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공간의 불평등
1811년 미국 뉴욕에서는 도시 계획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계획이라고 불리는 커미셔너 플랜(Commissioners’ Plan)이 실행된다. 커미셔너 플랜은 맨해튼 북쪽의 휴스턴 거리를 기준으로, 북쪽 지역을 격자 형태의 그리드(grid)로 조직하는 것이었다. 당시 이 지역에는 미국으로 온 이민자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커미셔너 플랜은 합리성에만 의존해 도시의 정체성을 없앤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뉴욕을 런던에 버금가는 대도시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커미셔너 플랜을 통해 맨해튼의 필지가 같은 규격으로 분리되면서 자본가들의 토지 거래가 원활해졌기 때문이다. 토지 거래가 증가하면서 맨해튼은 충분한 세수를 확보할 수 있었다.
토지를 사유화해 세수를 늘리는 계획은 도시 경제학의 기본이 되는 개념이다. 많은 도시가 토지 거래를 통해 발전했다. 19세기 뉴욕이나 파리가 대대적으로 필지를 재정비한 이유도 새로운 자본가 계층이 토지를 쉽게 소유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서울에 있는 다양한 형태의 광장은 엄연히 따지고 보면 사유화할 수 없는 필지에 생긴 공간들이다. 현행 국토법상 도로와 필지는 구분되어 있다. 광화문 광장이나 서울시청 광장은 자동차 통행이 우선시되던 시절에는 도로였지만, 보행자가 도시 공간의 중심이 되면서 성격을 바꿨다. 개인 필지를 공공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공간을 다른 형태로 바꾸어 쓰는 것은 사회주의 도시 모델에서 말하는 도시의 공공을 위한 공간과는 차이가 있다.
레나테 바닉-슈바이처(Renate Banik-Schweitzer)는 저서 《공업 도시 빈(Industriestadt Wien)》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사회 경제 시스템이 도시라는 물리적 공간을 바꿀 수 있다고 서술했다. 자본주의 도시에서 사유지는 중요한 세금 창출원이기 때문에 최대한 늘리는 것이 유리하다. 이로 인해 도시 내에 녹지나 공공 공간을 만드는 것에는 인색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 도시는 세금을 바탕으로 하는 도시가 아니기에 적극적으로 공공 공간이나 녹지 공간을 조성할 수 있다. 그의 말처럼 일반적인 자본주의 도시에서는 녹지 공간을 조성할 때 경제 논리가 개입한다. 도시 재생의 성공적인 사례로 알려진 뉴욕의 하이라인 프로젝트High Line Project[1]는 주변 지역의 지가가 올라가고, 이를 통해 세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시행될 수 있었다. 자본주의 도시가 경제 논리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한 공공 공간을 만들기란 근본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런던이나 파리 같은 도시에도 광장이라는 상징 공간이 있지만 대부분 중세 왕권 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자본이라는 개념이 확립된 산업화 시기 이후로는 상징 공간을 만드는 것이 어려웠다.
사회주의 도시에서는 녹지 공간을 만들 때 주변 지역의 지가가 얼마나 오를 것인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이들이 녹지를 만드는 이유는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다. 대도시를 지양하고 도시의 규모를 일정 범위 안으로 제한하고자 녹지를 만든다. 이들에게 최우선 가치는 무분별한 도시 성장을 억제하고, 노동자에게 레저와 휴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서울은 도시가 무한히 커지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 1970년대 그린벨트를 설정했다. 그린벨트는 지정할 때부터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됐지만, 서울의 확장을 억제하는 데는 어느 정도 기여했다. 하지만 그린벨트 정책 역시 사회주의 도시의 녹지 공간과는 거리가 있다. 사회주의 도시는 도시를 다핵화하고, 각 영역 사이에 녹지를 만들어 개별 지역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지는 것을 막았다. 반면에 서울은 행정 구역이 커지는 것은 막았지만, 도시 내의 각 영역이 서로를 침범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서울이 최근 도시 내 공원의 비율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계는 있다. 대부분은 녹지로 지정할 수 있는 영역에 공원을 만드는 것이지, 녹지 공간이 필요한 지역을 찾아 개발하지는 않는다. 용산 기지의 사례만 보아도 그렇다. 미군이 떠난 자리에 시민을 위한 녹지 공원이 생긴다는 것은 반길 일이지만, 해당 지역에 그 정도 규모의 공원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공원화에 착수한 성수동의 샘표 공장 부지도 마찬가지다. 법적으로 공원화할 수 있는 영역이 있기에 녹지를 만드는 것과, 공원이 필요한 지역을 발굴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처럼 특정 지역에 녹지 공원이 쏠리는 현상은 오히려 공간의 불평등만 낳을 수 있다.
