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전화박스
우리 동네의 길거리 위쪽에는 공중전화박스가 하나 있었다. 교통섬 한 가운데에 있었는데, 그 곁에는 쓰레기통과 신호등, 그리고 차량방지기둥이 있었다. 나는 그 공중전화박스의 존재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쓰레기통이나 신호등, 차량방지기둥의 존재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곳을 지나칠 때면 나는 딸과 함께 종종 공중전화박스 게임을 하곤 했다. 참고로 그 전화기는 동작을 하지 않았다. 내가 그곳의 한쪽에 서서 그 공중전화의 번호로 전화를 거는 흉내를 내면, 딸이 그 전화를 받는 흉내를 냈다. 그리고 여러 차례의 전화통화를 하면서 전화기로 할 수 있는 여러 복잡한 일들을 처치하곤 했다. 예를 들자면 우리는 전화로 약속을 했다가 다시 그 약속을 바꾸었으며, 그리고는 내 딸이 약속했던 사람들 모두에게 다시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자신이 늦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는 식이었다.
공중전화박스 게임은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 게임을 하지 않고는 그 전화박스를 지나치기가 어려워졌다. 딸아이에게 있어서 그 전화박스는 최고의 장난감이었다. 일단 그것은 실제 전화박스였고, 한때는 어른들이 진지하게 사용하던 물건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가 자신만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전화박스는 또한 매우 특이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거대한 전화기가 길거리 한복판에서 자신만의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전혀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딸아이에게 있어서 전화기라는 것은 작고 반짝거리는 직사각형의 물건이었고, 나의 코트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것이었다. 실외의 작은 공간에 끈이 연결되어 있고 찰칵거리며 통통한 버튼이 달린 수화기가 놓여있다는 사실은, 그것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기라도 한 것처럼 아주 재미있고도 신비로운 것이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도시나 마을, 동네에서도 공중전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최후의 공중전화박스들 말이다. 일단 그 존재를 인식하게 되면, 공중전화는 어디에서든 여러분 눈에 들어올 것이다. 나는 한동안 뭔가 어색한 공중전화의 존재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은 거리의 모퉁이에 완전히 무시된 채로 자랑스럽게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공중전화가 한창 인기를 누렸던 1990년대 중반에만 하더라도, 영국에서 공중전화박스의 개수는 약 10만 대에 달했다. 현재 남아 있는 공중전화박스는 2만여 대에 불과한데, 실제로 그걸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2만여 대라는 숫자는 꽤나 많아 보인다. 그런데 사실 공중전화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영국의 방송통신규제기관인 오프콤(Ofcom)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매년 5백만 건의 통화가 공중전화에서 발신된다. 5백만 건이라니! 불가능한 수치로 보인다. 나는 분명히 아무도 없는 어느 공중전화박스에서 어떤 남자가 하루 종일 강박적으로 아무 번호나 눌러서 1분 정도의 통화를 하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만큼 많은 수치였다.
여러분이 지금도 볼 수 있는 전화박스들의 상당수는 예전의 모습을 간직한 껍데기들일 뿐이다. 더 이상 작동하지 않지만, 아직 사라지지는 않은 존재들이다. 예전의 바로 그 자리에 과거의 유물로 남아, 이제는 그저 쓰레기통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일부는 용도가 바뀌기도 했다. 브리티시텔레콤(BT)이 ‘전화박스 입양(Adopt a Kiosk)’ 프로그램을 시작한 2008년 이후로 7000개 이상의 공중전화박스가 개당 1파운드의 가격에 지역사회에 매각되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낡은 붉은색 전화박스였다. 그렇게 매각된 전화박스들은 현재 미니 도서관, 미술 갤러리, 식물 전시실 같은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상당수의 전화박스에는 제세동기가 구비되어 있어서, 응급상황에서 즉시 사용할 수 있다.
살아남은 전화박스들은 영국이 스스로 생각하는 영국의 이미지의 특별한 부분이다. 옥스퍼드 스트리트(Oxford Street)에 있는 어느 기념품 가게를 지나가면서 살펴보니, 그곳의 전면 진열대에는 빨간색 전화박스의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층버스, 검은색 택시, 구식 우체통과 같은 아이템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에니드 블라이튼(Enid Blyton)의 동화책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영국을 대표하는 상징들이었다. 솔퍼드대학교(Salford University)의 전기통신학 교수이자 영국 최고의 전화박스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나이절 린지(Nigel Linge)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당신이 영국의 시골 풍경을 그린다면, 거기에는 오리가 헤엄치는 연못, 교회, 펍(pub)이 있을 것이고, 당연히 공중전화박스도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공중전화박스와 관련하여 린지의 머릿속에 가장 처음 남아 있는 기억은 그가 살던 카운티 더럼(County Durham)의 윌링턴(Willington)이라는 탄광촌의 주거단지에 있는 공중전화에서 친척들에게 전화를 걸던 일이었다. 그의 가족은 1980년대까지도 집에 전화기가 없었다. “우리 영국만큼 공중전화박스에 대해서 많은 열정을 가진 나라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린지는 이야기한다.
