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종말
완결

판데믹은 오버투어리즘을 끝낼 수 있을까?

코로나는 관광 산업이 없는 무서우면서도 경이로운 세계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관광객들이 자연을 가득 메우고 몰려다니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목격하고 있다. 


코로나가 전 세계로 확산하며 관광객에게 들이닥친 참사 중에서도 크루즈 선박에서 일어난 사태는 단연 눈에 띄었다. 해상에서의 집단 감염 사태는 환희의 공간을 감옥으로 바꿔 놓았고, 전례 없는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선내 감염에 대한 소문은 왓츠앱(WhatsApp) 메신저를 통해 악취가 진동하는 선실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여러 항구들이 차례로 크루즈 선박의 입항을 거부했다. 휴가를 즐기던 여행객들은 ‘거리 두기’ 없이 배에 갇혀, 감염의 희생자인 동시에 전파자가 되는 고통스런 경험을 했다.

코로나 발생 초기에 바다 위에서 연이어 일어난 참사는 중국에서 발생한 문제의 기괴한 연장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첫 번째 대규모 감염이 일어난 배는 다이아몬드 프린세스(Diamond Princess)호였다. 2월 중순까지 355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이 배는 요코하마 항구에서 육지와 격리된 채로 정박했다. 당시 선내 확진자 수는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보고된 확진자 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승객 14명은 이후 코로나 감염으로 사망했다.

바다 위의 악몽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감염자가 나온 30척 이상의 크루즈 선박에서 승객들은 병원에 입원하거나, 호텔에 격리됐다. 전세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10만 명에 달하는 선원들은 격리되거나 하선이 금지된 채로 고용주가 집으로 돌아갈 방안을 마련해 줄 때까지 바다 한가운데 갇혀 있어야 했다. 그리고 크루즈 선원들에게는 드라마 같은 상황이 또다시 펼쳐졌다. 루마니아 선원 15명은 플로리다 앞바다에 정박한 배에 갇혀 있던 끝에 대대적인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독일 쿡스하펜항에는 격리 선박의 소요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력이 투입됐다. 필리핀 마닐라만에 갇힌 20여 척의 크루즈선 선원들이 6월 1일 하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사실도 알려졌다.

크루즈는 코로나 이후 흔들리는 관광 산업의 상징이 됐다. 지난 1월 1500억 달러(166조 7250억 원) 규모로 추산됐던 크루즈 관광 업계는 이제 살아남기 위해 대량 해고와 대규모 채권 발행, 파격 세일까지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가 닥치기 전에도 크루즈 업계는 관광 산업이 세계에 끼치는 악영향을 보여 주고 있었다.

관광 산업은 멋진 경치나 산호초군, 혹은 오래된 성당 같이 산업 자체가 소유하지 않은 자산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특수하다. 카니발(Carnival), 로열 캐리비안(Royal Caribbean), 노르위젠(Norwegian) 등 세계의 주요 크루즈 회사는 그들의 수입원인 산호초군과 같은 공공 관광 자원을 유지하는 일에 거의 비용을 쓰지 않는다. 크루즈 시장의 75퍼센트를 차지하는 이 세 회사는 파나마, 라이베리아, 버뮤다 같이 환경이나 노동 관련 규제가 약한 조세 회피처에 법인을 설립했다. 성가신 세금과 규제 적용을 피하는 동시에 공기와 바다를 오염시키고, 해안선 침식을 가속화하며, 아름다운 항구에 연간 수천만 명의 감당하기 어려운 관광객을 쏟아 냈다.

크루즈 산업의 문제점은 여행 산업 전반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수십 년 동안 일부 친환경 개혁론자들은 지속 가능한 관광 산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부작용은 최소화하면서 안정적인 여행 산업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호텔 그룹과 여행사, 각국의 관광 당국은 그런 노력과 상관없이 규모의 경제를 우선시해 왔다. 더 많은 관광객이 더 적은 돈을 내고 더 많은 즐길 거리를 얻는 구조는 관광 자원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코로나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2020년에 국경을 넘나드는 여행객의 숫자가 전년 대비 3~4퍼센트 정도 증가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세계 관광 산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중국의 해외여행자 수는 2015년 대비 27퍼센트 상승한 1억 6000만 명으로 예상된다.

코로나는 관광 산업이 없는 무서우면서도 경이로운 세계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관광객들이 자연을 가득 메우고 몰려다니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목격하고 있다. 협곡만 한 대형 크루즈 선박들이 해안선을 침식하지 않으면서, 바다는 모처럼 한숨을 돌리고 있다. 꼼짝없이 집 안에 갇힌 등산객들은 더 이상 산등성이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특색 있고 섬세한 각 지역의 음식 문화는 더 이상 관광객들이 먹는 냉동 피자의 위협을 받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의 휴가에서 벗어난 현재 관광지의 모습보다 관광 산업의 해악을 잘 보여 주는 장면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코로나는 관광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산업 구조의 위험성을 폭로했다. 보다 지속 가능한 다른 종류의 경제 활동에 충분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동체 전체가 의존하던 관광 산업이 무너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가 잔혹한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다. 유엔 세계 관광 기구(UNWTO)가 지난 5월 발표한 추정치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관광 수입은 지난해의 1조 7000억 달러보다 80퍼센트 감소하고, 관련 일자리는 약 1억 2000만 개가 사라질 전망이다. 관광 산업은 코로나를 퍼뜨릴 수 있는 인간의 이동에 의존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경제 활동보다 오랫동안 엄격하게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몇 년간 파급력을 키워 오던 관광 산업이 휘청거리면서 세계 경제도 영향을 받고 있다. 불과 여섯 달 전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었던 해외여행 금지 조치가 시행된 지금, 우리는 파괴적인 관광 산업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을 시도해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얻게 됐다.
 

