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화하지 말고 보편화하라
완결

전문화하지 말고 보편화하라

1만 시간의 법칙은 한 가지 분야를 강도 높게 집중적으로 훈련하면 완벽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깊이 파는 것보다 넓은 분야를 훑는 것이 더 좋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스포츠 세계의 이야기 두 가지를 먼저 해보자. 첫 번째는 잘 알려진 이야기다. 한 소년의 아버지는 아들이 어딘가 남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태어난 지 이제 겨우 일곱 달 된 아들에게 장난감 삼아 퍼터를 하나 쥐여 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작은 보행기를 타고 가는 곳마다 골프채를 끌고 다녔다. 생후 열 달이 되자, 아이는 유아용 의자에서 내려와 아기 사이즈의 골프 클럽을 향해 기어갔다. 그리고 차고에서 보았던 스윙을 따라 했다. 아버지는 아직 아들과 대화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클럽을 어떻게 쥐어야 하는지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 주었다.

두 살이 되자, 아이는 미국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서 제 어깨까지 오는 클럽으로 공을 굴렸다. 그 옆에선 진행자인 밥 호프(Bob Hope)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같은 해 그는 처음으로 골프 대회에 출전했고, 10세 이하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었다. 세 살이 되자 아이는 벙커를 빠져나오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아들의 인생 계획을 세웠다. 그는 아들이 골프에 천부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아들을 그 길로 인도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미디어의 관심은 피할 수 없을 테니, 세 살짜리 아들에게 대응 방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기자 역을 맡아 아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무뚝뚝하게 대답하고, 질문 받은 것 이외에는 절대로 대답하지 않도록 가르쳤다.

아이가 네 살이 되자, 아버지는 아침 아홉 시에 아이를 골프장에 데려다주고 여덟 시간 후에 데려왔다. 아이는 가끔씩 그의 실력을 의심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이기고 돈을 따오곤 했다.

여덟 살이 되자, 소년은 처음으로 아버지를 꺾었다. 아버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들에게 매우 뛰어난 재능이 있고, 자신에게도 아이를 도울 만한 역량이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 역시 뛰어난 운동선수였고, 엄청난 역경에 맞선 적이 있었다. 대학 때 야구를 했던 그는 리그 전체에서 유일한 흑인 선수였다. 사람을, 그리고 훈련법을 잘 이해하는 편이기도 했다. 사회학을 전공했고, 베트남 전쟁에 육군의 정예 부대인 그린베레(Green Berets) 대원으로 참전했다. 이후에는 임관을 앞둔 장교들에게 심리전을 가르쳤다. 이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얻은 세 명의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그는 네 번째 아이가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것은 계획대로 흘러갔다.

스탠퍼드 대학에 입학할 무렵 소년은 이미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고, 아버지는 곧바로 원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아들이 넬슨 만델라보다도, 간디보다도, 부처보다도 더 커다란 영향력을 갖게 될 거라고 강조했다. “제 아들은 그들 누구보다도 더 폭넓은 기회를 갖고 있습니다. 아이는 동과 서를 잇는 가교가 될 겁니다. 가르침을 받고 있으니, 한계는 없습니다. 앞으로 어떤 형태가 될지는 저도 정확히 모릅니다. 하지만 아들은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부모는 아이가 한 가지 운동만을 하길 바라지 않았다. 도리어 다양한 스포츠를 해보도록 격려했다. 아이는 공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운동이라면 어떤 종목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두 번째 이야기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소년의 어머니는 코치였지만, 아들을 한 번도 가르친 적이 없었다. 걸음마를 떼던 무렵, 아이는 엄마와 함께 공을 차곤 했다. 조금 크고 나서는 일요일마다 아버지와 함께 스쿼시를 했다. 스키와 레슬링, 수영, 스케이트보드도 조금씩 접해 봤다. 농구, 핸드볼, 테니스, 탁구를 했고, 이웃집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배드민턴을 치고, 학교에서는 축구를 했다.

