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을 정도로 톡 쏘는 신맛
2011년에 당시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덴마크 코펜하겐의 노마(Noma)에서 운 좋게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면 노마의 시그니처 요리를 맛봤을 것이다. 익히지 않은 북해산 맛조개 한 점에 거품을 낸 파슬리 소스를 두르고 서양고추냉이 가루를 올린 요리다. 겨울철의 혹독한 노르딕 해안선을 연상시키려 한 이 요리는 기술적으로나 개념적으로나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정작 요리보다 더 눈에 띈 것은 함께 나온 한 잔의 음료였다. 탁하고 산미가 두드러진 화이트 와인이었는데, 프랑스 루아르 밸리의 이름 없는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것으로 당시 병당 8유로 정도면 구입할 수 있었다. 300유로짜리 메뉴와 함께 내놓을 와인으로는 분명 특이한 선택이었다. 이 와인은 농약이나 화학 비료, 방부제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만든 이른바 ‘내추럴 와인’으로서 한 세대에 걸쳐 와인 업계 최대의 갈등을 촉발시킨 운동의 산물이다.
내추럴 와인은 인기가 높아지면서 코펜하겐의 노마, 산세바스티안의 무가리츠(Mugaritz), 런던의 히비스커스(Hibiscus)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스토랑 여러 곳에서 주요 메뉴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와인들이 지나치게 가공되어 왔으며 현지 재료의 사용을 중시하는 식문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믿는 소믈리에들도 내추럴 와인을 지지하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현재 런던 소재 레스토랑들이 보유한 와인 리스트의 38퍼센트가 최소 한 병 이상의 유기농 와인, 바이오다이내믹 와인 또는 내추럴 와인을 갖추고 있다(항목은 겹칠 수 있다). 2016년에 비해 세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2017년 《타임스(The Times)》는 ‘내추럴 와인의 유행’이라는 기사에서 “내추럴 와인의 기묘하면서도 놀라운 맛은 온갖 종류의 향과 특이한 맛으로 당신의 감각을 뒤흔들 것”이라고 평했다.
내추럴 와인 시장의 성장과 함께 이를 견제하는 적도 생겨났다. 내추럴 와인을 폄하하는 많은 이들에게 내추럴 와인은 일종의 러다이트 운동이자 포도 재배의 백신 거부 운동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과학이 애써 근절해 온, 사과주 맛과 신맛이 나는 결함 와인을 높이 평가하는 운동 말이다. 이들의 관점에서 내추럴 와인은 진보를 역행하여 로마 소작농의 입맛에나 맞는 와인으로 회귀하려는 트렌드다. 영국 시사 주간지 《스펙테이터(The Spectator)》는 내추럴 와인을 ‘상한 사과주 혹은 부패한 셰리주’에 비유했고 《옵저버(The Observer)》는 ‘울고 싶을 정도로 톡 쏘는 신맛’이라고 평했다.
일단 자신이 무엇을 찾는지만 알면 내추럴 와인을 구별하기란 어렵지 않다. 내추럴 와인은 전통적인 와인에 비해 강한 냄새와 탁한 색, 풍부한 과즙, 강한 신맛, 대체로 실제 포도 맛에 충실한 것이 특징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내추럴 와인은 6000년 전 인간이 최초로 와인을 빚기 시작했을 때 인간을 매료시켰던 핵심 요소로의 회귀를 상징한다. 내추럴 와인 옹호론자들은 와인 제조 방식에서부터 좋고 나쁜 와인에 대한 비평가들의 기준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1300억 유로(171조 917억 원) 규모 와인 산업의 거의 모든 것이 윤리적, 생태적, 심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포부가 있다면 지난 수십 년간 와인 업계의 호황과 함께 생겨난 인위적인 요소들을 걷어 내고 와인이 본연의 모습을 되찾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와인 비평가들 사이에는 그들이 평생을 바쳐 지켜 온 규범과 위계질서를 내추럴 와인 운동이 허물려고 한다는 의혹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전통주의자들을 특히 분노케 하는 것은 실제 내추럴 와인이라고 하는 것이 모호하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와인 비평가 미셸 베딴느(Michel Bettane)는 “현재 내추럴 와인에 대한 합법적인 정의는 없다”고 말했다. 또 “스스로 존재한다고 하니 그런 것이다. 내추럴 와인은 한계생산자[1]들이 만들어 낸 공상이다”라고 덧붙였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와인 비평가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는 내추럴 와인을 ‘불확실한 사기’라고 했다.
하지만 엄격한 규칙이 없다는 점은 내추럴 와인 옹호론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요소다. 최근 런던에서 열린 내추럴 와인 박람회에서 만난 와인 제조자들은 달의 주기에 맞춰 포도를 재배했고 컴퓨터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어떤 사람은 조지아산맥의 야생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만들었다. 한 부부는 옛 스페인의 와인 양조법을 부활시켰는데 커다란 투명 유리병에 와인을 담고 바깥에 두어 햇볕을 쬐도록 했다. 또 어떤 이들은 고대 로마 시대의 선조들이 그랬듯이 손으로 빚은 점토 항아리에 와인을 담아 숙성시키고 항아리를 땅에 묻어 낮은 온도를 유지했다.