관광 산업은 국가 경제를 강력하고 변덕스러운 외부의 영향에 예속시킨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로 인해 멈출 수 있다는 최악의 위험 요소를 갖는다.



지구를 망치고 있다는 비판에 관광 업계는 전 세계 일자리 열 개 중 하나가 관광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경제적 주장으로 대응한다. 각국 정부도 관광 산업을 선호한다. 호텔을 짓고 따뜻한 물만 공급해도 일자리가 창출되고 많은 외화가 흘러들어 오기 때문이다.

관광 업계를 대변하는 사업가 렐레이 렐라울루(Lelei Lelaulu)와 얘기를 나눠 본 적이 있다. 그는 2007년 당시 관광 산업을 “부유한 국가에서 가난한 나라로, 가진 자에게서 가지지 못한 자에게로 흘러 들어가는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자발적인 자금 이체”라고 정의했다. 상당한 금액이 “옆으로 샌다는 점”을 감안해도(여행자들이 쓰는 돈의 상당 부분은 여행지가 아닌 여행사와 항공사, 호텔 체인의 매출이 된다) 호주 사람들이 발리에서, 미국인이 칸쿤에서, 중국인이 방콕에서 많은 돈을 쓴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미국의 고급 여행사 인다가레(Indagare)의 설립자이자 ‘책임 있는 여행 센터(Center for Responsible Travel)’의 임원인 멜리사 빅스 브래들리(Melissa Biggs Bradley)는 지난 1월 말 유럽 여행을 가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흐름이 끊기자 이탈리아의 동종 업계 종사자들에게 이런 경고 전화를 받았다. “로마가 텅 비어 버렸어요. 얼마나 충격적인 상황인지 감도 못 잡을 걸요.” 코로나 발생 초기만 하더라도, 업계 분석가들은 이번 상황이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로 2009년에 4퍼센트 감소한 세계 해외 여행객도 이듬해에는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 6.7퍼센트 증가했기 때문이다. 2016년에는 터키에서 테러 공격이 잇따라 일어나 관광객의 발길이 끊겼다. 하지만 터키의 손해가 스페인의 이익으로 이어진 덕분에 스페인 남동부 코스타 블랑카(Costa Blanca) 해안의 관광객은 오히려 급증했다.
평상시라면 사람들로 북적였을 판테온의 올해 4월 모습. ©Giuseppe Fama/REX/Shutterstock
하지만 과거와의 단순 비교는 치료법이 없는 전 지구적인 코로나19 감염의 영향을 이해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이 곧바로 드러났다. 지난 3월 말, 세계적인 리서치 기업인 번스타인은 투자자들에게 호텔 산업의 전망을 ‘암울함’에서 ‘대참사 수준’으로 수정한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 “2주 전만 하더라도 매출이 80퍼센트나 감소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전망을 기본 시나리오로 가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서신은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는 너무 순진했습니다!” 편지가 발송된 3월은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객실 점유율이 5퍼센트라는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전이었다.

관광 산업은 스페인 국내 총생산(GDP)의 15퍼센트, 이탈리아 GDP의 13퍼센트를 차지한다. 관광 산업의 몰락은 다각화된 산업 구조를 가진 남부 유럽 국가에게는 다소 고통스러운 정도다. 하지만 관광 산업이 GDP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몰디브나 지난 10년 동안 관광객들의 숫자가 4배 이상 급증한 조지아와 같은 저개발 국가에게는 생존의 위협이다.

관광 산업이 외화 수입의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섬나라 자메이카의 관광 장관 에드먼드 바틀렛(Edmund Bartlett)은 지난 4월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몬테고 베이 공항을 통해 들어오는 입국자 수는 제로(0), 킹스턴 공항을 통해 들어오는 입국자도 제로(0), 호텔 투숙객도 제로(0)다. 게다가 30만 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 관광 산업을 지원하던 모든 교통 시스템이 멈춰 서고, 관광 명소가 문을 닫으면서 여행객이 먹을 식료품을 제공하던 농부들도 작물을 내다 팔 곳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수익성이 좋은 관광 산업을 유치하려면 지역 발전이 왜곡된다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농부는 토지를 호텔 체인에 매각한 뒤, 관광객 유입으로 작물의 가격이 더 이상 사먹을 수 없을 만큼 치솟는 것을 지켜봐야만 한다. 골프장 급수를 위해 물길의 방향을 바꾸면 지역 주민들은 물 부족에 시달린다. 도로는 학교가 아니라 테마파크까지만 포장돼 있다. 관광 산업은 국가 경제를 강력하고 변덕스러운 외부의 영향에 예속시킨다. 관광 산업에 대한 의존은 내가 2001년 아프가니스탄 특파원으로서 목격한 대외 원조 의존과 공통점이 있다. 두 경우 모두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로 인해 멈출 수 있다는 최악의 위험 요소를 갖는다.