부모는 아이가 한 가지 운동만을 하길 바라지 않았다. 도리어 다양한 스포츠를 해보도록 격려했다. 아이는 공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운동이라면 어떤 종목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테니스 가르치는 일을 했지만, 아들에게 테니스를 가르치지는 않기로 했다. 그녀의 말이다. “아이가 어쨌든 저를 실망시켰을 테니까요. 아이는 온갖 이상한 스트로크를 시도했고, 한 번도 정상적으로 공을 받은 적이 없어요. 엄마에게는 재미없는 일이죠.”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작가 한 명이 후에 관찰한 바에 따르면, 그의 부모는 밀어붙이기보다는 차라리 ‘잡아당기는’ 사람들이었다. 10대 초반이 되면서 소년은 테니스에 점점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에 “부모가 조금이라도 권유한 게 있다면, 오히려 테니스를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1996년, 당시 15세의 로저 페더러가 스위스 취리히에서 개최된 월드 유스 컵 대회에서 시합을 하고 있다.

10대 시절, 그는 지역 신문과 인터뷰를 할 정도로 성장했다. 어머니는 어느 날 아들의 인터뷰 기사를 보다가 기겁했다. 만약 테니스를 해서 첫 번째 상금을 받게 된다면 무엇을 사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아들이 “메르세데스(벤츠)”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그녀는 나중에 기자가 녹음 내용을 들려주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기사 작성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이다. 소년의 원래 대답은 스위스식 독일어로 ‘메어 시디스(mehr CDs)’였다. 그는 단지 “음악 CD를 더” 사고 싶은 소년이었다.

소년에게 재능이 있었던 것은 분명했고, 코치는 그를 상급반으로 올려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친구들과 같이 있을 수 있게 도로 내려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레슨이 끝나고 몰려다니면서 음악과 레슬링, 축구에 대해 잡담하는 것을 재미있어 했던 것이다.

마침내 그는 다른 스포츠는 모두 포기하고 테니스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체력 코치와 스포츠 심리학자, 영양 전문가 등과 함께 훈련을 해오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런 점이 선수로 성장하는 데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했던 것 같지는 않다. 훗날 그는 30대 중반에도 여전히 세계 랭킹 1위를 지키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테니스에서 30대 중반이면 레전드급의 선수들조차 이미 은퇴를 하는 나이다.[1]
 

엘리트 선수가 되는 사람들은 ‘샘플링 기간’을 거친다. 자신의 다양한 신체 능력을 끌어내고, 능력과 성향을 알아내기 위해서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한 가지 영역에 집중한다. 


타이거 우즈(Tiger Woods)와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가 처음으로 만난 것은 2006년이었다. 두 사람 모두 기량이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우즈는 US 오픈 테니스 결승전 경기를 보기 위해서 전용기를 타고 뉴욕으로 날아갔다. 우즈가 도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페더러는 긴장을 더 하긴 했지만, 그래도 우승을 차지하면서 이 대회에서만 3연패를 달성했다. 우즈는 라커 룸을 찾아가서 샴페인을 터트리며 축하해 줬다. “무적이 된 기분이 어떤 건지 잘 아는 사람과 이야기해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후에 페더러가 했던 말이다. 둘은 금세 친구가 됐다.

페더러는 그럼에도 둘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2006년에 그는 한 전기 작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의 성장 스토리는 저와는 완전히 달랐어요. 어린 시절에도 이미 그의 목표는 메이저 대회 최다 우승 기록을 세우는 것이었어요. 저는 그냥 보리스 베커(Boris Becker)를 한 번 만나 봤으면 좋겠다거나, 언젠가 윔블던에서 시합을 할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정도였죠.”

스포츠를 가볍게 시작했고 ‘잡아당기는’ 부모를 둔 아이가 그 종목에서 그를 능가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보인다. 타이거 우즈와는 달리, 적어도 수천 명의 아이들이 로저 페더러보다 먼저 테니스에 입문했다. 타이거의 놀라운 훈육 방식은 전문성 계발과 관련된 수많은 베스트셀러의 핵심 소재였다. 타이거의 아버지 얼 우즈(Earl Woods)도 육아에 관한 책을 한 권 썼다. 타이거는 그냥 단순히 골프를 쳤던 것이 아니라, ‘계획적인 훈련’을 수행했다. 이는 전문성 계발과 관련해 자주 인용되는 ‘1만 시간의 법칙’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요소다. 1만 시간의 법칙은 고도로 전문화된 훈련을 충분한 시간 동안 축적하는 일이 어떤 영역에서든 기량을 발전시키기 위한 핵심 요소라는 주장이다.

