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하게, 스마트하게
폴리티코를 공동 창업한 짐 반더하이(Jim VandeHei)의 퇴사 계획이 알려진 2016년 1월[1], 수많은 매체가 그의 차후 행보에 주목했다. 폴리티코가 어떤 매체인가. 2007년 출범한 이 정치 전문 매체는 여러 특종과 선거, 입법 관련 분석, 깊이 있는 뉴스레터를 앞세워 불과 몇 년 만에 정상급 미디어로 성장했다. 이제 갓 10년이 넘은 폴리티코의 백악관 브리핑룸 지정석은 USA 투데이, ABC 라디오 등 유력 매체와 열을 나란히 한다.
반더하이는 2017년 1월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Axios)를 창간했다. 폴리티코의 창간 멤버인 백악관 전문 기자 출신 마이크 앨런(Mike Allen), 로이 슈워츠(Roy Schwartz) 전 CRO(Chief Revenue Officer, 최고수익책임자)도 창업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미디어는 고장 났다. 기사는 너무 길고 지루하고, 웹사이트는 혼란스럽다”는 반더하이의 주장을 고스란히 반영하듯 악시오스는 특유의 간결함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악시오스의 슬로건은 똑똑함(smart)과 간결함(brevity)이다. 우선, 분량이 간결하다. 악시오스 웹페이지를 스크롤하면, 단어 100개 내외의 콤팩트한 본문 일부가 보인다. 모바일에서 보면 한 스크린이 조금 넘는 분량이다. 기사 대부분은 리드와 에디터의 해설인 ‘왜 중요한가(Why it matters)’로 시작하는데, 본문 전체를 보려면 ‘자세히 읽기(Go deeper)’ 버튼을 누르면 된다. 친절하게 남은 분량까지 알려 준다. 악시오스는 아이폰 화면에 최적화되어 있다.
악시오스가 내세우는 스마트함은 ‘최소의 분량과 최대의 정보’를 지향하는 데서 온다. 악시오스의 기사는 전형적인 스트레이트 기사와는 구성이 조금 다르다. 오히려 보고서에 가깝다. 리드의 요약에 이어 기사의 성격에 따라, 상세 내용(The details), 배경(Background), 행간(Between the lines), 전체 상황(The big picture), 수치(By the numbers), 결론(The bottom line)으로 시작하는 단락이 착착 전개된다. 가령 기사 〈Tim Cook: iPhone X is no dud〉의 분량은 단어 236개에 불과하지만, 사안의 핵심을 명확하게 짚는다. 자세히 읽기 버튼을 눌러 전문을 보면 애플의 웨어러블 기기 매출과 중국 시장에 관한 팀 쿡의 낙관적인 전망이 등장한다.
해당 분야의 기사를 더 읽고 싶다면 기사 아래의 태그를 누르면 된다. 이전 페이지로 되돌리거나 홈 버튼을 누를 필요가 없다. 악시오스 콘텐츠는 정치, 테크, 비즈니스, 헬스케어, 과학, 일의 미래, 에너지, 세계 등의 분야로 나뉜다.
뉴스레터는 악시오스가 주력하는 채널 중 하나다. 제작은 폴리티코 시절 뉴스레터 ‘플레이북’으로 큰 성과를 낸 마이크 앨런이 총괄한다. 악시오스는 14종의 뉴스레터를 제공하고 있는데, 2018년 6월 기준 구독자 수는 30만 명이다. 워싱턴 정가가 악시오스의 아침 뉴스레터 ‘Axios Am’과 함께 아침을 시작한다는 말도 나온다. Axios Am에는 앨런이 직접 고른 톱뉴스 10꼭지가 담겨 있다.
악시오스는 론칭 1년 만에 월간 순방문자 수 860만 명, 페이지뷰 8000만 회를 기록했다.[2] 트래픽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페이스북 직접 유입은 20퍼센트다.
창간 전 이미 투자금 1000만 달러를 끌어모은 악시오스는 론칭 10개월 만에 2000만 달러를 추가 유치했다. 투자단에는 뉴미디어 전문 투자사 레러 히포 벤처스(Lerer Hippeau Ventures)를 비롯해, NBC 뉴스, 데이비드 브래들리 애틀랜틱미디어 회장 , 스티브 잡스의 부인인 로렌 파월 잡스가 운영하는 자선 단체 에머슨 콜렉티브, 벤처캐피털 그레이크로프트 파트너스(Greycroft Partners) 등이 이름을 올렸다.