이처럼 있음직하지 않은 열정을 이해하기 위하여, 나는 지나가면서 발견하는 모든 전화박스들의 안쪽에 들어가 보기 시작했다. 그 안쪽에는 일반적으로 깨진 유리조각과 버려진 음료수 캔들이 있었고, 소변임에 틀림없는 냄새가 났다. 좋아할 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캠든(Camden)에 있는 어느 낡은 붉은색 전화박스는 부서져 있었는데, 문짝도 없었고 바닥에는 플라스틱 병과 갈색의 낙엽이 깔려 있었으며, 금발 미녀를 광고하는 유리창에는 손으로 쓴 쪽지가 붙어 있었다. 나는 그곳의 수화기를 들어서 귀를 대어 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전화를 걸 수 있다고 알려주는 기다란 통화대기음이 들렸다. 아주 오래된 소리였다. 그러자 청소년기였던 1990년대 중반의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당시에 나는 친구들과 약속을 정하기 위해서 공중전화를 아주 많이 이용했다. 버스정류장 근처나 지하철역의 바깥에는 공중전화박스들이 있었다. 가끔은 수신자부담 전화를 거는 경우도 있었다.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나 아니면 데리러 와달라는 부탁을 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이었다..
이제 공중전화박스는 실존과 과거의 사이에 끼어있는 물체가 되었다. 지금의 공중전화박스는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그것은 우리의 길거리와 우리의 문화 속에서 여전히 버티고 서있다. 아델(Adele)의 노래인 ‘헬로(Hello)’의 뮤직비디오에서는 덩굴에 뒤덮인 채로, 원 디렉션(One Direction)이 2012년에 발표한 정규앨범 <테이크 미 홈(Take Me Home)>의 커버에서는 멤버들 모두가 기어오르는 대상으로, 프리티리틀씽(PrettyLittleThing)이 선보인 최근의 광고에서는 베이지색 반바지와 조끼를 입은 몰리-메이 헤이그(Molly-Mae Hague)가 쓰다듬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린지는 “많은 젊은이들이 전화박스 근처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여전히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들이 누구이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이미 오래 전부터 스마트폰 하나만으로도 공중전화박스가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기능은 물론 그 이상을 누릴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한 요즘 같은 시대에도 여전히 그 기이하고 육중한 문을 굳이 힘겹게 열고 들어가서 전화를 걸게 되는 경우가 언제인지도 궁금했다.
2. 공중전화박스, 추억 그 너머
공중전화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곳의 냄새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한다. 담배 냄새와 세척액 냄새, 버튼을 누르면서 손가락에 묻은 금속 냄새들 말이다. 한때 전화박스 내부의 선반에는 전화번호부가 놓여 있었고, 문짝에는 성매매 전단지가 도배되어 있기도 했다. 전화기가 생겨난 초창기부터 1976년에 기존의 수동 교환기들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수화기를 들어서 전화를 걸고자 하는 번호를 여성 교환수에게 말해야만 했다. 희한하게도 교환수는 늘 여성이었다.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선 경우도 많았다. “전화를 걸기 위한 줄은 길모퉁이의 가게를 돌아서까지 이어졌습니다.” 브리티시텔레콤이 폐기하는 오래된 전화박스들을 수리하여 재판매하는 회사인 엑스투커넥트(X2 Connect)의 마틴 화이트(Martin White) 대표의 말이다. 나는 노팅엄셔(Nottinghamshire)의 뉴어크(Newark)에 있는 산업단지 내에 위치한 회사 사무실에서 화이트를 만났다. 공중전화박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의 비즈니스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화이트가 내게 말했다. “수천여 개가 추가로 폐기될 겁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걸로 모두 끝이겠죠.” 화이트라면 공중전화로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그 자신조차도 공중전화를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것이 “6년 전쯤?”이라고 했다. 그리고 각각 38살과 36살인 그의 자녀들은 그 안에 들어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가 아는 한은 말이다.
화이트의 회사 한쪽에 있는 넓은 공간에는 버려진 전화박스들이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가 새로운 삶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이트는 그것들을 새롭게 단장을 한 다음에 온갖 부류의 고객들에게 판매한다. 그들은 예를 들자면 환자들의 지난 기억을 되살리고자 하는 양로원, 자택의 정원에 일종의 사회적 유산을 장식하고 싶어 하는 개인 고객들, 그리고 십대였을 때 자신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던 전화박스를 구입하려고 찾아 나선 노인처럼 향수에 젖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영국만의 특색을 가진 물건을 구입하고 싶어 하는 해외의 고객들도 상당히 많다. 화이트는 최근에 두바이의 어느 쇼핑몰에도 공중전화박스를 하나 실어 보냈다.
