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대체로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본인 하나 건사하기도 빠듯한 세상이다. 스스로 장애가 있거나 가까운 지인이 장애인이지 않고서는 장애에 관심을 가지기 쉽지 않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학창 시절에 선배들이 동아리에서 수어를 연습하던 모습이 멋져 보이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학교에 청각 장애인이 없었기 때문에 그 멋진 수어는 학예회 공연에서만 볼 수 있었다. 우리에게 수어는 손가락을 세밀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춤이나 제2 외국어에 불과했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아나운서로 방송계에서 활동하며 사회 각층의 삶을 만나 왔지만, 장애인의 삶은 여전히 생소했다.
그러다 2018년도 88 서울 패럴림픽 30주년 기념식에서 사회를 맡게 됐다. 이천 장애인체육훈련원에는 100명이 넘는 인파가 모였다. 그때 처음으로 다양한 유형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아니, 목격했다. 이렇게 많은 장애인이 시야에 들어온 것이 처음이었다. 한평생 우연히 마주친 장애인을 다 합쳐도 이보다는 적을 것 같았다. 그날 패럴림픽과 장애인의 삶에 대해 선수들과 함께 세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눴다. 전국에 무려 250만 명의 장애인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이날을 계기로 장애가 보이고, 장애가 들렸다.
과거 88 서울 패럴림픽을 유치했을 때 많은 시위가 열렸다. “전 세계 장애인을 서울 시내에 다 모아 둘 참이냐”, “안 그래도 먹고살기 힘든데 장애인들 운동까지 시켜 줘야 하냐”. 지금은 절대 입에 담을 수 없을 얘기들이 나왔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였다. 그래도 패럴림픽을 강행했던 관계자들은 버티길 잘했다고 회고했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 수준이 100년은 앞당겨졌다며 말이다. 우리는 인생 선배들 덕분에 100년이나 선진한 복지 사회를 살고 있다는 생각에 나 또한 자긍심이 차올랐다.
며칠 뒤 강남역에 갔을 때였다.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사람이 북적였다. 강남 한복판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오래간만에 넋 놓고 사람 구경을 했다. 멋지게 차려입고 놀러가는 학생들, 손잡고 거리를 활 보하는 연인들,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는 직장인들이 보였다. 한 시간 동안 수천 명은 족히 지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문득 깨달은 사실 하나, 장애인은 한 명도 없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나갔는데도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등록 장애인은 전체 인구의 5퍼센트, 비등록 장애인까지 따지면 1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 많은 장애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거리에 보이는 장애인의 비율로 그 나라의 복지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서울 패럴림픽 덕분에 장애인 복지를 한 세기 앞당겼다 하는데도 상황은 이러했다.
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리의 장애인 복지 수준은 더욱 선명해진다. 호주나 영국은 자국민의 20퍼센트가 장애인이다. 또 국제패럴림픽위원회와 UN 산하 기구들은 전 세계 인구의 15퍼센트를 장애인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5퍼센트다. 우리나라만 장애인이 적게 존재할 리 없는데 말이다. 장애인의 비율은 잘사는 국가일수록 높다. 정부가 더 폭넓게 장애를 정의하고 그에 따른 지원을 제공하며, 시민들은 장애인 등록을 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문화는 현실의 반사경이다. 예능 프로그램을 비롯 해 국내 TV 방송에서도 장애인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속 간혹 나오는 장애인 주인공도 비장애인 배우가 맡는다. 영화 〈말아톤〉의 초원이는 조승우가, 〈나의 특별한 형제〉의 세하는 신하균이 연기했으며 실제 장애인의 삶은 이들 영화 속 톱스타의 캐릭터와 연기력에 묻힌다. 반면 해외에서 장애인 배우는 약방에 감초다.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왜소증의 사나이 피터 딘클리지(Peter Dinklage)는 귀족 가문의 영민한 캐릭터로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마블의 〈이터널스〉에서 청각 장애 히어로 마카리(Makkari) 역을 맡은 로렌 리들로프(Lauren Ridloff)는 다른 히어로들과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수어로 소통한다. 다운 증후군 모델 매들린 스튜어트(Madeline Stuart)를 비롯해 이미 많은 장애인 모델이 패션계에서 블루칩으로 주목받는다. 영국의 장애인 모델 에이전시 제베디 매니지먼트(Zebedee Management)에선 이미 500명이 넘는 아티스트가 자신의 장애를 매력으로 부각해 활동 중이다.
이즈음 파라 아이스하키 메달리스트 겸 현 국가대표 한민수 감독에게서 연락이 왔다. 장애인 전문 엔터테인먼트를 함께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장애인의 삶에 큰 관심이 있던 것도, 사명감이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엔터테인먼트는 방송 생 활을 오래 한 나로서는 잘 아는 분야였다. 장애인분들과 밀접한 일을 해오지 않은 만큼 편견도 없는 것이 내 장점이었다. 그렇게 한민수 감독과 나는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라는 장애 전문 엔터테인먼트를 공동 설립했다.
지금까지 패럴림피언, 댄서, 모델 등 다양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20여 명의 장애인 아티스트가 모였다. 사회 곳곳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동하던 아티스트들이 한데 모이니 힘도 빠르게 응집된다. 패션 및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기업 홍 보 촬영 등 감사한 제안들이 점점 많이 들어오고 있다.
누군가는 ‘장애는 나와 무관한 이야기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차피 내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반드시 닥칠 미래라면 다르다. 실제로 우리 모두는 죽음에 이르기 전 삶의 어느 지점에서 장애를 겪게 된다. 아픈 곳을 수술 후 일시적으로 거동이 불편해질 수 있고, 불의의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사고 없는 삶을 살았다 해도 마찬가지다. 다리에 힘이 약해져 휠체어를 타게 되면 그때 가서 다들 깜짝 놀란다. 몇십 년을 산 동네인데, 곳곳에 방지턱이 이렇게 높았냐고 말이다. 시력과 청력이 감퇴하는 등 누구에게나 예정된 노화의 과정은 장애와 같은 선상에 있으며, 결국 우리 모두 생에 한 번은 장애를 안고 살다 죽음을 맞이한다.
또 장애인들이 호소하는 가장 깊은 상처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신체적 불편보다 고통스러운 것이 사회의 시선이다. 집요한 차별의 시선은 아주 강인한 사람조차도 순식간에 무너뜨린다. 비슷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력서 한 줄짜리 학벌 때문에 능력에 걸맞은 일자리를 포기하기도 하고, 외모 평가로 인해 내면의 미를 발산할 기회를 잃기도 한다. 학창 시절 작은 키로 놀림받은 사람은 키 180센티미터의 장신으로 성장한 뒤에도 자신의 키를 의식한다. 타인이 한 번 배척한 나를 다독이고 다시 끌어안는 작업은 상상 이상으로 고되고 힘이 든다.
결국 이 책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정받고 싶은 많은 사람의 염원이 꾹꾹 담겨 있다. 당장 내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겪었을 이야기이며, 언젠가 내게도 닥칠 수 있는 이야기다. 일곱 명의 각인각색이 어떻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빛과 색깔을 만들어 가는지를 담았다. 고단한 동시에 역동적으로 읽히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독자들이 가진 선한 영향력이 모여 ‘장애인’이 란 단어가 사회에서 사라질 날을 꿈꾼다. 크고 작은 아픔을 갖고 살아가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병명이 아닌 이름으로 불리는 것처럼.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차해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