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쇼크
2화

다문화 현상을 바라보기 위한 키워드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꽤 오래전에 뉴질랜드로 이민 온 내가 굳이 한국 사회의 다문화 현상을 글로 다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10여 년 전 어느 사건 덕분이다. 2010년대 초 한국을 방문했을 때, 대전 근교에서 동남아 출신으로 보이는 이주 노동자와 마주쳤는데, 그가 나를 바라보던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한국 원주민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길 흔하디흔한 풍경이 나에겐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그 이주 노동자의 눈빛에서 뉴질랜드에 처음 이민 왔을 때 백인 원주민을 바라보던 나의 눈빛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소수가 다수를 바라볼 때의 눈빛이었다. 이 경험은 나로 하여금 소수이면서도 다수일 수 있는 내 이중 정체성을 돌연 자각하게 했다. 뉴질랜드 백인 속에 있을 때는 스스로 의식하든 안 하든 위축된 소수였지만, 한국에 온 순간 나는 그럴 필요가 없는 다수가 된 것이다. 소수이자 다수로서의 이중 정체성 경험은 많은 한국 원주민이 보지 못했거나 간과했을 다문화 현상에 있어, ‘나는 다른 풍경을 볼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하게 했다.

서 있는 곳이 변함에 따라 달리 보이는 풍경은 다양한 공간과 차원에 걸쳐 펼쳐진다. 가까운 주변부터 살펴보자면, 많은 뉴질랜드 교민은 교민 수 증가를 위해 뉴질랜드 영주권 신청 시 영어 시험 조항이 없어지거나 대폭 완화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외국인이 한국에 귀화할 때 치르는, 원주민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한국어 시험 난이도는 당연하게 여길지 모른다. 나는 시민권 선서식 때 뉴질랜드 국가를 다 외우지 못해 후반부에는 입만 벙긋거렸으면서도, 한국 국적 취득을 희망하는 외국인이 세 명의 면접관 앞에서 애국가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에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하다. 나 자신도 이민자이지만 ‘뉴질랜드에서 일정 기간 유학하면 정부가 영주권을 보장하라’는 일부 인도 출신 이민 희망자들의 요구에 대해선 어째서인지 미간을 찌푸리게 된다.

이민자 그룹 차원으로 대상을 좀 더 확대하면, 많은 경우 한국에는 동남아에서 온 신부 혹은 노동자를 내려다보는 사회적 시선이 있다. 2020년 12월 기준 한국에는 1만 1500명의 결혼 이주 여성과 1만 9719명의 단순기능 인력 이주 노동자를 포함해 총 4만 9800명의 필리핀 이주자가 있다. 이들 역시 이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무대를 뉴질랜드로 옮기면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한국인(국적이 아니라 에스니시티[1] 기준)은 3만 5664명인데 반해, 필리핀 사람들(Filipinos)은 7만 2612명이다.[2] 뉴질랜드의 한국인은 필리핀 이민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대적 소수다. 더 나아가, 필리핀 이민자의 중위 소득(median income)은 3만 7600달러인데 반해 한국인은 2만 달러에 불과하다. 뉴질랜드에서는 필리핀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을 내려다봐도 별로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불법 체류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역시 모순적 풍경으로 다가올 수 있다. 2020년 12월 기준, 한국에는 약 39만 명의 불법 체류자가 있다. 한국 정부가 이들을 합법화해 정주를 허락하려 한다면 한국 사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한편 지난 2월, 미국 민주당은 1100만 명에 달하는 미국 불법 체류자가 세금 납부 등의 조건을 충족한다면 5년 뒤 영주권 신청 그리고 8년 뒤 시민권 신청을 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공개했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되면 미국 내 한국인 불법 체류자 16만 명도 그 혜택을 보게 된다. 미국에 불법 체류자 가족 혹은 친척을 두고 있는 사람은 미국 정부의 이 불법 체류자 정주화 조치에는 환호를 보내지만, 한국 정부의 한국 내 불법 체류자 정주 허용에 대해서는 극력으로 반대할지도 모른다.

