는 깨끗한 기술의 미래 역시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게 아닙니다. 올바른 정책 설계와 제도적 혁신이 따라줘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정책의 지렛대를 움직이는 힘은 지구 기온 상승을 막아야 한다는 국민적 인식과 국제 사회의 공감대입니다. 기후 위기를 후순위로 미뤄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구조적 문제도 살펴봐야 합니다. 신기술이 나와도 기존 인프라와 시장 구조를 바꾸는 데에는 시간과 비용이 듭니다. 게이츠가 꽂혀 있는 차세대 원자로가 상용화된다 해도, 이 시설을 실제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와 산업 현장에 배치하려면 입지 허가부터 주민 수용성, 안전 규제 등 풀어야 할 사회적·정치적 과제가 많습니다. 전기차를 더 늘리려면 충전 인프라 구축과 전력망 강화가 병행되어야 하고요. 또한 기술 보급 초기에는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정부 보조와 민간 금융의 역할도 필요합니다.

요악하면, 기술은 필요조건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제도 혁신, 자금 동원, 사회적 합의라는 구조적 병목을 함께 해결해야 비로소 기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게이츠의 낙관론이 놓친 부분입니다.
게이츠는 기후 대응보다 저소득 국가 국민의 삶 개선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사진: 게이츠노트

삶의 질을 우선한다?


게이츠의 세 번째 주장은 기후 대응의 지표를 바꾸자는 제안입니다. 그는 “건강과 번영이야말로 기후 변화에 맞서는 최선의 방어이므로, 지구 평균 기온이 몇 도 올랐느냐보다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느냐를 기준으로 삼자”고 말합니다. 겉보기에는 인간 중심의 관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의 성과를 측정할 계기판을 버리는 순간, 우리는 장기 전략을 조율할 나침반을 잃게 됩니다.

지구 기온을 산업화 이전 대비 1.49도 또는 1.51도가 아니라 1.5도 이내로 억제하자는 기후 목표는 과학이라기보다 정치적 합의의 산물입니다. 그 숫자는 국제 사회가 어렵게 만든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입니다. 만약 지구 온도는 일단 잊고 지금 눈에 보이는 삶의 질 개선에 집중하자는 식으로 나아가면, 긴 안목의 기후 투자가 단기 복지 정책에 잠식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21~2022년에 에너지 위기가 닥치자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요금이 급등하자, EU 각국 정부는 앞다투어 연료세 인하, 가계 보조금 지급 등 단기 구제책을 쏟아냈습니다. 화석 연료에 일시 보조금을 부여하거나 전기·가스 요금 상한제를 도입하는 등 기후 변화 대응보다는 당장 ‘삶의 질’을 지킨다는 명목의 정책들이 채택되었죠.

그 결과 2022년 한 해에만, 전 세계적으로 7000~9000억 달러에 달하는 공적 자금이 에너지 요금 경감에 투입되었습니다. IEA에 따르면 2022~2023년 중반까지 각국이 고유가와 고물가를 잡으려고 편성한 단기 에너지 지원금이 누적 9000억 달러가 넘습니다. 우리 돈으로 1325조 원입니다.

이 돈이 애초에 재생 에너지 전환이나 건물 단열, 대중 교통 확충 등 지속 가능한 전환에 쓰였다면 어땠을까요. 물론 예상하지 못한 위기 상황에서 국민 생활의 안정을 도모한 정책들을 이제 와서 폄하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단기적으로 ‘삶의 질’을 이유로 편성된 지출이 기후 관련 장기 투자 재원을 잠식해 버렸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EU 일부 회원국은 화석 연료 보조금 지출이 늘면서 재생 에너지 예산을 상대적으로 깎는 일이 있었습니다. OECD 보고서 역시 2022년에 시행된 각국의 에너지 구제 정책들이 화석 연료 소비를 급증시켜, 중장기적으로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지적합니다.

게이츠의 ‘삶의 질’ 중심 논리가 현실 정치에 적용되면, 단기 부양책의 남발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악용될 수 있습니다. 정치인 입장에서는 보조금을 지급해 당장 유가를 낮추고 전기 요금을 깎아 주는 것이 다음 선거에 유리합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이 쌓이면 탈탄소 전환은 늦어지고 기후 위기는 악화됩니다. 궁극적으로, 게이츠가 말한 것처럼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미래에 더 큰 타격을 받습니다.

