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권력에의 의지
이렇게 다윈주의가 묻혀버릴 수도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통계학자들과 동물 사육자들로 구성된 특이한 조합의 사람들이 그것을 되살리기 위해 나타났다. 1920년대와 30년대에 각각 개별적으로 연구했지만 그래도 느슨하게 서신으로 왕래하던 영국 과학 통계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로널드 피셔(Ronald Fisher)와 미국의 가축 육종 전문가인 시월 라이트(Sewall Wright)는 진화론의 수정된 버전을 제안했다. 그들은 다윈의 사후에 과학적으로 새롭게 밝혀진 내용들을 모두 설명하면서도 여전히 간단한 몇 가지의 규칙만으로 생명의 모든 신비를 설명하겠다고 공언했다. 1942년에 영국의 생물학자인 줄리언 헉슬리(Julian Huxley)는 이러한 이론에 ‘현대종합진화론(modern synthesis)’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8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 이론은 진화생물학의 기본 프레임워크를 제공하고 있으며, 매년 수백만 명의 어린 학생들과 학부생들도 그 내용을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대종합진화론의 전통 안에서 연구하는 생물학자들을 ‘주류’로 간주하며, 그것을 거부하는 이들은 비주류로 취급받는다.
이름은 그렇게 붙였지만, 이 이론이 실제로 두 개의 분야를 종합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한 분야를 다른 분야에 비추어 정당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종합진화론은 유전학과 돌연변이의 법칙을 설명할 수 있는 동물 집단의 통계적 모델을 만들어서, 시간대를 장기간으로 늘리면 자연선택설이 여전히 다윈이 예측했던 것처럼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들에게는 자연선택설이 여전히 중심이었다. 시간을 충분히 길게 설정하면 돌연변이는 극히 드물게 발생하여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유전법칙은 자연선택이라는 대세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월한 형질을 가진 유전자는 점진적인 과정을 거치며 살아남았지만, 별다른 우위를 갖지 못하는 유전자들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도태되었다.
현대종합진화론을 지지하는 이들은 개별 유기체와 그들의 특수한 서식 환경으로 이루어진 혼잡한 세계에 매몰되지 않고, 집단유전학이라는 고귀한 관점에서 이 사안을 관찰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생명의 서사란 결국 진화가 이루어지는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남거나 소멸하는 유전자 집단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현대종합진화론이 나타난 시점은 아주 절묘했다. 현대종합진화론이 왜 나타났는지를 살펴보면, 그것이 진화에 관해 설명해줄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점 외에도 두 가지의 이유가 더 있었다. 그 이유는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좀 더 역사적이며, 심지어는 사회학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우선 종합진화론은 수학적으로 엄격하다는 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그것은 이전의 생물학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역사학자인 베티 스모코비티스(Betty Smocovitis)가 지적하듯, 현대종합진화론은 생물학 분야를 물리학과 같은 ‘대표 과학(exemplar science)’의 지위에 더욱 가까이 데려다주었다. 동시에 스모코비티스는 그것이 과학의 통합이라는 “계몽 프로젝트”가 크게 유행하고 있던 시기에 생명과학을 통합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말한다. 1946년에 생물학자인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와 조지 게일로드 심슨(George Gaylord Simpson)은 진화연구학회(Society for the Study of Evolution)를 설립했다. 이곳은 자체적인 저널을 발간하는 전문기관이었으며, 심슨의 말에 의하면 생물학의 하위분야들을 “진화 연구라는 공통의 기반”하에 통합하고자 했다. 그는 나중에 이 목표들이 모두 실현 가능한 것이었다고 회고한다. “우리는 마침내 통합된 하나의 이론을 갖게 될 것처럼 보였다. (중략) 그것은 생명의 역사에 대한 모든 고전적인 문제들에 답변할 수 있으며, 그러한 각각의 문제에 관하여 적절한 인과관계를 가진 답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는 생물학이 주요 과학의 반열에 올라가고 있던 시기였다. 대학교에서는 관련 학과가 개설되었고, 연구 자금이 흘러들었으며, 새롭게 학위를 받은 수천 명의 과학자가 짜릿한 발견을 해내고 있었다. 1944년에 캐나다계 미국인 생물학자인 오즈월드 에이버리(Oswald Avery)와 그의 동료들은 유전자를 구성하며 유전에 관여하는 물리적인 실체가 DNA라는 사실을 입증했고, 1953년에는 제임스 왓슨(James Watson)과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이 로절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과 미국의 화학자인 라이너스 폴링(Linus Pauling)의 연구에 크게 힘입어 결국은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했다.