무대를 정부 차원으로 옮겨 보자. 1990년 유엔 총회는 ‘모든 이주 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 보호에 관한 국제 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Protection of the Rights of All Migrant Workers and Members of their Families)’, 줄여서, ‘이주 노동자 권리 협약’을 채택했다. 이주 노동자의 제반 권리 보호를 목적으로 한 이 협약은 2019년 12월 기준, 55개국만 비준했다. 한국을 포함해 인권을 중요시한다는 서구 국가는 단 한 국가도 비준하지 않았다. 이들이 비준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이들 국가는 이주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수용국이기 때문이다.

이 협약을 비준한 국가는 대부분 이주 노동자 송출국이다. 이들 국가에겐 자국 노동자들이 외국에서 임금을 포함하여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근무하는 것은 자국의 사회 경제적 안정과 발전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할 건 이 협약을 비준한 국가 중 일부는 자국 노동자를 외국에 송출하기도 하지만, 송출 규모만큼은 아니어도 외국 노동자를 자국에 수용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도 그중 하나이다. 그런데 인력 송출 국가로서 인도네시아는 이 이주 노동자 협약의 준수를 촉구하면서도, 자국 내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 보호는 외면하고 있다. 송출 국가와 수용 국가라는 야누스의 얼굴을 보이는 것이다.

서 있는 곳을 달리하면 이처럼 안 보였거나 지나쳤던 풍경이 보일 뿐만 아니라, 우리 안의 이중 잣대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는 고려인과 같은 재외 동포가 몇 세대 후에도 현지에서 한국 문화를 지키고 있는 것을 뿌듯해한다. 그러나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이주자들이 그들 모국과 연결 고리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편해한다. “한국에 왔으면 한국 사람으로 살아야지” 같은 훈수가 대표적 예다. 이민 관련 이슈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히 원주민 다수가 소수 이주자 입장에 서 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소수 이주자도 다수 원주민 입장에 서 보는 것이 필요하다. 역지사지에 기반한 입체적 접근은 가령 정부의 악마화, 이민 인권 단체의 천사화 그리고 이주자의 피해자화와 같이 우리의 이해가 도식적이고 일방적으로 흐르는 것을 막아 준다. 그렇게 되면 이민을 둘러싼 각 주체는 절대 선으로도 절대 악으로도 치부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접근은 이민을 둘러싼 모순적 상황과 사회적 파열음의 근본 원인을 생각하게 한다. 즉, ‘이민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피해자는 출신 국가와 관계없이 왜 항상 사회적 약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열악한 주거·노동 환경에서도 자신이 보내 줄 돈을 기다릴 가족을 위해 힘을 내어 버티는 이주 노동자, 밑으로 썩은 물이 흐르는 수상 가옥에서 태어나 빈곤 탈출을 위해 결혼 이주를 택한 여성, 저임금 이주 노동자에 구조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국 농어촌 영세 자영업자들, 주위에 포진한 불법 체류자들 탓에 고용주로부터의 해고 위협 혹은 임금 동결을 상시로 감수해야 하는 비정규직 한국 원주민 노동자 등 예로 들 것은 많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과정은 갈등의 현장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난 곳에서 갈등의 근본 원인을 제공한 보이지 않는 손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만, 이 손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까닭에 우리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사회학적 상상력 발휘에 필요한 수단이 있다. 우리의 상상력 전개를 도와주고 정리해 줄 인식의 틀이다.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소위 다문화 현상을 이해하는 효과적인 인식 틀로 나는 ‘에스니시티(ethnicity)’ 개념을 강력 추천한다.

