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미래
완결

프랑스 비지 보고서가 전망하는 2050년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 전략을 세우는 학문


미래학 또는 미래 연구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처음 들어 보는 사람도 있을 테고, 피터 드러커나 유발 하라리 같은 베스트셀러의 저자들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미래학은 국내에서는 아직 익숙하지 않아 그로 인한 오해가 많다. 주변 사람들에게 국회미래연구원에서 근무하는 연구자라고 하면 마치 점치는 사람을 대하듯 이런저런 가까운 미래의 전망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어떤 학자들은 냉소 섞인 말투로 미래학이 과연 학문이냐고 묻기도 한다. 미래학은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훨씬 활발한 연구 분야 중 하나다. 이미 1960~1970년대에 미국 하와이대, 매사추세츠대, 휴스턴대에는 미래와 관련된 박사 과정이 개설되었다. 그 외에도 핀란드, 독일, 호주, 덴마크, 프랑스, 인도, 영국, 대만 등에서 미래학은 독립적인 학위 과정으로 개설되어 있거나, 역사학, 경제학, 경영학, 정치학, 과학기술정책학과 연계되어 운영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2012년에 설립된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이 미래학 석·박사를 배출하고 있다.

미래학 또는 미래 연구는 활용되는 분야에 따라 futures studies, strategic foresight, futuristics, futures thinking, futuring, futurology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미래학은 간단히 말해 다가올 미래를 선제적으로 변화시키거나, 그럴 수 없다면 대응하기 위해 미래를 판단·예측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를 내다본다는 측면에서는 점(占)과 동일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점에는 한 가지의 미래 이야기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을 맞추는 것이 목적이다. 미래학에서는 미래를 개연(possible) 미래, 가능(probable) 미래, 선호(preferable) 미래 등으로 구분하면서 가능성 있는 미래를 2~4개 정도로 예측한다. 미래학이 futures studies인 이유다. 미래학은 미래를 과거의 추세에 기반해서 예측하는 forecasting이 아닌 통찰력에 기반한 foresighting을 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미래학은 기존 학문 세계가 가지고 있는 엄밀성과 재현성보다는 미래에 대한 창의적 사고와 상상력, 전문적인 지식에 근거하여 복수의 미래를 예측하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대응 전략을 세우는 학문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은 인간에게만 속한 것이다. 동식물들은 본능에 충실하며 환경에 순응하고 적응한다. 인간도 피치 못할 상황에서는 놀라운 적응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인간은 지식과 경험에 바탕을 둔 상상력을 통해 장래를 그려 보고 미리 회피할 수 있다. 미래는 예측하는 만큼 대비할 수 있다. 따라서 미래는 예측하고 준비하는 자의 몫이다. 이 말은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 국가에도 해당된다. 21세기는 인류사의 어느 시기보다 빠르고 복잡하게 급변하고 있다. 예측이 어려워진 만큼 역설적으로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필요도 많아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례없는 저출생, 고령화, 저성장, 과학 기술의 급격한 발전 등 거대한 변화의 흐름 안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국회 안에 국가 중장기 발전을 위한 미래연구기관이 설립된 것은 이러한 미래에 대응하기 위한 필연적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미래 연구는 이제 첫발을 내디뎠다. 우리는 미래 연구에 있어서 어떤 나라들에 주목해 볼 수 있을까? 내가 관심을 둔 나라는 프랑스다. 프랑스라고 하면 당장에 에펠탑과 샹젤리제 거리를 떠올리며 문화와 예술, 철학의 나라를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프랑스인의 자유롭고 창의적이자 철학적인 성향이 잘 드러나는 가장 대표적인 학문 중 하나가 바로 미래학일 것이다.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미래 연구 분야에서 선도적인 국가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세기말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도 프랑스인이었다. 《해저 2만 리》, 《80일간의 세계 일주》 등으로 잘 알려진 공상 과학 소설가 쥘 베른(Jules Verne)도 프랑스인이다. 18세기부터 프랑스는 과학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문학적 상상력과 철학적 사유가 공존해 왔다. 샤를 리셰(Charles Richet)라는 생리학자는 1892년에 《100년 후》라는 책을 통해 전 세계적인 인구 증가를 매우 정확하게 예측했다. 세바스티앙 메르시에(Sebastien Mercier)는 1770년에 출판한 《서기 2440년》를 통해 유럽 진보 사상의 미래를 그렸다. 25세기 세계는 전에 없던 평화를 구가하고 있고, 왕정은 남아 있지만 노예제는 폐지되고, 파리는 과학 도시로 발전하고 있고, 결혼 제도도 달라지고 남녀 간의 연애는 자유롭고 평등해졌다는 등의 내용이다. 당시에는 판매 금지를 당할 정도로 파격적이었지만 미래 세계를 묘사한 역사상 최초의 SF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학적, 사회적, 문화적, 철학적 풍토에서 미래학이 선구적으로 발전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프랑스에서 미래학이 학문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설립된 미래학회가 바로 프랑스 파리에 근거하고 있는 푸뛰히블르(Futuribles, www.futuribles.com)다. 푸뛰히블르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비영리 독립 민간 미래 연구 단체로 베르트랑 드 주브넬(Bertrand de Jouvenel)이라는 프랑스 현대 미래학의 선구자가 1960년에 설립했다. 학회의 미션은 ① 현재의 변혁을 이해하고(Understand current transformations), ② 가능한 미래들을 탐색하고(Explore possible futures), ③ 미래의 도전을 논의하고(Discuss the challenges of the future), ④ 이에 대응할 정책과 전략을 세우는 것(Design policies and strategies)으로, 실제 예측과 미래 탐색, 대응이라는 미래 연구의 거의 모든 이슈와 측면을 다룬다.