게이츠는 ‘인간 중심’을 말하지만, 정작 그 방식은 ‘지금의 인간’을 위해 기후 대응을 뒤로 미루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의 주장에는 ‘나중의 인간’을 위한 기술 개발과 보급이 기대보다 늦어질 때를 대비한 계획이 없습니다. 기후 지표는 지금과 나중의 인간이 모두 살만한 지구를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마지노선입니다. 이 목표를 흐리게 되면 정치적 유혹이 득세해 기후 예산을 잡아먹고, 결국 미래 세대에 막대한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피해의 규모는 훨씬 더 클 테고요.
게이츠는 백신 접종 등으로 아이들이 건강해지면, 기후 변화의 영향에서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 사진: 게이츠노트

효율성을 따지자?


게이츠는 기후 의제에 투입되는 자금을 ‘생명당 비용 효과(cost per life saved)’로 따져 보자고 제안합니다. 그는 자신이 지원해 온 백신 지원 프로그램 ‘가비(GAVI)’를 예로 듭니다. 가비는 2000년 이후 빈곤국 아동 예방 접종에 220억 달러를 투자해, 1900만 건의 사망을 예방했습니다. 즉 가비는 1157달러당 생명 하나를 구한 셈입니다. 게이츠는 기후 자금 역시 가성비가 좋은 곳에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는 기후 위기의 시차와 비가역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후 변화는 선형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온실가스 배출의 영향은 수십 년의 시간 지연을 두고 누적되다가, 일정한 임계점을 넘으면 기하급수적으로 악화되는 비선형 시스템입니다. 지금 탄소를 줄이지 않아도, 당장은 눈앞의 사람이 죽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번 대기에 쌓인 탄소는 수백 년간 남아 기후를 계속 가열합니다.

지금 절약한 1157달러로 한 생명을 구했을지 몰라도, 그로 인해 미뤄진 탄소 감축은 20~30년 뒤 수천만에서 수억 명에게 생명의 위협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온실가스의 온난화 효과는 수세대에 걸쳐 지속되고, 한계점을 넘긴 후에는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복구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기후 영역에서는 단기 효율을 쫓다가, 돌이킬 수 없는 장기 비효율을 떠안을 위험이 있습니다.

당장의 ROI(Return on Investmet)만 따지면 “1157달러당 한 명을 구했다”가 선호될 수 있을지 몰라도, 후대가 인류사를 펼쳐 놓고 긴 호흡으로 본다면 오히려 더 많은 생명과 비용을 잃는 근시안적 선택을 한 셈입니다. 기후 시스템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IPCC도 지체 없는 감축과 적응에 동시에 나설 것을 촉구합니다. “이번 10년간 실행될 선택과 행동이 현재와 수천 년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기후는 임계점을 지닌 복잡계입니다. 일정 수준 이상 온도가 오르면 영구 동토층이 녹아 메탄이 대량 방출되고, 해양 순환이 교란되고, 일부 생태계는 영원히 복원 불가능한 상태로 사라집니다. 이러한 돌이킬 수 없는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이런 위험이 사전에 통계적으로 계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초가 부실한 건축물이 정확히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데이터에 기반한 효율적 투자라도, 숫자로 잡히지 않는 대형 리스크를 간과하면 진짜 비효율을 초래합니다. 게이츠식 숫자 환원주의는 측정 가능한 단기 성과를 중시하지만, 기후 위기의 핵심은 눈에 보이지 않게 축적되고 있는 거대한 위험이라는 것입니다.

기후 대응은 보험의 성격이 강합니다. 평상시에는 효율이 낮아 보일 수 있어도, 일단 사태가 터지면 보험의 가치는 거의 무한대로 상승합니다. 1.5도 목표를 지키려는 노력과 투자는 당장은 ‘절약된 생명 수’로 즉각 환산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노력과 투자가 없다면 미래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손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진짜 합리주의자라면 당장의 숫자만 볼 게 아니라, 잠재 시나리오까지 고려해 현실적 판단을 해야 합니다.
정부 정책은 혁신을 가속합니다. / 사진: 게이츠노트

기후와 인간


빌 게이츠의 제안은 인도주의적 선의와 기술적 통찰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그는 기후를 기술 문제로만 환원하고 사회·정치·생태의 함의를 축소했습니다. “기후보다 인간”이라는 말은 겉보기에는 매력적이지만, 실제로는 그 둘을 분리할 수 없습니다. 바다와 어류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듯, 인간 삶을 지탱하는 토대가 바로 기후와 환경이니까요.

진정한 인간 중심 전략이란, 기후 대응을 복지와 경쟁하는 항목이 아니라 인류 생존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재생 농업 같은 친환경 농업은 토양의 탄소 저장량을 늘려 기후에 이롭고, 동시에 지역 식량 안보와 농가 소득에 도움이 됩니다. 이런 걸 흔히 ‘이중 배당(double dividend)’ 효과 또는 ‘공편익(co-benefits)’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재생 농업에서 기후 안정성과 식량 안보와 지역 소득 증대는 따로 떨어진 효과가 아니라, 하나의 통합적 결과입니다. 별개의 결과물이 아니라 같은 시스템의 결괏값으로 봐야 합니다.