악시오스의 주요 수익원은 네이티브 광고다. 론칭 7개월 만에 매출액이 1000만 달러를 넘었다. 창간 1주년이 갓 지난 2018년 2월, 니콜라스 존스턴(Nicholas Johnston) 편집장에게 악시오스의 주목할 만한 성과를 묻자 그는 “예상을 뛰어넘는 광고 매출”이라고 답했다. 론칭 당시부터 JP모건, 보잉, 펩시, BP 등 쟁쟁한 광고주 열 곳을 거느렸던 악시오스의 안착은 충분히 예상된 결과였다.
axios.com 론칭 전부터 언론은 악시오스의 새로운 광고 방식에 주목했다. 반더하이 CEO가 배너와 팝업 광고, 긴 분량의 네이티브 광고가 더 이상 소비자에게 먹히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기 때문이다. 악시오스가 지난 1년간 선보인 네이티브 광고는 그들의 기사처럼 ‘똑똑하고 간결’하다.
14개 분야의 뉴스레터 대부분에는 그 분야의 네이티브 광고가 포함된다. 가령 비즈니스 에디터 댄 프리맥(Dan Primack)이 작성하는 뉴스레터에는 JP모건과 만든 ‘중소 사업자가 세제 개혁에 관해 알아야 할 다섯 가지’라는 네이티브 광고가, IT 분야 뉴스레터에는 다임러 그룹과 합작한 전기 자동차 관련 콘텐츠가 제공된다. 뉴스레터의 오픈율은 52퍼센트에 달한다.
악시오스가 내세우는 간결하고 똑똑한 기사의 콘셉트는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 다만 이 매체는 고유의 문법으로 미디어 시장에서 두터운 팬층을 만들고 있다. 악시오스 관계자에게 차별화되는 간결한 뉴스의 특징을 묻자, 몇 가지 수치를 제시했다. 타 매체의 기사를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3.1분인 것에 비해 악시오스 기사 한 꼭지를 읽을 때 걸리는 시간은 27초라는 것. 비슷한 내용의 뉴스를 소비하는 데 2.7분을 아낄 수 있다는 게 악시오스 측의 주장이다.
Smart Brevity 전략은 비디오 콘텐츠에서도 돋보인다. 에디터의 해설을 덧붙인 2분 내외의 영상은 그들의 텍스트 기사처럼 짧은 분량임에도 뉴스의 맥락을 짚는 풍성함을 자랑한다. 2018년 8월에는 미국 케이블 방송사 HBO와 뉴스 다큐멘터리 제작 파트너십을 맺었다. 11월에 있을 중간 선거를 다룰 이 프로그램은 올해 가을부터 방송할 예정이다.
악시오스에 해설과 분석 기사가 많은 배경은 조직도를 들여다보면 잘 알 수 있다. 콘텐츠 제작 인력 40여 명 중 기자와 에디터의 수가 비슷하다. 에디터를 겸하는 전문 기자가 있는 걸 감안하면 에디터 수가 기자보다 많은 셈이다. 악시오스는 마이크 앨런, 매트 보기(Matt Boggie), 알렉시스 로이드(Alexis Lloyd), 이나 프라이드(Ina Fried) 등 정상급 에디터와 전문 기자를 꾸준히 영입하고 있다.
악시오스의 진짜 저력은 취재력에서 나온다. 반더하이와 앨런은 악시오스를 론칭하기도 전에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와의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axios.com이 공개되기도 전이었다. 이 밖에 악시오스는 미국의 파리 기후 협정 탈퇴 선언, 우버 최대 투자사인 벤치마크캐피털의 트래비스 칼라닉 창업자 사기죄 고소 등 대형 특종도 냈다.