그 어떤 과학자도 그것을 완전히 소화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정보들이 쌓여 가는 동안, 현대종합진화론은 그 모든 것들을 관통하면서 꾸준히 명맥을 이어 나갔다. 이 이론은 결국 유전자가 모든 것을 만들어내며, 자연선택은 생명이 가진 모든 부분을 정밀히 검증하여 우위를 가진 형질을 결정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어떤 연못에서 꽃을 피우고 있는 수초를 보든, 아니면 짝짓기 의식을 거행하고 있는 공작새를 보든, 거기에는 모두 유전자에 대하여 자연선택의 과정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느덧 생명의 세계는 다시금 단순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1959년에 시카고대학교는 《종의 기원》 출간 100주년을 기념하는 컨퍼런스를 개최했는데, 이 자리에서 현대종합진화론 진영은 의기양양했다. 행사장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전국 일간지의 기자들이 진행 과정을 취재했다. 헉슬리는 이렇게 외쳤다. “이번 컨퍼런스는 공개적인 행사로서는 거의 처음으로 현실의 모든 측면이 진화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마주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현대종합진화론은 그 이론을 만드는 데 일조한 바로 그 분야의 과학자들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게 된다.
3. 생물학계의 분열
반대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늘 존재했다. 1959년에 발생생물학자인 C. H. 워딩턴(Waddington)은 “현대종합진화론이 다른 귀중한 이론들을 배제했고, 극단적인 단순화를 통해 진화 과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하여 부정확한 그림을 제시했다”며 한탄했다. 개인적으로도 그는 진화에 관한 새로운 “당의 노선(party line)”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 다시 말해서 현대종합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배척당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던 와중에 새로운 발견들이 연달아 거세게 몰아치면서 이 이론의 근간에 의문이 제기된다. 60년대 말부터 시작된 이러한 발견들은 분자생물학 분야에서 터져 나왔다. 현대종합진화론자들이, 이를테면 망원경을 통해 생명을 관측하면서 영겁의 시간에 걸쳐서 무수한 생명체들이 발생하는 과정을 연구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분자생물학자들은 현미경을 들여다보면서 분자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관찰을 통해서 그들은 많은 이들의 추정과는 다르게 자연선택이 그다지 전능한 힘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인간의 세포 안에 있는 분자들이,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의 배후에 있는 유전자들의 염기서열이 매우 빠른 속도로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런 사실은 예상 밖이긴 했지만, 주류 진화론에 반드시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현대종합진화론에 의하면, 비록 돌연변이가 흔한 것으로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장기간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선택이 여전히 변화의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유용한 돌연변이는 보존하고 쓸모없는 변이들은 폐기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변화하고 있는 것은 (형질이 아니라) 유전자였다. 다시 말해서 유전자가 진화하고 있었던 것이며, 자연선택이 역할을 하는 건 아니었다. 유전적 변화들 가운데에서는 순전한 우연 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보존되는 것들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선택은 마치 졸음운전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진화생물학자들은 깜짝 놀랐다. 1973년 데이비드 애튼버러(David Attenborough)는 BBC의 다큐멘터리에 출연하여 현대종합진화론 진영의 대표적 인물 가운데 한 명인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hansky)를 인터뷰했다. 도브잔스키는 당시에 일부 과학자들이 주장하고 있었던 ‘비-다윈적 진화론’에 대해서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그들의 주장이 옳다면, 진화라는 건 거의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며, 특정한 방향성도 없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전문가들 사이의 말싸움에서 그치는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 인간에게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가 타당한 것입니다.” 한때 기독교계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두고 삶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든다며 비판했던 것처럼, 이제 다윈주의자들은 다윈설에 반대하는 과학자들을 향해 똑같은 비판을 쏟아냈다.