빅스 브래들리는 앞으로 황폐해질 위험이 있는 “작고 취약한” 장소 몇 곳을 언급했다. 최근에 다이빙 전문 여행사 중심으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던 태평양의 작은 섬들이다. 브래들리는 “이 섬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신규 항로가 경이로운 수준으로 늘어나면서 개방됐지만, 항로가 끊기고 여행객 유입이 중단되면 빚더미와 실업자만 남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에서 체험 위주의 여행 상품을 운영하는 트래픽 트래블(Traffic Travel)의 CEO 소트네 제퍼리즈(Tsotne Japaridze)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코로나로 겪은 고통을 설명했다. 제퍼리즈는 30여 곳의 포도 농장과 게스트 하우스, 일반 가정으로 관광객을 실어 나르기 위해 여름 시즌 동안 정규 직원 3명에 가이드와 운전사까지 15명을 추가로 채용했다. 제퍼리즈의 회사야말로 지역 사회에서 얻은 수입으로 주민 수백 명을 지원하는 중추 역할을 한 셈이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가 닥치자 제퍼리즈는 직원들에게 무급 휴가를 제안해야 했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다른 선택이 없었어요.” 관광 산업이 자취를 감춘 뒤 집에서 누릴 수 있는 서비스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제퍼리즈의 회사에서 조지아의 아름다운 명소인 스바네티 지역으로 관광객을 인솔했던 한 가이드는 현재 오토바이로 음식을 배달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당일치기 베니스 여행객 가운데 70퍼센트는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만든 15유로(2만 원) 정도의 기념품을 하나 사고선 가이드를 따라 서둘러 다음 목적지로 떠나기 때문이다.


관광 산업의 보다 보편적인 문제는 관광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이다. 판데믹이 정점에 다다를 무렵, 나는 NGO ‘위 아 히어 베니스(We Are Here Venice)’를 이끌고 있는 제인 다 모스토(Jane da Mosto)와 줌(Zoom) 화상 통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위 아 히어 베니스는 지구상에서 오버투어리즘으로 가장 악명이 높은 베니스를 거주 가능한 장소로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단체다.

화상으로 만난 다 모스토는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로 먹을 채소를 다듬으면서 불편한 감정을 토로했다. 이탈리아 병원에서 벌어지는 대재앙과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평온하고 고요한 장면 사이의 괴리감 때문이었다. 환자로 가득한 병원과 달리, 운하의 다리는 텅 비었고 해마들은 물속에서 신나게 헤엄치고 있었다. 남근 모양 파스타를 팔던 행상들이 사라진 자리는 집에서 만든 토르텔리니를 주민들에게 배달하는 뱃사공이 채우고 있었다.

다 모스토가 키우는 감자를 살펴보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녀의 19살짜리 아들 피에란젤로가 화상 인터뷰에 나섰다. 아버지가 몰던 배를 이끌고 처음 물 위를 달렸던 날 이후로 피에란젤로는 바다에서 살았고, 어쩔 수 없이 차에 타야 할 때면 속이 메슥거렸다. 그는 베니스의 명물인 용골(선박의 선수부터 선미까지를 지탱하는 중심축)이 없는 배를 만드는 목수이자 복원 전문가다. 가끔은 보트에 관광객들을 태워 ‘베니스 사람만 아는 베니스’를 보여 주기도 한다.

피에란젤로와 디자이너, 학생, 목수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그의 친구들은 관광 산업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베니스의 관광 의존도가 낮아지길 바라고 있었다. 그들은 코로나 이후 삶에 대해 대화를 나누곤 한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세가 주춤해져 관광업이 다시 시작돼도 이전보다 방문객과 수입은 적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지역 주민을 고객으로 삼아 줄어든 수입을 메우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피에란젤로에게 쥬데카 운하의 흔들리는 조그만 배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크루즈 선박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물었다. “작아진 기분이요.” 피에란젤로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정말 작다는 걸 느껴요.”
2019년 6월의 베니스. ©Miguel Medina/AFP/Getty
관광 산업이 아니었다면 베니스 고딕 양식 건물 중 상당수는 오래 전에 허물어져 재개발됐을 것이다. 관광 산업이 베니스의 유서 깊은 건축물을 유지하는 데에 상당한 경제적 이유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권력은 호텔과 레스토랑, 보트 등에 투자한 사람들에게 넘어갔다. 상당수가 외지인이었던 투자자들에게 베니스라는 도시는 그저 많은 사업 기회 중 하나일 뿐이었다. 1989년 7월 15일, 무료 콘서트가 베니스를 점령했다. 당시 경험은 아직까지도 베니스 사람들에게 짜증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날 유럽 전역에서 2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도시의 정신적, 미학적 중심인 산마르코 광장에 운집했다. 그중 일부는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 월드 투어의 마지막 공연을 보기 위해 승선 인원을 초과한 보트를 타고 베니스 앞바다로 몰려들었다.

적잖이 당황한 시 의회는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샤인 온 유 크레이지 다이아몬드(Shine on You Crazy Diamond)〉의 전주가 연주되기 직전까지도 콘서트 진행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밴드는 시 의회의 압박에 스피커 볼륨을 낮췄고,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TV 프로그램 시간에 맞춰 공연 시간을 줄였다. 이 부분에서는 이탈리아 공영 방송 RAI(Radiotelevisione Italiana)의 역할이 컸다. 한편, 광장 주변 가게에서는 관객에게 세 배나 높은 가격으로 미지근한 맥주를 팔고 있었는데, 관객들은 맥주를 다 마신 후에야 간이 화장실이 단 한 개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음날 아침, 유서 깊은 광장 바닥은 깡통과 담배꽁초, 소변으로 뒤덮여 있었다.

