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회사는 에어컨이 심각한 수준의 부하를 발생시킨다는 것을 금세 인식했다. 일찍이 1935년에 현재의 콘 에디슨의 전신인 커먼웰스 에디슨(Commonwealth Edison)은 연말 보고서에서 에어컨의 전력 수요가 연간 50퍼센트 증가했다면서 “미래에 대한 상당한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언급했다. 같은 해, 산업 무역 잡지인 《일렉트릭 라이트 앤 파워(Electric Light & Power)》는 대도시의 전력 회사들이 “현재 에어컨 보급을 촉진시키고 있다”면서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모든 전력 회사들이 매우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1950년대에는 바로 그 미래가 왔다. 전력 회사는 에어컨을 홍보하는 인쇄, 라디오, 영화 광고를 했다. 에어컨을 설치하는 건설 회사에 자금을 지원하고 할인 혜택을 제공했다. 1957년 커먼웰스 에디슨은 처음으로 난방 기기를 작동시키는 겨울이 아닌, 에어컨을 켜는 여름에 전력 사용량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1970년까지 미국 주택의 35퍼센트가 에어컨을 사용했는데, 이는 불과 30년 전의 200배가 넘는 수치였다.
동시에 미국 전역에는 에어컨이 탑재되어야 할 상업용 건물들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었다. 햇빛 반사력이 약하고, 환기 기능이 부족해서 전력 소비의 절반 이상을 냉방에 써야 하는 통유리 고층 건물이 대세가 되었다. 1950~1970년 상업용 건물의 평방피트당 평균 전기 사용량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1974년에 완공된 뉴욕의 세계 무역 센터(World Trade Center)에는 9개의 거대한 엔진과 270킬로미터가 넘는 냉난방용 배관을 갖춘,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에어컨이 설치됐다. 당시 논평가들은 세계 무역 센터가 매일 인구 8만 명의 인근 도시 스키넥터디(Schenectady) 전체와 같은 양의 전기를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에어컨 업계, 건설 회사, 전력 회사는 모두 전후 미국 자본주의의 물결을 타고 있었다. 그들은 이익을 추구하면서 에어컨을 미국 생활의 필수적인 요소로 만들었다. 에어컨 회사의 한 임원은 1968년 《타임》에 “우리 아이들은 냉방 문화에서 자란다”며 “그들이 에어컨이 없는 집에서 살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은 에어컨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고, 사용량은 계속 증가했다. 2009년에는 미국의 에어컨 사용 가구가 전체의 87퍼센트에 달했다.
전후의 건설 붐은 이 모든 새로운 건물들이 엄청난 양의 전력을 소비할 것이지만, 이로 인해 미래에 심각한 문제가 야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1992년 학술지 《에너지 앤드 빌딩스(Energy and Buildings)》는 미국인의 에어컨 중독이 엄청난 타락의 상징이라고 주장하는 영국의 보수주의 학자 그윈 프린스(Gwyn Prins)의 논문을 실었다. 프린스는 미국을 지배하는 신조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우리는 시원할 것이다. 우리의 접시는 가득 찰 것이고. 가스는 갤런당 1달러가 될 것이다. 아멘.”
전 세계를 휩쓸다
에어컨은 미국의 도시를 재편했지만, 다른 지역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얼리 어답터였던 일본, 호주, 싱가포르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그렇다.) 그러나 이제 에어컨은 마침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미국 전역에 걸친 에어컨의 발달이 전후의 건설과 소비 붐에 따른 것이었다면, 최근의 확산은 세계화의 과정을 따르고 있다. 다른 나라들이 미국화된 건축 방식과 생활 방식을 채택하면서 에어컨도 받아들인 것이다.
1990년대에 아시아 전역의 많은 국가들이 외국에 투자를 개방하고 전례 없는 도시 건설에 착수했다. 지난 30년 동안, 인도에서는 약 2억 명의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했다. 중국에서는 그 수가 5억 명 이상이다. 뉴델리에서 상하이에 이르기까지 에어컨이 완비된 오피스 건물, 호텔, 쇼핑몰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건물들은 뉴욕이나 런던의 건물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했다. 실제로 같은 건축가와 건설업자들이 만든 건물도 많았다. 에너지 절감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주거 공간 설계에 집중하는 인도 건축가 아쇼크 랄(Ashok Lall)은 “고급 건물을 짓기 위해 전 세계에서 돈이 들어올 때, 미국이나 유럽의 디자이너나 자문 회사가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며 “그리고 그들은 에어컨과 패키지로 온다. 사람들은 그것이 진보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건축의 규모가 커지고 속도가 빨라지면서 온도를 낮추는 전통적인 건축 기술들은 폐기되었다. 호주 시드니 공과대학의 인도인 건축학 교수인 리나 토머스(Leena Thomas)는 나에게 1990년대 초반 델리에서 창문 방충망이나 건물 입구의 외벽, 브리즈솔레이유(brise-soleils·햇볕을 가리기 위해 건물의 창에 댄 차양)를 통해 열기에 대응했던 오랜 건축 디자인 형태가 미국이나 유럽식으로 서서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나는 이 국제적인 양식이 책임져야 할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20세기의 미국처럼, 그러나 훨씬 더 큰 규모로, 에어컨을 필수 불가결하게 만드는 방식의 집과 사무실은 더 많이 건설되고 있다. 인도 아마다바드(Ahmedabad) 셉트 대학의 건축 및 도시 계획 전공 교수인 라잔 라왈(Rajan Rawal)은 “개발자들은 생각 없이 건물을 짓고 있었다”며 “공사 속도를 맞추라는 압박을 받았고, 그래서 그들은 단순히 일단 짓고 나중에 기술로 문제를 바로잡으려 했다”고 말했다.