정통파 진화론에 대한 공격은 계속해서 뒤를 이었다. 영향력 있는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와 나일스 엘드리지(Niles Eldredge)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화석 기록(fossil record)을 살펴보면 진화라는 것이 짧은 기간에 폭발적으로 집중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진화의 과정이 반드시 느리고 점진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연구에서 현대종합진화론은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생물학자들도 있었다. 생명에 관한 연구가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여러 다양한 환경에서 어떠한 유전자가 선택되는지에 기반을 둔 현대종합진화론은 서서히 중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태초에 바다에서 어떻게 생명이 발생했는지를, 또는 태반과 같은 복잡한 기관이 어떻게 발달하였는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예일대학교의 발생생물학자인 귄터 바그너는 태반의 발달에 대한 문제를 설명하기 위하여 현대종합진화론이라는 렌즈를 들이대는 것은 “마치 열역학 법칙으로 두뇌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려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에너지가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설명하는 열역학 법칙을 두뇌에 적용할 수는 있지만, 우리의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또는 우리가 감정을 왜 느끼는지를 알고 싶다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려했던 대로, 생물학 분야는 갈라졌다. 70년대 들어서면서 많은 대학의 분자생물학자들은 일반 생물학과에서 빠져나와 별도의 학과를 만들고 자체적인 저널을 창간했다. 고생물학이나 발생생물학 같은 하위 분과들도 역시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거대한 주류의 진화생물학 분야는 여전히 건재했다. 당시에 이르러서는 각 대학의 생물학과를 장악하고 있었던 현대종합진화론 진영이 잠재적으로 체제를 뒤흔들 수도 있는 새로운 발견들에 대처하는 방식은 그런 프로세스가 가끔 발생한다고 인정하거나, 내심 인정하지도 않는 일부 전문가들에게는 유용할 수 있다며 그것을 마지못해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현대종합진화론에서부터 이어진 생물학의 기본적인 지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속마음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예전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새로운 발견들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호기심 거리 정도로 치부되었다.
진화생물학자인 더글러스 퓨투이마(Douglas Futuyma)는 2017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주류의 관점을 옹호하며, 오늘날의 현대종합진화론이 “필요한 부분만 약간 수정되었을 뿐, 현대 진화생물학의 핵심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라고 적었다. 이 이론의 현재 버전에서는 돌연변이와 무작위적인 우연을 받아들일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여지를 남겨 두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진화라는 것을 거대한 개체군에서 살아남은 유전자의 이야기로 바라보고 있다. 20세기 중반의 영광스러웠던 시절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아마도 유전자와 자연선택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이해할 수 있다는 그들의 가장 야심 찬 주장에서 한발 물러선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들에 대한 비판이나 예외적인 상황에 대하여 좀 더 진지하게 대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변화마저도 달갑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현대종합진화론의 아이디어들은 여전히 생물학 분야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그것이 실패했거나 분열되었다는 공식적인 판단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현대종합진화론은 선거공약을 어긴 대통령과 비슷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연립정부 전체를 만족시키겠다는 당초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더 이상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권력을 손에 쥔 채로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다.
많은 이들에게 있어서 찰스워스 부부는 현대종합진화론의 정통성을 계승한 대제사장들로 여겨진다. 그들은 진화생물학 분야에서 새로운 이론들이 갖는 위치에 관하여 광범위하게 저술해 온 저명한 사상가이며, 그 이론의 근본에서 어떠한 수정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부에서는 그들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단지 신중할 뿐이라고 말한다. 근거가 빈약한 이론들 때문에 이미 검증된 프레임워크를 해체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그들은 진화에 대한 근본적인 진실에 관심이 있는 것이지, 그 과정에서 다양하게 일어나는 모든 결과들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브라이언 찰스워스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코끼리의 코나 낙타의 혹에 관해 설명하려고 여기 있는 게 아닙니다. 설령 그러한 설명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대신에 그는 진화론이 보편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생명체의 발생 원리에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의 중요한 요인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데보라 찰스워스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저를 두고 ‘어떤 특정한 시스템이 왜 그렇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했다’고 말하는데, 그런 말에 쉽게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굳이 그 모든 세세한 부분까지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외적인 사례들이 흥미롭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런 모든 예외까지 전부 다 중요하게 여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