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거 밥 깁슨이 나오는 영상을 재미있게 봤다.
GE는 기술 기업인데 중심엔 늘 사람이 있다. 기술로 에너지를 공급하고 질병을 치료하고, 더 나은 삶을 만드는 게 회사의 목표다. 리포트의 스토리텔링도 거기에 맞춘다.
GE리포트 코리아는 누가 만드나?
GE리포트는 GE 미국 본사가 2008년에 만든 브랜드 미디어다. 이후 지사별로 국가와 지역의 특성에 맞게 현지화했다. 한국, 일본, 호주, 유럽 등 14개국에 별도 매체가 있다. GE코리아 커뮤니케이션팀이 만드는 GE리포트 코리아는 GE 기술의 우수성을 소개하는 ‘브랜드 채널’이다. 외부 에이전시 네 곳과 협업한다. 해외 GE 콘텐츠도 번역해서 소개한다. GE리포트는 브랜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결과물이다.
본사의 영향력은 얼마나 되나?
GE리포트의 주축은 미국 본사의 글로벌 콘텐츠다. 리포트 담당자끼리 콘퍼런스콜을 열어 리포트의 방향을 조율하고, 회사 전략과 맞춘다. 가령 ‘올해는 3D 프린팅에 초점을 맞추자, 스토리텔링은 어떻게 하자’, ‘매체 전략은 어디에 집중하자’ 등을 정하는 것이다. 이후 지사별로 지역 상황을 반영한 콘텐츠를 제작한다. 에너지, 항공, 헬스케어 등 나라마다 중심이 되는 비즈니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브랜드 저널리즘을 어떻게 정의하나?
브랜드 저널리즘은 기업이 가진 고유한 가치를 게이트 키퍼들(기성 언론)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채널에서 독자적인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대량 인쇄와 배포를 통한 물리적 경쟁 우위에 영향을 받는 기존 매체 환경과 달리, 브라우징과 클릭으로 3초 만에 매체를 바꿀 수 있는 디지털 세상에서는 독자들이 매체 브랜드가 아니라 콘텐츠 단위로 구분하며 소비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밀어내기(push)적인’ 요소가 강한 광고나 PR보다는, 고객이 기업의 매력적인 스토리에 스스로 ‘끌려오도록 하는(pull)’ 체계적인 스토리텔링 활동이 필요한데, 그것이 브랜드 저널리즘이라고 생각한다.
브랜드 저널리즘 분야에서 GE리포트가 갖는 위치를 어떻게 평가하나?
GE리포트는 점점 더 격화되는 브랜드 저널리즘 매체들 사이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갖고 있다. 단순히 제품이나 기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제품 카탈로그나 브로슈어를 글로 풀어낸 버전과 다름없다. 하지만 GE리포트는 GE만의 산업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직간접적으로 관계있는 다양한 정보를 재해석하거나 재구성해 제공한다. GE리포트는 소재의 폭, 기사의 깊이, 산업 분야 전문성 측면에서 GE만의 ‘사고 리더십(thought leadership)’
[2]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보 중심의 콘텐츠를 넘어 산업을 이끄는 사고 리더십을 통해 실제 독자들이 기술과 산업에 대해 또 다른 관점을 갖도록 도와주는 매체는 GE리포트가 거의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리포트를 발간한 지 3년이 지났다. 그간의 성과를 알려 달라.
GE리포트를 한국에 처음 론칭할 때 고민이 많았다. 소비재를 파는 게 아니라 B2B 비중이 크기 때문에 이용자 입장에서 숫자를 체감하기가 쉽지 않다. ‘기업을 대상으로 수십에서 수백억 원 단위의 기계를 파는데, 이 콘텐츠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하고 생각했다. ‘질로 승부하자’는 원칙을 세웠다. 팩트 체크를 철저히 하고, 저작권을 확실하게 지키는 등 저널리즘의 기본을 지켰다. 고객의 신뢰를 얻으면서,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쌓이는 걸 보여 주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업계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GE는 140년이 된 역사가 깊은 회사고, 자칫 유행을 못 따라갈 수도 있다. 그래서 ‘진중하게’ 가는 걸 택했다.