루아르 밸리 출신의 세바스티앙 히포(Sebastien Riffault)는 창립 10년을 맞은 내추럴 와인 협회(L’Association des Vins Naturels)를 이끌고 있다. 그는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고 한 세기 전 방식으로 와인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기본 양조 방식이라고 밝혔다. 이는 손으로 직접 수확한 유기농 포도만을 사용하고 포도밭에서 채집한 야생 이스트(효모균)로 천천히 발효시키는 것을 의미했다(대다수 와인 제조자들은 실험실에서 배양한 이스트를 사용하는데 ‘F1 경주용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발효 속도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라고 히포는 설명한다). 와인에 항균성 화학 첨가제를 전혀 넣지 않으며 모든 내용물은 필터링 작업을 거치지 않고 병입된다. 그 결과 히포의 와인 상세르(Sancerre)는 짙은 호박색을 띠고 당도가 높으며 결정화된 꿀과 절인 레몬 맛이 난다. 훌륭한 와인이긴 하지만, 프랑스 정부 공식 가이드라인의 상세르 와인에 대한 묘사인 ‘신선한 시트러스와 흰 꽃’ 향에 ‘연노란색’과는 거리가 멀다. “모두를 만족시킬 와인은 아닙니다. 패스트푸드처럼 만들지도 않았죠. 하지만 100퍼센트 순수한 와인입니다”라고 히포는 말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히포를 비롯해 그와 생각을 같이하는 이들은 무시를 당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주류 시장에서 기반을 확보했고 그들의 접근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와인을 크게 바꿔 놓을 수 있다. 부르고뉴 지방의 내추럴 와인 제조자 필립 파칼레(Philippe Pacalet)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내추럴 와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거죠. 하지만 셰프들이 바뀌고 소믈리에들이 바뀌고 모든 세대의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제는 내추럴 와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겁니다.”
현대 와인의 생태적 문제
와인이 더욱 자연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얼핏 보기엔 터무니없다. 병 라벨에 드러나는 와인의 도상학은 구불구불한 초록빛 언덕과 마을의 수확 풍경, 천천히 셀러(cellar, 포도주 저장실)를 거닐며 신비로운 발효 과정을 확인하는 양조자 등 평온한 세계를 보여 준다. 포도는 새로운 모습으로, 하지만 비교적 순조롭게 와인 잔에 도달한다.
하지만 내추럴 와인 옹호론자들이 지적하다시피 오늘날 와인 대부분의 생산 방식은 그림 속 풍경과는 완전히 다르다. 포도밭은 농약과 화학 비료 범벅이다. 병충해에 취약하기로 악명 높은 포도를 지키기 위해서다. 프랑스 정부의 2000년 보고에 따르면 전체 경작지에서 포도밭이 차지하는 비중은 3퍼센트에 불과했지만 포도밭에서 사용된 농약은 전체의 20퍼센트를 차지했다. 2013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와인의 90퍼센트에서 농약 성분이 검출되었다.
상황이 이러하자 몇 안 되는 포도밭에서 유기농 경작을 도입했고 그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포도 수확 이후의 과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유기농 포도를 사용한다고 해도 내추럴 와인 지지자들 입장에서 끔찍한 것은 마찬가지다. 오늘날의 와인 제조자는 실험실에서 배양한 강력한 이스트에서부터 항균제, 산화 방지제, 산도 조절제, 필터링용 젤라틴, 심지어 산업용 기계 장비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도구를 이용할 수 있다. 와인은 칼슘·포타슘 결정이 형성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전기장을 통과하게 된다. 공기를 첨가하거나 차단하기 위해 다양한 가스도 주입된다. 또 역삼투압 방식으로 와인을 구성하는 액체 성분을 분리해 더욱 만족스러운 알코올-포도즙 비율로 재구성한다.
내추럴 와인 제조자들은 이 중 어느 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와인 제조의 기본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단순하다. 바로 잘 익은 포도를 한데 모아 잘 으깨는 것이다. 포도 표피의 이스트가 과육 속의 달콤한 포도즙과 만나면 당분을 먹어 치우기 시작한다. 이스트는 공기 중으로 이산화탄소 거품을 방출하고 혼합물에 알코올을 분비한다. 이 과정은 더 이상 당분이 남아 있지 않거나 이스트가 살아남지 못할 정도로 주위의 알코올 농도가 높아질 때까지 계속 진행된다. 엄밀히 말하면 이 시점에서 와인은 이미 완성된 것이다. 인간이 최초로 와인을 빚은 이후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와인 제조는 고도의 기술이 되었지만 근본적인 화학 작용은 변하지 않았다. 발효는 불가분의 단계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발효 이전에는 포도즙이고 발효 이후에는 와인이 된다.