아쇼크 랄은 저렴한 주택도 신중하게 설계하면 에어컨 사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열린 공간의 크기, 벽면의 면적, 내열 설계, 그늘, 방향으로 균형을 맞추면 된다”고 강조하면서, 부동산 개발 업자들은 보통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적정한 규모의 옥상 그늘이나 단열재 같은 작은 부분도 저항을 받습니다. 건설업자들은 이런 요소에서 어떤 가치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들은 서로 붙어 있는 10~20층짜리 건물을 지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비즈니스가 작동하는 방식이고, 도시가 요구하고 있는 건축입니다. 모두 투기와 땅값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이러한 에어컨에 대한 의존은 중국 미술 평론가 호우 한루(Hou Hanru)가 ‘탈계획의 시대(epoch of post-planning)’라고 지칭하는 흐름과 맞물린 하나의 현상이다. 오늘날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해 왔던 중앙 집중화되고, 체계적이며 발전적인 개발 계획은 거의 모두 사라졌다. 시장은 놀라운 속도로 개발을 지시하고 할당하며, 실제 거주자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조건들은 나중에 단편적인 방식으로 제공한다. 필리핀에서 에어컨의 사용을 연구하는 사회학자 말린 사하키안(Marlyne Sahakian)은 “거대한 타워들은 올라가고 있고, 그것은 이미 에어컨의 필요성이 건물 내부에 고착화된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말레이시아의 영향력 있는 건축가 켄 양(Ken Yeang)은 최근 런던에서 나와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화석 연료에 의존하여 환경을 통제하는 건축가와 건설업자로 인해 그렇지 않은 한 세대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을 한탄했다. 그는 “건물들은 이미 많은 피해를 일으켰고, 내 세대에서는 완전히 희망을 잃어버렸다”면서 “아마도 다음 세대에나 구조 작업을 계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에어컨 지지자들에게 에어컨은 소비자의 경제적 계층이 상승하면서 삶을 개선하는 간단한 선택지로 인식된다. 일본의 거대한 에어컨 제조 회사인 다이킨(Daikin)의 인도 지사 임원은 지난해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에어컨은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며 모든 사람은 에어컨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70년 전 미국에서 벌어진 일들이 지금 인도 라자스탄(Rajasthan)에서 반복되고 있다. 일단 사람들의 삶에 에어컨이 자리 잡으면, 그들은 에어컨을 계속 쓰기를 원한다. 이런 현상은 소비자의 선택이 통제 불가능한 힘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호하게 만든다. 메리 매카시(Mary McCarthy)는 1967년 출간한 책 《베트남(Vietnam)》에서 미국에서 생활할 때 경험한 선택의 미묘한 제약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회상했다. “미국 호텔 객실에서는 에어컨을 켤지 말지 결정할 수 있지만, 창문을 열 수는 없다.”
기술은 우리를 구원하는가
현대 도시를 전면적으로 정비하지 않으면서 에어컨이 발생시키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더 나은 에어컨을 만드는 것이다. 개선의 여지는 충분하다. 에어컨의 발명은 최초의 비행기, 라디오 방송보다 앞섰다. 그러나 에어컨의 기반 기술은 1902년 이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건축 서비스 연구 정보 협회의 기술 이사 콜린 굿윈(Colin Goodwin)은 “에어컨의 모든 것은 여전히 냉장고와 동일한 증기 압축 냉동 회로를 기반으로 하는데, 이는 100년 전과 사실상 동일한 과정”이라면서 “에어컨 구매력은 엄청나게 확대됐지만, 효율성 측면에서는 일부분이 개선되었을 뿐 도약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더 효율적인 에어컨을 만들 수 있도록 엔지니어들을 독려하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지난해 미국의 에너지 정책 싱크탱크인 로키 마운틴 인스티튜트(Rocky Mountain Institute·RMI)는 세계 냉각상(Global Cooling prize)을 신설하고 300만 달러(35억 5800만 원)의 상금을 내걸었다. 목표는 기존의 표준 모델보다 5배 이상 효율이 높으면서도 생산 비용은 2배 이상 투입되지 않는 에어컨 설계다. 유엔 환경 프로그램과 인도 정부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 시상식은 개인 발명가부터 저명한 대학, 수십억 달러 규모의 거대 가전업체의 연구팀들로부터 100개 이상의 출품작을 받았다.
