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크리에이티브 워크숍
1인 가구의 모든 문제를 코리빙 하우스가 완벽히 해결할 수는 없다. 다만 차세대 주거 솔루션으로서의 가능성에 더 집중하면 기술이 보완할 수 있는 여지가 보인다. 혼자 잘 살기 연구소는 코리빙 하우스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허물기 위해 코리빙 하우스의 한계를 극복하고 장점을 살리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바로 ‘스피커 그리드’, ‘프리핸션’, ‘공간텍스트’ 프로젝트다. 이를 통해 기술에 대한 실험뿐 아니라 코리빙 하우스 속 1인 가구를 다양한 각도로 조명하고자 했다.
혼자 잘 살기 연구소는 다양한 혼삶 중에서도 비자발적으로 시작되고 경제적 여유가 부족한 혼삶에 각별한 관심이 있다. 우리가 자리 잡았던 신림동도 지역 특성상 학업 혹은 취업 등의 이유로 인해 비자발적으로 혼삶이 된 1인 가구가 포진한 동네다. 다른 혼삶에 비해 애로 사항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했다. IT 기술이 그 해법이 되려면 문제 지점에 대한 구체적 접근이 필요했다. 쉐어원 신림에서 코크리에이티브 워크숍(co-creative workshop)을 열게 된 이유다.
코크리에이티브 워크숍은 문제 해결을 위해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의견을 주고받아 대안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쉐어원 신림에 거주 중인 여성 1인 가구와 코리빙 하우스 운영 경험이 있는 매니저, 그리고 자취 경력이 있는 혼자 잘 살기 연구소 연구원들이 모두 참여했다. 우리는 워크숍을 통해 입주민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혼삶의 어려움을 워크숍 참여자와 나누고,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애로 사항을 포착하길 바랐다.
입주민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 듣는 것은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 숫자와 데이터, 연구 자료를 토대로 결괏값을 접하는 것보다 직접 대면하여 구체적 이야기를 들어야 더 적합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쉐어원 신림은 사회 주택인 만큼 실제 경제적 지원이 긴요한 1인 가구가 대부분이었다. 연결이라는 기술의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우리는 이들이 어떤 상황에서 외로움을 느꼈는지, 누군가 있었으면 했던 순간은 없는지를 위주로 이야기를 나눴다.
입주민이 맞닥뜨리는 상황은 다양했다. 혼자 이사를 하는 것부터 공용 공간 사용 시 발생하는 다양한 불편함, 개인 공간에서 손이 부족해 처리하지 못하는 일들, 그뿐만 아니라 외부인 침입이나 배달 음식 수령, 수리 기사 방문 등 예상에 없던 순간 등이었다. 쉐어원 신림 이전부터 혼삶 경험이 있는 입주민들도 더러 있었는데, 여기서 경험의 차이도 포착됐다. 누군가에게 여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 누군가에겐 오랜 시행착오 끝에 대수롭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갑작스레 벌레가 나오거나 조명이 망가졌을 때, 혼삶 경력에 따라 경험하는 심리적 압박이 달랐다.
입주민들이 도움을 필요로 했던 순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혼자 할 수 없어 실질적으로 타인의 도움이 필요했던 순간’과 ‘혼자 할 수 있지만 누군가 같이 하는 것을 희망하는 순간’이었다. 전자는 대표적으로 물리적인 도움이나 타인의 지식이 필요한 순간이다. 유리병 뚜껑이 열리지 않을 때, 도어락이 망가졌을 때, 가구 조립을 할 때 등이 대표적이다. 작고 개별적인 문제 같지만 다인 가구와 같이 다른 구성원을 상정한 삶일 때나 그렇다. 가뜩이나 학업이나 생업으로 바쁘고 해결해야 할 가사가 많은 1인 가구에게 이같이 작은 문제가 중첩되는 것은 꽤 치명적이다.
후자는 주로 타인과 함께할 때 더 쾌적하거나 감정적으로 고양 혹은 안심되는 순간들이다. 피자나 치킨 같은 다인분 배달 음식을 시킬 때나 저녁에 집 앞을 산책하고 싶을 때 누군가와 함께하고픈 상황이 대부분이었다. 수리 기사나 부동산 중개인 등 외부인이 방문하는 상황도 혼자일 때는 괜히 더 부담스럽다. 내 편이 되어줄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더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심리적 위안이 된다.