“포도나무와 사람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스트예요.” 파칼레가 경건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토양의 속성을 표현하고 싶다면 생태계를 이용하면 됩니다. 만약 산업 기술을 이용하게 되면 설령 단순한 작업이라 할지라도 산업 제품을 만드는 것이죠.” 그의 말처럼 다소 영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와인 제조자가 해야 할 일은 포도를 건강하게 키우고 발효 단계까지 관리하되 개입은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는 현대 와인 제조자들이 지금껏 상품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해주었던 제조 방법을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다.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특정 지역의 와인은 언제나 특정한 맛이 나야 한다고, 또 와인 제조자는 마치 지휘자처럼 청중이 기대하는 음을 연주할 때까지 와인의 다양한 요소를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거나 억제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주류 와인 문화의 기대를 버려야 한다. “상세르는 상세르다운 맛이 나야 합니다. 품질은 그 다음 문제죠.” 영국 멤버십 와인 클럽 67 폴 몰(Pall Mall)의 로난 세이번(Ronan Sayburn) 마스터 소믈리에는 말한다.
여전히 와인 업계의 문화적·상업적 중심지인 프랑스에서 수용 가능한 와인 제조 방식은 단순히 역사와 관습의 문제가 아니라 법제화되어 있다. 특정 지역에서 생산한 와인임을 표시하려면 사용 가능한 포도 품종과 생산 기법, 생산된 와인에서 나는 맛에 관한 엄격한 지침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이때 조사관과 블라인드 테이스팅 패널이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ôlée, 원산지 명칭 통제) 또는 PDO(Protected Designation of Origin, 원산지 명칭 보호)라고 하는 인증 절차를 진행한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와인에는 ‘뱅 드 프랑스(Vin de France)’라는 라벨이 붙는다. 이는 낮은 품질의 와인임을 가리키는 일반 명칭으로[2] 구매자 입장에서는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부 내추럴 와인 제조자는 이 인증법에 반기를 들어 왔다. 해당 법이 와인을 망가뜨리고 있는 지배적인 제조 방식과 방법에 오히려 힘을 실어 주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내추럴 와인을 만드는 올리비에 꾸장(Olivier Cousin)은 2003년에 지역 AOC를 탈퇴하기로 했다. 그는 내게 보낸 편지에서 AOC 기준을 충족하려면 포도밭에 기계를 들이고 이산화황과 효소, 이스트를 첨가하고 살균 및 필터링 작업까지 해야 한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그는 자신이 만든 와인의 산지명 ‘앙주(Anjou)’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사용하다 원산지 표시 위반으로 기소되기도 했다. 그러자 꾸장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법정 계단까지 짐수레 말을 타고 가서는 문제가 된 자신의 와인을 행인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는 와인 라벨을 바꿔야 했다.
아버지로부터 포도밭 몇 곳을 물려받은 밥티스트(Olivier Baptiste)는 ‘AOC는 거짓말쟁이들’이라며 “애초 소규모 생산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원산지 표시가 오히려 와인의 질만 떨어뜨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더 이상 나쁜 빈티지는 없다
특정 지역의 와인에서 어떤 맛이 나야 하는지에 대한 기대감은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그 기대감을 바탕으로 세워진 전 세계 와인 산업은 대체로 지난 세기의 산물이다. 만약 내추럴 와인이 무언가에 대한 반발이라면, 와인 제조의 전통적인 방식을 시장의 규모와 수요에 맞출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한 반발일 것이다. 경제적 성공과 함께, 세계화는 와인 산업을 활기 없고 대중 영합주의적인 순응으로 서서히 몰아가고 있다.
프랑스는 오랜 세월 동안 와인 산업의 중심이었지만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포도밭은 소규모였고 수작업 의존도가 높았다. 내추럴 와인 제조자들이 보기에 와인 업계의 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수십 년이 지난 뒤였다. 프랑스의 포도밭이 현대화되고 와인 산업이 글로벌 경제의 거대 산업으로 성장한 시기다. 환멸을 느낀 내추럴 와인 제조자들 입장에서 보면 와인 산업의 기술적·경제적 성공담은 어쩌다 와인이 길을 잃게 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만 해도 프랑스 내의 트랙터 수는 3만 5000대에 불과했다. 이후 20년 동안 그 수가 백만 대 이상 늘어났고, 미국산 농약과 화학 비료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양조학자들은 과학의 힘을 빌려 와인의 질을 향상시켰다. 특히 두 양조학자 에밀 뻬노(Emile Peynaud)와 파스칼 리베로-가용(Pascal Ribéreau-Gayon)은 부단한 연구를 통해 양조학의 학문적 정통성을 최초로 확립했고 실험실과 양조 현장 사이에 가교를 놓았다. 뻬노는 “지금까지 우리는 그저 우연히 훌륭한 와인을 만들었다”고 단언했다. 앞으로는 더욱 철저하게 와인을 만들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뻬노는 와인 제조 방식의 표준화에 기여했다. 그의 업적 가운데 가장 단순하면서도 위대한 것은 와인 제조자들이 더 나은 품질의 포도를 수확하고 더 위생적인 설비를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그 외에도 산성도pH, 당도, 알코올 농도 등에 대한 시험을 개척하여 대중화했다. 이는 와인 제조에 예전에는 없던 과학적 명확성을 가져다주었다.
와인 제조 방식의 현대화는 엄청난 성공을 가져왔다. 1970년대 말 프랑스 와인의 총 수출액은 10억 달러였다. 불과 20년 전에 비해 10배 가까이 늘어난 데다, 경쟁국인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의 와인 수출액을 전부 합친 것보다 많은 금액이다. 와인 시장이 커지자 다른 나라들도 앞다투어 프랑스 모델을 모방했다. 프랑스 출신 기술자들과 컨설턴트들은 전 세계의 신규 와이너리에 고용되어 양조학과 전통 프랑스 양조 방식을 전수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컨설턴트 미셸 롤랑(Michel Rolland)은 한때 전 세계 100여 곳의 고객과 일하기도 했다.
