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스토리 월드에는 독립적인 시리즈였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와 〈닥터 스트레인지〉가 합류한다. 이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토리 월드의 공간적 배경을 폭발적으로 팽창시켜 멀티버스를 구현하는 통로가 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활동하는 무대는 지구 밖의 다른 우주이며, 캐릭터들은 다양한 우주를 넘나든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경우, 멀티버스 개념을 실제 대사에서 언급하기도 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지구에서도 여러 공간을 넘나들고, 영화 말미에는 다른 우주로 향하는 모습이 묘사되기까지 한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합류 역시 공간적 배경을 확장하고 멀티버스 개념을 확립하는 역할을 한다.
멀티버스 개념은 〈어벤져스〉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난다. 〈어벤져스〉에는 로키가 지구 밖 세계에서 살아가는 치타우리를 지구로 소환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개념이 제시되는 수준일 뿐, 스토리가 전개되는 무대는 여전히 지구다. 반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는 타노스가 인피니티 스톤을 손에 넣기 위해 9개의 우주를 뛰어넘으며 여러 행성과 다양한 종족을 만난다. 멀티버스를 본격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서사가 개연성 없는 유치한 전개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어벤져스〉를 통해 구축한 기반 위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닥터 스트레인지〉가 합류했기 때문이다.
약 30명에 달하는 캐릭터가 모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는 캐릭터 사이에 거미줄처럼 복잡한 관계망이 형성되어 있다. 이전의 〈어벤져스〉 시리즈들은 관계의 중심을 아이언 맨과 캡틴 아메리카로 설정했고, 두 히어로가 서사를 이끌었다. 그러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는 빌런 캐릭터인 타노스가 스토리 월드의 중심이다. 타노스의 관점에서 인피니티 스톤을 빼앗으러 다니면서 발생하는 사건과 전투를 관객에게 전달하며 스토리를 진행한다. 이렇게 서사를 진행함으로써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로 얽힌 슈퍼히어로들은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스토리는 조화롭게 이어진다. 9개의 우주를 넘나드는 타노스를 통해 관객은 멀티버스 개념을 구체적으로 체험한다.
타노스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인피니티 스톤 역시 이전까지 전개되어 온 개별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스토리 월드 속으로 자연스럽게 수렴하는 열쇠다. 〈아이언 맨 2〉에서 처음 등장했던 인피니티 스톤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전체 서사가 진행됨에 따라 존재감이 부각되어 왔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는 본격적으로 서사 전개의 중심이 되었다. ‘인피니티 스톤을 손에 넣는다’라는 명목 아래에 온 우주를 돌아다니며 슈퍼히어로와 전투를 벌이는 타노스를 기점으로 슈퍼히어로들이 직·간접적으로 연관성을 가지게 되고, 마지막 전장인 지구에 모든 슈퍼히어로가 모여 타노스에 대적한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속에 개별적으로 존재하던 각각의 스토리 월드가 비로소 하나의 거대 서사로 집결하게 되는 것이다.
마블 스튜디오의 이러한 전략에 따라 관객은 지금껏 진행되어 온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개별 텍스트들은 독립적인 존재이자 전체를 구성하기 위한 모듈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각각의 시리즈를 따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파생되어 가던 스토리 월드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라는 하나의 스토리 월드로 수렴함으로써 전체 시리즈의 완결성을 느낄 수 있다.
소비자를 참여시켜라
마블 스튜디오는 각각의 페이즈를 완결시키면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성해 왔다. ‘후속작은 원작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편견과 달리 〈어벤져스〉 시리즈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가장 마지막에 개봉한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역대 박스 오피스 1위에 오르면서 이전 시리즈들의 성과를 뛰어넘었다. 시리즈를 계속 제작하면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트랜스미디어 콘텐츠 전략에 있다. 개별 콘텐츠를 내놓을 때마다 더 많은 관객이 마블의 세계에 참여했고, 이 세계를 즐기는 과정은 더 즐거워졌다. 소비자의 향유 만족도가 높아진 것이다. 이를 위해 마블 스튜디오가 사용한 몇 가지 전략이 있다.