레프 톨스토이는 자신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르다”라고 말한다. 다양한 어려움의 모습 앞에서 효과적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고민이 깊어졌다. 워크숍을 진행하고 나니 코리빙은 하나의 작은 사회 같았다. 혼삶의 자유를 누리면서도 필요한 경우 타인과 쉽게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어야 했다. 정보나 경험의 비대칭에서 오는 격차도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 아무리 혼삶이라 해도 같이 사는 것이 코리빙이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로는 수많은 사람과 접하지만 정작 자신의 이웃을 아는 사람이 적은 것처럼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을 되살려 보기로 했다.
스피커 그리드 ; 말로 하는 지식in
코리빙 하우스라는 특성 이전에 입주자들이 1인 가구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었다. 주거 공간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는 코리빙 하우스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고안하게 된 것이 스피커 그리드다. 입주자들이 자신의 동네에 대해 묻고 답할 수 있는 서비스로 이름은 ‘쉐어원 위키’다.
코리빙 하우스에 처음 입주하는 1인 가구는 새로운 동네에 정착함과 동시에 새로운 주거 형태를 마주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1인 가구보다 더 낯설고, 질문으로 가득한 혼삶을 시작하게 된다. 특히 코리빙 하우스는 여럿이서 살아가는 공간이기에 공통적으로 숙지하고 지켜야 할 규칙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코리빙 하우스에서 이런 지식들은 어떻게 공유되고 있을까.
처음 코리빙 하우스에 입성하면 JTBC 드라마 〈청춘 시대〉 처럼 퇴근 후 거실에 모여 오늘 있었던 일을 나누는 장면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의 코리빙 하우스에서 이를 경험하기란 쉽지 않았다. 거실, 주방 등 분명 다른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공용 공간이 있지만 코리빙 하우스의 구조상 이러한 공간이 개인 공간과 멀리 위치해 있기에 개인 공간에 한 번 들어가면 공용 공간으로 잘 나오게 되지 않았다. 또한 현장 방문 당시는 코로나19로 인해 개인 간의 접촉은 더 최소화되었을 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입주민 간 소통할 수 있는 여건이 부재했다.
코크리에이티브 워크숍에서도 생활에 도움 되는 사소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는 거주자들의 바람을 발견했던 터였다. 혼삶에서 남이 필요한 순간으로 많이 거론된 것 중 하나는 맛집, 병원, 운동 시설 등 내가 사는 곳 주변에 대해 물어볼 사람이 없을 때였다. 장소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요리나 청소 등 생활 전반에 대한 정보 역시 공유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남과 친해지는 것이 무리 없는 사람이라면 코리빙 하우스의 커뮤니티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겠지만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대면의 부담감은 없으면서도 서로 간의 정은 느낄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고안한 쉐어원 위키는 한 포털 사이트의 서비스 ‘지식in’에서 착안해 만들었다. 묻고 답하는 형식을 차용한 것이다. 코리빙 하우스의 이름인 ‘쉐어원’과 ‘위키백과’의 ‘위키’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 이용자들에게는 동네 백과사전과 같을 테니 말이다. 