회사 내부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미국 구인 구직 사이트 글래스도어(Glassdoor)에는 악시오스 전·현직 직원들의 리뷰가 올라와 있다. “악시오스는 익사이팅(exciting)한 직장”, “직원에게 스톡옵션을 지급한다”, “직장 문화가 투명하다”는 평이 많다. “스스로 ‘고게터(go-getter, 성공하려고 단단히 작정한 사람)’라고 생각한다면 이곳에서 살아남을 것”이라는 조언도 눈길을 끌었다. 스타트업 특유의 빠른 성장과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물론 좋은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악시오스가 론칭 1년이 지나도록 간결한 사용자 경험 이외의 것을 보여 주지는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창업자와 소수 스타 기자의 능력에만 기댄다는 비판도 있다.
니콜라스 존스턴 편집장 인터뷰; “짧게 쓸 시간이 없어 길게 썼습니다”
미국의 경영 전문지 패스트컴퍼니는 매년 ‘올해의 가장 혁신적인 기업’을 선정해 발표한다. 악시오스는 창간 1년 만에 미디어 분야에 이름을 올렸다. 1위는 워싱턴포스트, 2위는 창작자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패트리온(Patreon)이 선정됐다.[3]
론칭 1주년 축하 파티가 열린 2018년 1월, 니콜라스 존스턴 편집장을 인터뷰했다. 창업 멤버인 그는 정치와 비즈니스 분야의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분석 기사도 쓴다. 존스턴 편집장은 론칭 전인 2016년 8월 악시오스에 합류했다. 앞서 블룸버그 통신에서 속보와 뉴스레터 제작을 총괄했다. 오바마 정부 당시 2년간 백악관과 미국 의회 취재 기자로 활동했다. 기자 생활은 워싱턴포스트에서 시작했다.
간결함과 스마트함을 추구하는 매체는 이미 많다. 악시오스는 어떤 차별성을 갖고 있나?
우리의 모든 기사는 아이폰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크기로 제작된다. ‘왜 중요한가(Why it matters)’, ‘배경(The backdrop)’, ‘전체 상황(The big picture)’ 등 100단어 미만의 요약은 악시오스만의 간결하면서도 차별화된 보도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하는 낚시성 기사는 일절 없다. Smart Brevity는 악시오스 저널리즘의 핵심이다. 기사의 양식뿐만 아니라, 웹사이트 디자인, 뉴스레터, 기자 채용과 교육 등 모든 것에 Smart Brevity가 적용된다. 우리는 항상 간결한 정보를 재빨리 전달하는 방법과 독자들을 지혜롭게 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다. 공동 창업자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이 공감하는 우리 뉴스룸 문화의 일부분이다.
악시오스는 북한과 한반도 정세를 많이 보도한다. 기사 분량이 주로 300단어 이내인데, 외교처럼 복잡한 분야를 간결하게 정리하는 게 가능한가. 짧은 분량과 깊이 있는 분석이라는 두 가치는 양립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정치는 악시오스가 다루는 분야 중 하나다. 우리는 정치가 비즈니스, 기술 분야와 어떻게 연계되는지에 관심을 가진다. 악시오스가 고작 200단어 분량의 기사에 담는 정보량을 확인하면 놀랄 것이다. 우리는 기사의 간결함과 정확함에 매우 집중하는데, 적은 분량임에도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미국의 오랜 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미안합니다. 짧은 편지를 쓸 시간이 없어서 긴 편지를 썼습니다.” 한마디로 짧게 요약해서 쓰는 게 더 어려운 작업이란 뜻이다. 그렇다고 짧은 기사만 내놓는 건 아니다. 긴 분량으로 써야 할 주제와 정보가 있을 때면 그렇게 한다. 우리가 쓴 긴 기사는 독자들에게 또 다른 굉장히 가치 있는 콘텐츠가 될 것이다.[4]
악시오스는 지난 1년간 다양한 실험을 선보였다.
우리가 독자 개발한 Smart Brevity는 복잡한 뉴스라도 핵심을 뽑아내 독자들이 맥락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기사 양식이다. 공유 수를 높이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2017년 1월 선보인 이래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과 차트 등 악시오스 비주얼팀의 기여가 굉장히 크다.
2017년 1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인터뷰를 인상적으로 봤다. 제작 과정의 에피소드가 궁금하다.