와인 생산에 뛰어드는 나라가 늘어나면서 모두 프랑스 방식대로 와인을 제조했다. 프랑스 와인의 왕이라 불리는 보르도 지역의 품종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메를로(Merlot)는 칠레에서 캐나다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새로운 포도밭에서 경작되었다. 수익과 명성 측면에서 프랑스의 뒤를 이어 큰 격차로 세계 2위 자리를 지켜 온 이탈리아조차 토스카나 지역에서 재배한 프랑스 전통 품종으로 보르도식 와인을 만들었고, 국제 와인 경연 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했다.
1980년대 이후, 묵직한 맛과 약간의 단맛, 높은 알코올 도수가 특징인 보르도식 와인은 프랑스 컨설턴트의 도움으로 계속해서 전 세계 와인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보르도식 와인은 새로운 세대의 비평가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중 한 명이 바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로버트 파커다. 자칭 ‘소비자 권익 옹호론자’인 그는 미국 메릴랜드의 자택 사무실에서 해마다 1만 병의 와인을 시음하는데, 그의 추천에 따라 와인 제조자의 한 해 성패가 좌우되기도 한다[영국의 와인 비평가 휴 존슨(Hugh Johnson)은 전 세계 와인 업계의 성쇠를 좌지우지해 온 로버트 파커를 가리켜 ‘제국적 패권주의’에서 탄생한 ‘미각의 독재자’라 평했다].
파커와 동료 비평가들이 높이 평가한 종류의 와인은 국제주의 스타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표현에는 경멸의 느낌이 섞여 있다. 특색 없는 국제주의로 인해 와인의 종류와 산지 사이의 연결 고리가 끊어졌다는 느낌 말이다. 사실 이 같은 비판은 반박하기가 어려웠다. 한 가지 예로 1970년대 이후 이탈리아 토착 품종의 경작 면적은 절반으로 감소하고 프랑스 전통 품종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1990년대 초 프랑스의 연간 와인 수출 규모는 40억 달러를 상회했는데, 이는 여전히 이탈리아보다 두 배 이상, 미국과 호주, 남미 전역 등의 신규 경쟁국에 비하면 10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또한 제조 방식 측면에서도 모두가 여전히 프랑스 방식을 따랐다. 오늘날 미국이나 영국에서 판매하는 가장 저렴한 레드 와인을 보더라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프랑스 와인의 우위를 확인할 수 있다. 훈연한 나무 칩을 와인에 띄워 프랑스산 오크통의 바닐라와 스파이스 향이 나도록 하고, 설탕과 자주색 착색제를 섞어 양질의 보르도 와인이 지닌 부드러운 단맛과 짙은 색깔을 흉내 냈을 가능성이 높다.
1990년대 들어 보르도의 와인 제조자 브루노 프라(Bruno Prats)가 한 것으로 알려진 말은 주요 와인 매체에 거듭 실렸고, 마치 신성한 주문이라도 되는 양 와인 투자자들 사이에 회자되었다. “더 이상 나쁜 빈티지는 없다”는 발언이었다. 경작 및 양조 기술의 발전이 자연을 거의 정복했다는 의미다. 2000년, 지금은 고인이 된 와인 저널리스트 프랭크 프라이얼(Frank J. Prial)은 《뉴욕타임스》에 다음과 같이 기고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전 세계 와인 제조자들은 셀러와 포도밭에서 더 이상 빈티지 차트(연도별로 와인 제조에 적합한 해였는지 아닌지를 고려하여 비평가가 작성한 기록)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냉전 종식으로 일부 사람들이 10년이나 일찍 ‘역사의 종언’을 선언한 것처럼 인류가 와인의 종착지에 도달한 듯했다.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내추럴 와인의 기초
와인 산업이 기술을 받아들인 덕분에 와인은 그 어느 때보다 생산량이 늘어났고 수익성도 개선되었으며 앞날을 예측하기 쉬워졌다. 하지만 1980년대에 프랑스 와인이 글로벌 시장 장악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을 때 와인 제조자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후에 내추럴 와인으로 알려지게 된 것의 청사진은 부르고뉴 지방 남단에 위치한 보졸레 지역에서 나왔다. 1950년대 보졸레 지역에서는 신속하게 생산되어 시즌 초에 출시되고 저렴한 가격에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와인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를 만들기 시작했다. 보졸레 누보는 큰 인기를 누렸다. 게다가 1970년대 말 즈음에는 대략 뉴욕시 크기와 맞먹는 보졸레 지역에서 해마다 1억 리터 이상의 와인이 생산되었고, 호주와 캘리포니아주의 와인을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이 수출되었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거둔 성공에도 불구하고 보졸레는 기술적인 와인 제조가 도를 넘은 비참한 사례로 남았다. 《뉴욕타임스》는 와인 제조자들이 권고 수확량을 두 배로 늘리기 위해 포도나무를 ‘몰아붙이는’ 방법(faire pisser la vigne, 포도나무가 마치 오줌을 싸듯 많은 양의 포도즙을 만들게 하는 과정)을 사용했다며 비난했다. 단기간 내에 보졸레 누보를 생산하기 위해 와인 제조자들은 실험실에서 배양한 이스트로 발효 과정을 시작하고 대량의 유황으로 발효를 중단시키는 방식으로 일정을 앞당겨 와인을 안정화시켰다.