그럼에도 게이츠의 글은 유의미합니다. 게이츠의 주장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시대의 천재가 제시한 새로운 구호가 아니라 그 천재를 포함한 다수가 여전히 갇혀 있는 편견을 깨기 위해 무엇을 더 이상 허용해선 안 되는가입니다. 기후와 인간 삶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앞으로의 정책에서는 세 가지 금기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첫째, 기후 대 복지라는 가짜 선택지를 허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의 정치 언어는 ‘기후냐, 경제냐’, ‘온실가스냐, 서민 물가냐’처럼 양자택일을 강요합니다. 그러나 기후 충격 자체가 빈곤과 질병의 가속기라면, 이 구도는 애초에 틀린 질문입니다. 정책의 질문은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설계하면 같은 비용으로 탄소 배출도 줄이고 삶도 지키는가”로 바뀌어야 합니다.

앞으로의 예산과 법안은 기후와 복지와 생산성을 모두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면 통과되기 어렵게 만드는 장치를 도입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에너지 요금을 지원하겠다면, 보조금과 건물 단열과 에너지 효율을 반드시 엮어서 통과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현금 지원만 하고 인프라는 나중에 개선하자는 식의 법안은, 더 이상 정당화되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 기술이 언젠가는 모든 걸 해결해 주리라는 낙관으로, 새로운 화석 연료 인프라를 짓지 않아야 합니다. 게이츠식 기술 낙관론의 가장 큰 문제는, 지금 여기서의 결정을 미루는 면죄부로 쓰이기 쉽다는 점입니다. 40~50년을 쓰는 석탄과 가스 인프라를 지금 짓고 나면, 이 자산은 정치적으로도 쉽게 폐쇄되지 않습니다. 기술 혁신이 아무리 빨라도, 한번 지어 버린 화석 연료 인프라의 락인 효과는 기술 발전의 속도를 능가합니다.

아무리 급해도 새로운 화석 연료 인프라 도입에 금지선을 그어야 합니다. 이 원칙이 선명하게 서야, 그 뒤에 오는 혁신 기술과 녹색 금융 논의도 의미를 갖습니다. 언젠가는 탄소 포집 기술이 저렴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전제로, 오늘 또 하나의 화석 연료 자산을 승인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비합리입니다.

셋째, 기후 정책을 좋은 일 정도로 규정하고 정치와 권력의 문제에서 떼어 놓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게이츠는 기후 대응을 백신 사업과 비슷한 ‘가성비 좋은 선행’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기후 문제는 국가 간 자본 이동, 지역·세대·성별 간 불평등, 세제, 보조금, 토지와 광물에 대한 소유권 등이 교차하는 정치·경제의 핵심 문제입니다. 달러당 몇 명을 구했는가, 같은 단순한 계산법으로는 이 복잡한 구조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화석 연료 보조금 폐지, 탄소 가격제 설계, 기후 취약 계층에 대한 직접적 소득 이전, 개발 도상국 부채 경감과 기후 투자 연계 같은 구조적 개혁이 논의의 중심에 와야 합니다. 기후를 개인의 도덕성과 기업의 자선에 맡기는 순간, 우리는 가장 중요한 질문 ― 누가 비용을 내고, 누가 이익을 가져가는가 ― 를 포기하게 됩니다. 기후 정책을 국가 재정, 조세, 산업 정책의 핵심 축으로 가져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세 가지 금기는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30년이 이 금기를 지키지 않은 결과라는 점을 생각하면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기후와 복지를 경쟁시키고, 기술이 해결해 주리라는 기대 아래 화석 연료 인프라를 늘리고, 기후 문제를 먹고살만 한 국가 또는 사람들의 선행 정도로 취급해 온 결과가 지금의 상황입니다.

빌 게이츠의 낙관주의는 선량한 신념에서 출발했겠지만, 전략으로는 불충분합니다. 기후 위기는 시작과 끝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 속도의 문제입니다. 인류는 쉽게 멸망하지 않겠지만, 지금 같은 느린 대응이 계속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삶의 형태는 지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낙관이 아니라, 기후가 곧 인간 삶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태도입니다.
* 어떤 이야기는 너무 흥미진진해서 길게 들려줄 수밖에 없죠. longread 시리즈는 단편 소설처럼 잘 읽히는 피처 라이팅입니다. 월 1회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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