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여유가 없는 1인 가구는 아파트가 아닌 빌라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자가가 아닌 월세 형태로 매년 주거지를 옮겨야 한다. 투룸이나 쓰리룸과 같이 방 하나를 더 꿈꾸는 것은 사치다. 청년 1인 가구의 평균 주거 사용 면적은 현저히 작으며 그마저 감소세를 보인다. 실제로 서울시 청년 1인 가구 가운데 37.2퍼센트가 최저 주거 기준에 못 미치는 곳에서 산다.
[4] 거주용 건물에 거주하는 비율은 24퍼센트에 불과하다. 이는 1인 가구의 주거 빈곤 원인에 또 다른 문제가 있음을 보여 준다.
1인 가구의 경제적 불안을 떠나, 주택 공급의 근본적인 문제 역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1인 가구가 주로 거주하는 공간은 4인 가구에 최적화된 공간을 나눈 것이다. 이미 설계된 주택은 축소되거나 부분 제거된 형태로 1인 가구에 제공된다. 쪼개진 공간에서 1인 가구는 4인 가구와 동일한 삶의 질을 누리기 어렵다. 모두에게 익숙한 거실-주방-침실의 구조는 다인 가구 중심의 공간 구획이다. 특히 거실은 가족 중심 설계의 핵심이다. 가족 구성원이 공유하며 교류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거실이 가장 좋은 곳, 중앙에 위치한다.
[5] 그리고 거실을 중심으로 주방-침실로 퍼져나가는 구조가 기본적인 설계다. 소형 평수에 거실-주방-침실 구조를 갖추기 위해서는 공간을 쪼갤 수밖에 없다. 그렇게 1인 가구의 생활 공간은 점점 작아진다.
가장 극단적인 예가 고시원이다. 고시원은 주방과 거실이 부분 제거된 채 침실만 공급되는 형태다. 침실마저 완전하지 않다. 가벽으로 타인의 주거 공간과 경계 지어졌을 뿐이다. 방음과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와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 1인 가구의 주거 공간은 4인 가구의 공간 구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임시방편식으로 공급된다. 1인 가구를 고려하지 않은 공간 설계는 1인 가구의 주거 문제를 고착화할 수밖에 없다.
제3의 공간
도시 설계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도시에는 1인 가구를 위한 제3의 공간이 없다. 제3의 공간이란 미국의 사회학자인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가 1999년 그의 저서 《제3의 장소(The great good place)》
[6]에서 말한 개념이다. 동네 주민들이 부담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친근하고 따뜻한 공간을 말한다. 공원, 서점, 카페, 체육 시설 등이 그 예다. 나아가 단순히 물리적으로 운동과 취식 등을 하며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공간들을 포함하기도 한다. 이런 공간을 흔히 ‘인프라’라고 부른다. 제3의 공간, 즉 인프라가 잘 갖춰진 주거 환경을 가진 곳일수록 사람들의 선호도는 올라가고 집값이 상승하기 마련이다. 반대로 말하면, 제3의 공간이 미비한 곳일수록 사람들의 선호도가 낮아 집값이 상대적으로 낮다. 자연스럽게 경제적 빈곤율이 높은 청년 1인 가구가 모여들게 된다.
실제로 1인 가구가 많이 거주하는 빌라 및 원룸촌을 상상해 보자. 좁은 골목 사이로 빌라와 연립 주택이 들어서 있고 그 틈은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빽빽하게 채우고 있다. 길 구석구석 잡다한 쓰레기들이 가득하다. 공원, 카페, 체육 시설과 같은 제3의 공간이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다. 제3의 공간 부재는 주거 환경 음지화로 이어지기 쉽다. 주거 환경의 음지화는 물리적인 질의 하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원과 커뮤니티 등 동네 주민들이 모여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의 장(場)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1인 가구에게는 거실도, 제3의 공간도 없다. 소통 공간의 부재는 1인 가구가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쉬운 구조로 이어진다.
4인 가구의 축소판이 아닌 1인 가구를 독립된 가구 형태로 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새로운 가구 형태에 맞는 새로운 주거 형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은 ‘따로 또 같이’라는 문법을 만들어 냈다. 이에 대한 반증으로 최근 공유 주택 중 하나인 셰어 하우스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기존의 공유 주거 형태인 하숙집을 넘어 셰어 하우스에서 발전된 ‘코리빙 하우스(co-living house)’라는 새로운 선택지도 등장했다.