서비스 이름을 유쾌하고 귀여운 어감으로 지은 것은 입주민들이 말을 걸고 이용하는 데 부담이 없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쉐어원 위키는 입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동시에 답할 수 있는 지식 및 경험 공유 서비스다. 여기서 지식은 주로 입주민들이 생활하면서 알게 된 생활 팁이나, 주변 정보 등을 말한다. 검색으로 찾기 어려운 경험 정보다. 처음 독립을 해서 새로운 동네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를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던 순간이 한 번씩은 있었을 것이다. 이 건물을 기준으로 장보기 좋은 마트는 어디인지, 밤에 산책하기 좋은 공원은 어디인지, 분리수거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버스 정류장까지의 지름길 등 살아가는 데 꽤 유용한 정보지만 인터넷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적 물음들이다. 로컬 커뮤니티를 타겟팅한 소셜 미디어 등 플랫폼도 있지만 자신이 거주하는 장소에 꼭 들어맞는 정보가 늘 나오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쉐어원 위키는 코리빙 하우스에 살면서 지켜야 할 규칙이나 알아야 할 정보 혹은 동네에 관련된 정보나 조언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 우리가 수집해야 할 정보를 1인 가구 생활 팁, 쉐어원 신림점의 건물 정보 팁, 신림동 지역의 정보 팁,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했다. 혼삶 중에 생기는 일상적인 물음들, 거주 공간의 규칙, 거주 지역의 특징을 친근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원활한 지식 공유 수단으로 스마트 스피커를 활용했다. 정보의 친절한 배달부 역할을 하길 바랐다. 코리빙 하우스의 개인 공간에 하나씩 스마트 스피커를 비치해 언제든 궁금한 것이 생기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물어볼 수 있게 설계했다. 실제로 입주민과 대화를 주고받는 듯한 친근한 느낌에도 중점을 뒀다. 예컨대 아파트 인터폰을 통한 대화보다는, 엘리베이터에서 나누는 이웃 간의 대화이길 바랐다. 텍스트가 아닌 스피커를 선택한 이유다. 얼굴 한 번 안 본 사람들이 제공하는 정보가 아니라 실제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마주치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정보라 이웃의 정을 느끼기도 쉽고 지식과 경험에 대한 신뢰도 생길 것이었다.
쉐어원 위키를 구동할 하드웨어로는 ‘구글 네스트(Google Nest)’를 선택했다. 구글 네스트는 구글에서 제작한 스마트 스피커로 “오케이 구글”이라는 문장을 외치면 스피커가 활성화된다. 그 후에는 “날씨가 어때?”, “음악 틀어줘”, “대한민국 맛집 알려줘”, “엄마한테 전화 걸어줘” 등 다양한 질문과 명령어를 수행한다. 우리는 구글 네스트에 “오케이 구글, 쉐어원 위키에게 말하기”를 외치면, 다양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주게끔 서비스를 디자인하고 실제 배포하며 입주민들의 반응을 관찰했다.
쉐어원 위키는 질문과 답변을 연결함으로써 정보의 축적을 의도했다. 실제 대화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만약 입주민 A가 “주변 슈퍼 중 어디가 싼지 알려줘”라고 물어보면 다른 입주민 B가 기존에 응답했던 답변이 전달된다. “쉐어원 주변 슈퍼 중 OO슈퍼에 저렴한 물품들이 많이 있어요.”라는 입주민 B의 답변을 입주민 A가 듣고 나면, 이번엔 반대로 다른 입주민 C로부터 수집된 질문인 “주변 맛집 정보가 궁금해요”에 대해 답변을 하게 된다. “음… 이 주변에는 OO분식이 제일 맛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입주민 A가 대답하면 입주민 C에게 다시 해당 질문이 전달된다. 이렇게 스마트 스피커를 통해 입주민들끼리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지식을 손쉽게 공유할 수 있는 요긴한 지식 및 경험 공유 서비스가 완성됐다.
