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저널리즘이 가게를 엽니다.
1. 가게를 엽니다.
북저널리즘은 2017년 서울에서 출판물로 시작했습니다. 책의 깊이에 뉴스의 시의성을 결합해 책과 뉴스를 재정의한다는 미션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단행본 79종과 잡지 5종을 펴냈으며, 우리가 발행하는 모든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멤버십 서비스와 뉴스레터, 라디오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북저널리즘은 콘텐츠 커뮤니티를 지향합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와 저자, 독자와 에디터, 독자와 독자를 연결해 다른 관점을 공유합니다. 교육에 비유하면 인터넷 강의가 아니라 캠퍼스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자면 학교라는 공간이 필요하겠죠. 커뮤니티를 위한 공간을 열어야겠다고 결심한 건 2019년 가을 무렵입니다.
평일 저녁에 독자들이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지만, 수익 구조가 막막했습니다. 수익성을 최우선하지 않더라도 운영비는 벌어야 합니다. 커뮤니티 프로그램에 참가비를 받아도 그것만으로는 서울 도심에서 독립적인 공간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건강한 커뮤니티를 형성하려면 먼저 건강한 수익 구조를 갖춰야 합니다.
커뮤니티 프로그램은 보통 평일 저녁 7시 30분에 열립니다. 그 시간 전까지 공간에서 안정적인 매출을 올려야 합니다. 우리 책을 판매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즈음 제가 만난 책방 창업자들은 애정 어린 조언을 건넸습니다. 생각만큼 책이 팔리지 않는다는 얘기였죠. 굿즈를 함께 팔까도 했지만, 그마저도 신통치 않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2. 좋은 물건을 팝니다.
2020년은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공간을 열고 사람을 모으는 일은 생각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해를 넘기고 2021년을 맞았습니다. 잠시 묵혀 뒀던 공간에 대한 해법을 다시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코로나도 언젠가는 끝날 테고 우리는 그 이후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해 여름 공간의 방향을 얼추 잡았습니다. 저녁에는 커뮤니티 활동을 펼치고, 낮에는 일상의 물건을 파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좋은 물건을 엄선해 소개한다면,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기지 않으면서 고정 수익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테면 조명, 컵, 수건 같은 것들이죠.
우리는 커뮤니티를 만듭니다. 바꿔 말하면 가치와 취향을 공유하는 일을 합니다. 우리 독자의 일상을 채울 양품 ― 오래 쓸 수 있고, 기능적이며, 아름답고, 합리적인 가격의 물건 ― 을 소개하는 것은 독자의 취향을 잘 아는 우리가 잘할 수 있고, 독자에게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좋은 물건이란 뭘까요. 우리는 버려지지 않는 물건에 주목했습니다. 수명이 길고 오래 지나도 여전히 아름답고 기능적이어서 계속 쓰는 물건 말입니다.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하고 폐기하는 문화는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한번 만들어진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3. 이야기를 전합니다.
10년 이상 계속 쓰는 물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고장이 잘 나지 않습니다. 고장이 나도 수리, 수선이 간편합니다. 둘째, 유행에 좌우되지 않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미적 가치가 있어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습니다. 셋째, 이야기가 있습니다. 할머니가 물려준 손거울처럼 말이죠.
오래가는 물건은 내구성, 디자인, 이야기를 지닙니다. 그중 이야기에 우리의 역할이 있습니다. 산업화 시대의 공산품과 달리 이제 많은 물건이 내구성과 디자인을 웬만큼 갖추고 있습니다. 반면 이야기는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유명 브랜드의 물건이라거나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한 물건이라는 게 이야기처럼 회자합니다.
어린 시절 밥을 남기면 이런 얘길 들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얼마나 고생해서 농사지은 쌀인데.” 넉넉하지 않은 형편 탓에 쌀 한 톨 아끼려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조부모가 땀 흘려 만든 쌀이니 낭비하면 안 된다는 얘기로 들렸습니다. 쌀은 쌀인데 그냥 쌀이 아닌 거죠.
내구성과 디자인이 뛰어나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엄선하고, 물건을 만든 사람의 이야기를 소비자에게 전하는 것. 그리하여 소비자가 물건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고 오래 사용하게 하는 것. 우리 가게가 하려는 일입니다.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4. 제작자와 소비자를 연결합니다.
이 가게에서 판매자의 역할은 제작자의 물건을 위탁받아 매장에 진열하고 더 많은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기성 유통업체가 더 잘하는 일이고, 우리가 하고 싶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는 제작자를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제작자의 철학과 의지를 소비자에게 전합니다. 즉, 제작자와 소비자를 연결합니다.
제작자, 소비자, 판매자는 동등한 관계를 맺습니다. 우리는 제작자에게 매입 가격을 낮춰 달라거나 납품 기일을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소비자가 물건을 이해하지 않고 구매하려 한다면 사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제작자와 소비자에게 지속 가능하지 않은 방식은 판매자에게도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처음 공간을 구상할 때만 해도 낮의 일은 저녁에 펼쳐질 커뮤니티 활동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하는 수단이었습니다. 막상 일이 진행되자 낮과 저녁에 벌어질 모든 일이 커뮤니티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 가게에서 주변과 세계를 다시 보게 하는 스토리텔링을 시도하려 합니다.
오는 11월 북저널리즘이 서울 중구 회현역 인근에 가게를 엽니다. bkjn.shop입니다. 북저널리즘이 발행한 책과 엄선한 물건을 전시하고, 북토크와 워크숍 같은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우리는 이 작업이 오프라인 기반의 미디어 프로젝트라고 믿습니다. 전에 없던 활동을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많이 들러 주시고, 많이 참여해 주십시오.
https://www.instagram.com/bkjn.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