푸뛰히블르는 2018년에 비지 보고서(Vigie[1] report 2018)를 발행했다. 이 보고서는 2050년을 종합 시나리오로 예측한 프랑스의 2050 미래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2018년 11월 말 ‘2050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How shall we live in 2050?)’라는 주제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푸뛰히블르 국제 콘퍼런스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2018 푸뛰히블르 국제 콘퍼런스는 비지 보고서를 바탕으로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연구 발표와 토론을 통해 2050년 사회를 예측하고 어떤 대비가 필요할지를 논의하는 장이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비지 보고서에 대한 내용을 처음 접했다.

일반적으로 미래 관련 콘퍼런스는 다수가 기술 전망 보고나 과학 및 산업 관련 전시회로, 첨단 과학 기술로 인한 희망과 발전의 밝은 미래를 전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콘퍼런스는 다분히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 미래를 논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한국 또한 생명 과학과 데이터 과학을 비롯한 소위 ‘4차 산업혁명’ 관련 과학 기술은 ‘일자리 창출’이나 ‘미래의 먹거리’라는 키워드와 함께 장밋빛 미래만 그리고 있다. 이러한 과학 기술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어떠한 파장을 끼치게 되고,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손해를 보는지, 그에 대해 어떤 대비를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거의 연구가 되지 않고 있다. 최근의 배달 앱과 같은 플랫폼 산업이나 타다와 같은 신종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기술 개발이나 서비스 자체가 대단한 혁신이 아님에도 사회에 미치는 파장은 대단하다. 하물며 앞으로 다가올 생명 과학 기술이나 인공지능 등을 통한 파괴적 혁신(disruptive transformation)이 사회에 가져올 파장은 어떠할 것인가? 현재 한국 사회가 미래를 생각할 때 갈급한 질문들이다. 답을 찾는 연구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프랑스는 우리가 주목하고 배워 볼 만한 미래 연구의 선진국이다. 이번 콘퍼런스에서도 2050년의 기술 발전 예측과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인간, 정주 여건, 시민 의식, 이동과 환경, 식품과 노동 같은 분야의 미래를 프랑스 사회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암울한 미래를 회피할 수 있는지,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흡수해야 할지가 주된 논의 방향이었다. 앞으로 소개할 비지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통해 2050년에 펼쳐질 미래를 상상하고, 대한민국의 2050년을 예측해 보면서 대응책을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50년을 향한 20가지 질문


