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건 집착, 에베레스트
완결

목숨을 건 집착, 에베레스트

에베레스트는 한때 대담한 등반가만이 도전하는 전설의 존재였다. 요즘에는 완전한 관광 산업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Adobe Stock

1. 상업화된 에베레스트 등정


예전에만 하더라도 에베레스트 원정은 국가대표 엘리트 산악인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체력적으로 건강하고, 안정적인 고소득이 있으며, 높은 고도에 적응할 수 있는 세 달 정도의 여유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면 누구나 세계의 지붕에 오를 수 있다. 약 6만 파운드(약 1억 원)의 비용을 내면 전문적인 상업 가이드 원정대가 당신을 그곳에 데려다 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형태의 에베레스트 원정은 매우 인기 있다. 매년 5월이 되면 목숨을 걸고라도 꼭 가보고 싶은 이 버킷리스트 여행지에 위험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린다.

에베레스트의 높이는 8848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하지만 등반하기 가장 어려운 산은 아니다. 네팔이 통제하는 남측 사면으로 올라가는 등반은 아주 혹독한 하이킹이기는 하지만 기술적으로 특별히 어려운 등반은 아니다.

가난한 나라인 네팔에게 있어서 비교적 오르기 쉬운 에베레스트는 귀중한 천연 자원이 되었다. 이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만 국가 경제의 10퍼센트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네팔 정부는 매우 값비싼 에베레스트 등반 허가증을 매년 엄청나게 많이 교부하고 있다. 때로는 한 번의 등정에 1만 1000달러(약 1470만 원)의 비용을 책정하더라도 전 세계 등반계의 수요가 끊이지 않는다.

상업 원정을 제공하기 위해 경쟁하는 회사는 50곳이 넘는다. 따라서 공급 측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다. 1990년대에 처음으로 에베레스트를 상업적 목적의 여행에 개방한 이후, 미국과 유럽 회사들이 전문 등반 가이드 시장을 장악해 왔다. 최근 몇 년 동안 네팔 현지 스타트업들도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며 적게는 3만 3000달러(약 4675만 원)의 비용으로 투어를 제공하고 있다. 일부 업체들은 당신의 등산 경험이나 전반적인 체력 수준과 같은 수많은 성가신 질문을 물어보지도 않는다. 현재 네팔 소재 최대 업체는 세븐서밋트렉스(Seven Summit Treks)이다. 웹 사이트에 의하면, 그들은 “(고령 및 위험에 대한 공포를) 돈으로 메울 수 있는 든든한 경제적 배경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에베레스트에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한다.

정상을 성공적으로 오르고 다시 안전하게 생환하는 것에 있어서는 타이밍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월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에베레스트 정상에는 바람이 충분히 잦아들어서 소위 ‘여름의 틈새(summit windows)’가 형성되는 5월에만 접근할 수 있다. 이때는 날씨가 온화한 시기이기 때문에, 안내를 받고 정상 바로 아래까지 도착한 등반대가 마지막 캠프를 출발하여 정상을 향한 최후의 일격을 시도하기에 충분히 안전한 때이다.

그러나 기상이 열악한 시즌에는 그런 적기가 드물고 기간도 더 짧다. 정상을 오를 수 있는 잠깐의 틈만 노리던 탐사대들이 몰리면서 에베레스트 위쪽 사면에는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인구 과밀 현상이 나타나곤 한다.

매년 5월이면 언제나 에베레스트 정상 바로 아래에서 찍은 사진이 소셜 미디어에 널리 퍼지곤 한다. 이는 전문 산악인들을 경악하게 만든다. 다양한 색상의 옷을 차려입은 등산객들은 에베레스트 능선을 따라 한 줄로 길게 늘어져서 콩가(conga)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한 줄로 서 있으면 모두가 가장 체력이 약한 사람들 혹은 가이드 투어 팀의 진행 속도만큼만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는 그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경험 없는 등산객들이 너무 많다는 의미다. 정상이 목전에 다가오면 그곳에 적합하지 않은 등산객조차도 끝까지 올라가려고 고집을 피운다. 이미 일생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동 속도가 너무 느려서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그곳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데도 말이다.



