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율 하락세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8~2019년에 경찰에 접수된 성폭행 신고 건수는 2014년 이후로 거의 세 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기소된 사건의 수는 최근 10년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FBI 데이터에 따르면, 2018년에 경찰에서 종결(기각한 사건까지 포함)로 수사를 마무리 지은 성폭행 사건의 비율은 불과 33퍼센트였는데, 이는 1960년대 이후로 가장 저조한 “사건 해결 비율”이었다. 성폭행보다 해결 비율이 저조한 것은 강도 사건뿐이었다. 낮은 사건 해결 비율은 경찰이 복잡한 사건들을 좀 더 오래 수사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성폭행 사건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경찰은 조를 심문하기로 결정한다. 그는 제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는 자신에게 새로운 연인이 생겨서 그녀가 질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관심을 끌기 위해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다”고 그는 말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조의 이야기는 대중의 선입견에 들어맞는다. 남자들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신고하는 여성들의 대부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 말이다. 여론 조사 기관인 입소스 모리(Ipsos Mori)에 따르면, 미국인 남성의 57퍼센트와 여성의 48퍼센트는 “남성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가짜로 고소하는 일이 매우 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거의 900명에 달하는 미국 경찰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는 절반 이상의 경찰관들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신고의 10~50퍼센트 정도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열 명 중 한 명의 경찰관은 50~100퍼센트 정도가 거짓말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코노미스트》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투 운동 이후, 사람들은 성추행이나 성폭행 거짓 신고가 늘어날 것에 대해 그전보다 더 많이 우려하고 있었다.
거짓 신고 비율이 정확히 얼마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매사추세츠대학교에서 퇴직한 데이비드 리삭(David Lisak)의 신뢰도 높은 연구에 따르면 거짓 신고 비율은 대략 2~8퍼센트 사이로 좁혀진다.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에게는 그 과정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가는 악몽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경찰이 고소인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면, 성폭행 피해자들은 전면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성폭행범들은 처벌받지 않고 성폭행을 저지를 것이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양쪽의 증언을 모두 신중하게 다루는 시스템입니다. 이런 시스템은 양쪽의 말을 모두 기계적으로 사실이라고 믿는 것과는 다릅니다.” 케임브리지대학교 존 스펜서(John Spencer)의 말이다.
거짓 신고는 실제 사건에 비해 일반인이 흔히 생각하는 성폭행의 형태와 비슷할 가능성이 크다. (폭력 행위, 가해자가 낯선 사람, 어두운 골목 등) 로스앤젤레스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다룬 2014년의 연구에서 연구원들은 성폭행 혐의를 받는 사건의 4.5퍼센트를 거짓이라고 판단했다. 거짓으로 판단한 사건의 4분의 3 이상이 무기를 사용하거나, 용의자가 여러 명이거나, 부상을 입는 등 사실일 경우 가중 처벌이 적용되는 사건이었다.
수사관들은 제인이 신고한 내용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몇 군데의 빈틈이 있었다. 그녀는 둘이서 조의 아파트까지 어떻게 이동했는지 기억하지 못했고, 언제 어떤 방법으로 집에 돌아왔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조의 집에 있는 소파에 대해서는 삐걱거리는 소리까지 포함해서 놀라울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실제로 조의 집에 있는 소파에서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웃들은 다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인은 다퉜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녀는 자신이 굳어 있었다고 말한다.
물리적인 증거도 없다. 제인은 신체적으로 부상을 당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녀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어떤 경우든 조는 둘의 성관계를 부정하지 않는다.
휴대전화 기록을 살펴보니, 제인은 사건 다음 날 아침 친구인 샐리에게 문자를 보냈다.
“당장 얘기 좀 해 :( 전화할 거지?”
샐리의 수첩에서 제인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제인은 조를 처음 알게 된 후 몇 주 지나서 두 개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었다.
“심심해요. 뭐하세요?”
“여름 파티에 가실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조는 두 문자에 답장하지 않았다. 제인이 샐리에게 문자를 보냈던 날, 조는 친구에게 “그 여자랑 아주 정신없이 즐겼어”라는 문자를 보냈다.
진술 기록 이외의 양측에 대한 조사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피해 여성의 기억, 여성의 신체, 여성의 디지털 기록.