30명의 바이올리니스트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탄생한 1만 시간의 법칙은 학습자들이 ‘최선의 방법에 대해서 확실하게 지도받고’ 강사의 개인 지도를 통해 ‘유용한 피드백과 현재의 기량에 대한 정보를 즉각적으로’ 제공받으면서, ‘동일하고 유사한 행위를 반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실현 가능하다. 전문성 개발에 관한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엘리트 운동선수는 낮은 수준에 머무르는 선수들보다 계획적이고 기술적인 훈련에 매주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11개월의 타이거 우즈가 스윙 연습을 하고 있다.
타이거는 수많은 시간에 걸친 계획적인 훈련이 성공을 결정한다는 아이디어를 상징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런 훈련은 가능한 한 일찍 시작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어려서부터 좁은 범위에 집중해야 한다는 압박은 스포츠 외의 영역으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는 세상이 점점 더 경쟁적으로, 복잡하게 변화할수록 더 일찍 시작하고, 더 전문적으로 기량을 닦아야 한다고 배운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Mark Zukerberg)처럼 성공의 아이콘으로 잘 알려진 사람들은 일찌감치 자신의 영역에 뛰어들어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다는 칭송을 받는다. 분야를 막론하고 한 가지 분야에 집중하는 데에 찬사가 이어진다. 암을 다루는 의사라면 이제는 일반적인 암 전문가가 아니라, 특정 장기의 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해마다 더 심해지고 있다. 외과 의사이자 작가인 아툴 가완디(Atul Gawande)에 따르면, 의사들 사이에는 ‘왼쪽 귀 전문의’에 관한 농담이 있다. “정말로 어딘가에 왼쪽 귀 전문의가 존재하지 않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을 다룬 베스트셀러 《바운스: 재능의 신화와 훈련의 힘(Bounce: the Myth of Talent and the Power of Practice)》의 저자인 영국 저널리스트 매슈 사이드(Matthew Syed)는 영국 정부가 타이거 우즈식의 특성화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패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고위 관료들이 부처를 이동하는 것을 두고 “타이거 우즈를 골프에서 야구, 축구, 하키로 순환 근무시키는 것만큼이나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그저 그런 성적에 그치던 영국 스포츠는 새로운 스포츠를 시작하는 성인이나 뒤늦게 재능을 나타내는 대기만성형 선수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힘입어 2012년 올림픽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페더러가 했던 방식대로 다양한 스포츠 종목을 접해 보는 것은 이제 우스운 이야기로만 들리지는 않게 되었다. 일반적인 운동선수는 물론, 엘리트 선수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도 말이다.

기량이 절정에 달한 엘리트 선수들은 수준이 낮은 선수들보다 계획적인 훈련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엘리트 선수가 되는 사람들은 어린 나이에는 그들이 결국 전문가가 될 종목의 계획적인 훈련에 시간을 덜 쓴다. 대신 연구자들이 ‘샘플링 기간’이라고 부르는 과정을 거친다. 이 기간에는 체계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 다양한 종목의 운동을 한다. 자신의 다양한 신체 능력을 끌어내고, 능력과 성향을 알아내기 위해서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한 가지 영역에 집중한다. 개인 종목 운동선수들에 대한 한 연구 논문의 제목은 ‘나중에 특성화하는 것이 성공의 핵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다른 논문의 제목은 이렇다. ‘팀 스포츠에서 최고가 되는 법은 늦게 시작해서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 굳은 결의를 갖는 것이다.’