보졸레 지역의 소규모 반대자들은 이 같은 컨베이어벨트식의 와인 생산을 혐오했다. 이들은 마르셀 라삐에르(Marcel Lapierre)라는 와인 제조자를 중심으로 세력을 규합했다. 라삐에르는 2010년 사망 후 ‘내추럴 와인의 교황’으로 널리 칭송받은 인물이다. 그의 동료들에 의하면 라삐에르는 화학 물질이 보졸레 와인의 맛을 망쳐 놨고 동시대인들이 엄청난 속도로 질 낮은 와인을 생산함으로써 “스스로의 미래를 저당 잡혔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그는 시장의 수요와 보졸레 AOC의 제약이 와인 제조를 옥죄고 있다고 느꼈다.
라삐에르는 명확한 혁명 노선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급진주의자였다. 또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기 드보르(Guy Debord)와 상황주의 시인 알리스 베커-호(Alice Becker-Ho)의 친구이기도 했다. “우리는 다른 삶을 살고 싶었고 다른 와인을 내놓고 싶었어요. 우리 자신을 존중하는 와인, 그리고 마시는 사람을 존중하는 와인 말이죠”라고 라삐에르의 조카이자 와인 제조자인 필립 파칼레가 말했다.
그들은 예상 밖의 출처에서 나온 이단적인 아이디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80년 라삐에르는 부유한 지역 와인상 쥘 쇼베(Jules Chauvet)를 만났다. 당시 70대의 쥘 쇼베는 수년간 일체의 첨가물 없이 소량으로 와인을 만들어 왔다. 화학을 전공하고 발효에 관하여 폭넓게 논문을 저술해 온 그는 건강하고 다양한 야생 이스트를 같은 포도밭에서 채취하여 사용할 때 가장 복잡하면서도 바람직한 와인의 부케(bouquet, 와인의 발효와 숙성 과정에서 생기는 향)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산화황은 강력한 항균제이기 때문에 쇼베는 이산화황을 비롯한 기타 첨가제가 이스트의 활동을 방해하는 ‘독’이 된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와인 제조에 있어서 쇼베가 정한 원칙은 발효 및 화학 물질 배제에 대한 그의 집착에서 나왔다. 첫째, 야생 이스트를 채취할 수 있도록 무농약 농법으로 포도를 건강하게 재배해야 한다. 둘째, 와인 제조는 느린 속도로, 매우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썩은 포도가 조금이라도 포함되어 있거나 비위생적인 설비를 사용했을 경우 전체 양조 과정이 실패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파칼레는 “쇼베가 우리에게 이러한 원칙과 과학적 근거를 알려 주었다”고 말하며 쇼베의 기법을 ‘내추럴 와인의 기초’라고 묘사했다.
이 모든 것들이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였을지는 두말할 것도 없다. 1980년대에 유황을 사용하지 않고 와인을 제조하는 것은 마치 로프 없이 산을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정부는 19세기 이후로 유황의 사용을 장려하고 법률로 규정했고, 현대 양조학자들도 유황 없이 와인을 만들기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유황을 사용하면 발효 과정을 통제하고 박테리아에 의한 부패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황은 한마디로 와인 업계의 페니실린이라 할 만한 만병통치약이었다.
유황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괜찮은 와인을 만들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지만 라삐에르와 동료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라삐에르의 일기에는 작황이 좋지 않았던 해와 빈티지 전체를 뿌옇고 신맛이 도드라지게 만든 변덕스러운 이스트, 그리고 거의 15년간의 실험 기록이 담겨 있다(쇼베는 1989년 사망했다). 결국 그는 1992년 즈음에 이르러 ‘인위적인 개입을 줄인’ 양질의 와인을 일관되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불가능한 일을 해낼 수 있음을 입증했지만 라삐에르와 동료들이 거둔 성공은 낯선 것이었다. 그들은 마치 지리적·문화적 주류에서 완전히 벗어난 채 이목을 끄는 밴드 같았다. 지역 주민들의 눈에 비친 그들은 괴짜였다. 와인 저널리스트 팀 앳킨(Tim Atkin)은 푸드 매거진 《사뵈르(Saveur)》에 기고한 글에서 “등 뒤에서 그들을 비웃는 이웃들이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라삐에르와 동료 내추럴 와인 제조자들에게도 파리와 해외에 비록 적지만 열성적인 추종자들이 생겨났다. 그들을 대신해 기꺼이 내추럴 와인을 전파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1990년대에 처음 내추럴 와인을 시음했을 때 제 몸이 떠오르는 줄 알았습니다. 세상에! 쇼베의 영혼이 살아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2010년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와인 수입업자 커밋 린치(Kermit Lynch)가 밝혔다. 일본인들도 초기에 내추럴 와인으로 전향한 열성적인 추종자들이었으며 ‘최초의 큰손 고객’이었다고 올리비에 꾸장은 말했다. “그들은 훌륭한 미각을 가지고 있었고 씀씀이도 컸다”고 덧붙였다.