①순차적인 라인업 공개
마블 스튜디오는 2008년 〈인크레더블 헐크〉가 개봉한 후, 〈어벤져스〉 제작 계획과 함께 추후 마블의 슈퍼히어로 영화 라인업을 공표한다. 가까운 미래에 개봉을 앞둔 페이즈 1의 영화에 대해서는 개봉 시기와 제목 및 부제, 캐릭터를 연기할 배우, 함께 등장할 서브 캐릭터와 그 배우, 영화의 모티브가 된 마블 코믹스의 볼륨 등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이보다 먼 미래에 개봉이 예정된 페이즈 2에 대해서는 이를 구성하는 슈퍼히어로 캐릭터 영화와 제목, 간략한 스토리 정도를 제공했고, 페이즈 3에 대해서는 부분적인 정보만을 공개했다.
마블 스튜디오의 전략적인 라인업 공개는 기존 마블 코믹스의 팬과 영화를 통해 새로 유입되는 팬 모두를 자극하는 요소가 된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성하는 약 20편의 영화 목록을 사전에 공개하는 것은 기대감과 궁금증을 유발한다. 콘텐츠 소비자들은 개별 히어로의 서사와 전체 서사가 어떻게 전개될지, 기존 텍스트와 새로운 텍스트는 어떤 관계를 맺을지, 추가되는 캐릭터와 어벤져스는 어떻게 연결되며 원작의 어떤 부분이 유지되고 변형될지 예상하고 토론한다. 라인업 공개 전략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로의 유입과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어벤져스〉 시리즈는 마블이라는 브랜드를 선호하는 팬에게는 여러 슈퍼히어로를 하나의 텍스트 속에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주고, 특정 슈퍼히어로에 대한 팬심을 가진 소비자에게는 선호하는 슈퍼히어로 캐릭터가 어떠한 모습으로 등장할지 호기심을 갖게 한다. 그리고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소개함으로써 팬들이 마블의 스토리 월드를 끊임없이 즐길 수 있도록 한다.
페이즈 1의 라인업을 알게 된 관객들은 영화 〈어벤져스〉와 마블 코믹스의 어벤져스를 비교하며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고, 영화 개봉 전과 후에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영화 〈어벤져스〉에서는 이전의 단일 텍스트 속 슈퍼히어로인 아이언 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와 서브 캐릭터인 블랙 위도우, 호크아이 등이 모여 만들어진 하나의 팀이 로키와 치타우리 무리를 상대하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반면 원작인 마블 코믹스에서 어벤져스는 행크 핌(Hank Pym), 와스프(Wasp), 헐크, 아이언 맨, 토르에 의해 창설된다. 빌런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는 로키로 동일하지만, 스토리[15]는 전혀 다르다. 즉, 영화 〈어벤져스〉와 그래픽 노블 《어벤져스》는 타이틀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스토리 월드를 갖고 있다.
기존의 그래픽 노블 팬들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하나의 놀이가 되기도 한다. 이런 소비 방식은 〈어벤져스〉를 통해 새로 유입된 팬들에게도 전해지며, 그중 일부는 그래픽 노블을 구입하기도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마블이라는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즐길 거리를 제공받는 셈이다. 참여와 유입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이유다.