이웃감의 재발견
실제로 쉐어원 위키를 입주민에게 배포하면서 서비스의 한계도 많이 느꼈다. 일단 스마트 스피커를 사용해본 입주민이 적어 온보딩을 위한 가이드북 등을 수반해야 했다. 또한 개인실에 스마트 스피커를 비치해 질문을 공유하고 답변해 주는 시나리오로 계획되었기에, 개인실이 아닌 외부에서는 사용하기 어려웠다. 생각지도 못한 장벽도 있었는데 바로 층간 소음 문제다. 입주민들은 소음 걱정으로 스마트 스피커와 대화하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일반 가정집이었다면 좀 더 자유롭게 “헤이, 구글”을 외치며 스마트 스피커와 대화할 수 있었을 테지만, 이곳은 익명의 다수가 거주하는 코리빙 하우스다. 다수의 입주민이 거주하는 작은 개인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보니 더 조심하고 배려해야 하는 분위기였고 스마트 스피커를 이용하기엔 제법 눈치가 보이는 환경이었다. 코리빙 하우스의 현실적인 한계를 고려하면 스마트 스피커의 보이스 서비스보다 모바일 텍스트 서비스로 구현하는 방안이 더 낫겠다 싶기도 했다. 개인실 이외에 샤워실이나 리빙룸 등의 공용 공간을 이용하는 순간에도 스마트폰을 통해 지식을 공유하고 질문에 답변함으로써, 더 편리하게 이용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직접 말로 하는 대화의 힘은 컸다. 친근함에 중점을 둔 쉐어원 위키의 발화 패턴이 입주민에게 그동안 느껴본 적 없는 ‘이웃감’을 선사해 준 것이다. 그동안 옆방 입주민과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 없는 한 입주민은 “쉐어원 위키를 사용하며 공동체적 친밀감을 느꼈다”고 했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마주한 새로운 수확이었다. 정보 격차 해소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기술이 지식을 전달하는 배달원뿐 아니라 벽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
입주민들은 또 “블로그나 SNS에 있는 광고 섞인 정보들은 신뢰도가 떨어지는데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입주민들로부터 정보를 얻으니 더욱 믿음이 갔다”고 말해 줬는데 이 역시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정보 과잉 시대에 정보 선별의 가치도 크지만 정보를 주고받는 대상과의 관계성 역시 중요하다는 점이다. 꼭 전문적이지 않더라도 관계성에 기반한 경험 정보는 가치가 크고 상호 신뢰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 계기였다. 1인 가구 증가로 대두되는 사회적 고립과 단절 문제에 있어, 이러한 경험 정보를 콘텐츠 삼아 기술로 개인과 개인을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 부푼 기대를 안았다.
프리핸션 ; 공용 공간 알리미
‘프리핸션 프로젝트’는 공용 공간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고안했다. 프리핸션(prehension)은 공간의 혼잡도, 공간의 가용 여부를 알려 주는 기술이다. 실제 코리빙 하우스에서 비슷한 기술들을 사용 중이기도 하다. 주거 환경의 변화에 있어 앞으로 꼭 필요한 기술임을 확신했다. 공용 공간은 개인의 활동 반경을 넓히는 코리빙 하우스의 정체성이다. 원룸에 사는 1인 가구들과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공용 거실, 주방, 헬스장, 시네마 룸, 옥상 정원 등 적은 비용으로 다양한 공용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지만 실제로는 어떨까?
예상과 달리 코리빙 하우스의 공용 공간은 활발히 이용되고 있지 않았다. 코리빙 하우스마다 유용한 공용 공간들이 있는데 왜 입주민들은 개인 공간에서 나오지 않는 것일까? 일단 입주민마다 코리빙 하우스에 들어오는 이유가 다르다. 타인과의 소통, 커뮤니티 형성을 위해 입주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경제적 여건이나 지리적 이점 등 다른 이유로 들어온 입주민은 타인과의 만남이나 마주침을 꺼릴 수도 있다. 이런 유형의 입주민은 불필요한 마주침이 있는 공용 공간보다 혼자 있을 수 있는 개인 공간을 선호할 것이다. 반대로 다른 입주민이 공용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면 혹여나 방해가 될까 개인 공간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런 문제는 기존의 다인 가구 생활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한집에 살며 서로의 생활 패턴을 자연스럽게 체화하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어머니가 화장실을 이용하는 동안, 아버지는 부엌에서 아침 식사를 해결한다. 부모님의 아침 출근이 끝나면 아이들이 일어나 화장실을 번갈아 사용하며 등교 준비를 한다. 서로의 생활 패턴에 따라 공간 이용 계획을 세워 제약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코리빙 하우스는 익명의 다수 입주민과 공용 공간을 나눠야 하기에 자신만의 계획을 만들기 어렵다.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지 않아 서로의 생활 패턴을 공유하고 조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입주민의 생활 패턴을 자연스럽게 파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눈치에 의존해야 하는 인지적 노고가 따른다. 이는 결국 공용 공간 이용을 포기하고 개인 공간에 머무르는 결과를 낳는다. 다양한 공용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고시원, 원룸의 대안으로 등장한 코리빙 하우스인데, 장점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코리빙 하우스의 다양한 문제는 주로 소통 부재에 기인한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직접 가서 확인하지 않는 한, 벽 너머 공용 공간의 가용 여부를 가늠하기 어렵다. 대부분 코리빙 하우스의 공용 공간이 각기 다른 층에 분산되어 있다는 점도 영향을 끼친다. 이런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가지 않고 내 방 안에서 공용 공간 가용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다. 공용 공간 알리미의 역할을 해줄 기술의 이름은 프리핸션이 됐다.
