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잘 살기 연구소가 어느새 2년 차가 됐다. “1인 가구에 근원적인 관심을”이라는 기치는 변하지 않았다. 1인 가구의 목소리를 지키기 위해 2년째 깃발을 들고 있다. 활동에는 변화가 생겼다. ‘1인 가구’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리빙랩이 나오게 됐는지 외부 활동이 생겨나고 다양한 행사에 초청됐다.
지자체의 정책 모임, 사회단체의 콘퍼런스, 건축가 세미나, 학술 모임 등 1인 가구와 관련한 활동은 많았다. 이런 모임의 주최 측은 주로 공직 사회다. 1인 가구 관련 공공기관 혹은 지자체의 대책반에서 가장 먼저 연락이 온다. 하지만 막상 행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1인 가구의 현실을 듣기는 어려웠다. 발표자들은 주로 청년 단체, 여성 단체 등에 속한 주거 활동가 그리고 연구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러한 행사로 1인 가구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생각의 범위도 확대됐다. 1인 가구의 문제를 청년 중심으로 바라봤던 1년 차와 달리 중·장년과 노년층 1인 가구의 문제도 눈에 들어왔다. 고독사, 웰다잉(well-dying) 등의 개념 말이다.
이런 행사에 다녀오면 늘 비슷한 인상이 남곤 한다. 통계와 분석은 어느 때보다 넘쳐나고 지원 정책도 늘어나는데 왜 1인 가구의 삶은 여전히 팍팍할까? 분석가와 정책 수립자, 수혜자 간의 문제 인식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1인 가구 증가가 사회적 문제가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게다가 해결 과정에서 사회 문제가 계속해서 변하기도 한다. 정책이 만들어지는 동안 1인 가구 문제 역시 변했다.
지나치게 대증적이고 범주적인 접근의 한계다. 각 가구가 마주한 어려움은 무엇인지, 유형별로 빈발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책이 충분히 조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1인 가구는 특히나 개별성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여느 탈근대적 문제들처럼 하나의 유니버설 솔루션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청년, 중·장년, 노인 혹은 소득 분위 등의 기존 범주는 유동적이고 다면적인 개인에게 적용하기에 실효성이 떨어진다. 1인 가구를 위한 대책은 그 단위에 맞춰 개인화돼야 한다.
2021년 7월 1일 2차 추경 의결된 재난 지원금은 ‘소득 하위 80퍼센트’를 기준으로 지급됐다. 지급 범주에 있어 얼마나 많은 사회적 혼란이 있었나. 정책가들은 여성, 청년, 소득 등 기존 복지 문법을 활용하고 있다. 이는 정치적 효과가 클지 몰라도 실효성은 떨어진다. 세금은 범주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추징한다. 따라서 재분배, 즉 복지에 있어서도 데이터 기반 정책을 펼쳐야 개인화·상형화(狀況化)가 가능하다. 1인 가구에 대한 행동 데이터 확보와 분석이 필요한 이유다.
정책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기술을 통해 돌아보며 새로이 얻게 된 깨달음도 있다. 1인 가구의 많은 문제는 관계 부재에서 발생했다. 스피커 그리드, 프리핸션, 공간텍스트, 총 세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기계가 관계를 대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리빙랩을 2년간 운영하며 얻은 답은 ‘그렇다’이다. 새로운 개인들이 연결되기 위해서는 관계 기계(relationship machine)가 있어야 한다. 개인의 파편화가 만연한 시대에 맞는 새로운 ‘관계 맺기’ 방식이 필요하다. 인간이 직접 대면하며 관계와 규칙을 만들고 합의를 이루는 과정은 번잡하고 비용이 들며, 종종 실패하기도 한다. 기계의 객관성 또는 중립성이 새로운 ‘관계 맺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기계가 관계 자체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 간의 관계를 맺기 위한 단초를 제공하고 편리함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관계 기계에 익숙하다. 소셜 미디어 서비스는 1세대 관계 기계다. 이를 활용해 모임과 규칙을 만들며 관계를 지속하고 있지 않은가. 더욱 발전한 관계 기계들이 등장할 것이다.
주거 형태는 개인화돼도 관계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관계는 삶의 중요한 동력이다. 관계가 사라진 삶은 목적지 없는 여행과 같다. 사회 전체가 1인 가구화되는 시점에 관계는 더 중요해질지 모른다. 다만 ‘주어진 관계’가 아닌 ‘발견하는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와 같은 전통적 관계를 넘어 취미, 취향, 여가로 만난 개인들 간의 새로운 관계 말이다. 더 이상 개인은 사회의 일부가 아니다. 독자적 체계를 가진 소우주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소우주들을 접한다. 관계는 여기서 발생한다. 삶의 동력이 되는 창조적 관계를 갈망하는 개인들에게 기술은 더 많은 가능성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