2. 누구나 정상에 오를 수는 없다


지구상에서 가장 줄을 서고 싶지 않은 곳을 꼽으라면, 그곳은 바로 에베레스트 정상일 것이다. 고도 8000미터 이상의 데스존(death zone)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지체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정상에 오른 다음 재빨리 데스존을 벗어나서 해가 지기 전에 안전한 캠프4로 내려오지 않는다면 그들은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에베레스트를 과도하게 상업적으로 착취함으로써 사람들은 탈진이나 고산병 같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원인으로 인해 사망하고 있다. 에베레스트 등반 역사상 최악의 시즌 가운데 하나였던 2019년에는 그 수가 엄청났다. 11명의 사망자 가운데 10명은 정상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사고를 당했다.

몇 주에 걸쳐서 고산 적응 훈련을 받고 산소통과 같은 장비의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등산객들은 메스꺼움이나 극심한 피로를 경험할 수 있고, 저체온증이나 동상의 피해를 당할 수도 있다. 그곳에 도달했을 쯤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상의 상태가 아니다. 그렇게 높은 고도에서는 몇 주 동안 쉽게 잠들지 못했을 것이며, 근육도 쇠약해지기 시작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은 해수면으로부터 그렇게 높이 떨어진 곳에서 지내도록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온갖 종류의 불편함을 경험하게 된다. 어떤 등산객은 너무도 탈진한 나머지 한 번 주저앉고 나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전문 가이드의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에베레스트 등반은 언제나 임사(臨死) 체험과 비슷하다. 현재 에베레스트 등정 루트에는 최소 200구의 시체가 방치된 채로 섬뜩한 표식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데스존에서 인간의 유해를 수습하는 것은 극도로 위험하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매년 봄이 되면, 그리고 팬데믹이 허락한다면, 에베레스트를 열망하는 수백 명의 사람들은 이곳을 찾아온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인 루클라(Lukla) 공항으로 날아온다. 공항에서부터 그들은 2주 동안 두 발로 에베레스트까지 걸어간다. 이 과정은 고산에 대한 적응을 시작하는 역할도 한다. 에베레스트는 베이스캠프조차도 5364미터라는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고도와 관련한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나 일단 3월 말에 등산객들이 그곳에 운집하기 시작하면, 등정에 대한 열기는 고조된다.

이후 40여 일 동안 등산객들은 에베레스트 및 주변 경사면을 오르는 최소 세 차례의 가이드 등반을 수행한다. 수백 미터씩 올라가면서 그들은 조금씩 더 높은 고도에 적응해 나간다. 5월이 되면 마침내 정상에 도전한다. 등반 가운데서도 베이스캠프에서 출발하는 가장 첫 번째 여정이 가장 위험하다. 왜냐하면 에베레스스트의 베이스캠프는 악명 높은 쿰부(Khumbu) 빙폭(冰瀑)의 발치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서히 움직이는 이 빙하를 따라서 600미터를 올라가야 한다. 쿰푸 빙폭은 변덕스러운 얼음 덩어리들이 꾸준히 이동하는 아주 복잡한 코스이다. 그곳에는 깊은 크레바스(crevasse)들이 입을 벌리고 있고, 아무런 경고 없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탑상빙괴(塔狀氷塊)라고 하는 드높은 세락(serac)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3. 버킷리스트 산악인들의 위협


등정 루트는 매년 달라지는데, ‘얼음 박사(ice doctor)’인 셰르파(Sherpa)들이 로프를 고정하고 무시무시한 크레바스 위에 알루미늄 사다리로 다리를 놓으면서 코스가 정해진다. 에베레스트에서 셰르파 가이드 또는 짐꾼이 된다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을 갖는다는 걸 의미한다. 그들의 사망률은 이라크의 미군보다도 높을 정도이다. 셰르파들 가운데는 등반을 아주 좋아하며 국제 산악 협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이드는 자기 자식에게도 물려주고 싶지 않은 아주 위험한 직업일 뿐이다. 많은 셰르파들이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식들을 카트만두에 있는 기숙학교에 보내고 있다.