몇 년 전, 처음으로 이 주제에 관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의 견해를 조심스럽게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고 부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른 종목에서는 그럴 수 있어도 우리 스포츠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이런 목소리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축구 커뮤니티에서 특히 높았다. 그런데 때마침 2014년 말 독일의 연구 팀에서 연구 논문을 내놓았다. 직전의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을 거둔 독일 국가 대표 팀이 뒤늦게 특성화를 한 전형적인 선수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22세 혹은 그 이후까지도 아마추어 리그 이상으로 체계화된 축구를 접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다른 운동을 했고, 축구를 했어도 체계적이지 않은 수준이었다. 2년 뒤 발표된 축구에 관한 또 다른 연구는, 기량이 비슷한 11세 선수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해 2년 동안 변화를 추적했다. 13세가 되었을 때 기량이 더 많이 발전한 것은 다양한 스포츠에 참여하고, 축구를 하더라도 훈련과 연습을 체계적으로 하지 않았던 선수들이었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는 하키에서부터 배구에 이르기까지 다른 수많은 스포츠 종목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초특성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마케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스포츠를 넘어 광범위한 분야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데다, 좋은 의도로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스포츠 스타들의 경로를 보면, 타이거 우즈보다는 로저 페더러의 길을 걸어가는 경우가 훨씬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런 선수들의 이야기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름이 잘 알려진 선수도 종종 있지만, 나중에 특성화했다는 배경은 잘 알려지지 않곤 한다.

2018년의 슈퍼볼[2]을 보자. 한쪽 팀의 쿼터백[3]은 미식축구를 하기 전에 프로야구 팀의 드래프트에 지명된 적이 있던 톰 브래디(Tom Brady)[4]였으며, 반대편 팀의 쿼터백은 미식축구와 농구, 야구, 가라테를 했고, 대학에서 농구를 할지 미식축구를 할지 고민하다가 미식축구를 선택했던 닉 폴스(Nick Foles)[5]였다. 슈퍼볼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계 올림픽에서는 체코 선수 에스테르 레데츠카(Ester Ledecká)가 사상 처음으로 한 대회의 서로 다른 종목(스키와 스노보드)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레데츠카는 어렸을 때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했다. 지금도 비치 발리볼과 윈드서핑을 즐긴다. 10대 시절에는 학업에도 열심히 임했기 때문에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레데츠카가 놀라운 업적을 달성한 직후에는 우크라이나의 복싱 선수인 바실 로마첸코(Vasyl Lomachenko)가 가장 적은 경기만으로 세 체급에서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는 어렸을 때 우크라이나 전통 춤을 배우느라 4년 동안 복싱을 쉰 적이 있었는데,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저는 어려서 정말 다양한 운동을 했습니다. 체조, 농구, 축구, 테니스 등등. 그렇게 다양한 스포츠들을 했던 것이 결국 제가 풋워크(footwork)[6]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한 것 같습니다.”
 

폭넓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분야를 넘나드는 사고를 하며, 나중에 한 가지에 집중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우리에게는 로저 페더러 같은 사람이 더 필요하다. 다양성을 가진 사람 말이다.


2014년, 나는 스포츠에서의 뒤늦은 특성화에 관한 발견을 나의 첫 번째 책 《스포츠 유전자》의 에필로그에 담았다. 이듬해에는 다소 생경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내 연구에 대해 강연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강연 대상은 운동선수나 코치가 아니라, 예비역 군인이었다. 강연을 준비하면서 스포츠 업계가 아닌 다른 직업에서의 전문화와 진로 전환에 관한 과학 연구들을 훑어봤다. 그리고 발견한 내용들에 대해서 나 스스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 연구를 보면, 일찌감치 한 가지 진로를 정해서 매진한 사람들은 대학 졸업 후에 더 많은 소득을 올렸지만, 뒤늦게 특성화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역량과 성향에 보다 잘 맞는 직업을 찾음으로써 뒤늦은 출발이 주는 불리함을 상쇄하고 있었다. 기술을 발명한 사람들은 경력 발전 과정 초기에 폭넓은 경험을 위해 깊이를 약간 희생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연구도 여럿 찾을 수 있었다. 예술 창작자들에 관한 연구에서도 거의 동일한 결과가 있었다.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7](그는 어렸을 적 음악 수업을 그만두고 그림과 야구에 집중했다)에서부터 마리암 미르자카니(Maryam Mirzakhani)[8](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을 여성 최초로 수상했는데, 사실 그녀의 꿈은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다)에 이르기까지 내가 진심으로 존경해 마지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우즈보다는 페더러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수의 예비역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그 강연에서, 나는 주로 스포츠 분야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하고, 다른 분야에서 찾아낸 내용들은 간략하게 언급만 하고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수강생들은 다른 분야의 주제를 물고 늘어졌다. 강연을 들으러 온 사람들은 모두 뒤늦게 전문 분야를 찾았거나 진로를 바꾼 사람들이었다. 강연이 끝난 후에 차례대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모두들 어느 정도는 걱정을 하고 있었고 몇몇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었다.
원 맨 밴드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재즈 뮤지션 듀크 엘링턴.
수강생은 팻 틸먼 재단에서 모인 사람들이었다. 이 재단은 NFL 현역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육군 특공대원으로 근무하다가 숨진 팻 틸먼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진로 변경이나 학업 복귀를 고민하고 있는 예비역과 현역, 또는 그 배우자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한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장학금 수혜자였다. 전직 낙하산 부대원이나 통역병이었던 사람들은 이제는 교사, 과학자, 기술자, 사업가 등으로 변신을 도모하고 있었다.