프리핸션은 ‘잡다’, ‘포착하다’라는 뜻이다. 단어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공간의 상태를 ‘포착’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이 서비스는 모션 센서나 카메라 같은 공간 센서에 의지하던 기존 방법과 달리, 공용 공간의 혼잡도를 파악할 수 있도록 새로 개발한 센서를 활용했다.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거주 공간에서 이미지나 비디오로 기록하는 카메라 센서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제외하고 레이더, 음향 센서 등과 머신러닝 기법을 결합해 공간의 혼잡도를 측정했다.
공용 공간의 혼잡도를 입주민에게 직관적으로 전달할 방법도 중요했다. 센서뿐 아니라 인터페이스도 신중히 설계해야 했다. 공용 공간의 혼잡도를 정확한 수치로 나타낼지 혹은 제3의 방법으로 표현할지 고민했다. 코리빙 하우스와 공용 공간마다 크기와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해당 공간에 적합한 인원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따라서 정확한 수치를 전달하기보다 해당 공간이 얼마나 붐비는지 혹은 한산한지를 시각적인 정보로 환산해 제공함으로써 입주민의 망설임을 줄이고자 했다.
또 물리적으로 곳곳에 흩어진 공용 공간의 존재를 자칫 잊어버리거나 개인 공간만이 자신에게 허락된 면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유저 인터페이스 UI에도 변화를 줬다. 공용 공간 중심 UI를 개인 공간을 중심으로 재배치했다. ‘내 위치’를 중심으로 뻗어 나가는 공간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만 당시에는 아쉽게도 프라이버시 문제가 결국 해결되지 않아 프리핸션 서비스를 실제 코리빙 하우스에 적용하진 못했다. 그 후 몇몇 코리빙 하우스에서 이와 비슷한 서비스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헬스장이나 스터디룸 등의 가용 여부를 확인하고 예약할 수 있는 코리빙 하우스 입주민 전용 모바일 앱 같은 형태였다. 하지만 이 역시 다양한 센서를 통해 종합적으로 공용 공간의 혼잡도를 전달하는 고차원의 서비스는 아니다.
주목할 것은 코리빙 하우스가 비단 멋지고 다양한 공용 공간을 제시하고 홍보하는 것을 넘어 이용 시 발생하는 불편과 입주민의 현실적인 니즈(needs)를 주시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한 다양한 해법이 등장할 것이지만 우리가 겪은 입주민의 프라이버시 문제는 합의와 설득을 통해 넘어야 할 과제다. 향후 예약 여부나 인원수 외에도 공간의 소음이나 움직임 등을 데이터로 활용하는 서비스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리빙 하우스는 여전히 1인 가구의 문제 해결을 위한 유력한 대안이다. 늘어나는 1인 가구에 맞춰 다양한 코리빙 하우스가 등장하는 것이 그 방증이다. 다만 공유 주거라는 개념과 문화의 확산은 주거 공급보다 더디다. 이와 같은 문화가 확산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용 공간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기 위해서 기술은 그 어느 것보다 빠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 공유 주거는 ‘주거 공간’이 아닌 ‘주거 경험’을 판매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판교에 521세대 규모로 문을 연 ‘디어스 판교’가 대표적이다. 서비스 플랫폼 연동을 통해 공간의 사용 빈도 및 서비스·커뮤니티 후기를 실시간 분석하고 이용률이 낮은 공간이나 서비스에 대해서는 개선 및 용도 변경을 진행한다. 이를 통해 1년여 만에 운영률 90퍼센트를 달성했다고 하니 기술이 문화를 선도한 사례라 하겠다.