한국만의 독자성에 대한 고려는 없었나?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가 나라마다 많이 다르다. 이걸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구글, 네이버, 야후 같은 검색 엔진이다. 독자 취향에도 큰 차이가 있다. 국내에는 여전히 과학과 기술 콘텐츠의 수요가 적다. GE코리아는 자체 플랫폼인 GE리포트 코리아를 비롯해, 네이버 블로그, 네이버 포스트, 유튜브, 페이스북, 슬라이드쉐어(Slideshare), 네이버TV 등 멀티채널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다양한 매체로 손쉽게 옮겨 다닐 수 있지만, 실제로는 독자 그룹별로 선호하고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매체들이 고정되는 경향이 있다. 멀티채널의 일차적인 목적은 고객의 온라인 여정에서 접점(touch-points)을 늘리는 것이다. 또한 매체별로 갖고 있는 특징에 맞게 콘텐츠의 톤과 매너를 조율해 독자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특히 네이버 포스트의 경우 기업이 운영하는 과학 매체 중 가장 먼저 입점한 곳 중 하나다.
GE리포트 독자의 직업군은 어떻게 되나?
GE리포트 코리아의 뉴스레터 구독자를 살펴보면, 엔지니어(21.1퍼센트)가 가장 많다. 잠재 고객(17.6퍼센트), 학계(교수, 학생, 15.2퍼센트), 컨설턴트(7.1퍼센트), GE 고객(6.8퍼센트)이 뒤를 잇는다. 관심 분야는 산업 인터넷(13.4퍼센트)이 가장 많고, 산업 자동화(10.3퍼센트), 금융(9.4퍼센트), 헬스케어(9.1퍼센트) 순이다.
뉴스레터 구독자 수는 얼마나 되나?
2만여 명이다. 소비재 기업의 입장에서는 많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B2B 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상당한 수준이다. 특히 우리나라 제조업의 근간을 이루는 에너지 관련 산업의 구독자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콘텐츠를 통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검색 유입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채널은?
GE리포트 코리아의 트래픽은 구글 유기 검색(organic search)이 가장 크고, GE코리아 페이스북, 블로그와 홈페이지 등 GE코리아 디지털 채널 순으로 많이 유입되고 있다. 콘텐츠 제작 및 발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중 하나는 검색 엔진 최적화(Search Engine Optimization)
[3]다. 기술 용어가 많이 사용되는 특성상, 표준 용어와 업계에서 실질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를 함께 반영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제작한다. 영문만 존재하는 전문 용어의 경우에도 한글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표기하고 영문을 병기함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도우면서도 검색이 잘되도록 한다.
성과 측정은 어떻게 하나?
디지털 콘텐츠의 효과가 직접적인 매출 성과로 측정되는 B2C 기업과 달리, B2B 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GE의 브랜드 저널리즘은 고객과 지속적인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데 더욱 집중한다. GE리포트는 현재 GE고객과 잠재 고객을 중심으로,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산업체 및 정부의 의사 결정자 집단, 업계 엔지니어 및 우수 인재 집단을 핵심 타깃 오디언스로 보고 있다. GE리포트와 이메일 뉴스레터에 대한 독자들의 피드백이 중요한 성과 측정 지표 중 하나다.
타깃 오디언스 집단에서 발견되는 특징이 있다면.
최근 몇 년간 많은 콘텐츠 생산자들이 모바일 중심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GE리포트 독자들의 행동을 분석해 본 결과, 방문자의 50퍼센트 이상이 PC에서, 대부분 낮 시간에 기사를 읽는다. 여가 시간에 하는 캐주얼한 정보 소비보다는 업무 중에 필요한 정보를 찾아 소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3분 내외의 화려한 영상이 소셜 미디어에서 공유가 잘되지만, GE리포트가 제작한 10분이 넘는 산업 전문가 인터뷰 영상들도 꾸준히 소비되고 있다. 일상에서 직관적으로 느끼는 콘텐츠 소비 패턴과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토마스 켈너 GE리포트 총괄 편집장은 “GE리포트는 인텔, IBM, 보잉과 경쟁하지 않으며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와 경쟁한다”고 말했다. GE리포트 코리아는 누구와 경쟁하나?