생산이 밀려난 자리
사회주의 도시는 주거 단위 계획을 통해 도시의 불균형 현상을 해소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고안한 개념이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다. 사회주의 도시 모델 초기에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는 약 3000~5000세대로 구성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자생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3000세대 이상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마이크로 디스트릭트 안에 학교를 만들고 유지하려면 일정 숫자 이상의 학생들이 있어야 하고, 파출소나 소방서 등의 시설을 갖추기 위해서도 이들이 담당하는 지역 인구가 확보되어야 했다.
사회주의 도시 모델의 근간이 되는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는 한국인에게는 그다지 낯선 개념이 아니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를 떠올려 보면, 마이크로 디스트릭트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상상할 수 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주민센터와 파출소, 노인정 등의 관공서와 편의 시설이 위치해 있다. 경우에 따라서 단지 안에 중·고등학교가 있기도 하고 근린 상가 시설이 있어 약국, 서점, 마트 등이 들어갈 수 있다. 이런 아파트는 단지 안을 통과하는 차량을 엄격히 규제하고 단지 안의 공간은 보행자 위주로 구성한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 설계나 지구 단위 계획이 사회주의 도시 모델의 마이크로 디스트릭트와 닮은 이유는 클래런스 아서 페리(Clarence Arthur Perry)가 말한 근린주구 이론(neighborhood unit)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근린주구 이론의 핵심은 하나의 주거 단위가 초등학교 운영에 필요한 인구 규모를 가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주거 단위 안에서는 교통 체증을 유발하거나 거주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통과 교통이 발생하지 않도록 계획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주민 편의를 위해 적절한 위치에 공원을 만들고, 학교와 공공시설은 구역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봤다.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는 대규모 주택 공급을 목표로 나온 모델이라는 점에서도 한국의 아파트 단지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20~1930년대지만, 실제로 적용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다.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공산권 도시들은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자생적인 주거 단위를 제공하고자 마이크로 디스트릭트 개념을 도입하면서 한국의 아파트처럼 획일적인 주거 양식을 대량으로 공급했다. 1970~1980년대 한국에 지어진 강남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상상하면 사회주의 도시의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사회주의 도시 모델이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를 통해 추구한 목표는 평등한 도시 공간이었다. 우리는 도시 공간의 불균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역세권에 사는 주민들은 다른 지역의 주민들보다 편리하게 대중교통 시설을 이용하고, 한강이 보이는 동네나 큰 공원 주변에 사는 이들은 자연 환경의 혜택을 더 많이 본다. 이런 장점은 주변 지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이 되고, 근처에 사는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갈수록 더 커진다. 누군가는 집 근처에 대형 마트 같은 상업 시설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하지만, 누군가는 그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먼 길을 운전해야 한다. 