30년 전의 핑크 플로이드 콘서트는 입장료도 내지 않은 관객 20만 명이 중세 도시 중심부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정작 뒷정리는 지역 주민에게 맡기고 떠난 일로 기록됐다. 관광 산업이 도시 자원을 깔아뭉갠 사례로 이만한 사건을 찾기는 어렵다. 이탈리아의 한 TV 뉴스는 핑크 플로이드 콘서트를 “침략자의 인권과 점령당한 지역민의 인권을 모두 침해한 사건”이라고 묘사했다. 시 의회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거세지자 의원들이 집단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실 록 음악 팬들이 침공하기 오래 전부터 주민들은 베니스를 떠나고 있었다. 베니스 인구는 1950년 18만 명에서 2019년에는 5만 명까지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연간 방문객의 수는 100만 명에서 3000만 명으로 치솟았다. 베니스 카 포스카리 대학교의 관광 산업 전문가 얀 판데르 보르흐(Jan van der Borg)에 의하면, 이는 베니스 시의 연간 ‘수용 능력’을 최소 1000만 명 넘어서는 수치다. 도시의 수용 능력이란 생활 기반 시설과 주민들의 생활 방식을 지속적으로 훼손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최대 인구수를 말한다.

많은 곤돌라 소유주들은 베니스에서 멀리 떨어져 살면서 사공을 고용해 빽빽한 운하 위로 관광객을 실어 나른다. 저가 항공사 직원들은 뉴욕 센트럴 파크의 겨우 1.5배 큰 구역에 매일 수 천 명의 관광객을 쏟아낸다. 다 모스토가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베니스에 거주하지 않으면서도, 베니스를 이용해 먹고산다”고 말하는 이유다.

판데르 보르흐는 베니스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좋지 않은 유형’이라고 한다. 당일치기 베니스 여행객 가운데 70퍼센트는 “관광버스나 크루즈 선박, 비행기에서 쏟아져 나와, 베니스의 역사적 심장부를 몇 시간 동안 휘젓고 다니지만 도시를 유지하는 데는 기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런 관광객은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만든 15유로(2만 원) 정도의 기념품을 하나 사고선 가이드를 따라 서둘러 다음 목적지로 떠나기 때문이다.

판데르 보르흐 같이 소수 정예 관광을 중시하는 관광 산업 전략가들은 ‘지역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만, 가치는 낮은’ 뜨내기 여행객이 불청객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호텔에 머물면서 인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교회를 들러 마치 작가 트루먼 카포티(Truman Capote)처럼 해리스 바(Harry’s Bar)의 칵테일 ‘벨리니’를 마신 뒤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런 부유한 개인 여행자들을 더 환영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들 주장의 저변에는 ‘수준 높은’ 여행자가 세금과 팁을 내고 지역 주민과 인간적인 상호 작용을 하면서 도시를 더 행복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단체 여행은 사라지고 있는 걸까? 2019년 영국 여행사 협회(ABTA)가 내놓은 영국 여행 산업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다음 휴가를 해외에서 보내려 하는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비용 절감이었다. 관광지에서 저예산으로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을 미적지근하게 대한다고 하더라도, 영국 여행객의 대다수는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오버투어리즘에 반대하는 최근 움직임의 저변에는 무한대로 착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공공 관광 자원이 실제로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으며, 관광지를 방문하는 비용에 공공 자원의 가치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이 깔려 있다. 


저가 항공사와 에어비앤비는 수백 만 명에게 주말을 색다른 곳에서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했다. 이 때문에 ‘베니스화(Venetianisation)’의 저주는 지난 10년 동안 여러 도시들을 차례로 괴롭혀 왔다. 베니스화는 주민들이 떠난 자리를 관광객 무리가 차지하는 도시 공동화 현상을 의미한다. 베니스나 파리처럼 오랫동안 관광지로서 유명세를 누린 도시뿐 아니라, 최근에는 대서양 연안에 있는 포르투갈 지방 도시 포르투의 한적한 해변 마을도 베니스화를 피하기 어려웠다. 포르투와 같은 소도시들은 밀려오는 수많은 관광객을 맞을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었다.