그러나 기후 변화에 대한 기술적 대응책과 마찬가지로, 효율적인 에어컨의 등장이 세계 배기가스 배출량을 현저히 감소시킬지는 확실하지 않다. RMI에 따르면, 혁신적인 에어컨으로 전 세계의 탄소 배출량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수상작인 효율 높은 에어컨이 늦어도 2022년에는 판매되기 시작해야 하고, 2030년까지는 시장의 80퍼센트를 점유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 신제품이 10년 안에 경쟁 상품들을 거의 완전히 대체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 간 기후 변화 협의체IPCC의 차기 보고서 집필을 이끌고 있는 벤자민 소바쿨(Benjamin Sovacool) 서섹스 대학 에너지 정책 교수는 이 목표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기술이 우리를 살린다는 생각을 믿고 싶어 합니다. 그 단순함이 위로가 되죠.” 소바쿨의 말이다. 기술로 기후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은 실제로 큰 위안이다. 심지어 기술 발명과 구현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한 기간은 너무 짧아서 믿기 어려운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술을 기후 변화에 대한 첫 번째이자 최선의 대응책으로 논의해 왔다.
중앙 유럽 대학의 기후 변화 및 에너지 정책 교수이자 곧 발표될 IPCC 보고서의 주요 저자인 다이애나 우르지 보르사츠(Diana Ürge-Vorsatz)는 새로운 에어컨 기술은 환영받을 것이지만, 에어컨의 배기가스를 줄이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해야 할 네 번째 혹은 다섯 번째 일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언급하는 더 높은 우선순위의 임무로는 나무 심기, 낡은 건물에 적절한 환기 장치 설치하기, 더 이상 ‘폭염을 견디지 못하는 콘크리트와 유리로 된 우리(cage)’를 짓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이 모든 것들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비용까지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덧붙인다.
이러한 전략은 기술적으로는 더 저렴하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과 주요 정책이 달라져야 한다. 기후 위기와 관련한 공공연한 비밀은 그 누구도 이 심각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체계적이고 전 세계적인 변화를 어떻게 일으킬 수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실내 온도는 없다
만약 기술이 당장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면, 전 세계의 정책 변화가 멀리 있는 희망처럼 보인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에어컨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생태 경제학자이자 IPCC 보고서의 저자인 줄리아 스타인버거(Julia Steinberger)가 쓴 것처럼 운전, 비행, 아보카도 수입을 줄이는 것처럼 우리의 생활 방식을 바꿔야 하는 진지한 제안들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고, 이단적이며, 거의 미친 짓”으로 간주된다. 에어컨의 경우에는 더 그렇다. 에어컨 사용을 줄이라는 요구는 사람들이 폭염 속에서 죽어야 한다는 제안으로 오해받거나, 부유한 나라의 시민들이 이미 누리고 있는 안락함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허락하지 않는 악의적 욕망의 증거로 취급당한다.
올여름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기사 ‘미국인은 에어컨이 필요한가’는 수천 건의 격노한 소셜 미디어 게시물을 촉발시켰다. 그중에는 유명 인사들도 있었다.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평론가인 록산 게이(Roxane Gay)는 “그러는 너도 에어컨 없이 플로리다에서 여름을 보내지 않을 거잖아. 정신 차려”라고 썼다. 보수 성향의 교수이자 전문가인 톰 니콜스(Tom Nichols)는 “에어컨은 우리가 동굴을 떠난 이유”라면서 “당신은 내 손이 꽁꽁 얼었을 때에나 나에게서 에어컨을 빼앗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반응했다.
이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에어컨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줄일 수 있음을 입증하는 합리적인 사례는 존재한다. 이상적인 실내 온도로 알려진 기준은 오랫동안 에어컨 기술자들이 결정해 왔다. 거의 모든 인간이 항상 같은 온도 범위를 원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기저에는 안락함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자카르타에 있는 건물이 보스턴의 건물과 동일한 온도여야 한다는 것이다. 리나 토머스는 이런 기준에 따라 에어컨이 가동되는 대부분의 건물은 온도를 “20도에서 1도 내려가거나 올라가는 수준”으로 유지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두가 객관적으로 ‘적당한’ 온도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남성에게 이상적인 온도는 여성과 다르다. 2015년 《텔레그래프(Telegraph)》는 세계 곳곳의 사무실에서 “남성이 원하는 온도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여성은 추위에 떨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과학적 연구로 확인해 주는 결과는 이외에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