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제시했다. 어떤 뜻인가?
북저널리즘은 북(book)과 저널리즘(journalism)의 합성어다. ‘책처럼 깊이 있게, 뉴스처럼 빠르게’ 우리가 지금, 깊이 읽어야 할 주제를 다룬다.
책과 뉴스를 결합한 개념인데, 둘의 어떤 장단점에 주목했나?
먼저, 뉴스는 시의성이 있지만 깊이가 부족하다. 뉴스 이용자들은 ‘믿고 읽을 만한 뉴스가 없다’, ‘맥락과 배경까지 깊이 알기 어렵다’고 말한다. 반면 책은 깊이가 있지만 시의성이 부족하다. ‘책은 언제 읽어도 그만이다’, ‘지적 호기심은 있지만 책을 찾아서 읽자니 과하다’는 의견이 많다. 그래서 우리는 책의 깊이와 뉴스의 시의성을 두루 갖춘 콘텐츠를 펴내기로 했다.
디지털 퍼스트를 내세우는 다른 미디어 스타트업과 달리, 출판(종이책)이라는 전통 산업에서 출발했다.
북저널리즘으로 피벗팅하기 전까지 출판업에서 쌓아 온 경험이 있었다. 우리가 지닌 고유한 자산을 활용하기 위해 종이책부터 시작했다. 시장 규모 면에서도 현 시점에서는 종이책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한국보다 전자책이 보편화된 미국에서도 전자책은 전체 시장의 20퍼센트를 넘지 않는다. 최근 디지털 버전을 론칭했지만, 종이라는 매체는 다양한 형태로 계속 활용할 계획이다. 이용자의 니즈와 이용 형태와 일치한다면 타블로이드판이나 브로슈어 형태로 낼 수도 있다. 한두 가지 컨테이너에 종속되고 싶지는 않다.
흔히 스타트업의 우선 조건으로 고유 기술을 꼽는다. 스리체어스만의 기술과 노하우가 있다면.
스타트업의 우선 조건이 고유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스타트업을 이용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반복과 확장이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곳이라고 정의한다. 대개 반복과 확장은 IT 기술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에, 기술과 스타트업이 동의어처럼 여겨진다. 우리가 내린 정의에 따르면, 콘텐츠 분야에 스타트업이라 부를 만한 곳이 많지 않다.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짧은 영상 콘텐츠 역시 마찬가지다. 콘텐츠를 유통하는 채널이 새로워졌을 뿐, 생산자의 노동력에만 의존하는 것은 수십 년 전 제작 현장과 다를 바 없다.
저널리즘 분야도 상황은 비슷하다. 뉴스 스타트업을 표방하는 곳이 많지만, 데이터, 기술 기반의 뉴스 큐레이션 회사를 제외하고, 뉴스를 자체 생산하는 곳 중 스타트업이라 할 만한 곳이 드물다. 레거시 미디어보다 뉴스 생산자(기자)의 수는 훨씬 적은데 제작 방식은 같다. 기자의 개인 역량과 노동력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더 좋은 기사를 더 많이 발행하려면 더 많은 기자를 채용하는 수밖에 없다. 레거시 미디어가 다루지 않는 독특한 주제에 천착한다고 해서 뉴스 스타트업이 될 수는 없다.
그럼, 북저널리즘의 해법은 뭔가?
‘전문가의 기자화’다. 기성 언론은 직접 취재해 보도하지만, 북저널리즘은 각계 전문가가 저술한다. 학술적 깊이와 현장 경험을 두루 갖춘 저자들이 우리 플랫폼을 통해 심도 있고 시의성 있는 저널리즘 콘텐츠를 생산하도록 하고 있다. 일간지의 매거진화, 기자의 전문화도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제한적인 변화로는 레거시 미디어의 붕괴를 막을 수 없다.
왜 지금 출판 저널리즘인가?
출판 저널리즘은 새로운 게 아니다. 출판이 저널리즘의 영역을 벗어난 적은 없다. 확장 해석하자면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보다 뛰어난 저널은 없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저작 하나는 수많은 기사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일반 단행본과 북저널리즘은 어떻게 다른가?
북저널리즘을 론칭하기 전 이용자들이 지적 콘텐츠를 어떤 목적으로 소비하는지 고민했다. 지식과 정보라는 단어 사이에 약간의 뉘앙스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식은 ‘WORTH TO READ(읽을 가치가 있는)’에 가깝고, 정보는 ‘MUST READ(읽어야 하는)’에 가깝다. 우리는 MUST READ를 지향한다. 고담준론이나 사변적인 텍스트보다는 현실과 밀착한 지식, 지혜로운 정보에 집중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논어》는 마흔이 넘어서 읽어도 된다. 하지만 지금, 깊이 읽어야 할 주제들이 분명히 있다.
