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기획 김윤호 프로 -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칸 마인드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칸 마인드
제일기획 김윤호 프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모든 같은 고민을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은 크리에이티브를 만들 수 있을까. 아쉽게도, 크리에이티브의 세계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는 있다. 세계 최고의 크리에이티브 축제로 꼽히는 칸 라이언즈(Cannes Lions)다. 이곳에서 좋은 크리에이티브로 인정받는 캠페인을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20년 가까이 칸 라이언즈를 비롯한 국제 광고제 업무를 총괄해 온 김윤호 제일기획 프로는 신간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칸 마인드》를 통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크리에이티브가 만들어지고 평가받는 과정을 세밀하게 해설한다. 김윤호 프로를 인터뷰했다.
TV, 유튜브부터 책, 인스타그램, 뉴스레터까지 콘텐츠가 쏟아진다. 소비자의 관심을 붙들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콘텐츠가 많아지는 동시에 소비자들의 콘텐츠 소비 시간도 늘어나고 있다. 소비자들은 그 시간에 관심 있는 콘텐츠들을 소비한다. 재미있으면 공유하면서 확산시키기까지 한다. 이야기하고 싶은 대상을 정확하게 타기팅하고, 그들이 공유하고 싶을 만큼 공감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경로를 찾아야 한다. 소비자들은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책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만 가지고는 좋은 크리에이티브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매년 세계에서 가장 좋은 크리에이티브로 인정받은 수상작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브랜드가 처한 배경을 자세히 파악해서 명확한 메시지를 만들고, 소비자를 가장 잘 설득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고, 꼼꼼하게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이들이 어우러져 의도했던 결과를 만들어 냈을 때 비로소 좋은 크리에이티브로 인정받는다. 크리에이티브를 전개하는 모든 과정에서 아이디어 사이를 촘촘하게 구조화해야 한다. 아이디어부터 실행과 결과까지 빈틈없이 엮어내야 좋은 크리에이티브라 할 수 있다.
아이디어 사이사이를 구조화하는 방법을 열망, 증명, 기술, 경로, 감각 등 20개의 키워드로 책에서 소개했다. 생성형 AI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서, 아무래도 기술에 먼저 눈길이 쏠린다.

새로운 기술은 그 자체만으로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한 경우가 많다. 더욱이 멋진 아이디어가 새로운 기술을 통해 구현된다면 놀라움은 배가된다. 하지만 기술 그 자체에 집착하면 정작 사람들이 크리에이티브의 본질을 놓친다. 아이디어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기술은 그 아이디어를 더 쉽고, 더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될 때 의미가 있다. 지금은 AI가 모든 것을 바꾸는 시대가 됐다. 앞으로 더 발전하겠지만 이미 ‘AI를 활용해서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는 특별하지 않게 됐다. AI를 활용했다고 요란하게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도구로 잘 쓰였다면 그 자체로 충분하다. 크리에이티브가 돋보이도록 힘을 보태 줬다면, 그(AI)도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기술은 크리에이티브의 좋은 친구다.

더 좋은 크리에이티브를 만들기 위해, 왜 칸 라이언즈에 주목해야 하나?

칸 라이언즈는 세계 최고의 크리에이티브 축제다. 전 세계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리더들이 이곳에 모여 좋은 생각과 크리에이티브를 공유하고 함께 발전해 간다. 행사 자체의 구조와 방향성을 들여다보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여러 현장에서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크리에이티브를 만들고 싶어 하는 젊은 광고인들이나 학생들을 자주 만난다. 크리에이티브에는 교과서나 불변의 원칙 같은 것이 없으니 그들에게는 궁금한 것이 참 많다. 칸 라이언즈에서 업계 리더들이 ‘세계 최고’라며 인정한 캠페인들이 그들의 궁금증에 꽤 많은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칸 라이언즈를 비롯해 국제 광고제 관련 업무를 20년 가까이 하고 있다. 이 업무를 전담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이전에는 국제 광고제 업무가 오롯이 제작들이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제작이 아닌 나에게 이 일이 주어진 것은 다른 시각으로 해결해 보라는 의미였다. 물어볼 사람도 없고 자료도 충분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지만, 새로운 관점으로 국제 광고제 업무를 바라보고 접근한 것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 줬다. 칸 라이언즈를 속속들이 공부하면서 이루고 싶은 것들이 생겼고, 그것들을 하나씩 이루어 가고 있다.