베니스화에 맞선 반격은 2015년 7월에 시작된다. 바르셀로나의 유명한 산책로 라 람블라(La Rambla) 거리에 관광객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 보행자가 지나다니기조차 힘든 상황에 이르자, 시 의회는 신규 호텔 허가를 중지했다. 이듬해에는 에어비앤비가 무허가 시설을 중개한 혐의를 인정하고 60만 유로(7억 9220만 원)의 벌금을 내야 했다. 물론 매 분기 매출이 10억 달러(1조 1120억 원)를 넘는 에어비앤비에게는 푼돈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는 관광 산업이 주민들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도시의 모습을 단기간에 변화시키면서, 관광 산업 전반에 대한 적개심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는 옛 모습을 완벽히 보존하고 있는 고풍스런 도시다. TV 시리즈로 각색된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이 두브로브니크에서 촬영된 후부터 관광객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난해 시 행정부는 도시의 중심부를 막고 있는 기념품 노점 80퍼센트의 영업을 중지시키고, 버스와 크루즈 관광객 수를 제한하는 일종의 ‘쿼터제’를 도입했다. 벨기에 운하 도시인 브뤼헤는 최근에 당일치기 여행객을 겨냥한 광고를 전면 중단하고, 정박한 크루즈 선박의 숫자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관광 산업 제한 조치에는 재정적인 대가가 따른다. 라 람블라 거리의 주민과 상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 ‘라 람블라의 친구들’의 대표인 페르민 비야르(Fermín Villar)는 2년 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라 람블라는 무엇보다도 하나의 비즈니스입니다. 매년 1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 거리를 걷습니다. 그 사람들이 1유로씩만 쓴다고 해도 어떨지 상상해 보세요”라고 열변을 토하며 말했다. 그러나 대규모 관광 산업은 기존 사업을 대체하기도 한다.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주민 다수가 지역을 떠나는 현상은 지역 인프라에 가해지는 압력 못지않게 커다란 관광 산업의 대가다. 다 모스토의 얘기처럼, 경제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베니스는 관광 산업의 측면에서 손실을 입고 있다. 상점에서 발생한 수익 대부분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2009년 바르셀로나 라 람블라 거리의 모습. ©JLImages/Alamy
오버투어리즘에 반대하는 최근 움직임의 저변에는 무한대로 착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공공 관광 자원이 실제로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으며, 관광지를 방문하는 비용에 공공 자원의 가치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이 깔려 있다. 실제로 ‘오염자 부담 원칙’은 농업, 제조, 에너지 분야에서 점점 더 많이 도입되고 있다. 오염자 부담 원칙은 어떤 사업이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면, 해결 비용 역시 원인 제공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환경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나 거주민 생활 방식이 침해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도시가 지속 가능한 관광 산업의 기본 원칙을 정립했을 때 오염자 부담 원칙을 고려할 수 있다. 반면 현재는 다양한 관광 관련 세금을 부과하는 비교적 좁은 방안에만 관심이 집중돼 있다. 관광세는 도시 세수를 늘리면서도 관광객 수는 줄이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 암스테르담은 하룻밤에 1인당 3유로의 숙박세를 부과하고, 객실 요금의 7퍼센트에 달하는 세금을 추가한다. 아직 받아들일 만한 수준이지만, 이러한 시도는 관광 산업을 통제하고 지역 주민의 이익을 증대하려는 실험적인 움직임의 시작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민첩하게 대응해야 관광으로 돈을 벌면서 관광 산업의 부정적 영향을 외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여행 가이드북을 출간하는 포더(Fodor)는 이타적인 차원에서 방문을 자제해야 하는 여행지 명단 ‘노 리스트(no list)’를 매년 발행하고 있다. 올해의 노 리스트에는 이스터 섬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가 포함되어 있다. 포더는 ‘죽기 전에 미국에서 꼭 가봐야 할 25곳’도 홍보하고 있다. 여기에는 길게 이어진 캘리포니아 해안가 빅 서(Big Sur)가 포함돼 있는데, 이곳에는 최근에 “오버투어리즘이 빅 서를 죽이고 있다”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관광 산업이 없다면, 세계에서 야생 동물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민간 보호 구역 중 상당수는 사냥터로 바뀌거나 농업을 위해 개간될 것이다.


아프리카 미개척지의 염소 처리된 깨끗한 수영장에서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케냐산을 바라보는 것은 현재 코로나 위기를 견디는 나름 괜찮은 방법처럼 보인다. 하지만 숙박 시설 ‘로이사바 텐티드 캠프(Loisaba Tented Camp)’의 인피니티 풀에서 수영하는 사람은 몇 달째 단 한 명도 없다. 로이사바 텐티드 캠프는 2만 3000헥타르(2억 3000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로이사바 보호 구역 내 사파리 숙소 세 곳 중 하나다. 이곳의 CEO이자 케냐 미개척지 관광 업계의 베테랑인 톰 실베스터(Tom Silvester)는 케냐로 들어오는 항공편이 중단된 지 한 달 만에 직원 90명을 해고했다고 밝혔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는 각자 많게는 10명에 달하는 부양가족이 있기 때문에 충격이 크다”고 말했다.

1600만 명의 고용 창출 효과를 내던 16억 달러(1조 7790억 원) 규모의 관광 산업이 붕괴되면서 케냐가 입은 피해는 막심하다. 로이사바에서 세 곳의 숙박시설을 운영하는 호텔 기업 엘레와나(Elewana)는 동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24개 지점을 폐업하고, 사내 유보금으로 약 2000명에 달하는 직원과 딸린 가족의 생계비를 지급하고 있다. 또 다른 야생 보호 구역인 나슐라이(Nashulai)의 웹사이트에는 기부를 호소하는 문구가 걸려 있다. 보호 구역 내 수입에 의지하던 지역 사회가 이제는 기아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관광객을 더 이상 받지 않는 것은 많은 지역이 건강한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관광 산업이 환경 보존에 기여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필자는 엘레와나의 CEO 카림 위산지(Karim Wissanji)에게 “아프리카의 야생 동물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하고 동물들을 평화롭게 내버려 두는 것일 수 있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반박했다. “야생 동물과 서식지의 미래는 본질적으로 사파리 모험 관광 산업과 직결돼 있습니다.”

지난해 케냐를 찾은 20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 중 4분의 3은 야생 동물을 보기 위해 여행을 왔다. 케냐에는 160곳에 달하는 민간 야생 보호 구역이 있다. 야생 동물에게 필수적인 이동 통로이자, 국립 공원을 능가하는 방목지다. 관광 산업이 없다면, 세계에서 야생 동물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민간 보호 구역 중 상당수는 사냥터로 바뀌거나 농업을 위해 개간될 것이다. 민간 야생 보호 구역에서는 주민과 야생 동물이 목초지를 두고 오랫동안 경쟁을 벌여 왔다. 특히 가뭄 기간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동물 보호 단체인 와일드라이프 다이렉트(Wildlife Direct)의 CEO 파울라 카훔부(Paula Kahumbu)는 《가디언》 기고문에서 “케냐의 젊은이들 대부분은 야생 동물을 소수의 부유한 관광객이나 백인 지주에게만 이득을 주는, 자신과 관계없는 존재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몇 년 간 목장과 야생 동물 공원에 폭력적인 습격이 잇따르면서, 사파리 업체는 관광 산업으로 지역 주민을 직접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왔다.