푸뛰히블르는 떠오르는 미래 트렌드나 미래 대응 전략에 대해 격년으로 연구 보고서를 펴내고 있다. 2018년에는 ‘그때 우리는 어떻게 살게 될까. 2050년을 향한 20가지 질문’이라는 제목으로 2050년을 예측한 시나리오를 담은 비지 보고서를 발행했다. 푸뛰히블르의 연구소장인 세실 데죠네(Cécile Désaunay)와 푸뛰히블르의 편집장이자 푸뛰히블르 국제 협회의 대표인 프랑스와 드 쥬베넬(François de Jouvenel)의 총괄하에 미래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다. 연구는 ① 미래에 대한 질문 설정 ② 시나리오 도출의 단계로 진행되었다.

모든 진리 탐구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미래 연구도 마찬가지다. 2050년 우리는 어떻게 살게 될까? 푸뛰히블르는 육체, 공간과 시간, 사회의 영역에서 미래의 모습에 대한 총 20개의 질문을 상정했다. 하지만 이 20가지 질문들은 정답을 찾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다시 말해, 질문은 하지만 질문에 단일한 답을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미래 연구는 Futures를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질문을 통해 연구자가 전문 지식과 상상력에 기반한 통찰을 활용하여 가능한 미래상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분야에 따라 어떤 질문은 전문가들 사이에 답이 비슷할 수도 있다. 인구 감소나 기후 환경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어떤 질문들은 한쪽 방향을 지지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2050년에는 인류의 영생이 가능할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국가는 해체될 것인가, 더욱 강해질 것인가? 결론적으로 미래는 알 수 없다. 사실 이것이 미래 연구의 대전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래는 단일할 수 없다. 푸뛰히블르가 제기한 아래 질문은 글로벌 차원의 질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프랑스, 유럽이라는 맥락에서 도출된 것임을 염두에 두자.

〈육체〉
1. 2050년, 최초의 불멸인이 출현할 것인가?
2. 2050년, 인류는 유전적, 신체적으로 더 동일해질 것인가?
3. 2050년, 초지능은 출현할 것인가?
4. 2050년, 전염병은 박멸될 것인가?
5. 2050년, 만성 질환은 더욱 유행할 것인가?
6. 2050년, 의학은 더 기술적이고 더 개인화되고 더 규범적이 될 것인가?
7. 2050년, 초월적인 이상(종교적, 정치적, 윤리적 이상)의 몰락과 함께 육체에 대한 재발견이 일어났을까?

〈공간과 시간〉
8. 2050년, 2도 더 더운 지구 위에서 살 만한 공간은 어디인가?
9. 2050년, 노마디즘은 부자들의 사치인가, 가난한 자들의 수난인가?
10. 2050년, 일은 여전히 시간을 조직하는 역할을 하는가?
11. 2050년, 정치 도시는 부활할 것인가?
12. 2050년, 거주지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인가?
13. 2050년, 사이버 공간은 새로운 생활 환경으로서 자리 잡을 것인가?

〈사회〉
14. 2050년, 인간은 폭력과 분열에 대항해 인류는 하나라는 휴머니즘을 깨우쳤을까?
15. 2050년, 완전한 다문화 사회가 탄생할 것인가?
16. 2050년, 개인의 소속이 상대화되는 사회가 될 것인가?
17. 2050년, 국가는 여러 기관들 중 하나로 전락할 것인가?
18. 2050년, 기존 삶의 전환점들(학생, 취업, 결혼, 은퇴)이 생애주기와 상관없이 일어날까?
19. 2050년, 리좀[2] 가족이 탄생할 것인가?
20. 2050년, 프랑스인들은 보편적이고 제도화된 사회적 연대를 고수할까?

 

4개의 미래 시나리오


푸뛰히블르는 20개의 질문에 기초한 논의를 통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미래 예측과 분석을 시행했다. 이를 토대로 2050년 4개의 미래 이미지를 시나리오 형태로 도출했다. 각 시나리오들은 각각 상징적인 동물로 표시되어 있다.

