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의 행복 (표2) / 미국, “코로나19가 끝나면, 유급 재택근무를 얼마나 자주 하기를 원하는가?” /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2020년 3월-2021년 5월, 응답자들 중 비율(%) / 주당 일수
5 4 3 2 1 / (맨 오른쪽 옅은색) 거의 또는 전혀 원치 않음 / *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제외 / 출처: WFH 리서치
원격근무의 피해자들로 여겨지기도 하는 젊은 노동자들은 유연한 근무 일정에 호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모건스탠리의 조사에 의하면, 16-21세의 Z세대 젊은이들은 원격근무를 지속하게 된다면 그 주된 이유가 고용주의 정책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 될 거라고 말하는 비율이 다른 어떤 연령대보다도 높았다. 또한, 모든 연령대에서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이따금씩 사무실에 나오는 걸 여전히 열망하고 있는데, 특히 북반구의 찌는 듯한 무더위가 최고조에 달하는 기간에는 사무실에서 든든한 에어컨을 즐기고 싶어 했다.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대기업인 세일즈포스(Salesforce)는 자체적으로도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는데, 이들은 직원들의 거의 절반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머무는 걸 선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섯 명 중의 넷은 회사 사무실과의 물리적인 연결이 유지되는 걸 원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나라에 따라서 최대의 고용주가 되기도 하는 공공 부문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처지이다. 영국의 세무 당국은 모든 직원들에게 주당 이틀씩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미국의 연방정부는 많은 공무원들이 판데믹 이후에도 유연 근무제를 유지하고 싶어 하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 30만 명의 공무원들 가운데 20퍼센트가 원격근무를 원하고 있는 아일랜드는 직원들에게 재정 지원을 해주면서 도시 외부로 이사 가는 걸 독려하고 있다. 그들은 400군데 이상의 원격근무 허브를 조성함으로써, 직원들이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인도네시아는 “발리에서 일하기”라는 계획을 수립했는데, 이는 공무원들이 열대의 섬인 발리의 관광산업이 살아나는 걸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이런 모든 상황들은 (월스트리트는 예외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하이브리드 형태의 고용이 대부분의 지역에서 지속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자체적인 어려움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근무 형태는 일과 가정생활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가상회의는 직접 만나는 것보다는 더욱 지루할 수 있다. 심지어는 화상회의 서비스인 줌(Zoom)을 만든 억만장자인 에릭 유안(Eric Yuan)조차도 줌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하이브리드 근무 일정은 사무실 공간의 유지관리를 까다롭게 만드는데, 특히 HSBC를 포함하는 수많은 기업들이 사무실 면적을 줄이려고 계획하고 있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컨설팅 업체인 EY에 의하면, 만약에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대부분의 오스트레일리아 노동자들은 월요일과 금요일에 집에서 근무하는 걸 선호하고 있었다. 관리자들은 이를 두고 단지 주말을 연장하기 위한 얄팍한 시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테지만, 설령 그들의 의구심이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재택근무 일정으로는 가장 인기가 없는 요일인 수요일에는 주중의 양 끝에 비해서는 사무실이 훨씬 더 붐비게 될 것이다.
일부 기업들은 여전히 직원들이 원할 때마다 언제든지 사무실에 들어오도록 할 생각이다. 더욱 창의적인 발상을 하는 기업들도 있다. 피그마의 CEO인 딜런 필드는 직원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있다. 즉, 완전히 원격근무를 하거나, 또는 최소한 주 2회 사무실에 있는 책상에서 근무하는 것이다. 데이터 관리 기업인 스노우플레이크(Snowflake)는 인력 운용 방안에 대해서는 개별 단위에게 일임할 계획이다. 애플(Apple)과 같은 대기업을 포함해서 많은 기업들은 직원들이 의무적으로 출근해야 하는 일정을 지정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있다.
정상적인 것의 악영향
근무 형태를 갑작스럽게 재편하다보면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더욱 유연하기를 원하는 노동자들은 판데믹 이전 상황에 가까운 수준으로의 복귀를 요청하는 고용주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애플의 일부 직원들은 회사가 주 3일 내근을 요구하는 것을 두고 “(우리를) 무시하는 것이며 가당치않은 처사”라며 원색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미국 최대의 노동조합 연맹인 AFL-CIO
[2]조차도 그 직원들이 환기 시설의 개선이 이루어지지도 않았으며 대중교통으로 출퇴근 하는 동안 감염의 위험이 지속되고 있는 불안이 여전함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을 다시 사무실로 복귀시키는 조치가 건강 및 안전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의견 차이는 이사회 내부로도 흘러들고 있다. 대규모 기관투자가들을 포함한 일부 주주들은 단지 인재들을 유지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기업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
[3]와 관련한 신뢰도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라도 유연 근무를 열심히 권장하고 있다. 분석기관인 S&P글로벌(S&P Global)은 자체적인 평가 결과, 집에서 일할 수 있는 능력은 기업의 건전성과 복지 혜택을 측정하는 하나의 지표이며, 이는 기업의 ESG 점수에서 최대 5퍼센트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정도의 가중치는 은행에게는 리스크 및 위기관리 능력의 평가를 좌우할 수 있는 정도이며, 또는 광부들에게는 인권이 걸린 사안이 될 수도 있는 수준이다. 이것은 젠더나 인종 다양상과 같은 요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러 연구에 의하면 아빠보다는 엄마들이 집에서 원하는 걸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메시징 앱인 슬랙(Slack)의 연구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흑인 지식근로자(knowledge-worker)의 겨우 3퍼센트만이 다시 정규 근무 형태로 사무실에 복귀하기를 원하고 있었는데, 그에 비하면 백인 집단의 비율은 21퍼센트였다.
현재도 백신접종을 하지 않은 노동자들이 사무실에 출근하는 걸 막아야 하느냐와 같은 단기적인 사안의 논쟁을 벌이고 있기는 하지만, 기업들로서는 그 외에도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아주 많이 있다. 비록 운영에 많은 차질을 빚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의 갑작스런 원격근무 문화로의 전환은 역설적이게도 판데믹 이후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다시 정상으로 복귀하려는 노력보다는 상당히 순조로웠던 것으로 입증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