판데믹으로 관광 수입이 사라지면, 생태계의 재앙이 가속화될 수 있다. 생물 다양성이 높은 지역을 보호하는 미국 자선 단체인 국제 보존 협회(Conservation International)는 지난 4월 21일 “케냐에서 야생 동물 고기를 노린 사냥과 상아 밀렵이 우려스러울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보고했다. 전 세계 여러 보존 프로젝트에 기금 후원과 과학 자문을 제공하는 자선 단체 네이처 컨서번시(Nature Conservancy)의 후원 덕분에 로이사바는 그나마 밀렵 감시 순찰을 지속할 수 있는 형편이다.

로이사바는 커다란 면적에 비해 숙박 가능 인원이 48명에 불과하지만, 그마저도 평상시 숙박률이 40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 도시 한가운데로 쏟아지는 크루즈 승객 수천 명을 매일 감당해야 하는 베니스와 비교하면, 로이사바의 운영 방식은 높은 부가 가치와 긍정적인 영향을 일으킨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관광객들은 코끼리와 그물 무늬 기린, 노아의 방주에 있을 법한 조류와 포유류가 있는 로이사바를 즐기기 위해 하루에 700달러(84만 원)를 지불한다. 사실상 인간들의 침략에서 야생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돈을 내는 셈이다. 네이처 컨서번시의 아프리카 책임자인 매튜 브라운(Matthew Brown)은 “관광 산업은 야생 동물 보존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생물 다양성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야생 동물 관광 산업이 없으면 동물을 보호하면서 지역민들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금방 무너지게 될 겁니다.”

관광 산업이 위기 상황에 무너지지 않으려면 다양한 종류의 여행자들이 필요하다. 현재 관광 산업을 통한 로이사바의 야생 동물 보존 방식에는 고객의 다양성이 결여돼 있다. 증가하는 미개척지 관광 산업 수요는 오직 외국 여행자들의 돈만 많이 벌 뿐, 케냐 중산층을 거의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높은 생활비 때문에 많은 케냐 중산층은 휴가 때도 여행을 가지 못하고 집에 머문다. 휴가 때 여행을 떠나도 대부분 바닷가로 향한다.

케냐 사람들도 야생 동물을 보며 휴가를 보낸다면, 보존 지역을 복원하려는 노력은 더 빨리 이뤄질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한 여행 제한이 해제되면, 다른 대륙보다는 인접한 아프리카 국가에서 관광객이 더 먼저 찾아올 전망이다. 지난 4월 케냐 관광부 장관 나지브 발랄라(Najib Balala)는 내수 시장과 아프리카 대륙 시장에 호의적인 방향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했다. 나지브 발랄라 장관은 “언제까지 다른 대륙에서 방문객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패러다임을 당장 바꿀 수 있다면, 서방 국가들이 시행한 여행 제한 권고를 포함해 어떤 충격이 다가와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5년 안에 기를 수 있습니다.”
2005년, 르완다의 화산 국립 공원에서 마운틴고릴라를 촬영하고 있는 관광객들. ©Riccardo Gangale/AP
야생 보호 관광 산업의 전통적인 ‘인기 상품’인 이른바 ‘고릴라 투어’마저도 봉쇄 조치 해제 이후 관광객 수를 빠르게 회복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르완다,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국립 공원에 서식하는 고릴라들은 1980년대에 거의 멸종될 위기에 처했지만, 이후 블루칩 투어리즘(blue-chip tourism·일류 관광 산업)의 후원을 받은 국제적인 보호 노력에 힘입어 개체 수가 조금씩 회복되었다. 참고로 미국인들은 르완다를 여행할 때마다 평균 1만 2000달러(1330만 원)를 쓴다. 2016년 르완다 정부는 귀중한 고릴라와 시간을 보내는 비용을 두 배 인상해 1500달러(170만 원)로 책정했다. 이로써 관광 수입이 1500만 달러(170억 원)에서 1900만 달러(210억 원)로 늘어나는 기적적인 효과가 나타났고, 이 돈의 일부는 산림 감시원의 급여와 지역 복지 기금으로 쓰였다. 또한 화산 국립 공원(Volcanoes National Park)의 고릴라 서식지를 통과해 산행을 하는 방문객들의 숫자가 2만 2000명에서 1만 5000명으로 줄어드는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야생 보호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코로나로 국경이 폐쇄돼 부유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몇 달은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적인 관점에서 당장의 위험은 고릴라들이 코로나에 감염될 가능성이다. 장기적인 도전 과제는 고기를 얻으려는 밀렵꾼으로부터 고릴라들을 지키고, 또 고릴라들이 영양을 잡기 위해 지역 주민이 쳐놓은 올가미에 걸리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다.