유황을 사용하지 않고 와인 제조를 시도한 사람은 라삐에르만이 아니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전역의 수많은 와인 제조자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헌신과 와인 제조자로서의 능력, 쇼베의 와인 제조 과정에 대한 과학적 검증이 맞물리면서 반향이 일어났다. 오랜 기간 남모르게 기울여 온 라삐에르의 노력은 다른 수많은 와인 제조자들의 지지로 마침내 그 정당성이 입증되었다. 그들은 라삐에르의 프로토타입을 발판 삼아 그들만의 내추럴 와인 운동을 시작했고, 관습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며, 와인 산업의 ‘문 앞의 야만인’이 되었다.
완벽함의 대안
1990년대 내추럴 와인이 보졸레 지역을 벗어나 프랑스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자 재미있게도 반현대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상당수 와인 제조자들은 하이퍼 로컬리즘(철저한 지역주의)을 수용하여 유행과는 거리가 먼 토착 품종을 심고 오래전 생산 기법을 도입했다. 루아르 밸리에 기반을 둔 한 단체는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을 관통하는 신비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다.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은 거의 한 세기 전에 오스트리아의 오컬트 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가 창안했다(슈타이너는 논란의 대상인 대안 학교 발도로프 학교의 창립자이다). 이 농법은 포도밭의 생물 다양성을 증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뿔과 내장을 땅에 묻어 우주 안테나로 사용하는데, 슈타이너에 따르면 “생명을 주는 것이나 별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우주로 되돌려 보내 준다”고 한다.
오랜 기간 내추럴 와인은 인기 없는 하위 장르로 남을 운명인 듯했다. 하지만 2000년대 말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었고, 브루클린과 이스트 런던, 코펜하겐과 스톡홀름의 번화가에 있는 레스토랑 메뉴에 내추럴 와인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종류의 와인은 더욱 폭넓고 새로운 기호와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내추럴’이나 ‘장인’처럼 모호한 용어는 세련됨의 대명사가 되었다. 소비자들은 직접 키운 식자재로 요리하는 팜투테이블(farm-to-table)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재활용 목재로 만든 가구나 인더스트리얼 가구로 집을 꾸미고 싶어 한다. 한때 프랑스 동부의 괴짜 와인 제조자 집단의 열정에 불과했던 내추럴 와인이 어쩌다 보니 쿨해진 것이다.
런던의 와인 전문가들은 2010년 즈음부터 내추럴 와인에 주목하기 시작했지만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내추럴 와인은 정의가 매우 모호하기 때문에 곤혹스러웠습니다. 정말 잘 만든 내추럴 와인도 있지만 기포가 빠지고 거품이 일고 악취가 나는 와인, 한마디로 끔찍한 와인을 만날 수도 있죠.” 67 폴 몰의 로난 세이번은 말했다. 와인 매체는 내추럴 와인을 마치 지뢰밭이라도 되는 양 표현하곤 했다. 형편없이 질이 떨어지는 와인들 중에서 극히 일부만 안전한 선택인 것처럼 말이다. 《텔레그래프(The Telegraph)》의 와인 비평가 빅토리아 무어(Victoria Moore)는 ‘내추럴 와인 박람회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라는 제목의 2011년 기사를 통해 “단순히 와인에서 다른 맛이 나거나 예상치 못한 맛이라는 이유로 좋은 와인일 거라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영국 와인 수입사 레이번 파인 와인(Raeburn Fine Wines)의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상당수 와인 전문가들과 기고가들은 애초부터 내추럴 와인을 업신여겼습니다. 일반 와인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한 거죠.”
내추럴 와인의 열풍이 거세지던 2011년 초, 마스터 소믈리에 로난 세이번은 영국 최대의 내추럴 와인 수입사 르 까브 드 피렌(Les Caves de Pyrene)의 더그 레그(Doug Wregg)를 웨스트 런던의 작은 바 배가본드(Vagabond)로 초청해 영국 와인 전문가들을 상대로 내추럴 와인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12명 중에는 셰프 헤스턴 블루멘털(Heston Blumenthal)이 이끄는 레스토랑 더 팻 덕(The Fat Duck)의 소믈리에 이사 발(Isa Bal), 영국 여왕의 와인 셀러를 책임지는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의 와인 비평가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이 있었다. 당시 전 세계에 170명뿐이던 마스터 소믈리에 중 8명과 마스터 오브 와인 289명 중 3명이 있었다. 마스터 오브 와인은 수십 년이 걸리는 어려운 전문 과정을 졸업한 사람들로, 와인 세계의 대가다.
“설명회 자리에서 강한 적대감이 느껴졌다”고 레그는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와인 비평가 로빈슨은 그 자리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못 미더움’이라고 표현했다. 그래도 몇 종은 인기가 있었다. 쥐라 지역 쟝 프랑수아 갸네바(Jean-François Ganevat)의 가볍고 신선한 샤르도네(Chardonnay) 와인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 그만큼은 아니지만 루아르 남동쪽 지역의 가메 품종으로 유황을 사용하지 않고 만들었으며 톡 쏘는 맛과 후추 향, 약한 땀 냄새가 특징인 와인도 평이 괜찮았는데, 참석자 중 한 사람 이상이 휘발성 산(VA)의 악취를 느꼈다. VA는 식초 냄새가 나는 다양한 산 성분을 가리키는 약칭이다.
