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하는 의사
7화

에필로그; 몸에 타투 있으세요?

“몸에 타투 있으세요?” 오랜 세월 타투 시술자로 일해 온 내가 자주 듣는 질문이다. 나는 처음 타투업을 시작할 때 타투를 남에게는 해줘도 내 몸에는 새기지 않겠다고 아내와 약속했다. 교회 전도사였던 아내에게 퇴근 후 몸에 타투를 했는지 검사받을 때도 있었다. 내 몸에 타투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림 타투는 아니다. 새로운 타투 잉크가 시판될 때마다 시험용으로 내 몸에 먼저 새겨본 것이 전부다. 제조사가 주장하는 대로 발색될 것인지 아니면 쉽게 변색되는 잉크인지를 관찰할 목적으로 새긴 것이다. 타투 제거 전용 레이저에 잘 제거되는지까지 확인할 수 있어서 참 쓸모가 다양한 타투다. 왼쪽 다리 안쪽에 여러 개의 점을 나란히 새긴 타투는 마치 무협 영화의 소림사 스님 두피에 새긴 점과 닮았다. 내 몸에 화려한 타투가 없는 것에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남들에겐 용이니 호랑이니, 그렇게 근사한 그림들을 그려 주고 왜 정작 본인은 작은 점만 몇 개 찍냐는 것이다. 그래도 타투를 더 많이 새길 생각은 없다. 아직까지 내 주변에도 타투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타투 분야에서 의사로 혼자 일하다 보면 많은 오해를 받게 된다. 병원 벽에 붙은 많은 타투 도안과 관련 자료들은 이곳이 정말 병원이 맞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2년 전 서울 남대문 경찰서에서 우리 병원을 방문했다. 의사가 맞는지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인근에서 신고가 들어왔다고 한다. 의사 면허증을 보여 주고 보건소에서 발행한 의료 기관 개설 필증을 확인시켜 줘야 했다. 일반 의사로서는 겪지 않았을 일이지만 그래도 이런 일을 수없이 당할 전업 타투이스트들을 생각하면 단순한 해프닝이지 싶다. 알고 지내는 한 시술자는 문소리만 나도 가슴이 내려앉고 겁이 난다고 하더라. 혹시 단속반이 들이닥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돼서.

다행히 타투를 하면서 행복한 경험이 훨씬 많았다. 특히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런 시술을 해달라는 손님들의 격려는 지친 몸과 마음에 비타민이 되어 준다.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에 다리에 화상을 입어 종아리 전체가 일그러진 한 여성이 있었다. 평생 치마를 못 입었는데, 타투 시술 후 반바지도 입고 다닌다고 좋아하시는 걸 봤다. 가슴에 큰 점이 있어 한여름에도 웃통을 못 벗던 청년에게 시술해 준 부엉이 타투는 그에게 당당함의 지렛대가 되어 주었다. 한때 우울증을 겪었던 소녀의 팔에 있던 자해 상처는 아름다운 장미로 재탄생했다. 그들에게 타투는 아픈 과거와 지금의 삶을 단절해 주는 도구였으며, 그 행복한 표정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타투 시술을 마치 중독성 강한 마약처럼 끊지 못하는 내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타투 시술을 시작하고 몇 년쯤 지났을 때였다. 경력이 쌓이니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인지 어느 때부터인가 고객이 요구하는 작품의 수준이 낮아 보이기 시작했다. 잔소리가 심해졌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상대방이 결정하도록 압박하기도 했다. 물론 전문가의 조언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했으나 사실은 ‘제 눈에 안경’과도 같은 것이었다. 10년 전, 가슴에 용을 넣고 싶어 하는 사람이 본인이 새기고 싶다는 그림을 보여 줬다. 그가 원하는 그림은 선이 단조롭고 단색이라 조악한 느낌이 들었다. “아, 평생 몸에 남을 작품인데 동화에나 나올 법한 용의 모습이 괜찮으시겠어요?” 나의 반응에 고객은 적잖이 실망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더 괜찮은 그림을 꺼내 보여 주며 설득해서 그 그림으로 타투를 완성했다. 그러나 정작 결과물에 대한 고객의 만족도는 낮았다. 그에게 타투는 단조롭고 선명한 색이어야 한다는 기준이 있었을 텐데 나는 이를 무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슬픈 얼굴로 본인이 처음에 가져왔던 그림에 대한 얘기만 하다가 돌아갔다. 고객을 보내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더 나은 그림으로 시술했어도 고객을 만족시키는 데 실패한 느낌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림을 보는 안목과 기술은 좋아졌는데 고객에 대한 이해도는 오히려 떨어졌기 때문인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며 깨닫기 시작했다. 손님이 아무리 멋진 그림을 가져와 똑같이 그려 달라 해도, 타투는 자로 잰 듯 정확할 수 없다. 또 아무리 잘난 타이스트라도 타투는 그의 감각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결국 타투는 의뢰인과 창작자가 함께 만들어 가는 대화의 결과물이며, 그 대화가 깊고 진솔할수록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이것들을 이해하게 됐을 무렵, 나는 비로소 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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