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는 모두를 이롭게 할 수 있다
메이아이 박준혁 CEO
AI를 향한 광풍이, 실은 거품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있다. 그 의심을 불안으로 바꾼 것은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다. 관련 보고서를 통해 AI에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졌으며, 앞으로도 이루어질 것이지만, 이에 따른 수익 창출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데이터마케팅코리아의 이진형 CEO는 그 전망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혁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시장의 승자가 결정되면, 그 다음엔 AI라는 도구를 이용해 일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 살아남는다. 단순한 자동화를 뛰어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최근 AI 거품론이 이슈다. 동의하나?
AI 거품론은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드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 때문이라고 본다. 개발에 드는 비용도 크지만, 유지 비용은 더 크다. 보통 유지 비용을 개발 비용의 10배 정도로 본다. 예를 들어 1조 원을 들여 개발했다면, 이를 유지하는 데 10조 원이 필요하다. 전력 소모도 많고, GPU 가격 상승도 부담이 된다. 그래서 AI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동의하지 않는다.
근거는 무엇인가?
파운데이션 모델을 상수도에 비유할 수 있다. 각 마을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수도국이 하나씩 생기면 공급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망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 상황이 그와 비슷하다고 본다.
이미 파운데이션 모델이 많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모든 빅테크 기업들이 다음 구글을 꿈꾸며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들고 있다. 예전 인터넷 초기에도 많은 검색 엔진이 있었지만, 지금은 구글이 93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다. 파운데이션 모델도 결국 몇 개만 살아남을 것이다. 실제로 돈을 버는 것은 파운데이션 모델 자체가 아니라, 그 모델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 시장이다. 이 시장은 수천조 원에서 경 단위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AI 업계에서 수도국 역할을 할 회사는 어디라고 생각하나?
오픈AI와 구글의 제미나이(Gemini)다. 퍼플렉시티도 주목받고 있다. 엔트로픽은 오픈AI의 핵심 엔지니어들이 나와서 만든 회사로, 경쟁력이 있다. 결국 누가 더 큰 생태계를 만드는지가 중요하다. 오픈AI는 빠르게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고, 구글은 기존 서비스에 생성형 AI를 접목해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려 한다. 기존 서비스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로 발전할 것이다. 반면, 퍼플렉시티나 다른 경쟁자들은 아직 생태계를 크게 키우지 못했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메타나 xAI는 어떤가?
메타는 오픈 소스로 기술을 공개하고 라마(LLaMA) 같은 모델을 통해 생태계를 키워가고 있다. xAI는 후발주자에 속한다. 자금과 콘셉트는 좋지만, 발전 속도가 느리다. 이 시장은 결국 언어 모델 싸움이다. 영어, 한국어, 중국어, 러시아어 같은 주요 언어를 사용하는 몇 개의 모델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검색 엔진도 결국 구글, 네이버처럼 몇 개만 남았듯이 말이다.
흥미로운 시각이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AI 경쟁력은 어떻게 보나?
중국은 폐쇄적인 운영으로 자신들만의 시장을 성공시킬 것이고, 러시아는 전쟁으로 인해 경쟁력 확보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상황은 어떤가?
한국은 자금력이 부족하다. 몇몇 기업이 큰 금액을 투자하고 있지만,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엔 한계가 있다. 미국은 조 단위로 투자하며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한국어를 잘 지원한다고 해도 그 차별성은 크지 않다. 이미 오픈AI와 퍼플렉시티 등이 자연스러운 수준으로 한국어를 지원하면서 그 차별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정보에서 차별성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한국 관련 정보에서 네이버가 조금 빠를 수 있다는 정도다. 하지만 자금이 충분한 빅테크가 공략하면 그마저도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 결국 중국처럼 규제를 통해 시장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생길지도 모른다.
한국도 중국식 모델을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한국 시장은 작기 때문에 중국식 모델을 도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북한과의 안보 문제로 인해 일부 국가기관은 글로벌 클라우드를 사용할 수 없는 제약이 있다. 이 제약이 네이버나 KT 같은 기업에 기회를 줄 수 있지만, 그 시장 가치는 크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나?
우리는 미국과 경쟁하는 대신, 협력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인도는 저렴하고 똑똑한 인력으로 개발을 잘하는 나라다. 한국은 창의적인 서비스 개발에 강점이 있다고 본다.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드는 데는 너무 많은 자금이 든다. 그래서 서비스 영역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파운데이션 모델을 활용한 다양한 AI 서비스 개발이 더 적합하다는 뜻인가?
맞다. 인도의 교육 체계는 구조적이고 개발에 특화되어 있다. 반면, 한국은 창의적인 서비스 개발에 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GDPR, AI ACT 같은 규제로 인해 빅테크와의 대립이 커지고 있다. 이런 규제가 생성형 AI 발전에 저해가 된다고 보나?