사람이 기억하고 잊어버리는 방식의 특성으로 인해 성폭력 사건은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트라우마의 기억은 특정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아주 놀라울 정도로 자세하게 저장되는 반면, 다른 세부적인 사항들은 흐릿하거나 잊힐 수도 있다. “생존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특성이 완벽하게 설명됩니다.” 하버드 의대의 짐 호퍼(Jim Hopper)의 말이다. “우리의 두뇌는 미래에 피해야 하는 것은 기억하지만, 건넌방에서 일어나는 일은 굳이 기억하지 않도록 진화했습니다.” 술이 개입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자신을 성폭행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3분의 1 이상은 사건을 당했을 때 술을 마신 상태였다고 말했다. 과음을 하면 사람은 의사를 표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의식을 잃게 된다. 술을 적당히 마셨더라도 주변적 상황에 대한 기억은 흐릿해질 수 있다.
신체적으로도 사람들이 예상하는 그런 증거는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합의하지 않은 성관계였다고 해서 언제나 부상이나 신체적인 외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 이유로는 “긴장성 무운동(tonic immobility)”을 들 수 있다. 이는 신체에서 힘이 빠지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스웨덴의 한 연구에 참여한 성폭행 사건 피해자의 3분의 2는 긴장성 무운동 증상을 겪었다고 대답했다. “여전히 피해자들은 성폭행 후 외음부에서 눈에 띌 정도의 파열이 발견되지 않으면 거짓말을 한다는 의심을 받는다.” 페미니스트 작가인 케이트 하딩(Kate Harding)은 자신의 저서 《그것을 요구한다(Asking for it)》에서 이렇게 썼다.
디지털 기록은 잠재적인 증거를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원천이다. 증인 진술이나 다른 증거들만으로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면, 배심원들은 원고 측의 이야기나 피고 측의 이야기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배심원들의 의심을 키우기 위해 피고 측 변호사들은 종종 원고의 신뢰도를 깎아내리려는 시도를 한다. 대부분의 국가들에서는 사건 이전의 부정한 행실에 대한 자료를 긁어모으는 행위가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폭행 사건이 일어난 관계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는 일은 여전히 허용되고 있다.
영국의 경찰과 검찰은 원고 측의 전화 기록을 조사해 피고 측에 공개하지 못해 많은 성폭행 사건에서 패소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런 이유로 통화, 이메일, 채팅 기록을 사생활 침해 수준으로 들여다본다면 결국 “디지털 알몸 수색”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고발인이 스태퍼드 진술서(Stafford statement)라는 문서에 서명을 하면 병원 진료 기록을 포함해서 광범위한 디지털 기록들에 접근할 수 있다. 이런 사생활 침해는 피해자들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수사가 끝나자, 검사는 이 사건의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서 법정으로 갈 수 없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제인의 이야기가 소셜 미디어에 등장한다. 그것을 본 또 다른 여성 한 명이 나타나서 조가 자신에게도 똑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익명의 블로그 게시글 글쓴이는 20년 전에 조와 함께 인턴 사원으로 일했던 적이 있는데 그가 “정말로 소름 끼치는” 사람이었으며 “자신의 성기에 대해서 계속해서 이야기했다”고 주장했다.
제인과 조가 일하는 은행의 인사 담당 부서는 대혼란을 겪게 된다. 많은 여성 직원들과 일부 남성 직원들이 조와 함께 있으면 불편함을 느낀다고 말을 한다. 조가 코치로 일하고 있었던 지역 소녀 축구 클럽은 사임을 요청한다. 여자 친구는 그를 떠난다.
석 달이 지나고 제인은 일을 그만둔다. 같은 직장에 있는 조의 친구들이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제인은 불안감으로 고통받고 있다. 조는 새로운 여자 친구가 생겼고, 같은 은행의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다.
숫자가 중요하다
“30명의 여성이 더 나타나서 이런 일로 고소를 한다고 해도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레스는 우리의 리더이고, 그에 대한 저의 견해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2018년 7월, 아놀드 코펠슨(Arnold Kopelson)은 CBS 방송국의 동료 임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시 이 회사의 CEO 레스 문베스(Les Moonves)는 성 추문에 시달리고 있었다. 단 한 건으로 시작되었던 고소 건수는 급격하게 늘었다. 하지만 코펠슨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점점 더 불어나는 숫자를 신경 쓰기 시작했다. 결국은 주주들까지 신경 쓰게 되었다. 문베스는 대표 자리에서 쫓겨났다. 만약 제기된 혐의들의 공소 시효가 만료되지 않았다면 그는 기소되었을 수도 있다. 문베스는 모든 혐의들을 부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