 

문화도 인종도 아닌 에스니시티


‘미투 운동’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우리에게 익숙한 #MeToo이고 다른 하나는 #MeTwo인데, 이 중에서 후자 미투가 지금부터 설명하고자 하는 에스니시티의 실례(實例)가 될 수 있다. #MeTwo는 2018 러시아 월드컵 당시 독일 축구 대표팀 선수였던 메수트 외질(Mesut Özil)에서 비롯되었다. 할아버지가 터키 출신 이주 노동자(Gastarbeiter·guest worker)인 외질은 독일 내 터키 이민 3세대에 해당한다. 이전에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했던 독일팀이지만, 러시아 월드컵에서 졸전 끝에 탈락하자 그를 포함한 대표팀은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월드컵 직전, 독재자로 비판받는 터키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과 함께 사진 찍은 것이 문제시되며, ‘그를 고향으로 추방하라’는 인종 차별적 구호까지 등장하게 된다. 그러자 외질은 이런 환경에서는 독일 대표팀을 위해 뛸 수 없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다음은 그가 은퇴 선언과 함께 남긴 말이다. “내 심장은 두 개다. 하나는 독일인의 심장, 하나는 터키인의 심장이다.”, “나는 대표팀 경기에서 이겼을 때만 독일인이었고, 졌을 때는 철저히 이민자 취급을 받았다.”

외질의 이 말은 에스니시티를 구성하는 두 핵심 개념인 ‘인종’과 ‘문화’의 동태적 관계를 잘 보여 준다. 에스니시티라는 개념에 대한 정의를 일단 살펴보자. 위키피디아에서는 “에스닉 그룹(ethnic group) 혹은 에스니시티는 그들을 다른 그룹과 차별화하는 특성들의 공유에 기반을 둔 서로 동일시하는 사람들의 모임”[3]이라고 정의한다. 가령 전통, 조상, 언어, 역사, 사회, 문화, 민족, 종교 혹은 거주 지역 내 사회적 대우 등이다. 너무 많은 특성이 나열되어 감을 잡기 쉽지 않다. 차라리 옥스포드 사전의 간단한 정의가 머리에 들어온다. “The quality or fact of belonging to a population group or subgroup made up of people who share a common cultural background or descent.” 즉, 공통된 문화적 배경 혹은 혈통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인구 그룹 혹은 하위 그룹에 귀속되는 특성 혹은 사실이라는 의미다.

옥스포드 사전의 정의에서 주목할 점은 문화적 배경과 혈통이 ‘혹은(or)’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혹은’이라는 표현에 주목하며 에스니시티를 ‘선천적 인종’과 ‘후천적 문화’의 혼종으로 정의한다. 더 간단히 줄이자면, 인종과 문화의 혼종이다. 여기서 말하는 선천적 인종은 생물학적 개념으로서의 인종(race)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선천적 특성을 일컫는 상징적 개념이다. 외모나 피부색 같은 신체적 특성뿐만 아니라 가정 환경에 내재한 성향들도 포함한다.

후천적 문화는 혈연과 가정 환경 등으로부터 주어진 특성이 아니라 개인이 성장하며 외부 사회와 교류를 통해 습득하는 후천적 특성을 일컫는다. 이 인종과 문화는 한 선분(line segment)의 양 끝점에 해당하며 에스니시티는 이 선분의 중간 어느 지점쯤 위치하게 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한 개인 혹은 그룹의 에스니시티는 이 인종과 문화를 양 끝점으로 하는 선분의 정가운데에만 위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개인과 그룹의 에스니시티는 시대적 맥락, 사회적 상황에 따라 자발적으로 혹은 강압적으로 인종과 문화의 양 끝점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지점에 놓이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외질은 인종적으로는 터키인이며 문화적으로는 독일인이다. 터키 부모로부터 외모와 종교를 물려받았으며, 독일에서 학교를 다니고 클럽 축구를 하면서 독일 문화를 받아들였다. 그가 외친 “내 심장은 두 개다. 하나는 독일인의 심장, 하나는 터키인의 심장이다.”라는 말에서 독일인의 심장은 문화적 심장이며 터키인의 심장은 인종적 심장이다.

