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브 툴 플레이어, 다 잘하는 쿼츠
쿼츠(Quartz)는 2012년 9월 론칭한 미국의 경제 전문 디지털 미디어다. 이 매체는 웹사이트에 명시해 놓은 것처럼 ‘글로벌 감각이 있는 비즈니스맨을 위한 창의적이고 지적인 저널리즘을 제공’한다.
161년 전통의 미국 언론사 애틀랜틱미디어컴퍼니가 모바일에 최적화된 미디어 쿼츠를 론칭했을 때, 그들의 시도는 별난 실험 정도로 여겨졌다. 초기에는 PC 웹페이지와 모바일 앱 없이 모바일 웹페이지만 있었다. 모바일 페이지에는 정치, 경제, 국제 식의 뉴스 구분이 아닌 ‘오브세션(Obsessions)’이라는 낯선 카테고리만 있을 뿐이었다. 오브세션은 기자의 시각이 반영된 이슈 정리인데, 항목은 수시로 바뀐다. 2018년 7월에는 육아의 기술(The Art of Parenting), 아프리카 혁신가(Africa Innovators), 에너지 쇼크(Energy Shocks), 일의 미래(Future of Work)와 같은 이름의 시리즈가 실렸다.
육아의 기술에는 이 섹션을 만든 배경이 짤막하게 쓰여 있다. “정보화 시대의 육아는 미치도록 어려운 일(maddening)입니다. 양육에 관한 데이터와 전문가의 의견은 어디에나 있지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가이드는 늘 부족합니다. ‘사랑하라 그렇지만 엄하게’, ‘격려하라, 그러나 응석은 받아 주지 말 것’ 등 상반되는 조언이 쏟아집니다. 쿼츠는 육아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겠습니다.” 금융, 정책, IT, 자동차 등으로 나뉘는 일반 경제 매체의 카테고리와 확실히 구별된다.
쿼츠는 론칭 4년 만인 2016년 흑자 전환했다. 2013년 매출액 380만 달러, 2014년 1000만 달러, 2015년 1860만 달러를 거쳐, 2016년 3000만 달러(약 350억 8800만 원)를 달성했다. 2017년에는 광고가 줄어든 탓에, 전년보다 감소한 2760만 달러를 기록했다. 2018년 매출 규모는 3500~38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1] 웹사이트의 월평균 순방문자 수는 2017년 2200만 명을 돌파했고, 이메일 뉴스레터 구독자 수는 2017년 한 해 동안 두 배가 늘어 70만 명에 달한다.
가파른 성장의 배경에는 꾸준한 혁신이 있었다. 2013년 8월 독자가 기사 본문에 직접 의견을 남길 수 있는 ‘주석 달기(Annotations)’ 서비스, 2015년 6월 차트 공유 플랫폼 ‘아틀라스(Atlas)’, 2016년 2월 대화형 뉴스 앱(애플 선정 ‘2016년 최고의 앱’), 2016년 7월 각종 경제 지표를 알기 쉬운 도표로 보여 주는 ‘인덱스(Index)’ 등을 차례로 공개했다. 2016년 11월에는 아마존의 인공지능 스피커가 쿼츠의 뉴스레터를 읽어 주는 서비스 ‘플래시 브리핑스(Flash Briefings)’를 시작했다. 2017년에는 ‘페이스북 메신저 봇’, AR 기술을 활용한 뉴스 등을 공개했다.
디지털 기업을 지향하는 미디어 기업답게 데이터를 중시하지만, 그렇다고 데이터에 의존해 모든 결정을 내리지는 않는다. 제이 라우프(Jay Lauf) 발행인은 2017년 3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DIS(Digital Innovators’ Summit)에서 “쿼츠는 큰 결정을 내릴 때는 직감에 따르고, 작은 결정은 데이터에 따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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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디자인도 준수하다. 암청색과 자색 위주의 간결한 비주얼은 차트와 일러스트레이션만으로도 쿼츠의 콘텐츠임을 알게 한다. 기술 스타트업으로 불릴 만한 혁신적인 서비스, 늘어나는 광고주와 트래픽, 브랜드 디자인까지, 쿼츠는 야구에서 말하는 ‘파이브 툴 플레이어(five-tool player, 정확성·파워·수비·송구·주루 능력을 모두 갖춘 선수)’로 불릴 만한 매체다.
