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하락/ 미국 주식 시장 유동성/2000년 1월을 100으로 설정해 비교
거래 비용이 급감했고 거래량은 폭증했다. 거래자가 몰릴수록 거래 속도는 빨라지고 가격도 저렴해졌다(표1 참조). 다량의 게임스톱 거래가 유입된 앱 로빈후드는 2015년 출범한 최초의 무료 거래 플랫폼이다. 여기에
판데믹이 가져온 시간적 여유, 초기 투자금으로 사용된 재난 지원금은 개인 투자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다. 2019년 미국에서 개인의 투자는 전체 거래량의 10분의 1을 차지했다. 올해 1월, 개인 점유율은 4분의 1로 증가했다.
거래가 쉬워지면서 상당한 수수료를 부과해 이익을 챙겨 오던 막강한 기관 투자자들은 장악하고 있었던 자산이 빠져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이제 그들은 다양한 경쟁자를 상대하게 되었다. 시장을 추적하는 인덱스 펀드(index fund), 자산 바스켓인 ETF(Exchange-Traded Fund, 상장 지수 펀드), 포트폴리오 관리 이론에 따라 저렴한 펀드에 투자를 할당하는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 등이다. 컴퓨터 처리 능력의 향상과 머신러닝의 발전으로 인한 혁신으로 1975년 이후 투자자들은 1조 달러(1117조 원) 이상의 수수료를 절감했다.
비상장주, 높은 수수료, 낮은 거래량은 여전히 시장의 발목을 잡고 느려진 거래와 위축된 투자자을 낳는다. 하지만 주식 시장에서 거래 비용을 낮추고 유동성을 높인 동력은 회사채에서 부동산, 심지어 피카소의 그림과 클래식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자산 시장을 흔들 태세다. 주식과 마찬가지로 이는 결국 기성 금융 기관의 타격과 개인의 영향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모든 면에서 기술은 새로운 유동적 시장을 창출하는 데 도움을 줬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앨빈 로스(Alvin Roth)는 이렇게 말한다. “다락방의 잡동사니를 거래하는 시장은 한때 비유동적이었다. 인터넷 덕분에 집 마당에서 하던 중고 거래를 이베이에서 할 수 있게 되었다.” GPS와 스마트폰은 큰 규모의 여행 관련 시장을 창출한 승차 공유 앱으로 이어졌다.
금융 시장에서 일어났던 변화의 사례는 아주 많다. 19세기 미국의 바이어들은 한 명의 농부와 계약을 맺기 전 밀을 테스트해 보며 농장과 농장 사이를 누볐다. 그 후 철도가 개발되면서 곡물의 이동이 저렴해졌다. 하지만 생산한 농장별로 곡물을 따로 저장해야 하는 낭비가 있었다.
1848년 시카고 상품 거래소(Chicago Board of Trade)는 밀을 품질(최고는 1, 최저는 5)과 유형(빨간색 혹은 흰색, 연함 혹은 단단함, 겨울철 혹은 봄철)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표준화는 곡물의 수송과 구매 비용을 낮춰 시장을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었다. 그 과정은 매우 효과적이어서 상품(commodity)이라는 단어는 이제 표준화(standardisation)와 동의어가 되었다.
그러나 자산을 거래하는 유동성 시장을 구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채권, 부동산 시장을 주식 시장과 비교해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시장의 규모는 대체로 비슷하다(표2 참조). 하지만 채권과 건물은 다른 방식으로 거래된다. 이러한 차이는 파편화(fragmentation)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는 4400개의 상장 회사가 있다. AT&T의 주식을 사는 투자자는 그것이 어떤 주식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똑같은 구슬 꾸러미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과 같다. 이제 그들이 AT&T의 채권을 구입하려 한다고 가정해 보자. 채권은 하나의 구슬이 각기 다른 수백 개의 파편으로 부서져 있는 것과 같다. 224개의 AT&T 채권만 해도 각기 다른 이자율, 만기일,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미국에는 30만 개의 회사채가 있다. 이번에는 투자자가 부동산을 구입하려 한다고 가정해 보자. 부동산은 구슬 파편들이 모래처럼 잘게 갈아져 있는 것과 같다. 미국에는 500만 에서 600만 채의 상업용 건물과 1억 4000채 이상의 주택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