마블 스튜디오는 페이즈 1 이후 공개되는 영화에 부제를 붙인다.[16] 페이즈 2부터 제작되는 대부분의 영화에는 제목과 함께 부제가 명시되어 있다. 라인업과 함께 공개되는 부제는 관객에게 그래픽 노블과 영화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그래픽 노블에도 부제가 존재하는데, 영화의 부제를 통해 전개되는 서사를 더욱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비슷한 스토리나 관련 캐릭터가 등장하는 그래픽 노블을 찾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마블 스튜디오는 페이즈 1 이후의 라인업을 공개할 때 영화의 제목만 먼저 공개하고 이후 부제를 공개하는 전략을 펼치기도 했다. 2012년 〈어벤져스〉 개봉 직후 페이즈 2 라인업을 공개했는데, 이때 〈어벤져스〉의 후속작에 대해서는 부제 없이 〈어벤져스 2〉라는 타이틀만을 공개하고 ‘에이지 오브 울트론’ 이라는 부제는 2013년[17]에 발표했다. 호기심과 기대감을 지속적으로 생성해 소비자를 마블의 거대한 세계 속으로 끌어들이는 전략 중 하나다. 〈어벤져스 2〉라는 메인 타이틀이 페이즈 2에서도 다수의 슈퍼히어로가 뭉쳐 빌런을 상대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는 동시에 어떤 캐릭터가 여기에 합류하고 이들이 어떤 빌런과 싸울지, 어떤 스토리가 전개될지는 공개하지 않아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 호기심과 기대가 시들해질 즈음 마블 스튜디오는 부제인 ‘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함께 티저 예고편을 공개한다. 전개될 스토리, 합류하는 멤버, 빌런에 대한 정보는 다시 팬들의 즐길 거리가 된다. 소비자들이 마블이 구축한 세계에 머무르게 하고, 이들과 상호 작용하면서 스토리 월드를 팽창시키는 전략이다.
②이스터 에그
마블 스튜디오는 소비자에게 지속적으로 새로운 경험과 신선한 재미를 제공하기 위해 각각의 〈어벤져스〉 시리즈 텍스트마다 독립적인 정체성을 가진 스토리 월드를 구축한다. 이처럼 독립적인 스토리텔링 전략을 펼침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시리즈 전체를 하나의 완결된 서사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영화 곳곳에 숨어 전체 서사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이스터 에그(Easter egg)[18]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욕망의 대상으로 묘사되는 인피니티 스톤은 〈어벤져스〉 시리즈뿐 아니라 단일 슈퍼히어로 캐릭터 영화까지 전체를 아우르는 서사의 연결 고리다. 인피니티 스톤은 초월적인 힘과 권능이 응축된 존재다. 리얼리티 스톤(Reality Stone), 소울 스톤(Soul Stone), 마인드 스톤(Mind Stone), 타임 스톤(Time Stone), 스페이스 스톤(Space Stone), 파워 스톤(Power Stone) 총 6개로 구성되며 〈아이언 맨 2〉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토니 스타크가 닉 퓨리로부터 건네받은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의 유품 속 메모장에 스톤의 존재를 암시하는 메모가 담겨 있었다. 비록 〈아이언 맨 2〉에서는 인피니티 스톤의 존재감이 두드러지지 않고 욕망의 대상으로 묘사되지 않지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전체 서사가 전개됨에 따라 스톤의 존재감은 점점 커진다. 페이즈 1의〈토르: 천둥의 신〉에는 인피니티 스톤이 욕망의 대상임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쿠키 영상에서 닉 퓨리가 에릭 셀빅에게 상자를 건네주는데, 이때 로키가 함께 등장해 스페이스 스톤(테서랙트)을 갈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퍼스트 어벤져〉에서는 스페이스 스톤이 지구에 존재하게 된 경위를 보여 주며 스토리를 전개해 개연성과 인과성을 부여한다. 스페이스 스톤은 〈어벤져스〉 에서 본격적인 욕망의 대상으로 서사의 중심에 자리 잡기 시작한다. 빌런 캐릭터로 등장하는 로키는 스페이스 스톤을 욕망하고 지구 정복을 꿈꾸며 닉 퓨리로부터 이를 갈취한다. 이러한 로키의 욕망은 〈토르: 천둥의 신〉 쿠키 영상에서부터 이어지기 때문에, 〈어벤져스〉와 단일 히어로 영화의 서사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페이즈 1에서 하나의 스톤을 보여 주며 인피니티 스톤의 존재를 알렸다면 페이즈 2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인피니티 스톤을 등장시켜 욕망의 대상이 되는 존재를 구체화시킨다. 새로운 인피니티 스톤은 〈토르: 다크 월드〉에서 처음 등장한다. 검붉은 액체의 형태로 등장하는 리얼리티 스톤(에테르)은 다크 엘프의 우두머리인 말레키스[19]가 우주를 정복하기 위해 욕망하는 대상이고, 이를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는 파워 스톤(오브)과 이를 탈취하기 위한 전투 장면이 등장한다. 특히 파워 스톤을 탈취하려는 과정에 타노스가 등장해 그 역시 인피니티 스톤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으며, 이러한 암시는 페이즈 3에서〈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타노스가 모든 종류의 인피니티 스톤을 갈구하는 모습으로 이어짐으로써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전체 서사에 개연성을 더한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는 마인드 스톤이 등장하고, 이전 서사에서와 다르게 사용된다. 인피니티 스톤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존재가 이전까지는 빌런 캐릭터였다면, 이 영화에서는 슈퍼히어로 캐릭터인 아이언 맨이다. 그뿐 아니라 인피니티 스톤이 빌런 울트론과 슈퍼히어로 비전을 생성하는 용도로도 묘사된다.