공간텍스트의 재발견
프리핸션의 배경이 되는 근본적 문제 의식은 입주민 간의 커뮤니케이션 부족이었다. 그렇다면 코리빙은 실패한 주거 개념일까? 쉐어원 위키에서 발견한 해법은 ‘이웃감’이었다. 요컨대 코리빙이 지나치게 갑작스러운 개념이라기보다 사회 기저의 소통 단절이 공유 주거 경험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오래 지속된 사회적 거리 두기 이전에도 개인주의는 확산하고 있었고 고립의 시대는 이미 도래해 있었다.
“도시의 분주함과 부산함, 소음, 끝없이 쏟아지는 시각 자극에 압도된 도시인은 이미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이전에도 심리적으로는 사실상 사회적 거리 두기의 성향을 보였다. 우리는 헤드폰으로 귀를 덮고 선글라스를 쓰고 휴대 전화를 보며 고립 상태에 파묻히는 방식으로 자기 자신만의 개인적인 보호막을 치고 길을 걷는다. …… 아이러니한 것은 현실 세계에서는 주변 사람에게 관심을 닫으면서 가상 세계에서는 화면을 두드리고 스크롤을 쓸어내리며 인스타그램 사진과 트위터 글을 훑는다는 사실이다.”
- 노리나 허츠(Noreena Hertz), 《고립의 시대》 중.[1]
2021년 한국에 출간된 영국의 유명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의 책 《고립의 시대》는 개인의 문제였던 고립감을 사회적 문제로 진단한 수작이다. 이 책에서는 한국의 ‘먹방’에 대한 언급도 나오는데, 막상 혼밥을 즐기면서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먹방을 본다는 식의 진단을 내린다. 물론 콘텐츠화돼버린 먹방을 꼭 밥을 먹으며 외로움 때문에 보는 것은 아니겠지만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현대인들, 특히 주로 젊은 층은 모르는 사람과의 부자연스러운 친교보다는 온라인상의 느슨한 연대를 훨씬 선호한다는 점이다. 혼밥, 혼영 등의 라이프스타일은 보편적인 것이 됐고 마주침은 점점 줄어든다. 그럼에도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타인과의 접점에서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지하철, 빨래방, 도서관,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그리고 말없이 낯선 타인과 교섭하고 있다. 시선을 조심하고, 정중한 미소를 지으며, 무의식적으로 옆으로 물러서면서.”
-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
낯설기에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좁은 지하철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서로의 삶을 애써 외면하고자 한다. 의도적인 무관심(inattention)은 공동체 삶을 위한 교양적 무관심(civil inattention)이기에 선택이 아닌 필수 에티켓 etiquette이다. 서로가 암묵적으로 그어 놓은 선을 넘지 않고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은 나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불문율이 되었다. 이처럼 모든 단절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느슨한 연대를 위해 한 발짝 걸음을 떼는 일, 먼저 가볍게라도 손을 내미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친밀함과 불쾌함이 종이 한 장 차이인 시대이기 때문이다.
주거 공간을 공유하는 코리빙 하우스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지하철과 다른 점은 코리빙의 입주민들은 잠시간의 이동을 함께하는 게 아니라 주거의 일정 부분을 함께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적 친밀감이나 불쾌감을 쉽게 가질 수 있는 환경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주방을 사용하면 환기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냄새에 예민하지 않은 사람은 이를 그저 과민 반응으로 여길 수도 있다. 누군가는 공용 공간에서 약간의 과음을 해도 좋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이를 굉장히 민폐로 여길 수 있다.
그럼에도 코리빙에서는 서로에게 애써 무관심한 채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이 쉽게 연출된다. 문제는 갈등 상황과 같이 서로의 도움 내지는 이해가 필요한 순간조차 교양적 무관심이 발휘된다는 점이다. 마음 안에 쌓인 불편함은 입주민 간 소통의 단절을 가속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아무리 다양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동원하더라도 끈끈한 연대를 지닌 공동체를 만들기 어렵다. 공동체란 서로 시간을 들여 생각과 활동을 공유해야 하는데, 도시의 1인 가구는 그럴 시간도 심적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끈끈한 유대감은 혼삶이 주는 자유의 레토릭과도 괴리가 있다.
