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모 사피엔스, 달리기를 멈추다
호모 사피엔스는 동아프리카의 평원을 휩쓸고 다니면서 먹을거리를 구하고, 생존을 위해 싸우고, 먹잇감을 사냥하면서 번성했다. 우리 선조들은 약 1만 2000년 전 농업 혁명 기간에 한곳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때 이른바 문명의 진보가 그들의 활발한 운동을 멈춰 세웠다. 인류의 삶은 부자연스러운 정지 상태가 되었다.
한곳에 정착해서 뿌리를 내린 뒤 지금까지 불과 600세대가 지나갔다. 우리 역사에서 이전까지의 99퍼센트가 수렵채집 활동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우리의 신체와 두뇌가 여전히 구석기 시대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시간의 척도를 진화의 맥락에 펼쳐 놓으면, 문명은 그저 하나의 시기에 불과하다. 농업이라는 것도 그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수많은 건강 문제들이 현대 문명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기인하는 이유 역시 설명이 가능하다.
현대의 주요한 사망 원인은 심장병, 골다공증, 비만, 그리고 암이다. 진화생물학자들은 구석기 시대에는 이러한 병들의 발병률이 지금보다 낮았을 거라고 오랫동안 믿어 왔다. 당시에는 일상에서 운동이 차지하는 비율이 요즘보다 훨씬 더 높았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2006년, 어느 인류학 연구는 현대에 살아남은 수렵채집 그룹의 정신 건강 상태가 뛰어나다는 사실을 발견해서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 이후로 연구자들은 그들의 우울증 비율 역시 상당히 낮을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 많은 신경과학자들은 우리가 장시간 격렬한 운동을 하고 나면 경험하는, 소위 ‘러너스 하이(runner's high)’가 우리의 수렵채집인 시절에 대한 공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운동과 정신 건강이 왜 그토록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 이론은 2004년에 대니얼 리버만(Daniel Lieberman)과 데니스 브램블(Dennis Bramble)에 의해 대중적으로 알려져 점점 더 영향력을 얻고 있는 ‘달리기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가설과도 일치한다. 그들은 현 인류의 조상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약 200만 년 전의 초기 호미닌(hominin) 화석 잔해에 이미 적응(adaptation) 형질이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이는 진화로 인해 우리가 장거리를 달리는 끈기 어린 사냥꾼이 될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달리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2. 우리는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
초기 호미닌은 이미 짧은 발가락, 좁은 골반, 튼튼한 관절을 가지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대퇴골에 붙는 대둔근(大臀筋)의 부착 부위가 넓었다. 우리 인간의 엉덩이는 다른 영장류들보다도 유달리 튀어나와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예전에는 직립 보행을 위한 적응 때문이었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자원자들의 신체 여러 부위를 선으로 연결해서 진행한 실험에서, 리버만은 걷기 동작에 대둔근은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달리는 것은 대둔근 없이는 불가능했다.
‘달리기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가설은 또한 왜 초기 인류가 창 또는 화살과 같은 발사형 무기나 그물을 개발하기 훨씬 이전에도 이미 능숙한 사냥꾼이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장거리 달리기 선수였던 우리 선조들은 별다른 무기 없이도 사냥감이 지칠 때까지 쫓아갔을 것이다.
우리 몸에는 털이 적고 열을 발산하는 땀샘이 풍부하다. 이런 특성 덕분에 우리는 달리기를 하면서도 동시에 우리 몸을 식힐 수 있다. 즉, 우리는 아프리카 사바나 평원에서 몇 킬로미터에 걸쳐 추적을 하더라도 대부분의 포유류를 능가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처럼 현재도 존재하는 수렵채집 부족들을 선사시대를 추정해 보기 위한 참고 사례로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선조들의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들은 하루에 약 두 시간 동안 걷거나 달리기를 하면서, 약 6~9마일
[1]을 돌아다녔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뒤에는 다시 야영지로 돌아와서 요즘의 우리보다도 더 많은 여가 시간을 즐겼을 것이다.