GE리포트 코리아는 타 매체들과 경쟁하기보다는 상호 작용하면서 발전하는 매체로 자리 잡으려 한다. 주요 매체의 산업면, 산업별 전문지, 산업별 주요 선도 기업들의 온라인 매체 모두에서 장점을 취함으로써 성장하려 한다. GE리포트 글로벌의 토마스 켈너 편집장이 말한 경쟁의 의미는 단순한 기업의 정보성 콘텐츠를 넘어 산업에 영향력을 갖는 완성도 높은 스토리텔링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기존 주요 매체와 겨루고 싶다는 의미로 생각된다. 그 점에서 GE리포트 코리아도 같은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GE리포트 코리아에도 편집장 개념이 있나?
미국과 달리 편집장이라는 공식 직함이 있지는 않다. 조병렬 전무가 PR을 포함한 큰 틀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방향을 맡고, 나는 실제 디지털 콘텐츠 전략과 실무를 맡고 있다.
GE리포트는 복잡한 내용을 쉽게 소개한다.
사내에 별도의 ‘퍼스트 리더(first reader)’가 있다. 콘텐츠 초안의 검토를 마친 후 재차 수정한다. 플랫폼에 따라 다른 용어로 발행한다. 가령 블로그에는 업계 용어인 ‘적층 제조’ 대신 ‘3D 프린팅’을 쓴다. 타깃 독자는 해당 업계의 중간 관리자급 이상 종사자, 엔지니어, 공대생이다.
한 꼭지를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리나?
3주 정도 소요된다. 미국 본사의 콘텐츠를 한국에 맞게 새로 만드는 경우엔, 기획하고, 원문을 고르고, 번역하고, 내용을 추가하고, 인포그래픽 등 비주얼 작업을 하고, 자막 제작의 과정을 거친다. 영상까지 넣으면 한 달이 걸린다.
신문사 편집국과 비슷해 보인다.
GE리포트의 콘텐츠 제작 과정은 취재, 편집, 디자인, 발행으로 구성되어 기존 전통 매체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GE는 전력, 항공, 재생 에너지, 헬스케어를 중심으로 폭넓은 산업에 걸쳐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따라서 매체에서 다양한 분야를 취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정보원에 대한 접근 및 콘텐츠 확보가 일차적으로 중요하다. 각 사업부와 함께 사내외로 취합한 정보를 기초로 작성된 기사는 해당 사업부의 팩트 체크 및 승인 과정을 거침으로써 사실 관계와 용어에 오류가 없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매체의 속성에 맞도록 디자인 및 편집 작업을 거쳐, 디지털 콘텐츠로 최종 발행한다. 특히, 언론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사회적 의제 설정인 것처럼 모든 GE리포트의 콘텐츠는 GE의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개별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혁신해야 하는지, 더 나아가 어떻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제를 제시하고자 노력한다.
신문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많은 전통 매체들이 상대적으로 지역 중심의 콘텐츠를 생산한다. 그러나 GE는 180개 이상의 국가에서 사업을 하는 만큼 해당 GE리포트가 담당하는 지역의 특수성을 포함하면서도, 첨단 기술 및 비즈니스 측면에서 글로벌 이슈를 담는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
고객, 투자자, 임직원의 반응이 좋았던 콘텐츠는?
소위 ‘핫한 콘텐츠’를 가장 좋아한다. 3D 프린터로 제트엔진 부품을 만드는 공장, 초음속 항공기 엔진 같은 콘텐츠의 조회와 공유 수가 많았다.
상당수의 브랜드 저널리즘이 자사 제품의 장점을 소개하는 데 집중해 저널리즘이 아닌 마케팅에 가깝다는 지적이 있다. 맡은 업무를 GE의 홍보로 생각하나, 저널리즘으로 생각하나?