이에 대한 솔루션으로 코리빙 하우스 입주민들은 카카오톡과 같은 MIM(Mobile Instant Messanger) 서비스와 더불어 공간 텍스트를 활용한다. 공간 텍스트는 코리빙 하우스의 특성을 고려해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하며 생활 속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솔루션이다. 규칙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수적이지만 공간 텍스트를 이용하면 대면하지 않고도 생활 속 다양한 규칙을 만들 수 있다. 건축 환경에서 공간 텍스트(EGD·Environment or Experiential Graphic Design)란 정보의 그래픽 커뮤니케이션이다.[2] 이름은 낯설지만 일상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하철 바닥에 쓰인 ‘우측 통행’, 화장실 벽에 붙은 ‘화장지를 변기에 버리지 마시오’ 등의 문구다.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는 암묵적인 규칙들은 곳곳에서 종이 인쇄물 형태로 자리를 지켜 왔다. 구성원 간 스킨십이 많고 잦게 발생하는 곳일수록 공간 텍스트가 발휘하는 힘은 세다.
코리빙 하우스 역시 다수가 공유하는 공간이지만 공공장소와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공적 영역인 공공장소와 달리 코리빙 하우스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의미가 혼재해 있다. 집은 개인의 생활 습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다. 누군가에겐 오롯이 하루를 보내는 곳이기도 하며 누군가에겐 피곤한 일과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입주자가 내는 월 사용료에는 공용 공간의 사용도 포함되는데 이 공간은 입주자들에게 사적 영역이기도, 공적 영역이기도 하다. 에티켓만 강조할 수도, 각자의 편의만을 강조할 수도 없다.
코리빙 하우스는 일종의 1인 가구 ‘샐러드 볼(salad bowl)’이다. 각기 다른 사정을 가지고 입주한 사람들은 다양한 생활 습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코리빙 하우스 내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미묘하고도 복잡하다. 긴밀하게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각자의 요구를 정확하게 관철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에 갈등을 유연하게 해결하고, 시시각각 생기는 요구 사항을 가시화하는 매체가 필요하다. 코리빙 하우스들을 조사해 보니 공간 텍스트가 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먼저 공간 텍스트가 활용되는 방식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 답사와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다양한 코리빙 하우스의 공용 공간을 탐방하며 어떤 규칙들이 오가는지 살펴보고 현장 답사로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은 입주민 인터뷰를 통해 해결했다.
코리빙 하우스에서 활용되는 공간 텍스트의 유형과 목적은 다양했다. 먼저 목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정보 전달, 규칙 주지, 공간 분위기 조성이 그것이다. 우리가 수집한 공간 텍스트를 분류에 따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세탁실입니다”, “영양 가득 스무디를 만들 수 있는 진공 블렌더입니다” 등은 정보 전달에 해당한다. 규칙 주지는 주로 입주민에게 특정 행동을 요청하거나 제지하는 양식을 가졌다. 예컨대 “TV 프로그램 유료 결제는 하지 말아 주세요”, “이용 후 다른 사람을 위해 뒷정리를 부탁드립니다” 등이다. 공간 분위기 조성을 위한 공간 텍스트는 “나의 일상이 바뀌고 지역이 즐거워지는 공간”, “오늘은 다른 리빙 메이트와 직접 만든 음식을 나눠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등이다. 인쇄물 형태의 공간 텍스트가 지니는 한계도 목격했다. 공간 텍스트가 많이 붙어 있으면 오히려 입주민들이 공간 텍스트를 간과하기 쉬웠다. 또 한 인쇄물의 글자 수가 많으면 가독성이 떨어져 역시나 입주민의 주목을 받기 어려웠다.
입주민 인터뷰에서는 코리빙 하우스 내 규칙의 근본적인 문제를 엿볼 수 있었다. 공간 텍스트를 통해 공유되는 규칙은 시시각각 변하는 입주민의 요구 사항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대부분 관리자가 배포한 것이었다. 공공장소의 공간 텍스트처럼 공식적인 규칙이라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입주민의 현실적인 요구를 담지 못했고 단발성에 그치는 것도 많았다. 반면 입주민이 주도해서 생활 속 불편을 설명하고 규칙 수정을 건의하는 공간 텍스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소셜 미디어의 단체 채팅방을 통해 새로운 규칙을 건의하는 입주민도 있었으나 익명의 제안으로 남아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익명이라는 장점을 발판 삼아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오히려 익명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익명의 의견들이 수시로 건의되고 동시에 사라지는 것이 반복되다 보니, 입주민의 메시지가 금세 휘발되는 단점도 있었다.
