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와 국왕의 차이
2014년 9월 따뜻했던 어느 날, 벤틀리(Bentley) 차량에 타고 있던 찰스 왕세자와 콘월 공작부인(Duchess of Cornwall)
[19]은 체스터에 있는 공공 주택 단지에서 내렸다. 그들은 그날 아침에 런던의 노솔트(Notholt) 공군 기지에서부터 개인 제트기를 타고 이곳으로 날아왔다. 당시 차량의 뒷좌석에는 벤틀리 특유의 크림색 가죽 시트가 불편하게 느껴질 것을 대비하여 ‘부부용’ 쿠션 세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찰스 왕세자가 이날 체스터에 온 이유는 민생 시찰 때문이었다.
첫 번째 방문지는 레이취(Lache)라는 교외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였다. 찰스 왕세자는 이곳에 도착한 지 불과 몇 초 만에 세로 줄무늬 정장을 입거나 머리 장식을 꽂고 줄지어 서있는 고위 인사들에게 허스키한 바리톤의 목소리로 정신없이 인사말을 건넸다. 많이 긴장했던 사람들에게도 찰스 왕세자는 느긋해 보였다. 그의 피부는 건강하게 그을려 있었고, 착용한 정장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어쩐지 경계하면서도 동시에 무심한 듯 보였던 그는 노련하게 환영 인파 속에서 사람들을 골라내어 그들 각자와 잠깐씩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틈틈이 유머를 구사했고, 특유의 중독성 있는 웃음도 자주 터트렸다.
이곳에서 한 것처럼 매일 15분 안에 20명을 상대로 간단한 대화를 해야 한다면 분명 찰스 왕세자는 굉장히 지루한 대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찰스: “이 구근(球根, 화초의 뿌리)은 어떤 건가요?”
교사: “봄꽃 구근입니다.”
찰스: “오, 잘 가꾸었군요.”
(그가 좀처럼 그런 모습을 보이는 일은 없지만) 만약 그가 지루함을 느꼈다 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학교에는 그가 이곳을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것을 기념하는 명판이 붙어 있었다. 거기에는 1972년이라고 새겨져 있었으니, 실로 오랜만의 재방문이었다.
학교의 정문 밖에서 필자는 지역 주민들에게 찰스의 왕위 승계에 대해 물어봤다. 그러자 우리는 순식간에 최근의 기억에서 영국 왕실에 최악의 시기가 닥쳤던 1990년대로 소환됐다. 지방 정부 공무원으로 일하다 은퇴한 74세의 존 스코필드(John Schofield)는 가스 수리 기사로 일하는 이웃인 47세의 브라이언 윌리엄스(Bryan Williams)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왕세자의 차량 행렬이 지나갔다. 스코필드는 왕실 가족들을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저분은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이혼을 했기 때문에 왕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윌리엄스도 동의했다. “다음 왕위는 한 세대를 건너서 내려가야 합니다.” 그의 말이다. “제 생각에 찰스 왕세자는 너무 늙었고, 어머니의 영향력 아래에서 너무 오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아주 높이 평가했고, 그녀가 대변하던 모든 덕목은 그녀의 아들들에게 있습니다.”
리서치 기업인 컴레스(ComRes)가 2014년 6월에 실시한 인기도 조사에서는, 만약 찰스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군주제에 대한 대중적인 호감도가 현저하게 하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찰스에 대한지지 여론은 43퍼센트였던 반면에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지지 여론은 63퍼센트였다. 필자가 대화해 본 한 전직 장관은 사람들이 그에게 비호감을 갖는 이유 중 가장 커다란 요소가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관계 때문이라는 대중적인 견해에 동의했다.
“군주제를 진심으로 신경 쓰는 대도시권 바깥의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때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상당히 분개하고 있습니다.” 《타임(Time)》의 선임 에디터인 캐서린 메이어(Catherine Mayer)의 말이다. 그녀가 쓴 찰스 왕세자의 전기
[20]는 2015년에 출간될 예정이다. “그들은 찰스 왕세자가 냉소적이고 노련하며, 훨씬 더 어린 신부와 결혼했다가
[21] 그녀에게 못되게 대했던 늙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찰스 왕세자는 자신이 대중 사회의 정치적인 측면에 관여해야 하는 공공의 사명을 갖고 있다고 강하게 믿고 있다. 그의 우군들은 정부 측에 관여할 수 있는 그의 권리가 매년 수백 회의 공공 행사 참여를 통해 만들어진 영국 국민과의 심도 깊은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왕세자가 “수많은 사안에 대하여 각료들에게 여론을 전달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위치에 있다.”라고 말한다.
