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메달렌 주간이 종반으로 치닫고 있던 날, 잠시 행사장을 뒤로하고 고틀란드 시청을 방문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페리가 정박되어 있는 부둣가를 지나 가파른 언덕을 올라서 5분쯤 달리자 바로 오른쪽에 빨간 벽돌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100년은 넘었을 것 같은 멋진 건물이다.
약속 시간 조금 전에 도착하니 시장이 벌써 안내를 위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한 손으로 문을 잡고 서서, 한 사람씩 악수를 한 후 일행을 회의장까지 직접 안내한다. 탁 트인 회의실 중간에 있는 탁자를 가리키며 앉기를 권한다. 탁자 위에는 과일, 사탕, 과자, 따뜻한 음료와 차가운 물이 놓여 있다. 커피 한 잔을 따라 들고 의자에 앉았다.
우리를 안내한 오케 스벤손(Åke Svensson) 시장과는 여러 차례 만났다. 한국에서 온 시장, 군수, 노조 관계자, 청년, 시민 단체, 여성 단체, 교수 등 다양한 방문단들과 함께 만나 여러번 강연을 부탁했다. 언제나 청바지 차림에 노타이의 재킷을 입고 나타나는 모습이 이제는 자연스럽다. 편한 옆집 아저씨라는 표현이 딱 맞는다.
스벤손 시장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 목회 활동을 했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가 목사직을 유지한 상태로 고틀란드시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스웨덴에서 지역 정치인은 무급으로 봉사를 하기 때문에 생계유지를 위한 별도의 직업이 있어야 한다. 광역, 기초 의원들은 주간에 직업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상임 위원회, 총회 회의는 모두 평일 저녁과 주말에 이뤄진다. 스웨덴에서 지역 정치인은 흔히 ‘취미 정치인(Fritidspolitiker)’이라고 불린다.
고틀란드시의 정치 구도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달라.
나는 제1당 사민당 소속이다. 우파 정당 연합보다는 의석수가 적어서 좌파 계열의 좌파당, 환경당, 여성당과 연립 체제를 구축해 여당 역할을 하고 있다.
야당과 충돌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갈등을 풀어 나가나.
스웨덴의 다른 지역 의회도 마찬가지겠지만, 연립 여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더라도 절대로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그렇게 했다가는 바로 유권자들 눈 밖에 날 것이다.
최근 가장 큰 정쟁의 대상은 페리 요금 문제다. 페리 요금이 너무 비싸고 하루에 두 번밖에 운행하지 않아 불편하다는 것이다. 스톡홀름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고, 주말에는 관광객들도 많이 들어와 주민들의 생활이 불편하다. 주민과 관광객의 요금을 차별화해서 싸게 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관광객들만 비싼 요금을 내게 하는 결과이기 때문에 각 정당들의 의견이 달랐고 첨예하게 대치할 수밖에 없었다.
정당들이 머리를 맞대고 협의한 결과 주민들에게는 요금을 더 낮게 책정하되, 세금으로 일부 요금을 페리 회사에 지원해서 수익 손실금을 메우도록 했다. 페리를 자주 이용하지 않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세금 낭비가 될 수 있는 결정이다.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합의할 수 있었다. 여행을 자주 하지 않는 주민들의 다수는 노년 인구이기 때문에 사회 복지 시설을 확충하는 쪽으로 접근하려 하고 있다.
만약 합의가 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결국 표결을 했을 것이다. 표결은 주민들이 우리에게 준 정당한 수단이고 최종 절차다. 표결은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진 쪽도 받아들인다. 끝까지 합의를 시도하다가 불가능할 때는 표결이 가장 좋은 민주적 해결 방식이다. 결과는 모두가 당연히 수긍한다.
민주주의는 완벽하지 않은 제도다. 합의를 했다고 해도 모두가 만족하는 해법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시장의 말은 우리가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다.
시장실은 5평 정도 되는 아주 작은 방이다. 바로 옆에 있는 행정 비서 사무실과 큰 차이가 없다. 게다가 유리문으로 되어 있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구조다. 고틀란드 시청은 시장실뿐 아니라 모든 사무실이 유리문으로 되어 있었다. 서로가 하는 일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수시로 소통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닐까 생각했다.
스벤손 시장은 시장실을 나서며 시 로고가 인쇄된 에코백을 선물로 주고는 안전 헬멧을 썼다. 그리고 다음 일정 때문에 행사장으로 이동해야 한다며 자전거를 타고 떠났다. 스벤손 시장의 모습을 보면서 존경과 권위는 스스로 내세우려 할 때 오히려 잃게 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