지금 깊이 읽어야 할 주제란 어떤 것인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주제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예로 들자면, 무역 분쟁 일지와 같은 단순 사실 보도만으로는 사건의 맥락과 배경을 깊이 이해하기 어렵다. 지적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우리는 사실 전달에 더해, 전문가의 고유한 시각을 빌려 왜 자유무역주의가 탄생했는지, 보호무역주의와 자유무역주의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하나씩 살펴 가며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정책을 분석한다.
카테고리는 밀레니얼스(Millennials), 밸런스(Balance), 퓨처(Future), 폴리틱스(Politics), 비즈니스(Business)로 구분한다. 밀레니얼스에서는 밀레니얼 세대의 문화와 사회 현상을 다룬다. 밸런스는 여가와 라이프 스타일, 퓨처는 테크와 미래, 폴리틱스는 정치와 힘의 문제, 비즈니스는 경제와 산업 부문을 조명한다.
한국의 언론 환경은 객관주의 저널리즘에 익숙하다.
뉴스의 개념과 형태, 소비 방식은 끊임없이 바뀌어 왔다. 근대적인 신문이 등장한 20세기 초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뉴스는 팔목을 움직여 소비하는 것이었고, 2000년대 후반까지는 마우스를 스크롤하여 소비하는 것이었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2009년부터는 엄지손가락으로 액정 화면을 밀어 올리며 소비하는 것이 되었다. 주요 일간지 1면의 기사 개수도 1960년대 평균 15개에서 현재 4개로 바뀌었다. 뉴스의 개념 역시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한 세기 가까이 이어져 온 객관주의 저널리즘은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며 위기를 맞고 있다. 단순 사실은 누구나 손쉽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단순 사실의 전달은 비트(bit)의 조합으로 여겨질지 모른다. 이제는 고유한 관점과 통찰을 전달해야 한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적 어려움이 상당할 것 같다. 깊이와 시의성을 모두 갖추려면 제작 기간을 감안할 때 결국 미래 이슈를 예측해야 한다는 뜻인데.
일간지, 방송 뉴스와 콘텐츠의 속성이 달라서 아직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는 않다. 우리가 제시하는 고유한 관점과 통찰은 단순 사실을 다루는 데일리 뉴스보다 콘텐츠의 생명력이 길다. 예컨대 아마존의 무인점포와 라스트 마일 배송(last mile delivery) 소식을 단순 소개하면 며칠 내로 휘발되지만, 아마존을 비롯한 물류업의 혁신 사례를 통해 물류와 산업의 미래를 전망하면 오래 읽힐 수 있다. 미래 이슈를 제시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주목받지 않던 주제를 이슈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아직 사회 이슈로 부상하지 않았지만 숙고할 가치가 있는 주제라면 우리가 먼저 나서서 조명하고자 한다. 의제 설정은 저널리즘의 주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최근 디지털 버전을 출시했다. 수많은 디지털 플랫폼들과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먼저, 분량의 다양화다. 대부분의 읽기 콘텐츠는 아주 짧거나 아주 길다. 우리는 20~30분이면 완독이 가능한 ‘미드’ 분량의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칼럼은 너무 짧고 책은 너무 길다고 느꼈던 독자라면 최소 시간에 최상의 지적 경험을 할 수 있다. 연재 콘텐츠도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이용자의 피드백을 받아 원고에 반영한다. 이용자 경험에도 극도로 신경을 쓰고 있다. 웹 환경에서도 긴 글이 주는 지적 만족감을 경험할 수 있도록 전자책 수준의 가독성을 구현했다.
디지털에 익숙한 10~30대의 밀레니얼 세대는 긴 글에 익숙하지 않다고들 한다.
흔히들 짧고 선정적인 내용에 독자들이 반응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긴 글을 기피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긴 분량이나 깊은 내용이 아니라,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느냐에 있다. 긴 글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라고 하지만, 웹소설은 급성장하고 있다. 읽는 목적이 재미든 정보든 지식이든 읽을 가치가 있는 글은 언제나 소비되기 마련이다.
타깃 독자는 어떻게 되나?
와이어드의 광고 문구인 “Don’t let the future leave you behind”에 견줘 설명하자면, 최신 정보에 뒤처지고 싶지 않고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이용자 FGI에 따르면, 북저널리즘 이용자는 새로운 기술과 문화에 거부감이 없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세상을 더 깊이 알기를 원한다. 전체 이용자의 65퍼센트가 25~39세다. 거주 지역별로는 서울 종로, 강남, 마포, 서초, 중구, 분당, 송파, 용산구 순서로 높다. 직업군은 지식 산업과 스타트업 종사자가 많은 편이다.