짐 반더하이 CEO와 마이크 앨런 수석 에디터가 인터뷰를 주도했다. 당시 악시오스는 제대로 된 홈페이지조차 갖추지 않은 상태였다. 반더하이와 앨런은 “트럼프는 우리가 선거 기간 동안 봐온 모습대로였다”라고 인터뷰 당시를 회상했다. 자기 이름이 적힌 빌딩을 여러 채 보유한 70대 억만장자는 앞으로도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실제로 언론에 보도된 모습 그대로다. 악시오스 인터뷰 기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이후 나왔다.
직원 규모와 직군별 구성은 어떻게 되나?
2018년 2월 기준 100명이 조금 안 된다. 이 중 3분의 1 이상이 뉴스 제작에 관여한다. 우리는 각 분야의 특출한 전문가를 채용하고 있다. 테크 분야의 이나 프라이드, 경제의 댄 프리맥과 같은 스타 기자가 악시오스에서 활약하고 있다. 우리 에디터들은 각 분야에 독보적인, 방대한 경험을 갖고 있다. 데이비드 네이더(David Nather)는 헬스케어 분야에서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고, 킴 하트(Kim Hart)는 정부 기관과 기술 회사에서 수년간 일했다. 우리는 늘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영입하려고 한다. 기자들뿐 아니라 디자이너, 개발자 등 전 분야에 해당된다. 악시오스의 성공은 훌륭한 인재를 채용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올해 연말까지 직원 수를 15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폴리티코 공동 창업자 셋의 또 다른 창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렇다. 두 매체 모두 정치 분야가 메인이지만, 보도 범위를 들여다보면 많이 다르다. 악시오스의 창간 준비 단계부터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건 독자가 효율적으로 뉴스를 소비하도록 돕는 것이다. 폴리티코와 악시오스의 특성은 확연히 구분된다.
반더하이 CEO는 악시오스 론칭 초기부터 “뉴욕타임스 같은 월 20달러 내외의 구독 모델이 아닌, 연 1만 달러짜리 프리미엄 서비스를 구상 중”이라고 공공연히 말했는데, 2017년 9월 브랜드 구축에 집중하겠다는 이유로 계획 연기를 발표했다. 유료 콘텐츠 서비스 계획을 알려 달라.
일단 악시오스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고객들이 우리 콘텐츠를 좋아하게 되고, 언제든 다시 올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 악시오스는 콘텐츠 유료화와 광고, 비즈니스 이벤트를 연계해서 하나의 서비스로 여긴다. 첫해의 광고 실적이 굉장히 성공적이었고 당분간 광고에 집중하기로 했다. 유료화 모델은 적절한 시기에 출시할 예정이다.
악시오스는 200여 명으로 구성된 외부 기고자 네트워크를 공개했다. 필진에는 이스라엘 저널리스트 바락 라비드(Barak Ravid), 중국 전문가 빌 비숍(Bill Bishop) 등이 포함됐다. 외부 전문가 기고는 허프포스트(Huffpost)나 포브스(Forbes) 등 기존 언론이 해온 오래된 방식인데, 이 서비스를 출시한 배경은 무엇인가?
자사 기자의 기사든 외부 기고자의 칼럼이든, 우리의 목표는 독자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필진을 확대하는 것보다, 해당 이슈에 대한 최적의 정보 제공자를 발굴하는 데 집중한다. 기고자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바락과 빌과 같은 훌륭한 저널리스트와 협력하는 것은 독자를 더욱 빨리 스마트하게 하는 방법이다.
2016년 1000만 달러, 다음 해에는 2000만 달러를 투자 유치했다. 비결이 있나?
딱히 없다. 뉴미디어 회사를 어떻게 세울 것인지, 목표를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과 열정, 그리고 회사의 강력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2018년 악시오스가 선보일 서비스를 소개해 달라.
올해 초 ‘악시오스 월드(Axios World)’를 론칭했다. 매우 기대되는 서비스다. 악시오스 월드는 악시오스 Smart Brevity의 보도 취재 범위를 국제 관계와 지정학으로 확대한 서비스다. 악시오스는 외부 전문가의 뉴스레터와 국제 분야 기고도 확대했다. 이것이 올해 그리고 앞으로 악시오스가 선보일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