페이즈 3에서는 〈닥터 스트레인지〉에 타임 스톤이 등장한다. 시간 역행, 미래 예지, 루프 등 시간 조작 계열의 능력이 포함되어 있는 타임 스톤은 ‘아가모토의 눈’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닥터 스트레인지가 빌런 캐릭터인 케실리우스 세력과 도르마무와 전투를 하는 데에 사용한다. 타임 스톤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슈퍼히어로 캐릭터에 의해 유일하게 올바른 용도로 사용되는 인피니티 스톤이지만 결국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에게 뺏기고 만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는 이전 영화들에서 독립적으로 나타났던 모든 인피니티 스톤이 한자리에 모인다. 이를 통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속 모든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스토리 월드에 속하게 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닥터 스트레인지〉가 〈어벤져스〉 세계에 합류하는 것이다.
인피니티 스톤은 각기 다른 텍스트가 이어질 것이라는 소비자의 기대와 예측을 형성하는 핵심 소재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모든 인피니티 스톤이 집결하면서 모든 영화 속 캐릭터와 스토리 월드가 결합하는 것은 이전 영화들을 통해 관객이 가졌던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관객은 이를 통해 개별 콘텐츠들이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된 모듈임을 이해하게 되고, 이는 콘텐츠 소비자들이 전체에서 부분으로, 부분에서 전체로 콘텐츠 소비를 이어 나가는 동력이 된다.
③빈틈을 채우는 콘텐츠
젠킨스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전략에 있어 미디어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 월드는 매우 방대하기 때문에 단일 미디어에 의존하기보다 복수의 미디어를 통해 수용자에게 제공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다수의 미디어를 통해 콘텐츠가 제공되면 그 다양한 미디어들을 통해 수용자가 스토리 월드로 진입할 수 있다고 본다.[20]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그의 주장처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수용자에게 스토리를 제공한다.
〈어벤져스〉 시리즈는 영화 특성상 두 시간 남짓의 제한된 시간 안에 서사를 전개해야 한다. 그러나 캐릭터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진행하는 두 시간의 영상 속에서는 사건의 인과 관계, 개연성 등을 충분히 전달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마블 스튜디오는 이러한 한계를 TV 드라마와 단편 영화를 통해 극복한다.
2012년 개봉한 〈어벤져스〉에는 다양한 캐릭터와 함께 여러 단체들이 등장한다. 이 중 쉴드는 개별 슈퍼히어로가 어벤져스라는 그룹이 될 수 있도록 공간적 배경을 제공해 주는 단체다. 닉 퓨리를 수장으로 다수의 에이전트가 속해 있다. 이 조직은 〈아이언 맨〉에 처음 등장한 후 〈아이언 맨 2〉, 〈토르: 천둥의 신〉, 〈퍼스트 어벤져〉 등에서 비중을 높여 가고, 〈어벤져스〉에서는 서사 진행의 주요 요소가 되기까지 한다. 그러나 국가의 기밀 기관이자 안보를 담당한다는 이 단체에 대한 설명은 그 어디에서도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전개는 영화를 즐기는 향유자의 몰입을 방해할 뿐 아니라, 이야기의 개연성과 인과성 부족으로 마블의 세계관 구축에도 결점이 될 위험이 있다. 하지만 마블 스튜디오는 이 결점을 텔레비전 드라마인 〈에이전트 오브 쉴드(Agent of S.H.I.E.L.D.)〉를 통해 보완한다.
