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하루
2화

비상한 전략을 그리는 몽상가를 위한 하루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나와는 상관 없는 것 같은 지구 반대편의 일도 몽상가에겐 흥미롭습니다. 세계를 하나의 체스판처럼 상상하고 두 수, 세 수 앞을 내다보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지요. 뛰어난 전략만큼 중요한 것은 난전을 만드는 비상한 수입니다. 이적수(利敵手)가 될지, 이적수(耳赤手)가 될지는 지켜봐야 겠죠?
“이러다 전쟁 나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 누구라도 해보셨을 겁니다. 지난 12월 26일 북한의 무인기가 우리나라 영공을 침입해 서울 상공을 날았고, 시민들은 같은 달 30일 국방부가 예고 없이 진행한 고체 추진 우주 발사체 시험 비행을 보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북의 도발도, 대북 강경파인 정부도 별로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전쟁이 정말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되는 이유는 국제 정세 때문입니다. 제2 차 세계 대전 이후 군사 충돌은 대부분 내전이었지만 기어이 세계를 뒤흔드는 규모의 국가 간 전쟁이 발생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넘어 세계는 평화와 협력에 대한 믿음을 잃어갑니다. 우리 안보와 직결되는 미중일의 상황은 어떨까요? 일본은 ‘전쟁 가능 국가’가 됐습니다. 미국과 군사 협력을 강화하게 됐습니다. 중국은 대만에 대한 무력 시위 강도를 높이며 야심을 드러냅니다. ‘전랑 외교’로 유명한 친강 중국 주미대사가 외교부 수장직에 오르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죠. 미국은 지난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의 과반을 차지했죠. 힘겹게 ‘트핵관’이 된 케빈 매카시 하원 의장은 대중국 강경파입니다. 새로 구성된 미 하원은 중국과의 전략 경쟁을 다룰 ‘중국 특별위원회’를 설치했습니다. 북저널리즘에서는 우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주변국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나라 밖의 일이지만 우리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흔들 수도 있는 일이기도 하죠. 북저널리즘의 국제 관계 콘텐츠를 흥미롭게 지켜 보신 분이라면 오늘 하루, 세계의 이런 저런 변화를 자유롭게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마치 외교관이나 정책 결정자처럼 세계를 큰 체스판 삼아서요. AI가 체스 플레이어를 가볍게 이기는 시대지만, 국제 관계만큼은 플레이할 수 없을 테니까요.

아침 ; 브레인 스토밍


1. 이국적인 아침을 위한 음악 ; Buena Vista Social Club, 〈Chan Chan〉
Buena Vista Social Club - Chan Chan ⓒWorld Circuit Records
체스판 앞에 앉는 일은 지도를 펼치는 일과 같습니다. 세계를 움직일 준비가 되었다면 커피와 함께 리드미컬한 월드 뮤직이 제격이죠.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의 대표곡 〈Chan Chan〉을 추천합니다. 남미풍의 기타 선율과 토속적인 퍼커션이 매력적인 곡입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쿠바의 전설적인 앙상블이죠.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도 있는데요, 쿠바의 저명한 기타리스트이자 제작자인 라이 쿠더(Ry Cooder)가 쿠바의 노장 뮤지션들을 섭외해 앨범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쿠바의 민중 정서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영화와 OST를 듣다 보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지 않아도 세계를 탐험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2. 전략적 감각을 깨우는 게임 ; Chess.com

체스나 장기, 두실 줄 아시나요? 오래전에 한 번쯤 해본 것 같기도 하고 가물가물한 분이 많죠. 초등학교 시절 제가 바둑부를 박차고 나와 대신 접한 것은 장기였습니다. 지금도 꽤 잘 두는데요, 반면 체스 실력은 영 형편없습니다. 국제 정치를 공부하며 외교가 장기나 체스와 같은 보드 게임 같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상대의 숨겨진 이익(interests)과 표면적 입장(position)을 간파해 나의 목적을 달성해야 하니까요. 체스닷컴(Chess.com)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글로벌 체스 사이트로 입문자부터 고수까지 난이도를 설정해 온라인에서 손쉽게 대국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 대결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봇과 한 번 대결해보는 건 어떨까요? 상대의 다음 움직임을 읽으면서도 나의 전략을 교묘하게 숨기는 게 핵심이죠. 상대가 옴짝달싹 못 하는 순간, 온라인 대국이지만 입으로 이 말을 외치게 될 겁니다. “체크 메이트(Checkmate).”

