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생은 팻 틸먼 재단에서 모인 사람들이었다. 이 재단은 NFL 현역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육군 특공대원으로 근무하다가 숨진 팻 틸먼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진로 변경이나 학업 복귀를 고민하고 있는 예비역과 현역, 또는 그 배우자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한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장학금 수혜자였다. 전직 낙하산 부대원이나 통역병이었던 사람들은 이제는 교사, 과학자, 기술자, 사업가 등으로 변신을 도모하고 있었다.
그들은 열정으로 가득 차 있긴 했지만 약간의 불안도 가지고 있었다. 한 가지 직업을 향해 꾸준히 커리어를 이어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용주가 선호한다고 알려진 링크드인(LinkedIn) 프로필을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보다 훨씬 어린 학생들과 함께 대학원을 다니는 것이나, 다른 사람보다 뒤늦게 인생의 진로를 변경한 것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었다. 독특한 삶과 리더십을 경험하면서 바쁘게 살아 왔지만, 왜인지 이런 장점이 마음속에서 부담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나는 학습과 특성화에 대한 연구를 더 진척시켜 나갔다. 자신만의 전문 분야를 개발해 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렇게 하는 데에 장점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준 높은 전문가들이 매우 편협해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연구 결과도 찾아냈다. 이런 경우 경험을 더 할수록 자신감은 높아지는 데 비해, 편협함은 악화된다. 아주 위험한 조합이다. 인지 심리학자들과 함께 진행한 연구에서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오래 지속되는 지식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천천히 학습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중간 과정에서는 형편없는 실력을 보이게 될지라도 말이다. 가장 효과적인 학습 방법은, 뒤처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비효율적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중년의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도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젊은 사람이 더 똑똑하다’는 마크 저커버그의 말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50세에 테크 기업을 설립한 창업자가 30세에 창업한 사람보다 회사를 크게 성공시킬 확률이 거의 두 배나 높고, 30세 창업자가 20세보다는 성공 가능성이 높다. 노스웨스턴 대학교와 MIT, 미국 인구 조사국의 연구원들이 신생 테크 기업을 조사한 결과, 급성장한 스타트업들의 창업 당시 설립자의 평균 나이는 45살이었다고 한다.
저커버그가 젊은 사람들의 지적 우위를 선언했던 것은 22살 때였다. 그런 메시지를 퍼뜨리는 것이 본인에게 유리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1년 내내 한 가지 활동에 전념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유스 스포츠 리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득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경우 반대 주장의 증거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하지만 특성화를 향한 추진력은 강력하다. 개인뿐만 아니라 전체 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 결과, 전문화된 집단은 전체 퍼즐의 점점 더 작은 부분만을 보게 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는 대형 은행 내부가 얼마나 분절되어 있는지를 보여 줬다. 전문화된 그룹은 자신의 작은 조각이 가진 리스크를 최소화하고자 했고, 그런 조각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면서 거대한 재앙이 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금융 위기 대응책들이 전문화 과정에서 발생한 어지러운 혼란을 더욱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2009년에 미국 연방 정부가 내놓은 대응책은 은행에 인센티브를 지급해 대출금 일부 상환이 가능한 주택 담보 대출자들의 월 상환액을 낮춰 주는 것이었다.
취지는 좋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은행의 담보 대출 전담 부서가 주택 대출 상환액을 낮추자, 같은 은행의 압류 전담 부서는 해당 주택 소유자의 납입액이 갑자기 낮아진 것을 확인하고는 채무 불이행 상태로 분류하고 주택을 압류했다. “은행 내부에 그런 사일로(silo)가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정부 자문 위원이 후에 밝힌 내용이다. 과도하게 전문화된 상태에서는 모든 개인들이 각자 자신에게 가장 합리적인 행동을 선택하더라도 전체의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세분화된 보건 의료 전문가들은 그들 나름대로 ‘망치를 들고 있으면 주변의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는’ 문제를 갖게 되었다. 심장 중재술 전문의들은 금속관으로 혈관을 비집어 여는 스텐트(stent) 시술로 가슴 통증을 치료하는 일에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스텐트 시술이 부적절하거나 위험하다고 증명된 증상들에 대해서도 반사적으로 시술하고 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심장병 환자들은 국립 심장병 학회 회의가 있는 기간에 입원을 할 경우에 사망률이 더 낮아진다고 한다. 수천 명의 심장병 전문의들이 병원을 비우기 때문이다. 심장병 전문의들이 통상적으로 행하는, 효과가 의심스러운 시술의 횟수가 줄어든 것이 원인이라고 연구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과학자인 아르투로 카사데발(Arturo Casadevall)은 사회가 점점 더 전문화되면서 혁신의 ‘평행 참호 시스템’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모두가 각자 자신의 참호를 점점 더 깊게 파고 있지만,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서 옆에 있는 참호를 들여다보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옆의 참호에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있는데도 말이다. 카사데발은 미래 연구자들을 비전문화된 방식으로 교육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방법이 나중에는 모든 분야의 교육으로 퍼져 나가기를 바란다. 그는 전문화를 강요받으면서도 일생 동안 자신의 다양성을 넓힘으로써 막대한 이득을 보았다. 이제 그는 타이거 우즈의 경로에서 이탈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영역을 넓히고 있는 셈이다. “이 작업은 아마도 제 평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겁니다.” 그가 내게 들려준 말이다.
폭넓은 분야를 경험하고 천천히 특성화하는 것의 장점을 알게 되면서 나 자신과 세계를 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이 발견은 인생의 모든 단계에 적용된다. 수학, 음악, 스포츠 능력을 개발하는 아이들에서부터 대학을 갓 졸업해서 진로를 찾으려는 사람들, 직업이 있지만 진로를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 은퇴를 앞두고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천직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말이다.
폭넓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분야를 넘나드는 사고를 한 뒤, 나중에 한 가지에 집중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런 장점을 유지하는 것은 점점 더 초전문화를 조장하고 요구하는 세계에서 우리가 맞닥뜨린 과제다. 타이거 우즈처럼 어릴 때 시작하고, 분명한 목표를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하는 분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세계는 더 복잡해졌다. 각각의 시스템은 거대한 네트워크로 연결되었고, 한 분야에만 있는 개인은 아주 작은 부분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폭넓은 분야에서 시작해서, 성장하면서 다양한 경험과 시각을 포용해 온 로저 페더러 같은 사람이 더 필요하다. 다양성을 가진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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