그들은 열정으로 가득 차 있긴 했지만 약간의 불안도 가지고 있었다. 한 가지 직업을 향해 꾸준히 커리어를 이어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용주가 선호한다고 알려진 링크드인(LinkedIn) 프로필을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보다 훨씬 어린 학생들과 함께 대학원을 다니는 것이나, 다른 사람보다 뒤늦게 인생의 진로를 변경한 것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었다. 독특한 삶과 리더십을 경험하면서 바쁘게 살아 왔지만, 왜인지 이런 장점이 마음속에서 부담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나는 학습과 특성화에 대한 연구를 더 진척시켜 나갔다. 자신만의 전문 분야를 개발해 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렇게 하는 데에 장점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준 높은 전문가들이 매우 편협해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연구 결과도 찾아냈다. 이런 경우 경험을 더 할수록 자신감은 높아지는 데 비해, 편협함은 악화된다. 아주 위험한 조합이다. 인지 심리학자들과 함께 진행한 연구에서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오래 지속되는 지식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천천히 학습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중간 과정에서는 형편없는 실력을 보이게 될지라도 말이다. 가장 효과적인 학습 방법은, 뒤처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비효율적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중년의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도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젊은 사람이 더 똑똑하다’는 마크 저커버그의 말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50세에 테크 기업을 설립한 창업자가 30세에 창업한 사람보다 회사를 크게 성공시킬 확률이 거의 두 배나 높고, 30세 창업자가 20세보다는 성공 가능성이 높다. 노스웨스턴 대학교와 MIT, 미국 인구 조사국의 연구원들이 신생 테크 기업을 조사한 결과, 급성장한 스타트업들의 창업 당시 설립자의 평균 나이는 45살이었다고 한다.

저커버그가 젊은 사람들의 지적 우위를 선언했던 것은 22살 때였다. 그런 메시지를 퍼뜨리는 것이 본인에게 유리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1년 내내 한 가지 활동에 전념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유스 스포츠 리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득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경우 반대 주장의 증거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하지만 특성화를 향한 추진력은 강력하다. 개인뿐만 아니라 전체 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 결과, 전문화된 집단은 전체 퍼즐의 점점 더 작은 부분만을 보게 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는 대형 은행 내부가 얼마나 분절되어 있는지를 보여 줬다. 전문화된 그룹은 자신의 작은 조각이 가진 리스크를 최소화하고자 했고, 그런 조각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면서 거대한 재앙이 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금융 위기 대응책들이 전문화 과정에서 발생한 어지러운 혼란을 더욱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2009년에 미국 연방 정부가 내놓은 대응책은 은행에 인센티브를 지급해 대출금 일부 상환이 가능한 주택 담보 대출자들의 월 상환액을 낮춰 주는 것이었다.