교육 환경이나 복지 시설에 대한 접근성도 지역마다 다르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를 동유럽 도시들의 중심부에 적용했다. 국가가 나서서 주거 공간을 공급하고 토지 이용 방식을 규제할 수 있었던 사회주의 도시에서는 혁신적인 도시 모델이 중심부에도 비교적 쉽게 적용됐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도농 격차를 줄이고 주거 환경을 저밀도로 구성하는 것이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교외 지역이 발달하기 어려웠다. 교외 지역의 발달은 주택과 자가용을 소유하고 있는 중산층 모델이 있는 자본주의 도시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개인 주택이나 자가용 소유가 철저히 제한된 사회주의 도시에서는 교외라는 개념이 생기지 않았고, 마이크로 디스트릭트가 도시를 구성하는 주거 단위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와 마이크로 디스트릭트의 가장 큰 차이는 단지 내 생산 시설의 유무다.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는 코뮌이라는 개념을 근간으로 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하나의 코뮌을 형성하는 요소는 노동과 생산이다. 공동 육아를 위한 탁아 시설, 공동 취사가 가능한 부엌이 들어선다. 이런 개념이 확장되면 공동 노동과 공동 생산이 가능한 시설도 단지 내에 도입된다. 주거 단지의 특성상 대규모 공장보다는 가내 수공업 단위의 생산 시설을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주의 도시의 중요한 과제는 도시 안에서 노동과 생산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많은 도시들이 지역 안에 여러 개의 공장을 세우거나, 하나의 단지 안으로 통합할 수 있는 공장을 여러 도시에 분산시켜 배치하는 계획을 세웠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생산 시설의 분배는 국토의 균형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개별 도시 안에서는 마이크로 디스트릭트가 지역 간의 불균형을 최소화하는 방법이었다. 단순히 노동자의 생활 편의를 중시해서는 아니었다. 우리는 주거와 노동을 분리해서 생각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모든 국민이 노동을 통해 공동체에 소속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노동이라는 행위는 일상적인 삶과 구분되지 않았다.
마오쩌둥(毛澤東)은 “도시는 소비의 공간이 아니라 생산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며 생산 영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육체적인 노동만을 진정한 의미의 노동으로 보고, 교수나 학자 등 지식 노동 계층도 일정 기간 동안은 육체노동을 완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회주의 도시에서 노동자의 공간인 생산 시설은 도시의 핵심에 배치돼야 했다.
당시에도 도시에서는 생산 영역이 밀려나고 단순 소비 기능이 부각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도시에서 공장이 빠져나가는 것은 단순히 빈 공간이 생기는 것 이상이다. 도시 내에서 노동자 계층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서울에 살면서 전자 기업의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교사나 의사, 샐러리맨, 금융 업계 종사자 등 다른 직군 종사자를 만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수많은 가정에서 전자 기업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데도 말이다. 생산 시설의 유무가 공동체 구성원의 성격을 바꾸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는 생산 기지가 있었다. 산업화의 전초 기지였던 구로 공단은 물론, 의류 산업을 필두로 하는 동대문 패션 공장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산업이 쇠퇴하거나 사라지면서 노동자들은 설 곳을 잃었다. 문래동이나 성수동과 같은 준공업 지역의 사정도 비슷하다. 소규모 공장들이 터전을 옮기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또 하나의 계층 갈등이 생기는 셈이다. 생산 공장이 사라진 중심부에는 엔터테인먼트와 패션 등 대중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산업들이 자리 잡는다. 대규모 공장이 집중적으로 들어선 공단 도시는 서울 같은 대도시와 소득은 물론 삶의 질에서도 격차가 벌어진다.