그보다 더 논쟁적이었던 시음 자리도 있었다. 《옵저버》의 레스토랑 비평가 제이 레이너(Jay Rayner)의 말이다. “그해 겨울, 런던의 레스토랑 갤빈(Galvin)에서 레그와 점심을 함께한 적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마신 탁한 와인은 농장 마당 구석에서나 날 법한 냄새가 나더군요.” 회의론자들이 품고 있는 가장 큰 의혹, 즉 내추럴 와인은 일관성이 크게 떨어지고 규정하기 어려우며 전통적인 와인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세이번은 “내추럴 와인은 여전히 종잡을 수 없어요. 어떤 와인은 훌륭했는데 또 어떤 와인은 끔찍했거든요”라고 말했다.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내추럴 와인이 팔레오 다이어트(paleo diet, 원시 인류의 식단을 따르는 다이어트 방식)나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 유산균 등 인체에 유익한 미생물)와 같이 기껏해야 트렌드, 최악의 경우에는 컬트에 불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추종자들이 열광적으로 전도에 나서려 했던 컬트 말이다. 그 자신도 열성적인 추종자인 레그는 다른 이들을 설득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 한 참석자는 “레그와 내추럴 와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모르몬교도와 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다른 두 참석자는 내추럴 와인을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 비유했다.
그러나 비평가들이 불만을 갖는 내추럴 와인의 요소들은 지금 내추럴 와인의 성공을 보장하는 요소가 되었다. 2007년 토론토대학의 사회학자 호세 존스턴(Josée Johnston)과 샤이언 바우만(Shyon Baumann)은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20세기를 거치며 고급 프랑스 요리를 의미하는 오뜨 뀌진(haute cuisine)의 영향력이 감소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실용적이고 평등주의적인 미국에 뿌리를 둔 전통이 부상했다. 두 사람은 수천 건에 달하는 언론 기사를 분석한 결과 지리적 특이성, 단순함, 인간적인 관계 등과 같은 ‘진실성’의 특징들이 현대 음식 관련 기사에서 가장 두드러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진실성이라는 단어는 노골적인 속물근성과 구별할 때 사용된다”고 그들은 논문에서 밝혔다.
비일관성, 불순물, 강한 향, 병 속으로 들어가곤 하는 포도 줄기 조각과 이스트, 이 모든 것이 내추럴 와인이 상업 제품의 특색 없고 단조로운 ‘완벽함’의 대안임을 소비자에게 시사한다. 미세한 비대칭이 수제 가구의 차별화 요소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추럴 와인은 전통적인 와인 세계의 고루한 문화와는 달리 ‘숨길 것 하나 없다’는 인상을 준다. 레스토랑 와인 리스트를 마치 자신을 멍청해 보이게 할 작정으로 지리와 역사, 화학을 합쳐 놓은 끔찍한 시험 같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와인 업계의 위계질서를 뒤집거나, 적어도 그것을 무시해도 좋다는 이야기는 무척 매력적이다.
“와인의 일관성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마음먹는 순간 더 자유롭게 와인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와인의 결점을 찾으려 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죠”라고 레그가 최근 내게 말했다. 우리는 영국 최대의 내추럴 와인 수입사 르 까브 드 피렌이 2008년에 문을 열은 트래펄가 광장의 와인 바 떼루아(Terroirs)에 앉아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옥스퍼드 셔츠나 정장 차림의 나이 지긋한 손님이 대부분이었고, 거의 모두가 10년 전만 해도 와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무언가를 잔이나 병으로 즐기고 있었다.
레그는 토양 유형이나 와인 제조법을 설명할 때는 꼼꼼한 사람이지만 완성된 와인을 설명할 때는 느슨하고 자유분방한 편이다. 마치 교육 과정은 잘 알고 있지만, 학생들에게는 그 교육 과정을 만든 교육 제도의 타당성에 의심을 품도록 장려하는 선동적인 교사처럼 말이다. “만약 고객이 ‘오, 2015년산은 2014년산과 다르네요’라고 말하면 저는 ‘잘됐네요’라고 답합니다. 왜냐하면 두 해는 엄연히 다른 해이니까요. 와인 제조자가 정직하게 경작했고 인위적으로 와인의 품질을 조작하려 하지 않는다면 와인의 맛은 항상 다를 수밖에 없거든요”라고 그는 말했다. 누군가 그의 얘기를 듣고 내추럴 와인의 전제를 받아들이면 그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떻게 보면 원점으로 되돌아간 겁니다. 모든 것이 타당해지고 모든 것이 나머지 다른 것들만큼 좋아진 거예요.”
이 와인은 자유롭습니다
경직된 경계는 시간이 지나면 점차 유연해지기 마련이다. 내추럴 와인도 언제까지 독자적인 시장 내에만 머물 순 없다. 시장을 넓히고 싶어 하는 내추럴 와인 제조자들도 있고, 2016년도 업계 보고서에서 지적한 ‘장기적인 청년 시장 축소’로 고전하는 주류 와인 제조자들은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 소규모 양조업체가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맥주)와 증류주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인 내추럴 와인으로부터 교훈을 얻고 싶어 한다.