첫 번째 시나리오: 자아의 사회(상징 동물 – 고양이)
- 개인주의화가 사회의 모든 근본적 문화가 된다.
- 공동체주의나 단체주의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 통제 사회(상징 동물 – 개미)
- ‘자아의 사회’와는 정반대다.
- 생태학적, 환경적 필요성으로 인해 집단적 규제가 촉발된다.
- 집단이 지니는 규율과 제약이 새로운 사회 질서가 된다.

세 번째 시나리오: 알고리즘 사회(상징 동물 – 로봇)
- 자동화의 역동성이 강화된다.
- 일체의 사회관계는 기계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네 번째 시나리오: 무리 사회(상징 동물 – 벌)
- 사회관계가 친밀도에 따라 재형성된다.
- 친밀한 관계가 기존의 영토 논리(territory logic)를 대체한다.

(1) 자아의 사회 - 고양이

역동적인 개인주의 사회다. 혈통의 영향이 줄어들고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더 쉽게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정보 수집이 가능해짐에 따라 개인주의화가 급속하게 심화되었다. 과거 국가나 지역 사회, 가족 등이 개인의 사적 개발의 욕구를 저해했던 경험이나 사례가 많은 사회일수록 개인주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알고리즘의 발전과 더불어 개인이 사용하는 디지털 콘텐츠 또한 갈수록 더욱 개인 맞춤화된다. 디지털 콘텐츠가 사회관계망의 인간관계든, 뉴스든, 쇼핑과 관련된 것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앱이나 사물 네트워크로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 감정, 건강, 취향 등을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되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이자 독립적인 존재로서 ‘나’ 자신이야말로 자신의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또한 자신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결정을 내릴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회 전반에 걸쳐 무엇보다 우선하여 ‘나’를 소중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개인의 육체를 개발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삶에 있어서 개인적인 의미를 추구하거나, 자신의 내면을 추구하는 일들이 보편화되고 있다. 나이, 성, 직업상의 지위와 관련된 사회적 규범들을 거부하는 개인들이 늘어난다. 사람들 각각은 자신의 개성, 가치, 기호, 감수성을 드러내길 원한다. 소비는 자기를 긍정하고 차별화하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기존의 당위적인 사회 질서를 무시하고 바꾸려는 움직임이 강해진다. 오래된 사회 규범과 전통 종교는 개인적인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 주는 새로운 형태의 영성에 의해 대체된다. 교육도 개인의 개성과 창의성 발휘를 장려하며, 학생들은 개개인에게 맞는 학습 방식을 따를 수 있다.

사회관계는 정서적 유대 관계를 중심으로 재구성된다. 정서적 유대 관계는 개인들의 참여와 경험 공유를 바탕으로 형성되는데 원격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포함한다. 조직과 집단은 구성원들을 규율하고 통일성을 추구하면서 더 이상 존립할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구성원들 스스로 개발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최상의 조건을 제공하고 그들이 감수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경우에만 의미를 지닌다. 국가나 학교, 직장은 개인의 능력을 개발시키고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에 국한된다. 이제 개인은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족, 여러 직업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 되고, 자기 가치관과 자기 정체성의 본보기가 되는 여러 종교 및 여러 공동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유동적인 인간관계와 공감 능력 같은 가치들이 이전보다 더욱 중요해졌다.

이런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정서다. 환경 보호 운동은 ‘생물 다양성 옹호’나 ‘온실가스 배출 반대’와 같은 구호 아래 전개되지 않는다. 당위성보다는 개인의 권리 보장 차원에서 힘을 얻게 된다.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 아름다운 경관을 즐길 권리, 모든 생물체를 동등하게 존중할 권리를 지키고 싶은 개인의 주장이 늘어나고 이러한 활동들이 모여서 사회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국가나 집단에 대한 개인들의 권리와 감성에 기반한 정책적 요구는 점점 다양하고 많아진다. 반대로 개인에 대한 국가나 집단의 제약과 규제는 큰 저항을 받게 될 것이다.