우간다와 르완다에서 관광 사업을 벌이고 있는 셰바 하뉴르와(Sheba Hanyurwa)는 관광 수입이 최근 몇 년간 독특한 방식으로 경제 구조를 다양하게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산림 감시원과 가이드가 전반적인 급여 수준 인상을 주도하면서 지역 사회에서 고기 소비를 위한 소와 닭 사육이 시작된 것이다. 현재 위기가 지속되는 동안에도 우간다와 르완다 양국 정부는 수시로 국립 공원을 순찰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충돌 사태가 발생하는 콩고민주공화국의 비룽가 국립 공원(Virunga National Park)에서 최근에 산림 감시원 12명이 살해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성공이다. 하뉴르와는 지난 6월 “호텔 노동자와 짐꾼들은 해고당했고,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다”고 걱정했다. “이곳에서 유일한 생계 수단은 관광 산업뿐인데, 적어도 내년까지는 해외 관광객들이 아무도 오지 않을 겁니다.”

코로나는 양심에 호소하는 엘리트 관광 모델이 가진 약점을 노출시켰다. 대안은 없다.
 

인도네시아가 엘리트 관광보다 대중적인 관광업을 선호하는 이유는 매년 200만 명의 청년이 추가로 노동 시장에 진입하기 때문이다. 관광객 증가는 일자리 증가로 이어진다. 


자연에 기반한 관광 산업이 모두 자연에 좋지는 않다. 사람들이 환경에 전보다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많은 사업체들이 ‘에코프렌들리(eco-friendly·생태 친화적)’나 ‘그린(green)’ 같은 듣기 좋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관광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측정하는 한 단체에 따르면, “여행사들이 판매하는 경험은 ‘생태 친화적’이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고 한다. 비행기를 타고 지구를 가로질러 날아가 불법 벌목된 나무들로 지어진 오두막 안에 앉아 있는 상품들은 여행사들의 인스타그램 광고만큼 생태 친화적이지 않다. 이 사실을 관광객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어떤 관광객들은 착한 일에 드는 비용을 보고는 멈칫하기도 한다. 여행사 투이(Tui)의 2017년 조사를 보면 유럽 여행객 중 84퍼센트는 탄소 배출의 총량을 줄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해 휴가 비용을 추가로 부담하겠다는 응답은 겨우 11퍼센트에 불과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야생 동물 관광 산업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국가 중 하나는 인도네시아다. 인도네시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마뱀인 코모도왕도마뱀(Komodo dragon)이 살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난해 라부안 바조 마을을 10대 주요 여행지 중 한 곳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라부안 바조는 현재 코모도 국립 공원의 수많은 섬들로 향하는 기착지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는 이 프로젝트에 ‘열 개의 새로운 발리’라는 우려스러운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 계획은 대형 신규 공항이 건설될 발리에 관광객이 과도하게 몰리는 오버투어리즘 문제를 줄이려는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매년 저렴한 가격으로 휴가를 즐기려는 관광객 수백만 명을 끌어 모으는 발리의 성공 사례를 모방하려는 목적이다. 이런 계획이 실행된다면 사람들로 가득 찬 해변과 물 부족 현상, 산더미 같이 쌓인 쓰레기 등 발리에서 발생했던 문제들이 새로운 10개의 여행지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될 것이다. 지난 1월 라부안 바조를 방문한 CNBC 특파원은 “한 때는 작은 어촌 마을이었던 곳이 이제는 신흥 도시의 열기가 흘러넘치고, 레스토랑과 호텔이 끊임없이 지어지는 과열 지역이 됐다”고 보도했다.

코모도 국립 공원의 연간 방문객 수는 2008년 4만 4000명에서 2018년에 17만 6000명으로 증가했다. 코모도가 여행객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자연 그 자체보다도 저렴한 여행 비용 덕분이다. 인도네시아 동부에서 요트 선장으로 일하고 있는 전직 군인 글렌 와펫(Glenn Wappett)은 발리에서 라부안 바조의 신공항까지의 항공편으로 50달러(5만 5000원)를 지불한 나에게 “100달러만 더 내면 호스텔에 머물면서 보트를 타고 코모도왕도마뱀을 보러 가고도 돈이 남는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공원 입장료 약 12달러(1만 3300원)도 포함되어 있다.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은 코모도 섬을 포함하는 이 열도를 2020년의 ‘최고의 가치를 가진 여행지’로 선정했다. 론리 플래닛이 지난 4월 이후 시행된 전 세계적인 봉쇄 조치의 타격을 받아 대부분의 영업 활동을 중단하기 전이었다.

인도네시아가 엘리트 관광보다 대중적인 관광업을 선호하는 이유는 매년 200만 명의 청년이 추가로 노동 시장에 진입하기 때문이다. 관광객 증가는 일자리 증가로 이어진다. 대중적인 일반 관광객의 1인당 지출비용은 엘리트 관광객보다 적지만, 관광객 수가 늘어나면 웨이터와 택시 기사, 해양 가이드 수요도 증가한다.
인도네시아의 코모도왕도마뱀. ©Alamy
그러나 방문객이 증가하면서 도마뱀 개체 수는 줄어들고 있다. 관광객들은 짝짓기를 방해했다. 사슴 밀렵으로 주요 식량원이 대폭 감소했고, 벌목으로 서식지가 파괴됐다. 코모도 국립 공원이 있는 동누사틍가라(East Nusa Tenggara) 주지사인 빅토르 붕틸루 라이스코다트(Viktor Bungtilu Laiskodat)는 2018년에 공원 입장료를 500달러(56만 원)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더 부유한 관광객을 끌어들이면서도 관광객 수를 줄여 도마뱀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2019년 3월에는 밀수업자들이 코모도왕도마뱀을 40마리 넘게 훔치는 사건이 벌어지자, 주정부는 왕도마뱀 약 1700마리가 살고 있는 코모도 섬을 2020년 내내 폐쇄해 도마뱀과 도마뱀의 먹이인 사슴의 개체 수는 물론 서식지까지 회복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역 명소를 지키려는 주지사의 시도는 관광 산업으로 생계를 꾸려 가는 수많은 지역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좌초되고 말았다. 인도네시아 요트 선장 글렌 와펫은 “다이빙 업체와 호스텔, 레스토랑 등에서 크게 반발했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코모도 국립 공원에 관광객 입장을 허용하라고 요구했고, 10월에는 중앙 정부가 주지사의 결정을 뒤집으면서 보존 계획은 결국 폐기됐다.

