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컬리 조퇴계 편집장 - 마감보다 중요한 가치를 좇는다

마감보다 중요한 가치를 좇는다
브로드컬리 조퇴계 편집장


멋진 공간을 발견하면 설렌다. 좋은 사람과 꼭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가게는 누군가의 창작물이다. 그 공간을 만들기 위해 무수히 많은 고민과 현실적인 타협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사실 그대로 담은 시리즈가 브로드컬리의 ‘3년 이하 시리즈’이다. 2016년 《서울의 3년 이하 빵집들》을 시작으로 로컬숍을 만들고 운영하는 자영업자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담아 왔다. 올봄 오랜만에 시리즈의 신간이 나왔다. 브로드컬리의 조퇴계 편집장은 마감보다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 오래 걸렸다고 이야기한다. 조퇴계 편집장을 인터뷰했다.
‘3년 이하 시리즈’로는 6년 만의 신간이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전작이 좀 잘 팔렸다. 여유가 생기면 꼭 해보고 싶은 취재가 있었는데 그게 서울을 떠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이었다.

어떤 것이 어떻게 어려웠나?

섭외다. 브로드컬리는 자영업자를 인터뷰하는 잡지다. 공간 운영의 맥락을 중심으로 매 호 주제를 달리해 책을 만든다. 이번에는 서울에서 경제 활동을 하다 서울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을 취재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았다.

사례가 적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유명한 사람들을 섭외해 만들지 않는다. 주제에 관해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진 사람을 직접 찾아 섭외한다. 최소 2000군데 정도 공간을 무작위로 방문해 최종적으로 여섯 군데로 추렸다. 이렇게 공간을 찾는 데에만 5년 이상 걸렸다.

일반적인 회사였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잘릴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다행히 브로드컬리는 고정비가 매우 낮은 조직이다. 풀타임으로 일하는 건 나뿐이다. 다른 편집부원들은 각자 본업이 있다.

조직이 가벼우니 가능했던 건가?

책 한 권이 나올 때마다 2~3개월 정도만 협업하는 방식이다. 기획, 취재, 편집은 주로 혼자서 한다. 그래서 회사가 망하지 않고 이렇게 책이 나올 수 있었다.

시간을 들인 만큼 반응도 좋다. 하지만 6년이면 긴 시간이다. 중간에 흔들리는 시기는 없었나?

좀 다르게 해봐야 할지, 늘 질문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 편집부는 전통적인 출판업계, 잡지사 등에서 경력을 쌓은 팀이 아니다. 그래서 마감을 지켜야 한다든가 하는, 일반적으로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덜 얽매인다. 합리적인 관리 능력이 좀 부족하달까.

‘마감’보다 더 중요한 목적이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 마감보다는 만족스러운 책 한 권이 나오는 과정을 중심에 둔다. 브로드컬리는 편집부가 직접 취재해서 책을 만든다. 그러니 책을 만들었으면 다 팔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못 팔면 곤란하다. 이번 책은 아쉬움이 좀 있어도 일단 마무리하고 다음 책을 잘 만들자는 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다.

대부분 혼자 작업한다고 했다. 어떻게 일하나?

섭외도 그렇지만 인터뷰 작업도 직접 다 한다. 현장에는 포토그래퍼와 함께 디자이너도 동행한다. 완성도를 위해서다. 우리 책은 사진을 많이 사용하는 구성이다. 인터뷰 현장의 맥락을 알아야 디자인 작업에 있어 아쉬운 부분이 생기지 않는다. 인터뷰 작업은 직접 다 하고 있다. 에디터와 함께 분업하는 방식을 많이들 조언해 주셨다. 내가 기획 중심으로 맡고, 현장 취재는 에디터가 주로 담당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 일이 즐겁다. 그래서 계속 직접 한다.

뭐가 즐거운가?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즐겁다. 또, 내가 발행인이니까 내가 궁금한 걸 충분히 질문할 수 있다.

공간과 사람이 왜 그렇게 궁금한가?

이 우주는 정말 드넓은 공간이다. 하지만 우리가 각자 온전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을 생각해 보면, 정말 작다. 그런데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불특정 다수에게 커피값 정도만 받고 공간을 열어 준다. 우리는 책 한 권, 커피 한 잔 값으로 누군가가 삶의 아주 큰 부분을 걸고 꾸며 놓은 공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공간은 한 사람의 가치관이나 논리, 미감 같은 것을 담고 있다. 그걸 발견하는 것이 가게에 다니는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책 《서울을 떠난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에는 어떤 궁금증을 담았나?