‘따로 또 같이’의 문법
다인 가구에 맞춰 설계된 주택과 도시를 당장 바꿀 순 없다. 법과 제도도 빠르게 변하는 현실을 반영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주거의 개념을 바꿔 보는 건 어떨까. 이런 시도에서 나온 것이 바로 ‘공유 주거’다. 공유 주거의 역사는 18세기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럽 전역에서는 경제적 또는 종교적 이유로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코리빙의 모습과 가까운 형태는 1930년대의 스웨덴 코하우징 문화에서 비롯됐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도시 인구 과밀 현상이 나타났고 주택이 부족해지며 일종의 모여 사는 형태가 등장했다. 그리고 1970년대부터 덴마크와 스웨덴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국내에서는 2010년대 도시 밀집으로 인해 임대료가 급증했고, 공유 주거 개념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공유 주거가 등장하고 어원, 개념, 운영 방식 및 목적, 규모를 둘러싼 해석은 국가와 연구자마다 달랐다. 새로운 주거 형태는 급격히 발달했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에 있어 합의를 이룰 시간이 부족했다. 지금도 공유 주거 관련 용어들은 매우 다양하다. 코하우징(co-housing)
[7]과 셰어 하우스
[8], 코리빙 하우스 등이 그것이다. 용어에 따라 형태도 조금씩 다르다. 그중에서 우리는 코리빙 하우스에 주목했다. 개인 공간과 공용 공간(facility sharing)이 공존하는 개념이다. 개인 공간을 따로 두되 화장실, 주방, 체육 시설, 거실 등 생활에 필요한 편의 시설은 공유하는 것이다. 코리빙 하우스 거주자들은 보통 시간차를 두고 공용 공간을 이용한다.
코하우징과 코리빙 하우스가 구별되는 지점은 자발성이다. 코하우징은 이를테면 협동 주거 형태다. 하나의 주택에서 공간을 공유한다기보다 개별의 주택에서 별도의 공동 시설을 합의 하에 함께 쓰는 개념이다. 자발적으로 운영되는 코하우징과 다르게 코리빙 하우스의 모든 공간은 관리자가 거주자들의 의견을 수용해 운영한다. 관리자는 일반적으로 부동산 소유자와 계약을 맺고 거주지를 코리빙 시설로 전환한다. 공간이 준비되면, 마케팅 및 세입자 식별, 임대 징수, 부동산 유지 보수 및 관리, 지역 사회 행사 조직 등 시설의 라이프 사이클을 관리한다.
[9] 부동산 소유자와 세입자 모두의 의견을 조율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관리자의 역할 중 하나다.
코리빙 하우스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적 특징은 개인 공간과 공용 공간의 분리이다. 다음 페이지의 그림은 코리빙 하우스의 대표적인 공간 구조다. 세부적인 구조는 국내 코리빙 하우스 사례를 바탕으로 살펴보려 한다.
한국 실내디자인학회에 따르면 코리빙 하우스의 공용 공간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10] 거주자들이 소통하는 커뮤니티 공간, 취미 활동을 공유하는 여가 공간, 업무 및 개인 작업을 하는 작업 공간이다. 거주자들은 루프탑, 휴게실, 연회장, 라운지 등 커뮤니티 공간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유대 관계를 형성한다. 여가 활동 공간은 개인 혹은 팀 단위로 이용할 수 있는 라이브러리, 전시실, 취미실, 실내 운동장, 피티룸 등이다. 작업 공간은 팀 단위 작업이 가능한 미팅룸이나 코워킹스페이스, 그리고 개인 업무를 위한 비즈니스룸 등을 말한다.
코리빙 하우스의 공용 공간 분류
공간 구성 |
목적 |
형태 |
커뮤니티 공간 |
소통을 위한 공간 |
루프탑, 휴게실, 라운지, 펫플레잉, 펫 루프탑 |
여가 공간 |
취미 활동 공간 |
라이브러리, 전시실, 취미실, 피티룸, 실내 운동장 |
작업 공간 |
업무 및 개인 작업 공간 |
코워킹스페이스, 미팅룸, 비즈니스룸 |
* 한국 실내디자인학회,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