국내 롱폼 저널리즘의 수요는 어디에 있을까?
호흡이 길고 심도 있으며 문장이 뛰어난 기사를 원하는 이용자는 늘 있었다. 주간지, 월간지 정기 구독자가 대표적이다. 다만 특정 분야만을 다루는 기존의 정기 간행물은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 우리는 사회 전 분야를 다루되, 미래 이슈에 집중하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미래는 SF 영화의 그것이 아니라, 일과 삶에 있어 어제보다 성장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주제를 뜻한다. 지적 호기심과 자기 계발 욕구가 강한 독자들이 우리 플랫폼에 들어와서 관심이 가는 주제를 골라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반응이 가장 좋았던 프로젝트는?
《검사는 문관이다》가 반응이 가장 좋았다. 3쇄를 찍었다. 새 정부 출범 직후 검찰 개혁이 화두가 되리라 생각하고, 2017년 3월에 착수해서 5월 중순에 펴냈는데, 예상대로 화제가 되면서 좋은 성과를 냈다. 최고의 저자(‘PD수첩 검사’로 유명한 임수빈 변호사), 콘텐츠의 깊이, 시의성이 맞아떨어져 좋은 반응을 얻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같은 뻔한 담론이 아닌 ‘검찰 내부로부터의 개혁’이라는 신선한 스토리를 담았다.
이용자 수는 얼마나 되나?
2018년 7월 디지털 상품과 종이 상품을 합해 월 유료 이용자가 2300명을 넘었다. 론칭 후 분기별로 평균 43퍼센트씩 성장해 왔는데, 최근 성장세가 빨라지고 있어 8월에는 이전 달을 크게 상회하는 이용자 수를 기대하고 있다.
위기에 처한 한국 저널리즘의 틈새를 공략하는 시도로 볼 수 있을까?
틈새 공략이라기보다 새 장르 개척이라고 말하고 싶다. 현재 언론 비즈니스를 지탱하고 있는 육하원칙에 따른 사실 보도는 가까운 미래에 더 이상 저널리스트의 영역이 아닐 것이다. 탐사 보도나 기획 취재, 해설 기사가 주 영역이 될 것이다. 엇비슷한 콘텐츠로는 플랫폼 이코노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소비자의 효용 가치를 극대화한 콘텐츠를 내놓아야 한다. 무척 재밌거나(Buzzfeed), 무척 새롭거나(VICE), 무척 전문적이거나(Politico), 무척 깊어야 한다. 앞의 세 영역에는 많은 도전자가 나타나고 있다. 유의미한 성공을 거둔 기업도 많다. 그러나 깊이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매체는 손에 꼽을 정도다. 지혜로운 정보와 현실과 밀착한 지식을 원하는 소비자는 분명히 있다.
최근 영국의 가디언, 인디펜던트와 국내 최초로 파트너십을 맺었다.
한국인의 영어 구사 능력이 과거보다 월등히 늘었지만, 영어를 국문만큼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 독자를 1980~1990년대 초에 태어난, 스마트한 코즈모폴리턴(cosmopolitan)이라 상정할 때 국내 콘텐츠만으로는 독자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외 매체들과의 협업을 고민했다. 롱폼 저널리즘의 전형인 가디언의 롱리드(The Long Read)를 읽을 때마다 필진들의 고유한 관점과 사유, 문학적 서사가 탐났다. 단편 소설 한 편 분량이라 지루할 새 없이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세계 각지의 이슈를 현장감 있게 다루고 있어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텍스트 편식을 막기에도 좋다. 좋은 글 중에서도 더 좋은 글을 가려내어 북저널리즘에서 번역, 소개한다. 두 매체 외에 다른 미디어 회사와의 협업도 꾸준히 논의하고 있다.
북저널리즘의 향후 1년을 전망한다면.
모든 계획은 실제 업무에 착수하는 순간 틀어지기 마련이다. 스타트업은 더욱 그렇다. 바뀔 것보다 바뀌지 않을 것에 대해 말하고 싶다. 영원하다고는 못해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우리는 최고의 저자를 찾아, 최상의 콘텐츠를 만들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한다. 그것이 독자에게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조건은 시장 환경이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전제하에서 다양한 시도를 펼칠 생각이다. 콘텐츠 종수를 점차 늘리고 발행 프로세스를 가다듬어 올가을부터는 정기 구독 서비스를 도입할 계획이다. 아직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이용자 편의 측면에서 획기적인 시도들을 준비하고 있다. 스타트업의 존재 이유는 문제 해결이다. 콘텐츠 이용자 입장에서 불합리했던 부분, 불편했던 부분을 하나씩 개선해 나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