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지는 스물 아홉 살 목수다. 대학 모델과에 진학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을 깨닫고 중퇴 후 유럽과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세계 각지로 여행을 떠났다. 한국에 돌아와 내일배움카드 직업 훈련 프로그램으로 목재 가구반 수업을 듣다 목공의 매력에 빠졌다. 목조 주택을 짓는 외장 목수로 시작해, 현재는 실내 인테리어를 담당하는 내장 목수로 일하고 있다. ‘팀 아홉시반’ 소속이다. #인스타그램
나무를 다듬어 공간을 만들다
본인을 한 문장으로 소개해 달라.
현장에서 일하는 스물아홉 살 목수 김민지다. 2019년 7월 목조 주택 빌더로 시작해 현재는 내장 목수로 일하고 있다.
목수치고는 젊은 편이다. 이전에도 비슷한 일을 했나.
대학에서 모델과를 전공했다. 학교를 통해서 일이 많이 들어와 프리랜서 개념으로 모델 일을 했다. 주로 패션을 전공한 학생들의 졸업 작품 쇼나 뮤직비디오, CF 등에 출연하는 것이었다.
사실 처음 봤을 때 장신(長身)에 압도 당했다. (웃음) 누군가는 선망하는 직업일 텐데 모델 일은 왜 그만뒀나.
옷 입는 것은 좋아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싶었다. 캐주얼한 옷을 좋아하는데, 나와 어울리지 않는 의상을 입었을 때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다. 옷을 표현하는 법 자체를 잘 모르겠더라. 다른 친구들은 나와 달리 동작이나 표정을 활용해 패션을 잘 살리는 것을 보며 내가 모델 일과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휴학하고 몇 년간 유럽과 동남아 등지를 여행 다녔다. 근로 비자를 취득해 파트타이머로 일도 했다. 그러다 몇 년 후 한국에 돌아와, 취미 삼아 내일배움카드 직업 훈련으로 가구 만들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모델과 목공, 완전히 다른 분야인데 관련 지식이 없어도 가능한 일이었나.
처음 수업을 등록할 때 전공은 무관하다고 안내를 받았다. 실제로 수강생 전원이 비전공자였다. 첫 한 달은 계속 디자인 프로그램만 만졌다. 건축 도면을 만드는 캐드와 공간 내부를 디자인하는 3D 맥스를 배우고 어도비 포토샵과 일러스트 다루는 법도 익혔다. 처음 나무를 만져 본 것은 등록 후 한 달이 지나서였다. 나무끼리 폼(form)을 만들어 직각 짜맞춤을 만드는데, 그 단순함 속에서도 깔끔한 결과물이 나오면 뿌듯했다.
취미반으로 시작한 케이스인데 어떻게 업으로 삼을 결심을 했는지 궁금하다.
학원을 다니며 스스로 소질이 있다고 느꼈다. 전체 수강생 중 1등을 할 정도였고 선생님들도 잘한다고 칭찬해 주시니 자신감이 더 붙었던 것 같다. 문제는 실제로 취업을 하기까지였다. 사업자 등록을 하려는 게 아니라면 자격증은 불필요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공부보다 취업을 우선순위로 뒀으나 막상 여자는 잘 뽑지 않았다. 무거운 자재를 운반하는 등 물리적인 힘을 요하는 일이 많기 때문인 듯하다.
꼭 목수가 아니라도 건설 현장에선 여성을 잘 뽑지 않는 공정들이 많다. 어떻게 일을 시작할 수 있었나?
인터넷에 ‘여자 목수’를 검색하다 목조 주택을 짓는 한 목수분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발견했다. ‘여자 목수를 키워 보고 싶다’는 글을 읽고 연락 드렸다. 어쩌면 운이 좋았다. 그분에게서 현장 일을 배우며 목조 주택 빌더(builder)로 일을 시작했다.
빌더는 어떤 일을 하나?
주택의 뼈대를 세우는 역할이다. 두껍고 무거운 구조재를 사용해 건물 전체의 하중을 견디는 구조물을 주로 만들었다.
손수 만든 주택이 결과물로 나오면 애정이 무척 클 것 같다. 누군가 실제로 몸을 담고 살아가는 공간이 되지 않나.
물론 애정이 가지만 개인적으로는 주거 공간보다 가게 건축물에 대한 애정이 더 크다. 가게를 오픈하려는 사장님들로부터 목수를 찾는다는 연락이 종종 온다. 본인이 셀프 인테리어를 하면서 함께 매장 오픈 준비할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와인 바, 이자카야, 카페, 책방 등 다양한 공간을 작업했지만 그중에서도 한 이자카야 사장님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처음 만드는 자신만의 공간인 만큼 잘 꾸며 보겠다는 사장님의 진심이 보였다. 그런 경우 목수들도 더 열심히 하게 된다.
빌더로 일하며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
특정 작업이 기억에 남는다기보단 높은 구조물 위에 올라가 풍경을 감상하며 목자재를 만지는 것이 좋았다. 빌더 초반엔 여름 별장이나 주말 주택을 주로 작업했는데, 그런 곳들은 보통 조용한 시골에 있다. 산 중턱에 위치한 터에 목조 프레임을 세우고, 높이 5미터 정도 되는 지붕 위로 올라가 작업하곤 했다. 경치가 너무 좋아서 하늘이나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넋 놓고 앉아 있던 적도 많다.
외부 현장에서 일하는 만큼 날씨 영향을 받지는 않나.
그게 약간 단점이다. 한창 작업하다가 하늘이 흐릿흐릿해지면 주택 위로 천막을 높게 쳐놓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을 먼저 하는 편이다. 장마철에는 보통 작업을 중단했다가, 비가 멈춘 틈을 타 빠르게 목재에 방수 처리를 한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눈송이들을 입김으로 솔솔 불어 내면서 작업하기도 한다.
외장 목수에서 내장 목수로
현재는 내장 목수로 일을 하고 있다. 외장 목수와 내장 목수의 차이는 무엇인가?
외장 목수, 즉 빌더는 집의 뼈대를 만드는 반면 내장 목수는 집 안을 목재로 꾸미는 모든 작업을 담당한다. 내부 인테리어를 떠올리면 쉽다. 도배된 벽과 벽 사이에 몰딩을 하고, 없던 벽을 만들고, 공간에 딱 들어맞는 목조 가구를 짜맞추기도 한다. 쓰는 재료도 다르다. 빌더일 땐 90밀리미터나 140밀리미터의 두껍고 무거운 구조재를 사용했던 반면 내장 목수가 되면서는 30밀리미터 두께의 훨씬 얇은 각재로 벽을 세우는 법을 배웠다.
같은 목수라도 하는 일이 아예 다른데, 적응할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
새로운 규격에 적응하는 것 외에 특별히 어려운 건 없었다. 빌더에 비해 내장 목수는 다양한 작업들을 하는 편인데, 나는 내가 지금 하는 내장 목수 일이 더 잘 맞아서 빌더로 돌아갈 것 같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