쿼츠의 혁신은 어디에서 비롯하는 걸까. 쿼츠의 편집장을 인터뷰하고 관계자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나의 눈길을 끈 건 쿼츠의 혁신보다 ‘애티튜드(attitude, 태도)’였다. 업무 스타일은 짧고 핵심을 짚는 그들의 콘텐츠를 닮았다. 늘 독자의 피드백에 촉을 세우고, 일 처리가 굉장히 빠르다. 쿼츠 홍보팀과 이메일을 수십 번 주고받으면서, 답장은 늘 10분 이내로 받았다. “여전히 우리는 스타트업”이라고 말하는 케빈 딜레이니(Kevin Delaney) 편집장의 소신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2018년 7월 쿼츠의 매각 소식이 들려왔다. 2008년 설립된 일본의 미디어 기업 유자베이스(Uzabase)가 7500만~1억 1000만 달러의 금액으로 쿼츠를 인수했다. 인수 금액은 쿼츠의 올해 매출 규모에 따라 확정될 예정이다.
쿼츠의 모기업 애틀랜틱미디어의 데이비드 브래들리(David G. Bradley) 회장은 2017년 7월 디 애틀랜틱(The Atlantic)을 스티브 잡스의 부인인 로렌 파월 잡스가 운영하는 자선 단체 에머슨 콜렉티브(Emerson Collective)에 매각한 데 이어, 1년 만에 쿼츠를 팔았다. 브래들리 회장은 이미 수년 전 애틀랜틱미디어에 속한 매체를 차례로 매각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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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베이스의 주력 서비스는 스피다(Speeda)와 뉴스픽스(NewsPicks)다. 2008년 론칭한 스피다는 전 세계 금융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제공하는 블룸버그 단말기(Bloomberg terminal)와 유사한 서비스다. 아시아의 560개 산업과 460만 개 기업의 데이터를 제공한다. 2013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뉴스 애그리게이터(aggregator)
[4]인 뉴스픽스의 가입자 수는 일본에서만 330만 명에 달한다. 2017년에는 다우존스와 합작해 만든 뉴스픽스 미국판이 공개됐다.
쿼츠와 유자베이스의 거래는 양사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쿼츠는 유자베이스의 유료 서비스 노하우를 얻고, 유자베이스는 아시아권 밖으로의 서비스 확장에 쿼츠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쿼츠의 인력은 자체 콘텐츠 외에도 뉴스픽스 서비스 영어 버전의 제작을 맡는다.
주인이 바뀐 쿼츠는 네이티브 광고에 의존하던 기존의 수익 모델에서 유료 콘텐츠 중심의 모델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쿼츠의 케빈 딜레이니 편집장과 제이 라우프 발행인은 매각 이후 공동 CEO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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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딜레이니 편집장 인터뷰; “254개 단어, 짧은 기사에 답이 있다”
2016년 11월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쿼츠의 편집장 겸 공동 창업자 케빈 딜레이니를 처음 만났다.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LA, 홍콩을 거친 출장의 마지막 일정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직접 만난 딜레이니 편집장은 20여 년 경력의 고참 기자가 아니라 스타트업 창업자에 가까웠다. 그는 격식이 없었다. 악수를 하고 그가 건넨 첫마디는 “So, what are we gonna do?”였다. 특유의 열정도 돋보였다. 편집장은 인터뷰 중간중간 부연 설명을 위해 자신의 아이폰으로 쿼츠 기사와 인포그래픽을 보여 줬다.
쿼츠가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이코노미스트 웹페이지의 월평균 순방문자 수를 넘어선 비결을 묻자, 딜레이니 편집장은 패션업체 바나나 리퍼블릭에 관한 254개 단어 분량의 기사를 보여 줬다. 쿼츠는 기사를 주로 500개 단어 이내로 쓰고 적절한 이미지와 차트를 넣는데, 이것이 기사 공유 수와 트래픽을 늘리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너무나 유명한 ‘쿼츠 커브(Quartz Curve)’다. 쿼츠는 단어 500~800개 분량의 콘텐츠는 잘 공유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쿼츠의 기자들은 단어 500개 이내 또는 1000개 이상의 기사를 쓴다. ‘독자가 원하는 분량은 어느 정도인가’라는 고민에서 분석을 시작했다고 편집장은 덧붙였다. 당시 실시한 대면 인터뷰와 최근까지 이어진 이메일 인터뷰를 재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