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코스비의 재심에서도 숫자가 가진 힘을 볼 수 있었다. 2017년 6월 그를 법정에 세웠던 첫 번째 재판은 심리 무효로 끝났다. 하지만 재심에서 판사는 다섯 명의 추가적인 피해자들이 증언하는 것을 승인했다. 비록 그 사건의 공식적인 원고는 한 명뿐이었지만 원고 측을 지지하는 증언이 많아지면서 배심원단이 유죄 평결을 내릴 수 있었다. 어떤 성폭행범들은 실제로 여러 차례에 걸쳐서 여러 명의 여성들을 성폭행하는데, 이는 사람들이 성폭행에 대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이 실제와 일치하는 흔치 않은 부분이다. 여러 명의 고소인들은 신뢰를 높인다. 특히 고소인 각자가 독립적으로 나섰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혐의의 숫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법적인 의미의 입증이 더 쉬운 것은 아니다.
사법 체계가 실패하면, 사람들은 다른 방법을 찾는다. 예전부터 여성들은 화장실 문에 위험한 남성들의 이름을 적어 놓거나, NSIT(not safe in taxis, 택시를 같이 타면 위험한 동료)의 명단을 공유하는 식으로 익명의 조기 경보 네트워크를 만들어 왔다. 현대로 와서는 뉴욕에서 “미디어 업계의 더러운 남자들(Shitty Media Men)”이라는 제목으로 공유된 명단이 있다. 영국 정가에서도 “웨스트민스터 성범죄자 명단(Westminster Sex list)”이라는 제목의 리스트가 디지털 파일 형태로 공유되었다.
이제는 이런 대응을 돕는 온라인 도구도 있다. 현재 많은 대학교는 칼리스토(Callisto)라는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칼리스토는 성범죄 신고를 꺼리는 이들에게 두 가지의 선택권을 준다. (미래에 제출하고 싶어질 때를 대비한) 신고서를 작성하되 당장 전송하지 않거나, “매칭(Matching)”이라는 페이지에 가해자의 이름을 입력하는 것이다. (대학 당국에서는 여러 명의 피해자로부터 동일한 이름이 입력될 때에만 신고 사실을 알 수 있다). 칼리스토를 운영하는 비영리 단체는 이 시스템을 이용하는 사용자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성범죄 피해 사실을 신고할 가능성이 여섯 배 높고, 훨씬 더 빨리 신고한다고 밝히고 있다.
제도권에서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채 몇 십 년이 지났다. 그리고 미투 운동은 가해 사실을 퍼뜨릴 수 있는 소셜 미디어의 힘과 새로운 연대감을 보여 주었다. 혐의의 양 자체가 너무 많아서 여러 사건에 대한 새로운 수사나 재수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변화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혹은 가해자들을 저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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