사회 정책은 개인이 자기 개발에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이를 보장하는 데 목표를 둔다. 이에 따라 안락사 또는 대마초 복용과 같은 특정 금지 사항이 해제된다. 또 취학과 예방 접종과 같은 특정 의무 사항도 철회된다. 대신 어느 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를 지원하기 위한 갖가지 대책들이 마련된다. 정보화 정책, 교육 정책,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긍정적인 차별화 정책, 기본 소득, 선별적 복지 등이 그런 것들이다.

국가에 대한 시민의 기대 또한 양면성을 띠게 된다. 시민들은 더 많은 공공 서비스를 원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안전(신체적, 환경적, 사회적 등등)을 국가에 요구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국가 차원의 모든 형태의 집단적 제약에 대해서는 저항한다. 한편으로는 공공 서비스의 효과적인 규제를 기대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가 관용의 정신에 기초한 각종 권리 보장과 더불어 상반된 권리가 대립할 때 중재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 사회 운동가들은 단기간의 관심사를 공유한 개인들에 기반할 수밖에 없어진다. 정치적 활동은 점차 일시적인 활동이 되어 간다.

(2) 통제 사회 - 개미

개미로 상징되는 두 번째 시나리오는 ‘통제 사회’다. ‘자아의 사회’와 반대로 집단으로부터의 압력과 제약이 강해진 사회다. 자본주의의 성장에 필수였던 전통적인 소비 행태로 인해 천연자원은 기하급수적으로 소모되어 왔다. 그 결과는 곧 재앙으로 돌아왔다. 극단적인 이상 기후와 더불어 각종 신종 질병이 유행하게 되었다. 인류는 기존 민주주의 기반의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으로는 지구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음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열악한 생활 조건에 처한 국민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성장과 개발의 경제 체제 또한 무너지고 있었다. 국가의 정책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행동도 더 이상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되었다.

인류에 대한 위협을 체험하게 되면서 전 지구적이면서도 극단적인 대안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 결과, 삶의 양식을 강제로 간소화하고 자원 소모를 최소화하는 사회로 불가피하게 전환하게 되었다. 개인과 기업, 정부의 행동반경을 제약하기 위한 갖가지 정책과 수단들이 동원되고 있다. 개인의 소비 생활은 탄소(탄소는 새로운 형태의 화폐가 된다.) 사용량 등으로 감시, 평가되며 철저히 제한된다. 공업 생산 또한 환경 보호를 위해 매우 엄격한 기준에 따라 철저히 관리·감독되며 생산량에 따라 탄소세와 통행 부가세가 부과된다.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새로운 내구 소비재 시장이 형성된다. 정부는 환경 보호를 위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상승하지 않도록 가격 제한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러한 전환에 취약한 계층을 돕거나, 비용 절감을 위한 대체 기술 개발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물론 국가와 참여자들에 따라 그 전환의 과정은 길어지거나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모두가 이 새로운 규범에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개인의 사적 자유가 침해당하고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며 반대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론 화석 연료와 핵 발전의 전면적인 폐기와 같은 더 과감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초기에는 적응과 희생이 불가피하지만 이후 세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제 사회의 모델을 확립하게 될 것이다. 모든 소비와 생산이 스스로 이뤄지는 셀프의 시대가 도래했다. 식품과 에너지도 개인 위주로 생산하고 중고 제품의 거래와 렌탈이 늘어나게 되었다. 삶의 공간도 도시 외곽이나 농촌이 선호되고 있다. 관계가 물질보다 더 중요하게 평가받으면서 인간에 대해서도 생산성보다는 인격에 높은 점수를 주게 되었다. 자연환경이 현저히 좋아지면서 건강도 크게 향상되었다.

(3) 알고리즘 사회 - 로봇

로봇으로 상징되는 세 번째 미래 사회는 ‘알고리즘 사회’다. 2020년대를 거치면서 인공지능의 계산 능력과 학습 양식이 크게 발전했다. 디지털 혁명 역시 가속화되었다. 일반 기업에서 자동화는 이미 일상화되었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업무를 기계가 담당하고 있다. 인간은 고부가 가치가 있는 일을 하거나 기계의 작업을 승인하는 정도만 맡는다.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도 의사 결정 과정의 합리성과 효율성 제고를 위해 인공지능에 의존하고 있다.