생산 시설의 이전은 물리적 공간의 이전이 아니라 노동 계층의 이전이라는 점에서 계층 간의 사회적, 공간적 단절을 불러온다. 모든 계층이 어우러질 수 없는, 특정 계층을 위한 도시는 진정한 의미에서 건강한 도시라고 부르기 어렵다. 결과적으로는 구성원 전체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증가한다. 우리가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1만 원이 되지 않는 가격에 햄버거를 사 먹을 수 있는 것은 최저 임금을 받으며 햄버거를 만들고, 매장 청소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도시 내에서 거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도시는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다. 최저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도시 밖으로 밀려나면, 도시에 사는 모두가 햄버거를 먹기 위해 매우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도시 생산 주거
현대 도시에서 주거와 생산은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주거와 생산은 도시를 살아 있게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도시는 주거와 생산이 공존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산업화 시기에는 도시에서 생산 영역이 이탈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일률적인 대량 생산보다는 소비자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대량 맞춤 생산(mass customization)의 시대다. 대량 생산 시대에는 하나의 디자인, 하나의 기능을 가진 제품을 수십만 개 생산했고, 소비자는 거부감 없이 이런 제품을 소비했다. 하지만 이제는 대량 맞춤 생산을 통해 소비자 취향을 반영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대량 생산의 종말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생산 시설의 개념도 바꾸어 놓았다.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똑같은 제품이 수만 개씩 만들어져 나오는 모습은 이제 보기 어렵다. 생산 시설이 커다란 규모 때문에 도시에서 밀려날 필요도 없다. 이제는 소규모 공장에서도 우리가 필요로 하는 생산품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이런 변화는 메이커 혁명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대량 생산을 추구했던 산업화 시대에는 옷 만드는 공장이나 그릇을 만드는 공장은 있었어도, 만드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대량 생산이 산업을 주도하는 시대가 끝나면서 만드는 사람들이 관심을 받고 있다. 미국 로체스터(Rochester) 공과대학 연구원 출신인 존 슐(Jon Schull)은 2013년 이네이블(e-NABLE)이란 기업을 설립해 3D 프린터로 만든 의수를 40여 개 국가에 수출하고 있다. 한국의 스타트업 중에도 비슷한 곳이 있다. 만드로(Mand.ro) 주식회사는 경기도 부천에서 서울의 을지로 세운상가에 있는 메이커스 큐브로 사무실을 옮겼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커스텀 제품을 생산하는 일이 가능한 시대다.
소형 제품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량 생산의 대표 격인 자동차도 공정을 바꿀 가능성이 충분하다. 미국에 있는 로컬 모터스(Local Motors)라는 기업은 식료품 마트 규모의 작은 공장에서 3D 프린팅 기술로 자동차를 제작한다. 주문 생산만 받기 때문에 대량 생산에 필요한 대규모 시설이 필요 없다. 오픈 소스(open source)[2]를 이용해 자동차를 제작하는 로컬 모터스는 최근 자율 주행 전기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연 기관을 생산하지 않으니 환경 오염을 일으킬 문제도 없고, 대형 마트보다도 작은 규모의 공간만 있으면 제조 기업으로 활동할 수 있다. 앞으로는 이런 형태의 공장이 도시 내에 들어설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IT 전문지 《와이어드(Wired)》 편집장이자, 로봇 공학 기업 인 3D 로보틱스(Robotics) 창립자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은 저서 《메이커스(Makers)》에서 기술 발달과 플랫폼의 변화로 생겨난 메이커 문화에 대해 설명했다. 과거에는 시장이나 백화점이 유일한 소비의 플랫폼이었지만 더 이상 이런 방식의 구매 패턴이 소비 시장을 지배하지 않는다. 소비자는 직접 매장에 가서 물건을 사는 것보다 인터넷을 통해 구매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로 인해 미국의 서점 체인 보더스(Borders)와 장난감 유통업체 토이저러스(Toys R Us), 스포츠 용품 유통업체 스포츠 오소리티(Sports Authority) 등이 지난 10년 동안 사업을 접거나 대폭 축소했다. 반면 온라인 유통 기업인 아마존(Amazon)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다.