영향력 있는 소믈리에 겸 작가인 이사벨 레제롱(Isabelle Legeron)은 내게 내추럴 와인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말해 주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샌들 차림의 비트족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레제롱은 제품에 들어가는 것들의 기준을 보다 명확히 하고 투명성을 높이기를 주문한다. 화학 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내추럴 와인 제조 과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또한 보이 클럽 시절의 불쾌한 유물인 ‘여성의 알몸 사진이 붙은 병’이 사라지기를 바란다(편집자 주: 포도밭 풍경이 담긴 일반 와인의 라벨과 달리, 내추럴 와인의 라벨에는 성적인 그림이 많다).
내가 제이 레이너(조심스럽게 말하자면 그는 내추럴 와인의 팬이 아니다)와 이야기를 나눴을 때 그는 내추럴 와인과 유기농 식품 운동의 성공을 비교했다. 유기농 식품은 눈에는 잘 띄지만 여전히 식품 시장의 일부만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유기농 식품의 부상은 주류 식품 업계가 무시할 수 없는 대조와 비평을 불러왔고, 그 결과 주류가 조금 더 유기농 성향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과정을 나는 2017년 말 세계적인 와이너리 샤토 팔머(Château Palmer)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내추럴 와인 제조자들은 즉시 마실 수 있도록 비교적 가볍고 밝은 느낌의 와인을 만드는 경향이 있지만, 샤토 팔머에서는 밀도가 높고 무거운 바디에 그 잠재력을 충분히 끌어내려면 수십 년 이상 숙성해야 하는 와인을 만든다. 샤토 팔머는 요트, 자가용 항공기, 선물(先物) 시장에 어울리는 와인이다.
이런 와인 산업의 상층부로 내추럴 와인의 철학이 스며들고 있었다. 샤토 팔머의 CEO 토마스 뒤루(Thomas Duroux)는 보르도에 위치한 와이너리를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으로 전환했다. 이를 위해 화학 비료와 농약의 사용을 중단하고 슈타이너의 생물학적 다양성 이론과 허브 치료로 대체했다. 2014년 뒤루는 “10년 내로 (보르도의) 주요 포도밭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내가 그곳을 찾았을 때 맨땅 위에 포도나무 수천 그루가 늘어선 평상시의 삭막한 광경 대신, 건강해 보이는 초록색 풀이 포도나무 아래를 뒤덮은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젖소들은 풍부한 양의 천연 비료를 제공했고 양들은 포도나무 사이의 풀을 뜯어먹기 위해 인근 헛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와인 제조 책임자인 사브리나 페르네(Sabrina Pernet)는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으로의 전환이 단순한 마케팅 목적이 아니었음을 확인해 주었다. “소비자들은 더욱 자연적인 와인을 마시고 싶어 해요.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트렌드에 국한되지는 않아요. 지구를 훼손시키는 한 미래는 없으니까요.” 지난 수년간 샤토 팔머는 와인에 첨가되는 이산화황의 양을 줄이는 실험을 해왔다. “토마스와 제가 처음으로 이산화황을 사용하지 않고 와인을 제조했을 때 그 결과는 놀라웠어요. 와인이 활짝 열려 있었고 풍부한 맛이 느껴졌거든요. 이산화황을 사용하면 닫힌 와인이 만들어지죠”라고 페르네가 말했다.
만약 이런 사례가 시장이 비판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수익 모델로(내추럴 와인으로) 전환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내추럴 와인은 몇 가지 핵심 요소 때문에 대량으로 생산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샤토 팔머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100퍼센트 내추럴 와인 농법으로 전환하려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첨가물 사용을 줄이려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산화황을 일체 사용하지 않으면 와인을 만들 수 없습니다. 저는 와인에 거품이 생기는 걸 바라지 않아요. 깔끔한 와인이 좋거든요”라고 뒤루 CEO는 말했다. 게다가 소규모의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과 달리 상자당 2000유로 이상의 가격을 받고 1만 상자를 팔기 때문에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대형 와이너리의 문제죠.” 샤토 팔머 남쪽으로 50킬로미터 떨어진 마르띠약(Martillac) 마을의 와인 제조자 시릴 두브레이(Cyril Dubrey)는 말한다. “와인 몇 통을 잃더라도 별문제 없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만든 와인을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라고 그는 덧붙인다. 두브레이가 만든 와인은 신선하고 풍부하며 약간의 흙냄새가 난다. 샤토 팔머 와인이 지닌 밀도와 힘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그래도 맛이 매우 훌륭하고, 그의 DIY 농법에 충실하다. 두브레이의 작은 포도밭은 이웃집 마당의 농구 골대와 수영장과 맞닿아 있다.
“머리와 가슴 모두 자유로워야 합니다.” 차분한 만족감 속에서 두브레이가 말했다. 그는 주류 와인 가문 출신이며 인근에서 양조학을 전공했다. 그는 전통을 버린 것을 결코 후회한 적이 없다. “저는 여기서 만든 와인이 자랑스럽습니다. 포도 외에는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았지요. 이 와인은 자유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