2010년에 그는 카타르 왕실이 소유한 런던 한복판의 첼시 병영(Chelsea Barracks) 부지에 대하여 유명 건축가인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가 추진하던 30억 파운드 규모의 현대식 재개발 프로젝트를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카타르 총리에게 이 프로젝트는 런던을 “파괴”하는 또 다른 유형의 “브루탈리즘(brutalism)
[22]” 개발이라며 비판했던 것이다. 당시 찰스 왕세자의 개인 비서였던 마이클 피트 경(Sir Michael Peat)은 “쉽게 들을 수 없는 보통 사람들의 의견에 어느 정도 관심을 기울이게 만드는 것이 그의 의무”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누구보다도 건축가인 리처드 로저스는 찰스 왕세자와 의견을 달리했다. 이와 관련한 고등 법원 사건을 담당했던 제프리 보스(Geoffrey Vos) 판사는 찰스 왕세자의 개입이 “예상치 못했으며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과연 그가 어디까지 목소리를 내야 할까? 2014년 5월에 캐나다 순방에서 그는 당시 고조되던 우크라이나 위기
[23]에 대해서 성토했다. 그는 나치를 피해 건너온 78세의 유대계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지금 히틀러와 똑같은 일을 벌이려 하고 있습니다.” 푸틴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며, “국왕으로서 할 수 있는 발언이 아니”라고 했다. 영국 외무부의 외교관들은 아연실색했을지도 모르지만, 리서치 기업인 유가브(YouGov)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51퍼센트의 영국인들이 해당 발언을 적절하다고 말했으며, 이를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비율은 36퍼센트에 불과했다.
찰스 왕세자를 잘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그가 국왕으로서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신중한 스타일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어느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대중들이 지난 40년 동안 봐온 그 모습이 바로 찰스 왕세자의 본모습입니다.” 오랫동안 찰스 왕세자를 알고 지내온 또 다른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헌신이라는 자신의 믿음에 충실할 것입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기틀을 다져놓은 군주의 모습에 맞춰서 자신을 완전히 개조하기보다는, 자신의 진심 어린 개입을 꾸준히 시도하는 전략을 취할 것입니다. 비록 그러기 위해서는 그러한 개입이 군주제를 손상시키지 않는 것인지 그 내용과 어조를 일일이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새로운 개입 원칙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한다. “가령 그의 발언은 다음과 같은 테스트를 통과해야 할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었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이상해 보일까? 혹은 이 발언이 위험해 보일까?’”
그의 우군들은 우려할 만한 이유가 없다며 안심시킨다. 우선, 그들은 찰스 왕세자와 그의 직원들이 이미 정부와 긴밀하게 협업하는 관계를 맺고 있으며, 클래런스 하우스의 팀원들은 찰스 왕세자가 정부의 정책에 관해 발언할 때는 일반적으로 장관 측의 보좌관들과 미리 그 내용을 공유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잘 처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영국 남부의 범람에 대한 정부의 늦은 대응에 관련해 2014년 2월에 찰스 왕세자가 “비극”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24] 화이트홀이 승인했을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
또한 그들은 찰스 왕세자가 국왕이 되면 ‘종횡무진’할 만한 여유 시간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영국 군주의 일정은 매일 국정 관련 문서가 담겨 전달되는 레드박스(red box) 확인과 각종 수여식, 그리고 새로 취임하고 떠나가는 수많은 외교관 및 성직자와의 공식 회의 등으로 이미 빼곡하게 짜여 있다. 왕세자가 활동적인 성향임을 보여 주는 아주 많은 증거를 보면, 그가 하루 종일 이런 정적인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이 여전히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를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어느 관계자는 그러한 우려를 일축한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거나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개인적인 자리가 되면 찰스 왕세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잘 모른다며 어려움을 토로할 때가 있습니다. 국가의 수장이 된다는 것이 (왕자로 지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사안이라는 사실을 자신이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사람들이 생각한다는 겁니다.”
어느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헌법 체계 안에서 군주의 역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정치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 군주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세력이 분열돼도 괜찮습니다. 그들 각자가 국가를 대표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5년 주기로 생각하지만, 군주는 장기적으로 생각합니다.”
환경부 장관이었던 마이클 미처는 찰스 왕세자가 국왕이 되면 정치인들에게 영향을 주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처는 그러한 과정이 더욱 투명해야 하며, 국민들은 “국왕이 어떤 사안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담당 장관에게 편지를 썼는지 그 여부에 대하여 알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찰스 왕세자가 그런 행위들을 모두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국왕으로 즉위하게 되면, 평소의 습관들을 버려야 한다는 강력한 조언들을 받게 될 것입니다.” 화이트홀의 최고위 관료였던 어떤 사람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