국제 광고계에서 한국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처음 칸 라이언즈에 갔을 때 한국은 구경꾼이었다. 스크린에 보이는 수상작에 감탄하고 박수를 보내며 부러워하기만 했다. 이제는 칸의 무대에서 한국이 불리는 일도 많아졌고 한국 회사에서 개최하는 세미나에는 사람들이 몰리기도 한다. 한국의 1위 광고 회사가 규모로나 크리에이티브로나 글로벌 랭킹 20위 안쪽에 있다고 하면 놀라는 경우가 많다. 이제 중요한 조연 정도의 위치라 할 수 있다. 어워드 업무를 하면서 한국 사람들이 하고자 마음먹으면 결국 이루고 마는 것을 봐왔다. 이제 곧 주연의 위치로 올라설 것으로 기대한다.
책에서 여러 캠페인 사례를 소개했다. 그중 코카콜라의 ‘재활용해 주세요(Recycle Me)’ 캠페인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찌그러진 코카콜라 캔에서 로고를 추출해 빨간 배경 위에 얹고, ‘재활용해 주세요’라는 카피 한 줄을 넣었다. 브랜드 로고를 망가뜨리면서까지 캠페인을 만들 수 있었다니 놀랍다.

그 캠페인을 담당한 오길비(Ogilvy) 뉴욕 크리에이터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광고주는 찌그러진 로고는 그대로 두되, 정상적인 로고를 구석에라도 넣고 싶어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담당 ECD(Executive Creative Director)가 반대했다. 로고를 넣으면 이 아이디어의 의미가 사라진다며, 그렇게 한다면 캠페인을 못 하겠다고까지 버텼다고 한다. 

광고 회사가 광고주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나?

광고 회사 입장에서 광고주의 요구를 거절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캠페인의 주체는 광고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크리에이티브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물러설 수 없는 선이 있다. 그 선을 지키는 일은 광고주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좋은 크리에이티브를 향한 열망, 그리고 광고주를 위하는 열정이 버티는 힘을 만들어 낸다. 버티고 설득한 결과, 이 캠페인은 2024년 칸 라이언즈에서 인쇄 및 출판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코카콜라로서는 무려 10년 만의 칸 그랑프리였다.
페루의 시멘트 브랜드 솔 시멘트(Sol Cement)의 ‘사이트워크(Sightwalks)’ 캠페인은 광고의 기존 영역을 깨트리고 거리로 나왔다.

시선을 우리 일상 어디로 돌려도 크리에이티브의 기회는 있다. 심지어 발밑에도 있다. 매일 지나치는 점자 보도블록에 크리에이티브가 더해져, 장애인을 돕는 새로운 솔루션이 탄생했다. 솔 시멘트는 기존 점자 블록을 개선한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 시각 장애인이 지팡이로 보도를 두드리기만 해도, 눈앞에 어떤 상점이 있는지 알 수 있도록 돕는 새로운 ‘점자 언어 체계’다. 기존 점자 블록을 기반으로, 가로 막대가 있는 구간에 수직선을 배치했다. 시각 장애인은 이 수직선의 개수를 세어 상점의 유형을 구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줄이면 식당, 두 줄이면 은행, 세 줄이면 식료품점, 네 줄이면 약국을 의미한다.

물건 구매를 유도하는 전형적인 광고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

명확히 광고로 인식되는 콘텐츠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회피하는 사람들에게, 크리에이티브는 정보 이상의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존재하는 크리에이티브일 때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 자연스럽게 마주치는 일상의 물건들 속에서 감정적으로 연결되고, 경험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요즘 광고들은 단순히 브랜드를 알리거나 구매를 유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칸 라이언즈의 최근 수상작들을 보면 매출 증대 같은 브랜드의 목적 달성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문제 해결까지 함께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브랜드가 공동체의 문제 해결에 참여해 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많은 브랜드와 기관들이 지속 가능한 솔루션으로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자연의 소리를 아티스트로 등록해 저작권 수익을 자연 보존 기금으로 활용한 스포티파이의 ‘소리 저작권’, 외딴 지역 주민들에게 차량을 무료 대여해 직업 기회를 열어 주면서 새로운 시장도 창출한 르노의 ‘통근용 자동차’ 같은 사례들이다.
사회적 문제 해결이라는 취지는 좋지만, 그래도 결국 광고 아닌가? 광고가 사회적 문제를 진짜 해결할 수 있을까?