이 두 심장의 공존을 염원하는 이민 3세대 외질이지만, 인종적 모국인 터키와의 연결 고리가 경기 패배라는 상황과 맞물리며 독일 원주민 사회는 외질의 에스니시티 위치를 선분의 인종 끝점으로 몰아붙였다. 외질이 “나는 대표팀 경기에서 이겼을 때만 독일인이었고, 졌을 때는 철저히 이민자 취급을 받았다.”라고 외친 배경이다. 그의 에스닉 정체성(ethnic identity)에 대해 소위 ‘인종화(racialisation)’가 이루어진 것이다. 개인의 에스니시티는 후천적 문화 요소와 선천적 인종 요소가 모여 구성되는데, 이 경우 문화적 특성은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배제된 채 인종적 특성만 부정적으로 스테레오 타입화되어 강조된다. 이것이 인종화다.

우리 모두는 에스니시티에 관한 한 그 선분의 어느 한 지점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한국인, 일본인 부모 아래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혼혈은 많은 경우 인종보다 문화 쪽에 치우치는 에스니시티를 가진다. 같은 외모 덕분에 인종 쪽 정체성을 의식할 필요 없이 문화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경우다. 비슷한 예는 하와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인구 140만의 하와이는 약 4분의 1이 혼혈 인구이며 기혼자 절반가량이 다른 인종·에스닉 그룹 출신 배우자를 갖고 있다. 더 나아가 규모가 가장 큰 인종 그룹은 백인(26.7퍼센트)이 아니라 아시안(37.3퍼센트)이다.

이런 요소들이 어우러져 하와이 거주민의 에스닉 정체성은 인종 쪽이 아니라 문화 쪽으로 치우친다. 외모로 출신을 따지기 힘든 환경 덕분이다. 하지만 만약 하와이 혼혈이 미국 본토로 들어가면 미국 본토의 스테레오 타입화된 인종 카테고리에 편입된다. 그리고 그 편입 과정은 흑백 혼혈이 흑인으로 분류되는 것처럼 소위 사회적 열등 인종 카테고리에 분류된다. 인종화의 또 다른 예다.

에스닉 정체성에 있어 인종과 문화 간 다이내믹은 내가 사는 뉴질랜드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인이 별로 없는 도시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어느 한인 2세대는 한국인 정체성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부모 덕분에 언어를 포함한 한국적 문화를 물려받지 않았다. 그런 그는 대학에서 법을 공부하고, 같은 과 백인 여학생과 결혼하여, 주류 대형 로펌에서 일하며 잘살고 있다. 그는 에스니시티 선분에서 아시안이라는 인종 끝점에서 완전히 멀어져 파케하(Pakeha, 뉴질랜드 백인) 문화 끝점에 거의 밀착해 있다. 이처럼 그의 아내와 처가를 포함해 내부적으로는 파케하 문화가 그의 주 에스닉 정체성이지만, 길거리로 나가면 그는 그저 한 명의 아시안이라는 인종적 정체성으로 전환된다.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형식의 인종화다.

뉴질랜드에서의 또 다른 예는 남태평양 출신 이민자들이 될 수 있다. 오클랜드에 모여 사는 이들의 이전 세대는 1960~1970년대 뉴질랜드가 제조업 인력 부족을 겪을 당시 정부가 들여온 그룹이다. 1970년대 이후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이들도 역시 필요가 없어졌다. 이들은 체류 기간을 넘긴 불법 체류자로 전락했으며 뉴질랜드 사회의 안정을 위협하는 암적 존재로서 추방해야 할 인종이 되었다. 이들에 대한 인종화는 2021년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들은 여전히 단순노동직과 3D 업종에서만 일할 것을 기대받는 인종화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에스닉 정체성을 논할 때 우리는 이 인종과 문화의 다이내믹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한국의 다문화 현상을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누가 한국인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이 인종과 문화의 다이내믹을 통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누가 한국인인가


전남 강진군 병영면의 지역 문화재는 한국 전쟁 중에도 피해를 보지 않았는데, 이를 막은 주역은 조선 시대 이민자 후손으로 알려졌다. 전쟁 당시, 북한 조선인민군 예하 육군 사령관이었던 남일은 자신의 조상이 살던 곳이자 자신도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는 이유로 강진에 피해를 주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일은 17세기 효종 때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하멜 일행 중 강진에 정착한 네덜란드 사람의 후손으로 알려졌다. 1950년 당시 한국 남자 평균 키가 160센티미터 언저리였을 때 남일의 키는 182센티미터였으며, 1976년 의문의 교통사고도 그의 외모를 질투한 김정일의 암살이라는 설이 나돌 정도로 이국적 미남이었다. 남일의 경우처럼, 한반도에 거주하고 있는 소위 ‘한국인’들은 그렇게 순수한 단일 민족이 아닐 수 있다. 현재 이러한 인식은 과거보다 많이 한국 사회에 자리 잡은 듯하다.