〈에이전트 오브 쉴드〉는 〈어벤져스〉가 개봉한 다음 해인 2013년 가을에 방영되기 시작해 총 5개 시즌이 제작되었다. 드라마는 쉴드의 창설부터 악의 세력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에서는 서브 캐릭터로 등장했던 요원들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한다. 영화에서 부족했던 설명과 개연성, 인과성을 충족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뿐 아니라 서사의 빈틈을 채워 소비자가 더 풍부한 스토리를 즐길 수 있게 하고, 마블의 세계로 향하는 새로운 진입로가 되기도 한다.
마블 스튜디오는 드라마 외에도 단편 영화인 ‘마블 원샷’[21]을 제작했다. 약 3분에서 15분 정도의 짧은 길이로 제작된 콘텐츠인 마블 원샷은 〈어벤져스〉와 같은 굵직한 텍스트를 보완하기보다 개별 슈퍼히어로 텍스트의 빈틈을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마블 원샷의 영상에는 규칙이 있다. 단일 슈퍼히어로 영화의 블루레이 DVD에 수록된다는 점과 해당 영화의 직전에 개봉한 영화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다룬다는 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영화 속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았던 캐릭터나 충분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건의 스토리를 소개한다. 마블 스튜디오는 이처럼 작은 캐릭터나 사건까지 소비자가 즐길 수 있는 요소로 만들고 있다.
아직 완결되지 않은 세계
2008년 개봉한 영화 〈아이언 맨〉을 시작으로 약 10년 동안 마블 스튜디오가 투자한 결과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거대한 세계다. 개별 캐릭터의 세계관이 생성되고,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며, 기존에 언급되지 않았던 과거 사건이 전개되면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이후 〈앤트맨과 와스프〉(2018), 〈캡틴 마블〉(2019)이 개봉하면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또 다시 팽창했다. 〈앤트맨과 와스프〉는 〈앤트맨〉 시리즈의 과거사를 다루고 있고, 〈캡틴 마블〉은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인 캡틴 마블을 창조하면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과거를 보여 주고 있다. 마블은 이번에도 서브 캐릭터, 이스터 에그 등을 활용해 새로운 두 영화를 어벤져스의 세계관에 자연스럽게 녹여 냈다. 〈앤트맨과 와스프〉는 쿠키 영상에 타노스의 손가락 튕김으로 캐릭터가 소멸되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장면을 담아 마블 전체의 스토리 월드를 확장했다. 〈캡틴 마블〉은 기존 영화에 지속적으로 등장했던 캐릭터 닉 퓨리의 과거와 연결된다. 현재 시점의 닉 퓨리가 캡틴 마블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마지막 장면이 있었기 때문에 캡틴 마블의 등장은 어색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마블의 스토리 월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새롭게 시작되고 있는 스파이더맨의 이야기, 아직 풀리지 않은 개별 캐릭터들의 스토리 월드, 지속적인 TV드라마 시리즈의 제작, 마블 스튜디오가 보유한 다양한 코믹스 등은 마블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 월드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게다가 마블 스튜디오의 모회사 디즈니(Disney)가 20세기 폭스(20th Century Fox)를 인수하면서 다른 세계관으로 분류되었던 〈엑스맨(X-Men)〉 시리즈와 〈판타스틱 4(Fantastic 4)〉 시리즈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합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어벤져스: 엔드 게임〉을 끝으로 그동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중심축을 담당했던 ‘어벤져스 세대’의 슈퍼히어로들은 물러날 수 있다. 그러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는 새로운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또 다른 캐릭터와 스토리가 등장할 것이다. 어벤져스는 막을 내렸지만, 마블의 세계는 다시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