안내를 받는 고객들이 이 위험천만한 빙폭을 두세 차례 건너는 동안, 무거운 짐을 짊어진 셰르파 짐꾼들은 한 번의 시즌에만 그곳을 수십 차례 가로지른다. 2014년에 얼음 세락 하나가 쿰부 빙폭 위로 무너졌을 때, 16명의 셰르파들이 죽음을 당했다.

이언 테일러(Ian Taylor)는 2008년에 에베레스트를 등정했다. 15년 동안 히말라야에서 가이드를 했던 경험이 있음에도, 그는 ‘에베레스트 곡예’를 그만 두기로 결심했다. 안전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쌓인 쓰레기들 ©Adobe Stock

“주된 이유는 셰르파 직원들에게 현존하는 위험 때문입니다. 제가 데리고 있던 셰르파 대장 앙 카미 셰르파(Ang Kami Sherpa)는 2014년에 16명의 셰르파들이 사망한 끔찍한 붕괴 사고가 일어난 지점에서 불과 15분 위쪽에 있었습니다. 우리 직원들은 저희에게 가족과도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걸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요구입니다. 기후 변화는 이제 실질적인 위험이며, 저는 지난 10년 동안 엄청난 변화를 목격했습니다.”

테일러는 그 위험이 ‘버킷리스트’ 산악인들이 야기한 것이며, 에베레스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히말라야의 산봉우리 시스템이 고장 났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얕은 경험과 지식만 가지고 고도의 원정에 합류할 것입니다.” 그의 말이다. “저는 지금 개인적으로 6189미터 높이의 아일랜드 피크(Island Peak·임자체)로 갔던 스무 번째의 원정에서 막 돌아오는 길입니다. 그럴 때마다 산에 오르려는 다른 팀들은 얼마나 준비가 부족한지 늘 실감하곤 합니다.”

“상대적으로 낮은 봉우리에서도 사람들은 기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준비 부족을 드러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목숨을 내놓고 고도 적응 과정과 개인의 안전에 있어서 막대한 위험을 무릅씁니다. 가이드를 동반하지 않거나, 앵커 포인트(anchor point)를 확인하지 않거나, 또는 자신의 안전을 책임져 줄 충분한 로프를 챙기거나 가이드를 데려오지 않는 식입니다.”

캐시 오다우드(Cathy O’Dowd)와 같은 산악인들이 보기에, 정상 부근에 길게 늘어선 줄은 단지 위험한 것만이 아니라 스포츠의 모험 정신을 모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녀는 안도라(Andorra) 공국의 피레네 산맥에 있는 자택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처음 등반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가이드가 안내하는 상업 투어는 없었습니다. 산을 오르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에게서 초대를 받는 것뿐이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오다우드는 1996년에 남아프리카 최초의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이후 그녀는 에베레스트의 남면과 북면을 등정한 최초의 여성으로 유명해졌다. 오다우드는 또한 에베르스트의 비즈니스 모델이 히말라야 전역에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에베레스트의 상업화는 8000미터 이상의 다른 히말라야 산봉우리들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베이스캠프에서부터 정상까지 고정 로프를 설치하는 게 일반화되었습니다. 심지어 이제는 K2에 대한 노골적인 상업적 제안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에베레스트에 사람들이 몰려든 사진을 보고 경악하지만, 그건 문제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히말라야의 모든 곳들이 버킷리스트 챌린지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등반 경험이 전무한 사람이라도 에베레스트에 갈 수 있습니다. 얼음 도끼를 가져갈 필요도 없고, 그냥 라인에 클립을 끼우고 그걸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등반했던 경로는 1970년대에 영국 등반가들이 올랐던 경로와는 매우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루트도 1953년에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lary)와 텐징 노르가이(Tenzing Norgay)가 택했던 경로와는 매우 다릅니다. 에베레스트 등정은 언제나 진화하는 도전이었습니다. 지금은 엄청나게 많이 바뀌었지만, 저는 당시에 제가 그렇게 해냈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그녀는 에베레스트에서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던 1996년 5월 11일, 정상의 바로 아래에 있었다. 당시만 해도 상업 원정대는 아직 초기였는데 바로 그날, 두 팀의 상업 원정대가 폭풍우에 갇히면서 여덟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작가이자 노련한 등반가인 존 크라카우어(Jon Krakauer)는 당시 사고 생존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 참사를 괴로운 심정으로 서술한 〈희박한 공기 속으로(Into Thin Air)〉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의도치 않게 오히려 지금과 같은 에베레스트 붐을 일으키는 촉진제가 되었다. 히말라야에 대한 상업 원정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4. 진정한 도전의 의미