최근에 본 한 유튜브 콘텐츠[4]는 한국인의 생물학적 순혈주의를 반박하는 증거 차원을 넘어, 인종적으로 누가 오리지널 한국인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이 콘텐츠를 올린 사람은 인도 쪽 혼혈을 즉각 연상케 하는 외모를 가졌다. 본인도 말하길 자신의 몸속에 외국인 조상 피가 흐르는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과연 어느 쪽 외국인 조상인지 궁금해서 유전자 혈통 분석 검사를 해보았다고 한다. 결과에 당사자 스스로도 크게 놀랄만 했다. 나 역시 한 번도 본 적 없는 100퍼센트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한국인이라고 생각할만한 얼굴을 가진 사람도, 많은 경우 한국인 조상 유전자가 60~70퍼센트임을 감안할 때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와 비슷한 유형의 검사는 많고, 결과의 신뢰도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을지라도, 위 사례는 우리에게 한국인다운 얼굴은 과연 어떤 얼굴이냐는 근본적 궁금증을 가지게 한다. 인종으로서 ‘한국인다움(Koreaness)’은 무엇인가?

20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외국인 유입으로 2015년 기준, 한국 성씨는 5582개로 급증했는데, 이전부터 한반도에 외래 이주자들이 정착했다는 증거들은 많다. 조선 성종 때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성씨 277개 중 절반에 가까운 130여 개가 귀화 성씨이다. 이들 외국계는 현재와 비슷하게 중국, 몽골, 베트남 그리고 일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13명의 한국인 DNA를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14.5퍼센트의 한국인은 남태평양계의 유전적 형질을 가지고 있다.[5] 해부학에 기반을 둔 다른 연구[6]에 따르면, 약 20퍼센트의 한국인은 남아시아인의 외형적 특질을 가지고 있다.

순혈주의 신화를 다문화 정책 추진의 걸림돌로 인식하는 정부 차원에서도, 세계화 조류 속에서 우물 안 개구리식 ‘국뽕’ 혈연 민족주의를 반대하는 시민 사회 차원에서도, 순혈주의 도그마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감지되고 있다. 하지만 인종적 한국인 정체성의 외연 확대가 과연 에스닉 정체성의 축을 문화 쪽으로 밀고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KBS의 2019년 다큐멘터리 〈10년 후 동창생〉에 등장하는 노만 남매의 이야기는 문화에 방점을 찍은 에스닉 한국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유튜브에도 올라온 이 다큐는 2021년 11월 기준으로, 조회 수 125만을 넘었다. 2000년, 파키스탄인 부모를 따라 네 살 때 한국에 온 후, 한국에서 16년을 보낸 노만과 아예 한국에서 태어나 10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성장한 그의 여동생들에 관한 이야기다. 비자 연장이 안 된 부모는 파키스탄으로 먼저 출국했지만, 노만과 여동생들은 주변의 탄원으로 노만이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한국에 체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체류를 한국 정부가 허락하지 않아 2016년 언어도 문화도 종교도 다른 파키스탄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한국 사회만 보고 자라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막내 여동생이 언니에게 “조용히 해, 돼지야!”라고 한국말로 장난치는 모습이 다큐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들을 보면서 드는 궁금증이 있다. 만약 이 남매가 한국에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한국 사회는 이들을 한국인으로 받아들일까? 노만 남매와 같이 이질적 인종이지만 문화적 한국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수용성은 21세기 다문화 한국 사회의 큰 화두로 보인다.