서울을 떠나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을 취재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서울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취업하면서 상경했다. 10년 넘게 서울에 살고 있는데, 아직도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서울은 쉽지 않은 도시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도시이다 보니 주거비나 생활비 같은 비용 부담이 크다. 서울을 좋아하지만, 이렇게 고비용의 삶 이외의 다른 방식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스 미디어에서도 종종 다루는 주제 아닌가?

주로 ‘해탈’했거나 좀 내려놓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다루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세속적으로도 잘살고 싶고 좀 더 여유롭게 살고 싶다는 욕심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서울 바깥의 삶이 궁금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서울을 벗어나면 분명 많은 것이 달라지겠다.

나는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서울에서도 카페나 빵집, 서점 같은 공간에서 느껴지는 즐거움이 있지 않나. 그런데 서울 바깥으로 나가면 일단 임차 비용이 줄어드니 가능성이 커진다. 똑같은 자본으로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그 공간을 유지하는 데에도 비용이 줄어든다. 기본적으로 고정비가 낮아진다.

자신만의 공간을 운영하고 싶은 독자에게는 또 다른 레퍼런스가 될 수도 있겠다.

예를 들면, 이번 책에 실린 부산 ‘나락서점’의 경우 여행길에 방문한 손님이 책을 구입하면 택배로 발송해 준다. 부산 서점이나 헌책방에 이런 서비스가 많다. 지역에서는 그곳 상권에 맞는 방법이 있다. 이런 방법들을 잘 활용하면 지역은 자기 뜻을 펼치기에 좀 더 유리한 환경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 책이 언젠가 공간을 운영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더 넓은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6년 만의 신간《서울을 떠난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은 서울 바깥의 삶의 방식에 관해 질문한다. / 출처: 브로드컬리

그래서인가. 정말 많은 질문이 책 한 권에 담겨 있다.


일반적인 잡지에 실린 인터뷰를 읽다 보면, 좀 바빠 보일 때가 있다. 깊게 들어가기보다는 개괄적인 질문과 답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지면의 한계와 마감이라는 압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누구든 한 개인의 삶을 만나면 질문이 생긴다. 얼마나 벌고 있나, 지금의 삶에 만족하나,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 말이다. 나는 그렇다. 그런 내밀한 부분에 관해 궁금증을 갖고 있다. 특별한 방향성은 없다. 그저 삶을 둘러싼 일반적인 질문들이다.

나의 질문이 곧 독자의 질문이라는 확신이 보인다.

내가 가진 질문들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내가 궁금한데 남이 안 궁금할 리가 없다. 예를 들어, 내게 질문이 열 개뿐이라면 독자의 질문과는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책 기준으로 질문지에 적힌 질문만 160개였다. 현장에서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결과적으로 대략 300~400개 정도의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인터뷰마다 그렇다. 그렇다면 독자 입장에서 300개의 질문 중에 적어도 50개 정도는 궁금증을 가진 질문일 수 있다. 그래서 이걸 독자도 궁금해할지 여부는 크게 의심하지 않는다.

300~400개의 질문과 답이 오가려면 대체 인터뷰가 얼마나 걸리나?

짧으면 10시간, 길면 2박 3일 정도 인터뷰를 진행한다. 과자를 잔뜩 쌓아 두고 먹으면서 한다. 중간에 밥 먹고 오기도 하고. 인터뷰에 응해 주는 사람들은 대부분 본인이 가진 자원을 거의 다 투입해서 사업을 일궈 나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의 2박 3일을 받아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다.

귀한 시간이다.

같은 질문지를 가져가도 인터뷰 현장마다 조금씩 질문이 달라진다. 답변도 당연히 다 다르다. 사람마다 삶의 과정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인터뷰의 매력 아니겠나?

내가 글쓰기를 처음 배운 곳은 금융업계다.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이후에도 동종 업계에서 인턴이나 RA(Research Assistant)로 일하면서 글을 썼다. 보통 통계 등의 데이터를 중심으로 글을 썼다. 그런데 그건 나 말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 또, 얼마나 방대한 데이터를 모을 수 있는지는 자본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데이터 너머에 있다. 글쓴이의 의견이나 인터뷰야말로 고유한 가치를 가진다. 특히, 인터뷰의 경우 인터뷰이도 중요하고, 질문하는 사람에 따라서도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취재 과정에 품이 많이 든 만큼 현실이 제대로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력한다. 먹고사는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금액, 이 일을 선택하는 데 든 비용, 매출 같은 것들을 묻는다. ‘나는 이러한 삶을 살았고, 그 결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찾았고, 그래서 가게를 열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참 많다. 그 자체로 좋은 콘텐츠다. 동기 부여도 되고 응원도 될 수 있다. 그런데 내 가게를 연다는 것은 경제 활동의 영역이고, 돈 문제이기도 하다. 일단 가게라는 공간 자체가 어떤 ‘부동산’을 차지하는 일이다.