현재 오다우드는 대중적인 연사로 일하고 있는데, 그녀는 이런 질문으로 강연을 시작하곤 한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일이 지금도 어려운 도전 과제인가요? 차례로 줄을 서고, 안전선에 클립을 끼우고, 발을 질질 끌고 올라가서, 5분 동안 정상에서 셀카를 즐기는 게 전부입니다. 에베레스트는 이제 부유한 중년의 임원들이 즐기는 모험 활동입니다.”

그녀는 에베레스트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도전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육체적인 면에만 집중할 뿐, 위험 관리, 기상 파악, 눈에 대한 조사 등 정신적인 면에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은 가이드와 셰르파들이 대신 해주며, 대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진정한 도전은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이드에게 아웃소싱 하면 도전은 사라집니다.”

오다우드는 진정한 모험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집 가까이에 훨씬 더 흥미로운 도전들이 많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녀가 살고 있는 피레네 산맥을 예로 들었다.

“에베레스트 등정이 우리 문화에서는 성취의 상징처럼 각인되어 있지만, 중대한 원정은 느리게 진행되고 비용이 비싸며 시간도 많이 소요됩니다.” 오다우드의 설명이다. “고산에 적응하는 것만 하더라도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당장 자신의 집 현관문만 열고 나가도 테크닉이 필요한 흥미로운 등반 코스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원정대 비슷한 건 꾸릴 필요도 없습니다. 기술과 경험을 쌓는 데 있어서는 소규모의 모험이 훨씬 더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선다는 짜릿한 전율과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사람으로 영원히 알려질 수 있다는 점이 이런 치명적인 집착을 계속해서 부추기고 있다. 전문적인 가이드 업체들은 정상에 오르는 건 날씨에 달려 있으며 그것을 확실히 보장할 수는 없다고 확실하게 말한다. 그러나 나이 지긋한 고위층 임원들을 설득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들이 어찌나 느리게 산을 오르는지, 차라리 뒤돌아서 내려가는 것이 그들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을 더욱 안전하게 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정상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도전을 포기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끝까지 오르려고 했기에 지금의 사회적 지위에 오른 사람들이다. 존 크라카우어의 말에 따르면, 여기에는 사회적 다윈주의의 역전된 형태가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솔직하게 말합시다. 에베레스트가 끌어들이는 부류는 제정신을 가진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기선택(self-selection) 프로세스는 신중하고 분별력 있는 사람들을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밀어내는 반면, 외골수이며 놀라울 정도로 추진력이 강한 사람들은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에베레스트를 매우 위험하게 만드는 커다란 이유입니다.”

네팔 정부가 높은 고도를 등반했던 경험을 인정받은 등산객에게만 에베레스트 등정 허가를 내주거나, 또는 가이드에게 국제적인 관련 자격증을 요구하지 않는 한 참사는 또 일어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것이 다가오고 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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