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더 잘 쓸 수 있나요?
북저널리즘 CEO 이연대
다 죽어가던 텍스트가 트렌드가 됐다. 읽기보다는 쓰기 덕분이다. 성인 두 명 중 한 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데, 쓰는 사람은 늘고 있다. 블로그, 인스타그램부터 카카오톡, 텔레그램까지 인류는 어느 때보다 많은 텍스트를 쓰고 있다. 글쓰기에 관심이 폭발하면서 서점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필사책이 휩쓸고 있다. 모두가 쓰는 시대, 어떻게 해야 더 잘 쓸 수 있을까? 《에디토리얼 라이팅: 생각을 완성하는 글쓰기》의 저자이자 북저널리즘 CEO인 이연대를 인터뷰했다.
‘에디토리얼 라이팅’이란 무엇인가?
‘editorial writing’은 퓰리처상 수상 부문 중 하나다. 우리말로 옮기면 ‘사설 또는 칼럼 쓰기’ 정도가 될 것 같다. 설명하고 주장하고 설득하는 글쓰기다. 폭넓게 해석하자면 픽션을 제외한 거의 모든 글쓰기가 에디토리얼 라이팅에 해당한다. 사설, 칼럼뿐만 아니라 기획서, 광고 문구도 여기에 포함된다. 결국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쓰는 글이니까.
부제가 ‘생각을 완성하는 글쓰기’다. 완성된 생각을 독자에게 전하는 것이 글쓰기 아닌가?
우리는 흔히 글쓰기를 잘해야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잘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글쓰기의 또 다른 효능이 있다. 글을 쓰는 동안 생각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쓰면서 다시 깨달았다. 내가 다 아는 내용을 글로 옮기기만 하면 될 줄 알고 작업에 착수했는데, 책의 절반은 쓰는 과정에서 새롭게 생각한 것들로 채워졌다. 달리 말하면 글을 쓰지 않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것들이다. 발견되길 기다리고 있는 것들을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계속 써야 한다.
좋은 글의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①독자를 중심에 두고 ②공학적으로 설계해 ③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④명료한 문장으로 쓴 글이다. 발행된 글은 책이든 칼럼이든 보고서든 소셜 미디어 게시물이든, 모두 프로덕트(product)다. 프로덕트 오너(owner)가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할 때 고객의 문제를 정의하고 니즈를 분석하듯, 작가는 독자에게 집착해야 한다.
독자에게 집착한다는 것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늦은 저녁 배가 출출한데 밖에 나가기 싫을 때 사람들은 배달 앱을 켠다. 장 보러 갈 시간이 없으면 쇼핑 앱을 열어 새벽 배송을 주문한다. 우리는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품과 서비스를 ‘고용’한다. 글도 그렇다. 사람들은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책을 찾는다. 팀장으로 승진한 사람은 리더십 도서를 찾고, 곧 부모가 될 사람은 육아 도서를 찾는다. 작가의 글은 독자의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해 ‘고용’되는 셈이다. 책이든 칼럼이든 보고서든 광고 문구든 독자의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할 방법과 수단을 계획하는 것이 기획이다.
북저널리즘 발행인·편집인으로서 100권이 넘는 책을 발행했다. 직접 쓰고 편집한 책도 여러 권이다.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어떻게 해야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하나?
기획력과 문장력이 필요하다. 정보가 무한한 시대에 기획력이란 곧 편집력이다. 편집력을 더 쉬운 말로 바꾸면 ‘순서 감각이 있다’이다. 이 감각이 있는 사람은 글을 쓸 때 정보를 단순 나열하지 않고 맥락에 따라 배열한다. 단어와 문장과 문단이 있어야 할 곳에 있게 한다. 기획력이 아무리 좋아도 전달력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머릿속 기획을 흘리지 않고 독자에게 잘 전달하려면 문장력이 좋아야 한다.
문장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나?
문장력을 강화하려면 내 글을 많이 써봐야 한다. 흔히 글을 잘 쓰려면 다독, 다작, 다상량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굳이 하나를 꼽자면 다작이 가장 중요하다. 필사도 글쓰기 실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만, 내 글을 쓰면 다작과 다상량을 동시에 할 수 있어 훨씬 좋다.
기획력을 높이는 훈련 같은 것이 있을까?
잘된 기획을 뜯어봐야 한다. 좋은 기획을 만났을 때 ‘좋다’ 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왜 좋은지 알아내야 한다. 책이라면 목차를, 글이라면 단락 구성을 뜯어서 분석하는 것이다. 잡지를 창간한다면 레퍼런스로 삼고 싶은 잡지의 흐름을 분석한다.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페이지별로 어떤 레이아웃을 썼는지 기록한다. 이 작업을 마치고 나면 내가 그 잡지의 톤앤매너를 좋아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킨포크》를 보면서 눈이 편안하다고 느꼈는데 전면이 텍스트인 페이지가 3쪽 이상 이어지지 않는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글은 쓰고 싶은데, 뭘 써야 할지 막막하다는 사람이 많다.
주제를 찾을 때는 내가 잘 알고 잘 쓸 수 있는 분야에서 찾는 것이 좋다. 세계사에 전문성이 있다면 세계사에서 주제를 찾아보고,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면 마케팅 분야에서 주제를 살피는 것이다. 전문성이 글쓰기의 기준을 높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직장에서 단순 반복 업무를 하고 있어서 전문성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 않다. 분야를 좁히면 전문가인 것을 찾을 수 있다. 그 주제를 다루면 된다. 주제가 너무 좁아서 독자가 적을 수 있지만 괜찮다. 주제가 좁을수록 독자가 열광적일 확률이 높다.