점심 ; 신용산 비밥


3. 몽상가를 위한 점심 ; 몽상가(夢想家), 평화공원(PEACEPARK)
  • 몽상가 ;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38가길 7-16
  • 평화공원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대로15길 9-15
이국적 노래와 체스 게임으로 몽상가의 하루를 열었다면 점심으로는 신용산의 맛집 두 곳을 추천합니다. 진정한 몽상가라면 그야말로 몽상가에 어울리는 화로구이집 ‘몽상가’에 들러보는 건 어떨까요? 토마토 베이스에 소고기와 대창, 각종 야채를 얹은 화양(花樣) 전골과 청어 알밥이 유명한 곳입니다. 아늑한 조명이 음식 맛을 돋워주는 곳이죠. 비건이라면 비건 푸드와 카페, 와인바가 합쳐진 ‘평화공원’을 추천합니다. 원래 몽가타(Mangata)라는 유명한 비건 카페였죠. 가지 라자냐와 템페 스테이크가 정말 맛있는 곳입니다. 커피와 와인을 곁들이기 좋은 음식들이 많아 비건이 아닌 분들이라도 비건 푸드에 푹 빠질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매력적인 스테인드 글라스와 이국적 분위기의 인테리어는 왠지 가벼운 단편 소설 한 권을 읽고 싶게 만듭니다. 평화공원은 산본에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4. 문명과 계급, 정치의 시작을 찾아서 ; 국립중앙박물관
합스부르크 왕가의 600년 수장고…세기의 명작을 만나다 ⓒKBS News
신용산 근처의 전시관 하면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아쉽게도 연휴에는 굵직한 전시가 없습니다. 대신 발걸음을 돌리면 멋진 곳이 있죠. 국립중앙박물관입니다. 세계 문명의 탄생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이죠. 지난 2022년 10월 25일부터는 상설 전시로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 빈미술사박물관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데요, 15~20세기까지 합스부르크 왕가가 수집한 르네상스, 바로크 시기의 대표 소장품을 소개합니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그야말로 국가 간 외교적 암투와 야합, 정치로 탄생했는데요, 빈미술사박물관의 소장품 96점을 만나보기 전에 국립중앙박물관 유튜브와 지식해적단이 제작한 유튜브 영상으로 배경 지식을 공부하고 가면 전시를 더 깊게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외규장각 의궤나 메소포타미아 문명 전시도 있으니 몽상가라면 꼭 한 번 들러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투키디데스(Thoukydidēs)가 그랬듯, “역사는 영원히 되풀이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요.

저녁 ; 몽상실전


5. 대전략 사이, 우리의 길은 무엇인가 ; 《롱 게임(The Long Game)》

다극화 시대, 우리는 한 발 앞서나가야 합니다. 주변국이 우리의 운명을 쥐고 흔들게 놔둬선 안 되겠죠. 그러려면 전통적 관점을 깨야 합니다. 특히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어떤 대전략을 구사하고 있는지, 정책 결정자들이 어떤 관점으로 세계를 보고 있는지 꿰뚫을 수 있어야 하죠. 체스 게임처럼 우리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선언적 구호보다는 물밑 작업이 효과적인 법입니다. 《롱 게임: 미국을 대체하려는 중국의 대전략》은 2022년 8월 5일 출간된 미중 관계의 최신작입니다. 현재 바이든 행정부의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중국 담당 국장으로 재직 중인 러쉬 도시(Rush Doshi)가 집필했습니다. 미국에서 그야말로 ‘중국통’으로 불리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무려 《한겨레》 전 베이징 특파원인 박민희 기자, 워싱턴 특파원인 황준범 기자가 공역했습니다. 국제 관계나 외교에 관심 있는 분들 사이에서는 필독서죠. 분량이 꽤 되지만 몽상가의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책입니다.

6. 외교는 실전이다 ; 〈아르고(Argo)〉
아르고 예고편 ⓒWarner Bros. Korea
책도 좋지만 좀 더 현장감 있는 경험을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영화가 제격이죠. 1979년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을 다룬 영화 〈아르고(Argo)〉는 어떨까요? 할리우드 배우 벤 애플렉(Ben Affleck)이 제작, 연출, 주연을 맡은 2012년도 영화입니다. 팔라비 왕조의 압제에 반대하며 일어난 이란 혁명 당시 미국 대사관 직원을 비롯한 미국인 50여 명이 이란에 인질로 억류되었던 실화를 기반으로 하는데요, 액션 장면으로 점철된 첩보 스릴러와는 다르게 치밀한 두뇌 게임과 작전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내용입니다. 해외 공관과 외교의 역할 등을 재미있게 알 수 있어 대학 시절 외교론 강의의 교수님이 추천해 준 영화이기도 한데요, 주인공은 인질들을 이란에서 몰래 구출하기 위해 가짜로 영화 제작을 기획하는 기상천외한 수를 씁니다. 일명 ‘캐네디언 케이퍼 작전(Operation Canadian Caper)’이죠. 2021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 〈모가디슈〉에서 〈아르고〉를 떠올린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연휴의 마무리로 흥미로운 첩보 작전을 상상해보는 것도 좋겠죠?
전략과 상상으로 가득한 몽상가의 하루, 어떤가요? 명석한 체스 플레이어처럼, 국가의 운명을 짊어진 외교관처럼, 유럽 전역을 호령했던 귀족이나 왕가의 일원처럼 세계의 일을 그려나가다 보면 스스로 발견하지 못한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죠. 새로운 도전자와 다음 대국을 이어나가고 싶다면 북저널리즘의 종이책 《중동 라이벌리즘》을 추천합니다.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중동의 이야기를 라이벌 구도로 쉽게 풀어낸 책입니다. 최근 사우디아라바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왕세자가 여기저기 투자를 단행하며 광폭 행보를 보이고, 이란은 ‘히잡 시위’가 반정부 시위로 번지며 국가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죠. 이스라엘에선 오랜 극우 정치인인 베냐민 네타냐후가 재집권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어려운 중동 문제, 구도부터 정확히 알아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겠죠? 하드 파워를 넘어 새롭게 도약하는 중동의 배경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현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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