취지는 좋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은행의 담보 대출 전담 부서가 주택 대출 상환액을 낮추자, 같은 은행의 압류 전담 부서는 해당 주택 소유자의 납입액이 갑자기 낮아진 것을 확인하고는 채무 불이행 상태로 분류하고 주택을 압류했다. “은행 내부에 그런 사일로(silo)가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정부 자문 위원이 후에 밝힌 내용이다. 과도하게 전문화된 상태에서는 모든 개인들이 각자 자신에게 가장 합리적인 행동을 선택하더라도 전체의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세분화된 보건 의료 전문가들은 그들 나름대로 ‘망치를 들고 있으면 주변의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는’ 문제를 갖게 되었다. 심장 중재술 전문의들은 금속관으로 혈관을 비집어 여는 스텐트(stent) 시술로 가슴 통증을 치료하는 일에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스텐트 시술이 부적절하거나 위험하다고 증명된 증상들에 대해서도 반사적으로 시술하고 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심장병 환자들은 국립 심장병 학회 회의가 있는 기간에 입원을 할 경우에 사망률이 더 낮아진다고 한다. 수천 명의 심장병 전문의들이 병원을 비우기 때문이다. 심장병 전문의들이 통상적으로 행하는, 효과가 의심스러운 시술의 횟수가 줄어든 것이 원인이라고 연구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과학자인 아르투로 카사데발(Arturo Casadevall)은 사회가 점점 더 전문화되면서 혁신의 ‘평행 참호 시스템’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모두가 각자 자신의 참호를 점점 더 깊게 파고 있지만,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서 옆에 있는 참호를 들여다보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옆의 참호에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있는데도 말이다. 카사데발은 미래 연구자들을 비전문화된 방식으로 교육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방법이 나중에는 모든 분야의 교육으로 퍼져 나가기를 바란다. 그는 전문화를 강요받으면서도 일생 동안 자신의 다양성을 넓힘으로써 막대한 이득을 보았다. 이제 그는 타이거 우즈의 경로에서 이탈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영역을 넓히고 있는 셈이다. “이 작업은 아마도 제 평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겁니다.” 그가 내게 들려준 말이다.

폭넓은 분야를 경험하고 천천히 특성화하는 것의 장점을 알게 되면서 나 자신과 세계를 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이 발견은 인생의 모든 단계에 적용된다. 수학, 음악, 스포츠 능력을 개발하는 아이들에서부터 대학을 갓 졸업해서 진로를 찾으려는 사람들, 직업이 있지만 진로를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 은퇴를 앞두고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천직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말이다.

폭넓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분야를 넘나드는 사고를 한 뒤, 나중에 한 가지에 집중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런 장점을 유지하는 것은 점점 더 초전문화를 조장하고 요구하는 세계에서 우리가 맞닥뜨린 과제다. 타이거 우즈처럼 어릴 때 시작하고, 분명한 목표를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하는 분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세계는 더 복잡해졌다. 각각의 시스템은 거대한 네트워크로 연결되었고, 한 분야에만 있는 개인은 아주 작은 부분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폭넓은 분야에서 시작해서, 성장하면서 다양한 경험과 시각을 포용해 온 로저 페더러 같은 사람이 더 필요하다. 다양성을 가진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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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커리어 #라이프 #스포츠 #가디언
[1]
2019년 8월 현재, 만 37세인 로저 페더러는 세계 프로 테니스 협회(ATP) 랭킹 3위에 올라 있다.
[2]
미국 프로 미식축구(NFL)의 챔피언 결정전.
[3]
미식축구에서 필드를 지휘하고 공을 투입하는 일을 하는 가장 핵심적인 포지션.
[4]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New England Patriots)의 쿼터백인 톰 브래디는 고등학교 때까지 미식축구와 야구를 병행하면서 야구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1998년에 있었던 메이저리그(MLB) 신인 드래프트 18라운드에서 몬트리올 엑스포스(Montreal Expos)의 지명을 받았을 정도였다.
[5]
필라델피아 이글스(Philadelphia Eagles)의 쿼터백으로, 고등학교 시절에는 농구 선수로도 활약하며 유수의 대학들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
[6]
발의 움직임을 말하는 것으로, 복싱을 비롯한 거의 모든 스포츠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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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재즈 뮤지션. 그래미 어워드를 14회 수상했고, 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 버클리 음대 명예 박사,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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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Fields Medal)은 만 40세 이하의 젊은 수학자들에게 수상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마리암 미르자카니는 만 37세의 나이에 필즈상을 받았으나, 만 40세인 2017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까지 필즈상을 받은 유일한 여성 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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