일체의 사회관계도 기계에 의존해서 구성된다. 개인의 선택은 알고리즘으로 대체되고 경험은 시뮬레이션이 대체하게 된다. 더 이상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지 않는다. 공공 기관이든 사기업이든 개인에게 최적화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었다. 각종 법률 또한 수차례에 걸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거쳐 도입이 결정된다. 애플리케이션 덕택에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생애 주기에 따라 저장하고 분석하여 질병의 예방과 탐지가 수월해졌다. 알고리즘 덕분에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 상태와 관련하여 최상의 개인 맞춤형 모니터링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신체 활동을 기계가 떠맡게 되면서 육체는 전반적으로 쇠약해지고, 가상 세계와 기계가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남에 따라 새로운 정신병이 발생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국가 건강 보장 체계는 식이 요법, 신체 운동, 검진 등의 권장 사항을 준수해야만 조건적으로 혜택을 제공한다.

숙련 노동을 포함한 일부 직업은 위협을 받게 되는 반면, 가상 세계와 관련된 직업이나 기계 설계와 같은 직업은 새롭게 떠올랐다. 직업 세계는 일부 특수 전문 직종 또는 수공업이나 개인 서비스처럼 자동화가 어려운 직종으로 점차 이원화되고 있다. 일자리 파괴로 야기되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본 소득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그 재원은 기계에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나 자동화를 통해 발생하는 수입으로 조성된다.

근무 시간이 줄어들고 홈 오토메이션(home automation)이 널리 확산되면서 노동자들의 자유 시간이 늘어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소득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상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머전(immersion) 게임, 원격 전문 상담, 가상 관광, 아바타와의 업무 회의 등이 보편화되었다. 국민 중 일부 계층의 소득은 감소하지만 여가 시간이 늘어나게 되면서 새로운 상황은 그런대로 수용이 된 셈이다. 사람들은 비용이 적게 드는 가상 세계 탐색에 여가 시간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가상 세계 내에서만 통용되는 특수한 권리를 둘러싸고 갖가지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물리적 공간보다 가상 공간의 비중이 더 높아지면서 물리적 공간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었다. 어느 곳에서든 기술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도시보다 환경이 쾌적한 시골로 생활 터전을 옮겼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술적 혜택 때문에 도시에서의 삶 또한 여전히 매력적이다.

알고리즘 사용의 증대와 더불어 알고리즘에 결정을 맡겨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맡길 경우 어떤 것을 어떻게 맡겨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수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는 인간의 결정 과정이나 동기, 결과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알고리즘이 사회적 규범에 맞는지, 윤리적인지가 논란의 대상이 된다. 알고리즘에 의해 수많은 결정이 내려지면서 알고리즘의 수준이 불평등의 새로운 원인으로 등장했고 사회적 격차가 점차 벌어지고 있다.

알고리즘은 대인 관계에도 영향을 미쳐 갈등 요소를 배제한 끼리끼리의 인간관계를 가속화할 것이다. 인간의 창의력과 자발성은 점차 위축될 것이다. 가상과 현실 간의 간격이 더욱 흐려질 것이다. 소프트웨어나 로봇과의 새로운 정서적 유대 관계나 애정 관계가 흔해지고 가상 현실은 이러한 새로운 관계와 시간을 위한 수많은 시공간을 창출하게 될 것이다. 인간에게 더 이상 일관된 행동과 사고가 요구되지 않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벌써 상황과 여건에 따라 여러 가지 자아를 표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가상 공간은 사람들을 극단으로 몰고 갈 가능성을 갖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실제 외모에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나 사회적 관계는 더욱 각광받을 수도 있다.