2025년 칸 라이언즈의 건강 및 웰니스 부문에서 금사자상을 받은 평등 건강 재단(Equality Health Foundation)의 ‘불평등 빌보드(Inequality Billboards)’ 캠페인은 우편 번호 진단을 실시했다. 이들은 미국 전역 3만 개 우편 번호 지역별로 90만 개 이상의 공공 데이터를 수집해 인접 지역 간 기대 수명 격차를 분석했다. 이 데이터를 인터랙티브 지도에 시각화해 보여 줬다. 격차의 경계선에 옥외 광고 설치물을 배치하고 “이 길을 건너면 10년을 잃습니다” 같은 강렬한 문구를 사용해 광고판이 곧 경고 메시지가 되도록 했다. 각 광고는 zipcodeexam.com으로 연결되어 사용자가 자신의 건강 점수를 조회하고, 그 결과를 지역 정치인에게 전달할 수 있게 했다. 이 캠페인의 목표는 단지 인식 제고가 아니라 지역 사회에 ‘행동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쿠어스 라이트(Coors Light) 맥주의 ‘고장 난 쿠어스 라이트(Coors Lights Out)’ 캠페인은 정말 기발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세계 최고의 야구 선수 오타니 쇼헤이와 콜라보를 했다.

오타니가 파울 볼로 쿠어스의 광고판을 강타한 사건이 계기였다. 전광판이 깨지면서 광고판 속 쿠어스 캔에 검은 사각형이 생겨났다. 쿠어스는 오타니가 만들어 낸 검은 사격형을 수리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이틀 만에 깨진 전광판의 흔적을 그대로 옮긴 스페셜 에디션 쿠어스 캔을 출시했다. 다른 쿠어스 광고판에도 똑같은 위치에 똑같은 모양의 사각형을 만들었다. 쿠어스는 메이저리그나 오타니의 정식 스폰서가 아니라서 오타니를 직접 언급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오타니가 만들어 낸 검은 사각형 하나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쿠어스와 오타니를 단단히 연결해 냈다.

한국에도 기억에 남는 좋은 광고가 많지만, 앞서 소개한 칸 수상작들과 비교할 땐 좀 밋밋한 느낌인데.

해외에 나가서 현지 TV를 비롯해 현지 미디어들을 통해 마주하는 광고들을 보면 칸에서 수상할 것 같은 좋은 크리에이티브가 많지 않다. 단지 수많은 광고 중 대표 선수들의 모습이 크리에이티브하게 보이는 것뿐이다. 한국의 콘텐츠 중 광고는 상대적으로 해외에 노출되는 양이 아직은 많지 않다. 〈케데헌〉이나 〈기생충〉 같은 콘텐츠가 한국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요소들을 아무 설명 없이 내놓고도 전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칸의 수상작들만 보고 해외 광고를 따라가려고 하면 우리는 아무리 잘해도 결국 2등일 수밖에 없다. 지극히 한국적인 우리 광고를 자신 있게 만들어 간다면 곧 한국 광고가 밋밋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올해 6월에도 칸 라이언즈에 다녀왔다. 전년과 비교할 때 크리에이티비티 산업에서 감지되는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었나?

올해 칸 라이언즈의 공식 요약 리포트에 의하면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많은 연사가 크리에이티비티의 힘을 이야기했다. 최고의 크리에이티비티가 차별화, 상업적 성과, 그리고 긍정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AI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크리에이티비티 산업이 대격변의 시대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AI의 영향은 올해 칸의 거의 모든 세션에서 언급되었고, AI를 주제로 하지 않은 강연에서도 끊임없이 회자되었다.

크리에이티비티 산업의 다음 트렌드는 어떤 방향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나?

대격변의 시대에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만 이 시대를 어떻게 겪어내고 변화에 적응하느냐에 따라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다. AI는 개인이 처리할 수 있는 일의 양을 확대하고 있고 그 끝이 어디일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전의 4대 매체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매체로 진화가 이루어졌듯, 각자의 강점을 가진 개인 또는 작은 조직들이 크리에이티비티 산업을 주도할 수 있지 않을까.

꼭 광고인이 아니라도 크리에이티브와 관련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 더 좋은 크리에이티브를 만들려는 이들에게 조언 부탁한다.

칸 라이언즈를 경험한다는 것은 크리에이티브를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정리하는 일을 해본다는 것이다. 종종 이 경험이 자신의 크리에이티브를 발전시켜 줬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먼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결하고 싶은지를 명확히 하기를 권한다. 그다음에 크리에이티브의 핵심인 해결 방법을 고민하면 훨씬 쉽게 목표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순수 예술도 특정 표현을 통해 어떤 메시지나 감정을 전달하겠다는 목표가 있다. 크리에이티브는 더욱 그래야 한다.

글 이연대 에디터

* 2025년 9월 26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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