비바람에 노출되어 낡아버린 공중전화박스들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영국 공중전화박스의 개략적인 역사를 파악할 수 있다. 현재 화이트가 보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처음으로 표준화된 전화박스의 모델이 등장한 것은 1912년에 공중전화박스의 운영을 넘겨받은 중앙우체국(GPO)이 1921년에 선을 보인 크림색의 K1(키오스크 원)이었다. 중앙우체국이 공중전화를 운영한다는 사실이 당시에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우체국과 공중전화는 모두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공공 서비스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으며 가장 일반적인 오래된 붉은색 전화박스들은 자일스 길버트 스콧 경(Sir Giles Gilbert Scott)이 디자인하여 1935년에 선보인 K6 모델이다. 이것은 조지5세 국왕의 즉위 25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것이었으며, 튜더(Tudor) 왕가의 왕관이 새겨져 있었다. 다음으로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설 만큼 비호감의 끝을 보여주었던 1980년대의 모델이다. 색깔은 칙칙한 회색과 검은색이었고, 뚜껑은 네모나고 납작했다. 그러니까 이전 버전이 가진 활활 타오르는 붉은색과 둥그런 지붕으로 된 대담한 양식들을 모두 버린 것이었다. 두바이의 쇼핑몰 중에서도 이런 모델을 원하는 곳은 없었다.
그런데 사실 공중전화박스는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도 문제가 많았다. 린지 교수는 “공중전화박스로는 결코 돈을 벌지 못했다”고 말한다.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데다 현금이 가득했던 공중전화박스는 걸핏하면 파손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전화통엔 불이 났다. 브리티시텔레콤이 1981년에 중앙우체국으로부터 독립하여 1984년에 민영화된 이후에도 회사는 1990년대까지 공중전화박스의 개수를 꾸준히 늘려갔다. 2000년대 초에 들어 휴대전화가 보편화되고 나서야 브리티시텔레콤은 공중전화박스의 수를 줄이기 시작했다. 공중전화박스들은 이제 상당수가 사용되지 않지만, 그 상태가 어떻든 간에 비용은 소요되었다. 작동하는 것들은 유지보수를 위해서, 망가진 것들은 철거를 위해 돈이 들었던 것이다. 2020년 4월까지 브리티시텔레콤은 공중전화로 연간 450만 파운드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하지만 브리티시텔레콤은 공중전화박스를 전부 다 그냥 없애버릴 수도 없다. 설령 없애고 싶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 회사가 제공하는 공중전화박스 업무는 오프콤(영국 방송통신규제기관, Ofcom)의 규제를 받는 ‘보편적 서비스 의무’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오프콤에서 연결성(connectivity)을 책임지고 있는 셀리나 차드하(Selina Chadha) 이사는 이와 관련하여 “브리티시텔레콤은 영국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브리티시텔레콤은 오프콤과 지역당국으로부터 승인을 얻은 경우에만 공중전화박스를 철거할 수 있지만 여기에도 제한사항이 있다. 즉, 이동전화 신호가 잡히지 않는 지역,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지점, 직전 1년 동안 52건 이상의 통화가 발생한 곳, 긴급통화를 위해 자주 사용되는 곳 등 ‘예외적인 상황’에 해당하는 공중전화들은 없앨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브리티시텔레콤은 수익성을 저해하는 수천 대의 공중전화박스를 유지보수 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브리티시텔레콤의 노상통신 국장(head of street)인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e)은 “노상에서 제공하는 전화통신 서비스에 대한 책임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하여 회사는 ‘스트리트 허브 2.0(Street Hub 2.0)’이라는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여 인도 위에 롤링(rolling)형 광고를 보여주는 키가 크고 평평한 스크린을 설치했는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에서는 무료 와이파이 서비스와 통화 기능까지 제공하고 있다. 광고 게시 공간의 일부는 지자체와 지역사업체들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네, 이건 수익성을 위한 시도입니다.” 브라운이 자신있게 말했다.
얼핏 보면 불필요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공중전화박스가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입증하는 사례들이 있다. 지난해 11월 아르웬 폭풍(Storm Arwen)이 지나간 후 잉글랜드 북부와 스코틀랜드에 거주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전력과 이동전화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상태를 경험했다. 차드하 이사의 말에 따르면, 재해가 일어난 이후 그녀는 해당 지역들에서 공중전화박스를 계속해서 유지하기를 바란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오프콤의 자료에 따르면, 2019년 5월부터 2020년 5월까지 공중전화박스에서 15만 건의 응급구조 서비스 통화가 걸렸다고 한다. 그 외에도 같은 기간 동안 아동상담 서비스인 차일드라인(ChildLine)으로는 2만5000건이, 우울증 상담 서비스인 사마리탄즈(Samaritans)로는 2만 건의 통화가 공중전화에서 걸려왔다고 한다. 너무나도 개인적이거나 고통스러워서 집전화나 휴대전화로 그 사실을 알리기 어려운 사람들이 공중전화를 이용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