아무래도 수렵채집인들은 능수능란한 게으름뱅이였을 것으로 보인다. 불필요한 운동을 피하는 것은 고대의 본능일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먹거리가 부족한 환경이었기에, 살아남으려면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유 없이 달리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달리기는 일이었다. 달리기는 생물학적으로 내재한 직업적 만족감을 가져다주는 일이었을 것이다. 열심히 운동한 뒤에 찾아오는 더없이 의기양양한 도취감 말이다. 일부 고인류학자들은 ‘러너스 하이’가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 오랫동안 돌아다닌 것에 대한 ‘신경생물학적 보상’의 형태로써 우리 선조들에게 진화적으로 장착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러너스 하이를 일으키는 물질은 우리가 운동할 때 활성화되어 분비되는 천연 아편인 엔도르핀일 것이라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미시건 소재 웨인주립대학교(WSU) 의과대학(School of Medicine) 심리 및 행동 신경과학과(DPBN)의 조교수인 힐러리 A. 마루사크(Hilary A. Marusak)는 거의 확실히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관련 근거들에 의하면, 우리가 느끼는 지극히 행복한 기분은 엔도카나비노이드(endocannabinoid)에 의해 유발되는 것으로 보인다. 지질(지방)로 만들어진 작은 분자인 엔도카나비노이드는 우리가 운동할 때면 언제나 신체에서 생성된다. 엔도카나비노이드에는 칸나비스(cannabis·대마)에서 발견되는 것과 유사한 향정신성 화합물이 포함되어 있다.
“저도 달리기를 합니다.” 마루사크의 말이다. “모든 사람이 아침에 엔도르핀을 얻으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 동안 과연 엔도르핀이 러너스 하이를 일으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들이 있었습니다. 엔드로핀은 상당히 커다란 분자이기 때문에 혈관과 두뇌 사이의 장벽을 쉽게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엔도카나비노이드는 지질 또는 지방 분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들은 두뇌 조직을 좋아하는 데다, 보호막도 매우 쉽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마루사크 박사는 운동선수들이 엔도르핀과 같은 아편의 효과가 차단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도취감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여러 연구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엔도카나비노이드가 차단되면 러너스 하이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며, 이런 결과는 인간과 동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 전반에 걸쳐서 재현되어 왔다.
마루사크는 운동이 엔도카나비노이드 수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한 33건의 문헌을 메타분석(meta-analysis) 하였다. 그녀의 연구팀은 30분 동안 조깅 또는 자전거 타기 같은 격렬한 운동이 엔도카나비노이드 수치를 지속적으로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중에서도 소위 ‘행복을 가져다주는 분자’라고 불리는 아난다미드(anandamide)의 분비가 가장 두드러졌다. 마루사크도 역시 ‘달리기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다’ 가설에 동의하는 편이다.
“엔도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은 우리의 신경 계통만큼이나 매우 오랫동안 존재해 왔습니다. 우리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고정 회로와 중복되는 이런 보상 시스템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설득력 있습니다.” 그녀의 말이다.
데이비드 라이클린(David Raichlen)은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의 진화생물학 교수이다. 라이클린은 만약 ‘끈기 있는 달리기 사냥’ 가설이 사실이라면, 장거리를 움직이며 사냥하는 다른 동물들에게서도 이와 동일한 보상 패턴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2012년, 라이클린의 연구팀은 사람과 개 모두에게서 고강도의 운동 뒤에 엔도카나비노이드 수치가 현저하게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면 가축화된 족제비인 페럿(ferret)에게서는 그런 증가가 나타나지 않았다. 라이클린은 이것이 바로 사냥하는 동물은 본능적으로 유산소 활동에 적극적이지만, 사냥하지 않는 동물은 그렇지 않은 이유라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