메이커 혁명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더 확대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제품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홍보하고 소비자에게 직접 구매 신청을 받아 판매한다. 그들은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기 위해 대단한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집에서 작업을 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명이 공유하는 작은 공방을 이용하기도 한다.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기 때문에 맞춤 제작이 가능하며, 물건 판매를 위한 전시장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
건축 역사가이자 비평가인 니나 래파포트(Nina Rapaport)는 그의 저서 《수직 도시 공장(Vertical Urban Factory)》에서 이런 형태의 산업을 신가내수공업(neo-cottage industry)이라고 불렀다. 가내 수공업이라고 하면 산업혁명 이전의 전근대적인 시스템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좁은 집에서 여러 명이 둘러앉아 일하는 형태의 가내 수공업은 산업화 시대에도 지속됐던 것으로, 기술보다는 노동력이 중요한 일이다. 반복 작업은 정교한 기술이 없는 조건에서 대량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래파포트가 말하는 신가내수공업은 다르다. 기술 없이 긴 시간 동안 노동력을 투입해야 하는 대량 생산 방식과는 다르다. 맞춤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대량 생산 제품보다 더 높은 부가 가치를 만들어 낸다. 유통과 판매,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어서 기존의 맞춤형 제품보다 가격 경쟁력도 높다. 신가내수공업의 발달은 앞으로 주거와 생산이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생산 시설이 도시 밖으로 퇴출당하면서 쫓겨나야 했던 생산 계층은 도시로부터 단절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생산 기능이 사라진 도시가 소비의 도시로 전락하면서 지역 간 불균형이 문제되기 시작했고, 생산 계층과 소비 계층의 갈등 역시 깊어졌다. 도시 내 생산 시설의 복귀, 주거 공간과의 결합은 지역 순환 경제라는 새로운 자생적 모델을 제시한다.
그동안 도시는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구매력을 높이려 했다.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한 도시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글로벌 금융 기업을 유치했다고 가정해 보자. 직간접적으로 일자리가 창출되고, 도시의 경쟁력도 한동안 오를 것이다. 하지만 10년 후에 이 기업이 다른 도시로 이전하면 어떻게 될까. 누구도 기업의 이전을 막을 수는 없다. 10년 전에 이 도시가 글로벌 금융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제공했던 혜택들을 이제 다른 도시에서 제공하겠다고 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기존의 도시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다.
결국 도시의 발달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기업 유치나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자생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일이다. 지역 순환 경제를 만드는 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지역 기업을 성장시키고, 이를 통해 그 지역의 주민들이 혜택을 누리는 구조는 외부 요소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생력이 강한 형태다.
도시 생산 주거도 마찬가지다. 도시 생산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인위적으로 대규모 생산 시설을 도입하는 것과 다른 개념이다. 오히려 해당 지역에서 발전시킬 수 있고, 지역의 특색과 맞물려 있는 생산 업종을 새로운 기술과 플랫폼을 통해 성장시킨다는 의미다.
지역 순환 경제 모델 아래서는 지역에서 생산된 물건이 지역에서 소비된다. 서구권에서는 이미 여러 도시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역에서 생산된 계란, 우유, 채소, 햄 등의 식재료를 판매하는 마트나, 반경 몇 킬로미터 안에서 재배되는 재료로만 요리하는 식당이 주목을 받고 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료품을 소비함으로써, 소비자는 해당 지역의 소상공인과 하나의 경제 체인으로 엮이고 상생할 수 있다.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믿을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나는 셈이다. 도시 생산 주거는 지역 순환 경제를 더 활발히 만들 수 있다. 지역 순환 경제에 대한 논의가 식료품 공급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면, 도시 생산 주거는 지역 순환 경제의 범위를 생활용품을 비롯한 지역의 특산품까지 확대시킨다.
도시 생산 주거가 활발하게 작동할 경우 본업은 서비스업이지만, 퇴근 후에는 집에서 강아지 용품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다. 평일에는 대기업 사원으로 일하다가, 주말에는 지역의 명물인 수제 맥주를 만드는 소규모 양조장의 대표가 될 수도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허물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가 된다는 의미다. 도시 생산 주거는 도시 안에서 생산의 기능을 회복하고, 생산 기능이 주거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는 모델이다.
도시 생산 주거는 기존에는 공존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생산과 주거의 융합을 말한다. 도시 생산은 이제 악취와 오염, 매연이 가득한 공장 지대가 생긴다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앞으로의 도시 생산은 일상의 영역에서 작동할 것이다. 따라서 도시 생산이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주거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를 묻는 것이 도시의 미래를 계획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산업혁명 시대에 생산과 주거는 분리된 영역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