(4) 무리 사회 - 벌

벌로 상징되는 네 번째 시나리오는 ‘무리 사회’다. 선진국 중심으로 확산된 포스트모더니즘적 가치 상실과 삶의 목적 상실 현상은 21세기부터 큰 사회 문제였다. 개인의 일상과 경제 활동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기업과 국가의 역할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점차 사람들은 개인 정보와 은행 정보 등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디지털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특정 가치와 신조를 근간으로 하는 대안적 공동체를 양산했다. 사람들은 여러 공동체에 속하면서 느슨하거나 강한 유대감을 얻으며 사회적 활동을 해나간다. 종교, 민족, 윤리, 기술 진보, 지역 등에 따른 다양한 특성의 공동체가 생겨나며 생태계를 이루게 되었다. 국가는 구시대적인 경계로 취급되고 공동체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역할에 국한되었다. 국가가 더 이상 유의미한 통합의 역할을 제공하지 못하고 기성 정치 사회 제도가 위축되어 감에 따라 이 같은 공동체는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공동체 가입과 탈퇴는 자유롭다. 각 공동체들은 회원들에게 기존의 국가가 하지 못했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의 사회 보장 제도가 취약한 계층에게 충분한 지원을 해주지 못하면서 지역 공동체가 그 역할을 대신하며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연대, 상호 부조, 일자리 제공, 자가 생산, 주거지 할당 등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자가 생산(self-production), 공유, 교환 활동은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다. 사회생활 또한 점점 더 공동체를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공동체는 친구와 이웃들뿐 아니라 욕망과 열정, 가치를 함께 하는 개인들을 하나로 결집시키게 되었다. 연대와 서로 돕기, 공유가 이 그룹들 안에서 핵심 가치로 자리를 잡았다.

공동체 내의 연대는 강해졌지만, 공동체 간의 차이는 한층 더 확대·심화되고 있다. 어떤 그룹은 분리주의를 내세워 식량과 에너지의 자급자족을 주장한다. 이들은 공공 시스템(세금, 사회 보장 제도)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화폐와 사회 보장 제도, 나아가 그들만의 사법부와 의료 시스템을 갖추었다. 한편 다른 공동체는 훨씬 더 열려 있고 덜 전체주의적이며 개인들이 여러 공동체 활동에 다중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막지 않는다.

일부 국가의 입법부는 국회의원 대신 공동체의 대표들로 구성되었다. 이런 경우 가장 회원 수가 많은 공동체가 가장 큰 정치적인 힘을 가지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서로 다른 성격과 형태의 공동체들은 서로 경쟁하기도 하는데, 특히 공공 보조금 확보, 시설 사용 또는 신규 회원 유치에 있어서 경쟁이 심하다. 전국적 규모의 사회 운동 단체나 더 나아가서는 정치적 정당으로 발돋움하여 선거에 적극 참여하거나 온라인 커뮤니티와 청원, 시위 등의 다양한 형태를 통해 그들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

전반적으로 국가 기관의 역할은 축소되었다. 공공 기관과 공공 서비스는 사람들의 다양한 가치관과 이해관계에 대해 중립적이면서도 관용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문제는 아주 과격하고 급진적인 공동체도 등장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이 국가나 국제 사회 또는 지역 사회의 지속적인 과제다.

이상이 비지 보고서의 시나리오를 통해 내다본 2050년의 미래 모습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시나리오들이 완전히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상호 조합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미래 대응 전략