사회 다방면의 이슈를 중심으로 하는 저널리즘과 달리 브랜드 저널리즘은 본질적으로 기업이 어디에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내느냐에 기반을 둘 수밖에 없다. 바로 그 기업이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분야다. 따라서 자사 제품의 기능과 특성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그 전문성이 어떤 사회적 맥락에 닿아 있는지까지 전달한다면, 브랜드 저널리즘의 목표에 충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가스터빈이 전기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낙후된 지역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새로운 재생 에너지 기술이 깨끗한 세상을 만드는 데 어떻게 도움을 주고 있는지를 전달하는 GE리포트의 기사들은, 우리 삶의 변화라는 맥락에 직접적으로 닿아 있다. 이러한 스토리들은 제품 설명을 넘어 회사가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마케팅을 넘어선 브랜드 저널리즘의 존재 의의에 충분히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GE의 실적 부진에 대한 우려가 크다. 콘텐츠 제작 부서에도 변동이 있을까?
실제 파워 사업부를 빼고 실적 수치는 괜찮다. 언론 보도가 과장된 측면이 있다. 실적 대비 주가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것도 있을 것 같다. 130년이 넘은 GE는 온갖 부침을 경험한 회사다. GE의 가장 큰 힘은 ‘사이클’을 경험한 것이다. 업계가 항상 잘나갈 수는 없다. 오르락내리락할 때도 성장하고 혁신해 왔다. 그런 사이클을 경험하지 않은 회사와는 내적 역량의 차이가 클 것이다. 경험이 풍부한 리더도 많다. 사업이 축소되는 분위기니까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마케팅 예산은 줄고 투자 예산도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예산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채널과 콘텐츠를 최적화할지 고민해야 한다.
GE는 조선일보, 내셔널지오그래픽, 쿼츠 등 국내외 여러 언론사와 협업해 왔다. GE의 브랜드 저널리즘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까?
그렇다. 미디어 환경이 점점 복잡해진다. 고객에게 다가갈 채널이 너무 많다. 뚫고 가기 어렵다.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전략으로 전방위로 진출해야 한다. 다만 채널의 특성에 맞게 항상 변화를 준다. 쿼츠와는 수년째 파트너십을 이어 오고 있다. 미국 GE 본사와 쿼츠가 네이티브 애드를 한 달에 두 개 이상 제작한다.
‘World in Motion’은 GE 사업의 규모를 보여 주는 좋은 사례다.
눈여겨보는 국내외 브랜드 저널리즘 사례가 있다면. 일반 매체도 포함해서.
국내는 GS칼텍스와 포스코가 꾸준히 잘 만든다.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할까. 조직의 의지를 잘 반영한다는 느낌이 든다. GE와 같은 B2B기업이면서 개별 산업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있다. 국외의 경우, 뉴욕타임스의 끊임없는 실험을 높이 평가한다. 뉴욕타임스는 새로운 플랫폼 개발에 투자하고 시장을 늘 선도하지만, 여전히 중심은 글, 스토리다.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라는 핵심에서 출발하고, 그걸 벗어나지 않는다. 뉴욕타임스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분야와 관계없이 높은 수준의 스토리텔링을 추구하면서도, 뛰어난 디지털 매체 편집 능력을 통해 독자들의 집중을 이끌어 내는 전달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참고를 많이 한다. 스토리는 인류의 시작과 함께 출발했다. 지적 능력을 갖춘 인간의 원형, 이걸 떠나면 가장 중요한 힘을 포기하는 것이다. 물론 어려운 작업이다. 재미있으면서 기업의 메시지도 넣어야 하니까.
재미와 기업의 메시지를 모두 담기가 정말 어려울 것 같다. 게다가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 매출까지 고려해야 할 텐데.
신제품이나 기술이 나오면 다른 부서에서 리포트에 넣어 달라는 요청을 종종 한다. 그러면 스토리를 실어서 가져오라고 얘기한다. 현업에 종사하는 사내 담당자들에게 이런 인식을 꾸준히 심고 있다. 안 그러면 채널의 정체성이 흔들린다.
GE가 추구하는 브랜드 저널리즘,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전략의 핵심은 뭔가?
사람, 기술, 사람과 기술의 관계. 그 세 가지를 묶는 스토리텔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