커리어를 막 시작한 사람이라면 전문성 있는 분야를 찾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전문성이 꼭 학문 영역이나 직무에 국한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 중구 약수동에서 나고 자란 24세 대학생이 있다. 이 친구는 뉴스레터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다. 반려견을 키우니까 반려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써볼까, 경제학을 전공하니까 미국 증시에 관해 써볼까, 고민하고 있다. 둘 중 무얼 택하든 독자를 모으기 어렵다. 같은 주제를 다루는 더 좋은 뉴스레터가 많으니까. 하지만 이 친구가 약수동의 매력적인 작은 가게들을 안내하는 뉴스레터를 만든다면 어떨까. 약수동을 잘 아는 작가가 동네 골목을 탐방하며 재밌는 가게를 소개하고 주인장 인터뷰까지 들려주는 뉴스레터라면 관심이 간다. 그 사람만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니까. 약수동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구독할 수 있다.
주제를 정한 다음에는 뭘 해야 하나?
글을 공학적으로 설계한다. 구성이 글쓰기의 거의 전부다. 작가들과 책 작업을 해보면 목차 구성이 세밀할수록 좋은 책이 나온다. 목차는 상세할수록 좋다. 책이라면 장별로, 피처나 칼럼이라면 단락별로 개요는 물론이고 분량까지 정하면 좋다. 구조적·시각적 균형이 잡힌 글은 필연적으로 논리적 균형을 이룬다. 독자는 정보를 읽지 않는다. 맥락을 읽는다. 목차를 구성할 때는 정보를 단순 나열해서는 안 된다. 맥락에 따라 배열해야 한다. 그래야 정보의 부가 가치가 올라간다.
책에서 한 챕터를 할애해 ‘은·는·이·가’ 같은 조사에 대해 다뤘다.
조사 사용은 단순한 문법적 약속을 넘어 설득과 소통을 좌우하는 요소다. 예를 들어 논란이 되는 사건이 발생해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제목의 칼럼이 나왔다고 가정해 보자. 이 문장은 정부가 사건의 주체임을 밝히고 있다. 이 문장을 ‘정부는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쓴다면, 문장은 정부를 화제어로 삼아 ‘다른 누구도 아닌 정부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느낌을 강조한다. 미묘한 차이지만, 결과적으로 독자들 사이에서 ‘이번 사건에선 정부의 책임이 확실하지 않나’ 하는 논의가 더 빠르게 퍼질 수 있다.
한국어 문장을 잘 쓰려면 동사를 잘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어는 동사 중심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모호한 서술어만 잘 정리해도 문장이 좋아진다. ‘노력을 했다’는 ‘다른 것이 아닌 노력을 했다’로 읽힐 수 있다. 이 뉘앙스를 의도한 게 아니라면 명사처럼 사용한 동사를 진짜 동사로 만들어야 한다. ‘노력했다’로 쓴다. ‘생각을 했다’가 아니라 ‘생각했다’, ‘결정을 했다’가 아니라 ‘결정했다’라고 쓴다.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처럼 복잡하게 꼬지 말고 ‘후회했다’로 쓴다.
부사와 형용사의 과잉 사용을 경계했다.
글쓰기는 주관을 객관의 영역으로 옮기는 작업이다. 척하면 착 이해하는 독자는 많지 않다. 생각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유실률을 줄여야 독자가 작가의 의도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부사와 형용사는 주관의 언어여서 대개는 유실률을 높인다. ‘빠르게 달린다’라는 말에서 ‘빠르게’의 기준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부사는 감정과 동작을 풍성하게 만들지만, 넘치게 사용하면 문장의 목적을 잃게 한다. 부사와 형용사에 의존하기보다는 동사와 명사로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쓰는 것이 좋다.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김부겸 전 국무총리, 이문열 소설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 교수, 승효상 건축가,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제인 구달, 니콜라스 카 등을 인터뷰하고 여러 권의 책을 냈다. 책에 인터뷰 잘하는 법도 담겼다. 인터뷰라는 포맷이 왜 좋은가?
작가에게 인터뷰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구어성이 강한 텍스트여서 요즘 독자에게 잘 맞기도 하고, 게다가 인터뷰 기사는 시간 투자 대비 품질이 뛰어나다. A4 용지 세 장 분량의 산문을 출판 품질로 써내려면 사나흘은 잡아야 한다. 그런데 인터뷰 기사는 섭외와 준비, 진행에 들어간 시간은 제외하고 원고 작성에 들이는 시간만 따졌을 때, 서두르면 서너 시간 만에도 완성된 원고를 낼 수 있다. 인터뷰가 좋은 또 하나의 이유는 생동감이다. 내가 한 영화감독의 삶과 연출 철학에 관해 아무리 정확하고 구체적인 언어로 에세이를 쓰더라도, 그 영화감독을 인터뷰한 기사보다 생생하게 쓰기는 어렵다. 인터뷰에는 그의 목소리가 담겨 있고, 웃음, 침묵, 제스처까지 드러나기 때문이다. 말을 글로 옮겼으니 생생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구글과 아이폰이 생기면서 생각을 아웃소싱하는 사람이 늘었다. 사람 대신 생각하고 추론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AI까지 나왔다. 많은 사람이 정신적 노동을 대신하는 기술을 이용하면서 그렇게 절약한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깊이 사고하는 능력을 잃는다. 독자 여러분이 쓰는 사람으로 남아 주기를 바란다.
* 2025년 3월 26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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