위에서 제시된 시나리오들은 우리와는 다른 사회적, 지정학적 맥락을 가진 프랑스와 유럽의 관점에서 서술된 것이다. 하지만 점점 수렴하는 세계화 속에서 한국 사회도 네 개의 시나리오 어디인가에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그때를 위해 우리는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2018년 11월 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푸뛰히블르 국제 콘퍼런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첫째, 인간 중심의 과학 연구 개발이 필요하다. 콘퍼런스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과학의 가치는 “인간의 삶을 망치지 않는 것”이 전제될 때라고 말했다. 과학 기술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한 축이라면 사회가 그 발전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다른 한 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대 과학이 내포하고 있는 파편화, 개인화를 유도하는 유물론적이고 이기적인 철학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최근 생명 공학과 IT 분야에서의 과학 기술 발전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지만, 사회는 그 기술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합의 없이 따라가는 것에 급급해 왔다. 특히 과학 기술의 발전은 자본주의와 결합할 때 걷잡을 수 없는 추진력을 얻게 된다는 것을 과거에도 경험했고, 현재도 목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중국에서 유전자를 조작하여 HIV에 태생적 면역을 가진 아이를 태어나게 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과거 여러 번 국제 인간 유전자 편집회의에서 과학자들은 생식 목적의 인간 배아 실험은 자제하기로 했으나 곧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고 룰은 깨졌다. 시장의 논리가 개입한다면 이러한 연구는 경제성이라는 정당성을 얻고 무분별한 기술의 적용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로 인해 인간의 가치와 존엄의 훼손 등이 사회에 미칠 엄청난 파장을 막을 뾰족한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 플랫폼 노동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서비스 분야의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플랫폼 기반의 노동이 노동 환경과 근로 조건을 명시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 결과, 실제 노동자가 자신의 법 권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집단적 행동이 저해되는 등 직업상 위험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 또한 절대 만능이 아니다. 인간이 가진 편견과 그릇된 가치관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에 불과한 기술은 그 자체로 바람직한 가치관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기술은 누구를 위해 개발되어야 하는가? 인간인가, 돈인가?

기술이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 선용되기 위해서는 기술적, 경제적인 측면에 대한 고려 이전에 어떤 미래가 인간과 공동체에 바람직한지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즉 미래에 대한 질문의 해답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지, 어떻게 인간을 바라보고 규정해야 하는지의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간다. 이러한 문제에 우리가 답할 때 과학 기술을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선물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우리가 원하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콘퍼런스에 모인 전문가들은 현대 인간은 자연을 단순한 물질의 집합으로 보거나, 자연을 지배나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습성이 있다고 꼬집었다. 우리는 자연이 훼손되고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을 종종 남의 일로 인지하곤 한다. 이러한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그동안 개발과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허용되어 온 인간 중심의 패러다임을 반성해야 한다. 예를 들면,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지구의 자원을 착취한 것에 반성하는 동시에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를 재고해야 한다. 즉 바람직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구를 위한 비즈니스 모델이 개발되어야 하며, 재생 불가능한 자원 희소성의 시대에 맞는 경제 모델을 고안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전 사회적, 전 지구적인 협력이 중요하다. 새로운 형태의 집합적인 공동체성(new forms of collective solidarity)이 바람직한 미래로 나아가는 열쇠다. 푸뛰히블르 국제 콘퍼런스에 모인 전문가들은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서는 과학 기술이 가져올 특이점(singularity)보다 사람들의 연대와 연결을 통한 집합적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전형적인 미래를 위한 활동인 환경 운동은 한국의 경우 개인적인 헌신이나 희생을 수반하게 되어 활발하게 확산하지 못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협력적이고 사회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시민, 기업, 공공 부문에서의 시너지가 필요할 것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을 어떻게 평가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국내에서 매우 미진하다. 미래에 대한 논의는 ‘일자리 창출’, ‘4차 산업혁명’, ‘신성장 동력’, ‘미래의 먹거리’ 등의 용어로 대체되어 건전한 비판도 없이 무차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특히 다른 선진국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후발 주자의 강박은 미래에 대한 창의적인 논의와 사회적인 합의의 여지를 질식시키고 있다.

콘퍼런스에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택시 기사가 카카오 카풀 서비스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 앞에서 분신하는 일이 있었다. 먼 미래는 멀리 있지 않았다. 다가올 미래가 던지는 질문에 적극적으로 답을 찾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서 발생할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희생과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1]
Vigie는 망보기, 망보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로 Futuribles에서는 ‘비지(망보기)’를 현재, 미래 사회 변화를 분석하고 감시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2]
리좀은 ‘근경(根莖)’, 뿌리줄기 등으로 번역되는데, 줄기가 마치 뿌리처럼 땅속으로 파고들어 난맥(亂脈)을 이룬 것으로, 뿌리와 줄기의 구별이 사실상 모호해진 상태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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