동누사틍가라 주지사가 실패한 계획은 바이러스가 성공시키고 있다. 코모도 국립 공원 출입은 거주하는 어촌 주민 이외에는 전면 금지됐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와펫의 지인들은 왕도마뱀이 현재 사슴 고기와 물고기를 왕성하게 섭취하고 있으며, 사람들로 북적이던 이 구역의 왕도마뱀 개체 수도 놀라울 정도로 회복됐다고 한다.

그러나 관광이 다시 재개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지난 4월 14일 인도네시아 재무부 장관은 코로나 봉쇄 조치로 인도네시아인 520만 명이 실업 상태에 놓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다른 방안이 없는 상태에서 국제선 항공편이 재취항한다면, 대규모 관광객들을 돌아오게 하기 위한 정책도 함께 재개되고 왕도마뱀은 다시 한 번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휴가와 해외여행은 예산과 관계없이 매년 가야만 하는 당연한 권리가 아니다. 관광은 정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사치품이다.


지난 5월 7일 유엔 세계 관광 기구는 코로나가 관광 업계를 계속 압박한다면 오버투어리즘 같은 관광지 과밀화와 기후 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변화하려는 노력이 멈춰 서고, 더 나아가 퇴보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현재 위기가 시작된 이후로 항공사와 크루즈 업계는 세금 감면과 환경 관련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강한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제트 스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름 매연부터 골프장 잔디에 흥건한 살충제까지, 관광객이 누리는 순수한 즐거움은 가난하고 오래된 지구에게 또 다른 공격이 될 수 있다. 여행객들이 700만 개에 달하는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하룻밤 머물 때마다 냉장고에는 남은 음식물이 쌓인다. 침대 시트 세탁에도 화학 물질이 쓰인다. 크루즈 선박은 발암 물질이 함유된 연료를 태운다. 탄소 배출도 문제다. 《네이처 클라이밋 체인지(Nature Climate Change)》는 최근 연구에서 “관광 산업은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다른 잠재적인 산업보다 탄소 집약도가 심각하게 높다”고 밝혔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관광 산업이 전 세계에서 배출한 탄소는 지구 전체 온실 가스 배출량의 8퍼센트로 증가했으며, 그중 대부분은 항공 여행에서 발생했다. 《네이처 클라이밋 체인지》는 “관광 수요의 급격한 증가는 탄소에서 벗어나려는 관련 기술 효과를 앞지르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는 파괴적이지만, 탄소 배출에서 벗어나고 지역에서만 머물며 생활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세계 관광 산업이 멈추면서 탄소 배출의 측면에서 재앙과 같던 항공 운송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졌다. 또 지역 주민의 수요에 맞는 다양한 관광 상품 개발 방법도 고민하게 됐다.

인도네시아 코모도 국립 공원은 결론적으로 더 적은 수의 방문객이 더 많은 돈을 내고 국립 공원을 방문하는 동시에, 지역 사회가 수 세기 동안 지속한 어업과 직물 산업을 발전시키는 방법을 대안으로 찾아야 한다. 조지아의 스바네티에서는 관광객들이 뿌려 대는 달러의 유혹으로 지역 주민들이 축산업을 포기하고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를 열고 있다. 소트네 제퍼리제는 현재 코로나로 겪는 위기가 “전통적인 생계 수단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더 넓게 보면 관광 산업을 오직 단기간의 외화 벌이 수단으로 평가하기보다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미래의 계획과 비용-편익 분석(cost-benefit analysis)의 대상으로 국가 경제 전반에 통합해야 한다. 관광 산업이 지나치게 우세한 곳에서는 영향력을 줄이고, 탄소 배출에서 벗어나려는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노력을 함께 해야 한다.

글로벌 산업으로서 관광업은 영국 더비셔(Derbyshire)에 있는 롤스로이스 공장에서 비행기 엔진을 만드는 일에서부터 몬테네그로만에 있는 아이리쉬 펍에서 맥주를 따르는 일까지 다양한 활동들의 총체다. 이러한 세계적인 관점에서 관광 산업은 사실 쉽게 계획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관광업의 근본적인 통제권은 지역 정부와 주 정부, 중앙 정부에 있고, 현재 위기를 개혁해야 할 책임도 바로 이들에게 있다. 몇몇 지역에서는 이미 개혁을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바르셀로나 시 의회는 휴양지로 빼앗긴 마을의 일부를 시민의 품으로 돌려줬다. 동누사틍가라 주지사는 높은 비용을 책정해 코모도왕도마뱀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려 했다. 세금과 가격 조정을 통해 비대해진 관광업을 길들이려는 시도는 세계 곳곳에서 시작돼야 한다. 휴가와 해외여행은 예산과 관계없이 매년 가야만 하는 당연한 권리가 아니다. 관광은 정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사치품이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