비싼 재화를 깔고 앉는 일이다.

만약 누군가가 ‘나도 서점 한번 열어 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해서 현실적인 고민을 크게 하지 않고 서점 문을 열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생각보다 힘들어 금방 문을 닫은 상황이다. 결국 그 서점을 운영하는 동안, 마음을 다해 가게를 꾸려 온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영향을 미친 것이 된다.

예를 들자면 어떤 영향인가?

금방 문을 닫아 버린 그 서점 주변의 월세가 더 올라갈 수 있다. 수요와 공급에 관한 기본적인 얘기다.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가게를 열었다 닫는 분들이 많다면 우리 사회 전체로도 비효율적인 일이다. 우리가 어떤 가게를 좋아하게 되는 까닭은 그 공간을 마련한 사람의 고유한 방향, 자아실현의 흔적 때문이다. 그런데 개성 있는 공간은 줄어들고 효율을 추구한 공간이 늘어난다면, 그건 대개 비용 문제 때문이다. 비효율이 비용을 증가시킨다. 극단적인 예시가 명동이나 홍대 앞 같은 지역이다. 그렇게 비싼 곳에서는 자아를 표현하기보다는 효율을 따질 수밖에 없다.

그런 마음이 책에 반영된 건가?

자신의 공간을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주고 싶다. 필요하다면 그 결정을 한번쯤 재고해 봐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3년 이하’ 시리즈에 이 정도의 진심을 담았다. 그리고 10년 만에 시리즈 여섯 번째 책이 나왔다. 책을 판매하는 수익만으로 회사가 지속 가능한가?

회사는 지속 가능하다. 그런데 내 욕심까지 채우려면 추가적인 수입이 필요하다. 외부와 협력하는 프로젝트 등을 통해 노력하고 있다.

어떤 욕심인가?

개인적인 삶에 관한 욕심도 있지만, 다음 콘텐츠에 더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를테면, 미슐랭 식당이나 한국을 떠나 해외로 이주한 자영업자의 이야기 같은 것이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지구를 떠난 사람들도 생길 것이다. 화성 같은 곳에도 카페가 생기지 않을까? 그렇다면 누군가는 그 카페를 운영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을 항상 만나고 싶다. 이야기 나누고 싶다. 그런데 자원이 부족하다 보니 그걸 좀 더 마련하고 싶다는 욕심이 계속 생긴다. 그런 욕심이 생기면 이게 불만족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원하는 삶의 방식을 만들기 위해 쉼 없이 왔다.

취미를 일로 삼으면 재미가 없어진다고들 한다. 근데, 잘하면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취미는 누구든 가질 수 있다. 그걸 직업으로 삼으면 당연히 힘들다. 테니스를 취미로 치면 재미있겠지만, 프로 선수가 되어 밥벌이하려면 잘 칠 때까지 쳐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잘 칠 수 있을 때까지 나를 후원해 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 아니면 스스로 시간과 기회를 마련하든가. 잘 치기 위한 여건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생각 없이 테니스만 열심히 친다고 내년에 선수가 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이다.

취미를 일로 삼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 아니다. 잘하면 된다. 다만, 그 과정이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여러모로 궁리한다. 지금 이곳 사무실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사실, 집에서 작업해도 된다. 그런데 느슨해지면 한이 없다. 그래서 일부러 사무실을 마련하고, 이곳을 함께 쓸 사람들을 찾았다. 주변에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는 환경에서 나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을 잘하기 위해 물리적 환경을 구성한 것이다. ‘내가 이 일을 지속하기 위해 해야 할 노력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무척 중요하다. 건강 관리, 재정적인 부분 등을 모두 포함한 얘기다.

이렇게 열심히 해서 만들어 갈 브로드컬리의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

이번 책이 나오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좀 더 짧은 호흡으로 우리 편집부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전달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책의 형태가 아닐 수 있다.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할 수도 있고, 팟캐스트를 시작할 수도 있다. 어떤 방법으로 찾아뵐 것인지는 아직 열려 있다.
* 2025년 6월 13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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