그렇다. 하지만 이런 규제는 단순히 개인정보 보호나 윤리적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유럽이 빅테크에 대한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규제를 통해 자국 시장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본다. 미국이 유럽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은 이런 식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려 한다.
생성형 AI 시대에는 데이터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AI는 결국 데이터의 집합이다. 데이터를 정제하고, 표준화하고, 필요할 때 학습시키는 것이 AI의 본질이다. 특히 생성형 AI 시대에서는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어야 하므로, 체계적인 관리가 더 중요하다. 그에 따라 AI 성능이 달라진다.
이 분야에 뛰어든 계기는 무엇인가?
LG CNS에 입사하면서부터다. 사실 처음에는 IT나 데이터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될 줄 몰랐다. 당시 LG CNS는 가고 싶은 회사였고, 그저 취업의 일환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하지만 입사 후 CRM(고객 관계 관리) 개발을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데이터와 마케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마케팅 컨설팅 업무를 하면서 데이터의 가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결국 데이터와 관련된 일을 전문적으로 하게 되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이를 통해 사업의 성장을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데이터가 가진 잠재력을 확신하게 되었다.
맡은 일에 에너지를 쏟은 결과 전문성을 얻게 되었다. 우연이 아니다. 지금은 자신만의 회사를 설립했다.
‘데이터마케팅코리아’라는 회사다. 데이터를 활용해 일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도록 돕는다. 흔히 업무 자동화만을 떠올리는데, 그런 수준을 넘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AI와 데이터를 이용해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자동화가 아니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인가.
예전에는 서류철을 들고 다니며 결재를 받았지만, 지금은 전자결제가 등장해 더 이상 서류철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이처럼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공개되어 있는 챗GPT와 같은 기술만 해도 상상력을 동원해 그 활용 범위를 무한하게 확장할 수 있다. 우리 회사는 그런 상상력을 바탕으로 업을 새롭게 정의하고,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구조를 짜는 일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고 하자. 장부 정리, 판매 데이터 정리를 자동화시키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인공지능 비서가 ‘1시간 뒤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문이 몰릴 것이니 미리 90잔을 준비하라’고 알려주면, 주인은 그 지시에 따라 준비하기만 하면 되도록 한다. 이런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까지 포함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이나 기업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혁신적인 계획을 세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와 공항 데이터 기술 연구 및 사업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와의 협력은 작년 11월에 시작되었다. 논의를 해 보니, 이미 내부적으로 데이터를 잘 분석하고 있었지만, 비효율적인 부분들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데이터를 활용해 ‘줄 서지 않는 공항’을 만들고자 한다. ‘웨이트 프리 에어포트(Wait Free Airport)’라는 프로젝트다. 예를 들어, 시큐리티에서는 왜 줄을 서게 될까? 그 이유는 특정 시간대에 비행기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특히 오전에 많은 항공사들이 비행기를 띄우려고 하면서, 공항이 붐비는 시간이 생긴다. 데이터를 분석해 정확한 근거를 제시한다면, 피크 시간대의 혼잡을 분산할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원 배분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공항 최적화 솔루션이 다른 산업에도 적용될 수 있나?
공항에서의 데이터 활용과 동선 최적화는 스마트 시티 같은 더 큰 프로젝트에도 적용될 수 있다. 지금도 스마트 시티와 관련된 여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고, 인천공항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하면, 이를 다른 도시나 시설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일한 후 회사를 설립하셨는데, 두 경험을 비교한다면?
마음이 편한 것은 대기업이다. 하지만 실제 일하는 것은 어디서나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지금은 LG라는 브랜드 파워에 비해 우리 회사의 인지도나 영향력이 떨어지는 점은 불편할 수 있겠다.
CEO가 유명세를 갖고 있지 않나.
진정한 성공의 조건은 우리 회사, 상품이 명성을 얻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표의 이름이 가장 유명하면 그 회사는 위험하다. 예를 들어, 갤럭시가 가장 유명해야 하고, 그다음이 삼성, 그 뒤가 이재용이어야 한다. 만약 이재용이 갤럭시보다 더 유명해지면 문제가 된다.
자동화를 넘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AI가 발전하면서 인간의 역할은 무엇이 될 것인가?
사람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 예전에는 노동을 통해 돈을 벌었지만, 이제는 AI가 생산성을 크게 높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주 5일이 아닌 주 1일만 일할 수도 있다. AI가 맡지 못하는 영역에서 인간은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한다. 직업의 종류는 더욱 다양해지고 전문화될 것이다. 사람이 할 일은 여전히 남아있고,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기업이 데이터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나?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자들이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변화를 인식하고, 그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이해해야 한다. 의사결정자들은 자신이 아는 것에 기반해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새로운 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는 결정을 미루거나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 쉽다. 따라서 그들을 교육하거나, 빠르게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리빙랩 같은 작은 프로젝트를 통해 변화를 실험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글
신아람 에디터
* 2024년 10월 23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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