 

다문화라는 단어


노만 남매는 한국인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말 그대로 생짜 외국인이다. 그럼에도 유튜브 댓글을 통해 많은 한국 원주민은 “저런 애들이 한국인이 아니면 누가 한국인이냐?”라며 문화적 정체성을 인종적 정체성에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반면, 다문화 가정의 자녀는 한국 원주민 배우자와 결혼 이주자 사이에서 태어나고 한국에서 자랐다. 따라서 문화적 정체성은 원주민 정체성과 동일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그들은 혈연적으로 즉, 인종적으로도 반은 한국인이다. 노만 남매보다 같은 한국인으로 인정하고 수용하기에 훨씬 유리한 조건을 일단 갖춘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이들 다문화 가정 자녀를 보듬어 안아 주고 있을까?

2019년 기준, 다문화 가정 고등학생 자녀의 20퍼센트는 학교생활 부적응으로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다문화 가정 자녀를 위한 ‘다문화 대안 학교’가 별도로 있을 정도다. 사실 노만 남매도 파키스탄에 돌아가야 했던 사연 덕분에 많은 동정을 받았을 뿐이지, 한국에 있었을 때는 대안학교를 다녔다. 그들도 한국 주류 교육 시스템에서 소외되어 있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다시 한국에 돌아와도 그들이 한국 주류 사회에 편입하고 한국 사회가 그들을 원만히 받아들인다는 보장은 없는 셈이다. 왜 이런 불친절한 상황에 수많은 다문화 가정 자녀와 다른 에스닉 그룹 자녀가 놓이는 것일까?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한국 정부의 다문화 정책을 둘러싼 문화와 인종의 다이내믹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거론되는 다문화 정책(multicultural policy) 혹은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는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한국 정부는 2006년 ‘결혼 이민자 가족의 사회 통합 지원대책’ 발표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다문화 정책을 시행했다. 정책에 관심을 두지 않은 채 다문화라는 용어를 들은 많은 한국인은 어쩌면 다문화를 백화점 식당가에 나란히 진열된 각국 음식처럼 생각했을지 모른다. 똠양꿍을 먹을까, 쌀국수를 먹을까, 아니면 스시를 먹을까를 고민하는 것처럼 축복해야 할 ‘다양성(diversity)’으로 다가왔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2021년 한국 사회의 다문화는 과연 다양한 문화가 수평적으로 공존하는 모습으로 구현되고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위해서는 짚고 넘어갈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소위 다문화 사회(multi-cultural society)라는 것의 실체는 ‘다에스닉 사회(multi-ethnic society)’라는 것이다. 똠양꿍이 서울 백화점 식당가에 들어올 때 서산 농촌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쏨차이’도 들어왔으며, 쌀국수는 파주 주물 공장에서 일하는 ‘응우옌’과 같이 들어왔다. 문화와 인종이 함께 들어온 것이다. 이처럼 문화와 인종적 요소를 다 갖춘 다른 에스닉 그룹과의 공존이 다문화의 실체이다. 그럼에도 한국을 포함한 서구에서 이를 다문화라고 호칭하는 것은 에스니시티의 인종 부분을 애써 가리고 싶은 위정자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두 번째는 다문화주의 용어 자체다. 우리가 ‘~주의~ism’를 특정 개념에 붙이는 많은 경우는 이 개념을 규범적(normative) 이데올로기로 간주할 때이다. 이 대목에서 고개를 드는 의문은 ‘과연 다에스닉 사회가 단일에스닉(mono-ethnic) 사회보다 본질에서 더 바람직한가’이다. 그 대답은 의외로 명백할지도 모른다. 다양성이 단일성(homogeneity)보다 좋다는 명목하에 자발적으로 자국의 에스닉 구성을 다양화하려고 시도한 국가는 세계 역사상 없었다. 결국, 현재와 같은 다에스닉화는 국가의 자발적 의지의 결과물이 아니라, 뒤이어 논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현재의 다문화주의는 이미 다에스닉화된 사회에 대한 사후 관리 정책일 뿐이다.