무엇보다 코리빙 하우스에 거주하는 1인 가구는 규칙을 건의하고 갈등에서 합의를 이루는 데 있어 소극적인 경향이 있었다. 공용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다 논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행주를 쓰고 걸어 두는 건 위생상 중요한 규칙이지만, 누군가에겐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때문에 입주자들은 암묵적인 규칙에 의존하고 있었다. 인터뷰에 참여한 입주민은 “암묵적인 룰이 있어요. 휴지 같은 건 마지막으로 쓴 사람이 채우는 거죠.”라고 말했다. 눈치를 통해 암묵적인 규칙을 준수한다는 것이다. 다만 눈치와 암묵적인 규칙에 의존하면 인지적 노고가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공간 텍스트는 갈등을 중재하기 위한 여러 대안적 기술 중 하나지만 의견의 발화 주체와 수렴, 구성 방식에 있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공장소의 공간 텍스트는 보통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것이고 많은 경우 포괄적 규칙이지만 거주 공간의 갈등은 실시간으로 발생하고 갈등의 형태도 좁고 구체적이다. 꼭 코리빙 하우스가 아니더라도 인구가 도시로 밀집되며 주거 공간을 둘러싼 갈등은 첨예해지고 있다. 아파트, 오피스텔 등의 대규모 공동 주거 시설에서 다양한 거주민의 갈등을 중재할 방안이 필요하지만 아직 많은 경우 관리자에 의지하는 등 간접적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세세한 부분에서는 규칙의 암묵화가 일어난다. 층간 소음 문제를 떠올려 보자. 직접 찾아가서 따지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관리실에 연락을 취하거나 문 앞에 메모를 붙이고 오는 방식으로 불만을 전달한다.
건물을 공유하는 아파트, 오피스텔과 달리 코리빙 하우스는 생활과 닿아 있는 공간을 공유한다. 모든 생활 밀착형 문제를 관리자를 통해 해결할 수 없기에 기술적 고민이 수반되어야 한다. 앞선 두 프로젝트는 기술이 소통의 과정을 대신했다. 소통은 관계를 만들고 갈등을 해결하는 열쇠다. 입주민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규칙을 제안하고 수정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이 있다면 어떨까?
주거 공간은 아니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장소인 도서관을 대상으로 비슷한 시도를 했던 사례가 있다. 호주 퀸즐랜드공과대학에서 도시 정보학 및 HCI를 연구하는 마크 빌란직(Mark Bilandzic) 교수는 ‘젤라틴(Gelatine)’이라는 인터랙티브 스크린(Interactive Screen)을 제작해 도서관에서 실험을 진행했다.[3] 이용객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시각화하는 제품이다. 도서관 이용객들이 어떤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도서관을 이용하는지, 현재 겪고 있는 학문·교육적 어려움은 무엇인지 등을 파악할 수 있게 디자인했다. 실제로, 젤라틴을 이용한 사람들은 도서관 이용자들 간의 암묵적 분위기를 더 잘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서로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대화도 가능했다. 젤라틴은 서로 목적이 있는(on demand) 우연적(serendipitious) 만남이 형성되기 좋은 매개체로 밝혀졌다. 스크린을 통해서 같은 공공장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해 인지하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커뮤니티의 분위기와 정체성을 더 잘 느끼며 녹아들기 수월하다.
코리빙 하우스에도 입주민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규칙을 제안하고 수정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이 있다면 어떨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입주민 전용 커뮤니케이션 애플리케이션과 더불어 오고 가며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 월(smart wall)이 함께 생긴다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단순히 스마트폰을 통한 애플리케이션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입주민에게는 요긴하지만, 소극적인 입주민에게는 그마저도 큰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 실시간으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남겨진 의견을 확인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가 있다면 암묵지로 해결하던 규칙마저도 가시화되며 좀 더 많은 입주민에게 퍼져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입주민들 마음에 쌓인 불편함도 한층 해소됨과 더불어 입주민 간의 심리적 거리도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