이런 기본 인식 위에서 다문화에 대해 한국 원주민이 느끼는 불안감의 근원과 그 불안감의 공격적 표출 방식인 인종화를 이해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많은 원주민이 다문화라는 말을 들을 때 우려 섞인 긴장을 하는 것은 똠양꿍이나 쌀국수처럼 내가 원할 때만 찾을 수 있는 ‘다양한 문화’ 때문이 아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순간부터 나의 사회적 경제적 공간을 공유하기 시작한 ‘이질적 인종’ 때문이다. 원주민의 이에 대한 경계심은 새로운 에스닉 이웃에 대한 인종화 형식으로 나타난다.

인종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지만 인종화는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에스니시티의 양대 구성 요소인 문화와 인종에서 인종만을 부각하는 인종화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에스닉 그룹을 ‘타자화 (otherization)’한다. 그들은 ‘우리’가 아닌 것이다. 동남아 결혼 이주 여성을 지위 상승만을 노린 그룹으로 스테레오 타입화하는 것도 인종화이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어떤 꿈을 가지고 사는 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한국 남성과의 결혼으로 물질적 풍요를 기대하는 천박한 그룹으로 인종화한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인종화는 한국 자본주의의 최저 계급에 최적화된 인종으로 이들을 고착화하는 형식이다. 당연히 수평적 이미지를 가진 다문화 용어와는 정반대의 위계성을 띤다. 이들을 한국에 오게 한 보이지 않는 손과 한국 정부, 그리고 이들의 등장에 불안감을 느낀 한국 원주민은 합심하여 이주 노동자를 인종화한다. 농어촌 그리고 소규모 제조업 현장 속 이주 노동자의 존재는 당연시 여겨짐과 동시에, 그들은 그 업종에서‘만’ 존재할 것을 기대한다. 그들은 최저 임금을 받는 3D 업종에 최적화된 인종으로 간주되어, 한국 사회와 한국 경제의 다른 영역으로 진출하려는 시도는 결코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계속 전달받는다. 결과적으로 이주 노동자는 특정 계급(업종·직종)에서만 일하고 그 계급은 이주 노동자의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굳어진다. 인종과 계급이 결합된 ‘인종의 계급화’ 그리고 ‘계급의 인종화’가 이주 노동자 인종화의 실체이다.

이어질 글은 앞선 논의를 기반으로, 한국 사회의 다에스닉화 현상을 글로벌 자본주의(Global Capitalism, 보이지 않는 손), 보편적 리버럴리즘(Universal Liberalism) 그리고 민족 국가(Nation-state) 간 복합적 충돌이라는 프레임으로 이해한 비판적 고찰이다. 고찰 순서는 다음과 같다. 국가 프로젝트로 유입된 결혼 이주자와 이주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외국인 현황과 정부 정책, 정부의 이민·이민자 정책에 대한 학계를 중심으로 한 비판, 다문화 자체를 반대하는 시민 사회 목소리, 다문화(다에스닉화) 현상에 대한 이론적 접근과 세계적 차원의 조명, 그리고 마지막은 대안적 다에스닉 사회에 대한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마무리한다.
[1]
옥스포드 사전에 따르면 “공통된 문화적 배경 혹은 혈통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인구 그룹 혹은 하위 그룹에 귀속되는 특성 혹은 사실”을 의미한다.
[2]
2018년 Stats NZ Tatauranga Aotearoa 인구 조사 중 민족 그룹 통계 기준.
[3]
Anethnic group or ethnicity is a grouping of people who identify with each other on the basis of shared attributes that distinguish them from other groups. Those attributes can include common sets of traditions, ancestry, language, history, society, culture, nation, religion, or social treatment within their residing area.
[4]
유튜브 채널 <수의 다이어리 Su's Diary>.
[5]
김성일 외 8인, 《다문화사회의 이해: 9가지 접근》, 태영출판사, 2012.
[6]
이성미, 《다문화 코드: 코리언 드림 해법 찾기》, 생각의나무,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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