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지 없는 선택권
완결

선택지 없는 선택권

조력 자살은 선택의 문제처럼 치장된다. 누군가에게 이것은 전혀 선택이 아니다.

©Adobe Stock

1. 의회 안의 장애인


나는 요즘도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아, 당신은 오늘 상태가 별로 안 좋군요.” 그들은 내가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다는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국회 의사록에 기록된 나의 발언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현재 영국 국회의 여러 굵직한 위원회에 초대를 받아서 발언을 하고 있다.

나는 영국 상원 의원실 근처에 있는 어느 회의실에서 ‘낫 데드 옛 UK(NDY UK)’의 설립자인 제인 캠벨(Jane Campbell) 여남작(Baroness)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상원에 소속된 일대귀족(life peer) 신분[1]이다. 영국 국회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 궁전의 한 방에는 휠체어를 탄 두 사람이 함께 있었다. 하원보다 평균 연령이 더 높은 상원에서조차도 이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이 권력의 회랑 안에서 장애인들은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제인 캠벨 여남작 덕분에 장애인들도 발언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비록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여 발언하지만, 그 호소력은 헤비급 선수만큼이나 강력하다.

그녀는 역경을 이겨내며 경력을 쌓아왔다. 그녀는 런던 남서부에서 자랐다. 그녀의 어머니 제시(Jesse)는 드레스 가게의 쇼윈도 관리자였고, 그녀의 아버지 론(Ron)은 난방 기술자였다. 그녀는 생후 9개월에 스스로 고개를 들 수 없었고, 한 살이 되었을 때는 신체를 거의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레이트오먼드스트리트병원(GOSH)으로 후송된 그녀는 척수근위축증(SMA) 진단을 받았고, 두 번째 생일을 맞이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의사들은 틀렸다. 그것도 아주 단단히 틀렸다.

당시 장애 아동들에게는 거의 기대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러한 편견을 극복하고 O레벨(중등 교육)과 A레벨(대입 자격)을 취득하여 해트필드공과대학(Hatfield Polytechnic)에 진학했다. 이후에는 서식스대학교(Sussex University)에서 실비아 팽크허스트(Sylvia Pankhurst)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지방 정부에서 성공적으로 경력을 쌓은 그녀는 장애인들에게 무자비하고 미끄러지기 십상이던 사다리를 올라갔다. 그녀의 경력에는 평등 및 인권 위원회(EHRC)와 국립 사회복지연구소(NISW)의 활동이 기재되어 있다.

2007년에 제인 캠벨은 서비튼의 캠벨 여남작(Baroness Campbell of Surbition)이라는 작위를 받으며 상원에 입성했다. 그리고 현재 63세가 될 때까지 지난 15년 동안 상원 본회의장의 붉은 벤치에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2] 그녀의 인생은 누구에게라도 인상적인 이력이 될 것이다. 그녀가 올라 있는 곳은 대단한 에너지를 발휘하지 않고서야 감히 쉽게 오를 수 없는 위치이다. 그리고 그녀의 열정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저는 6년 전에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모습이었는데, 의원들은 제가 곧 숨이라도 멎을 것처럼 봤을 겁니다. 그들 생각에 저는 중환자실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이제껏 봐 왔던 나 같은 사람들은 모두 중환자실에 있었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아주 많이 아프거나 삶의 끝자락에 있었을 겁니다. 그들이 저를 걱정하지 않게 되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저는 수많은 싸움을 벌였습니다. 가장 격렬했던 싸움은 그들이 저의 간병인[3]을 본회의장에 데려오는 걸 허락하지 않았을 때 벌어졌습니다. 1725년 이후로 어떠한 평민도 상원 본회의장의 문턱을 넘어온 적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는 하나의 관행이었고, 만약 그들이 제 간병인의 출입을 허용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수행원을 요구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과잉 혜택(disproportionate benefit)으로 간주되었죠.”

“저는 그들에게 합리적인 중재안을 설명하느라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그러다 결국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봐요, 영국에는 평등법(Equality Act)이 있습니다. 이 법률에는 (장애가 없는) 다른 사람들은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것과) 동일한 혜택을 받지 않는다고 설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철 좀 드세요!”

정말 철 좀 들어야 한다. 그녀가 여전히 당하고 있는 일들, 그래서 강제로 들어야 하는 논쟁을 들어보면 아직 철 들어야 할 부분이 아주 많다는 게 분명해진다.

 

2. 조력 자살에 반대하는 상원의원


NDY UK는 조력 자살(assisted suicide)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캠벨 의원은 ‘조력 죽음(assisted dying)’이라는 용어에 반대한다. 그녀는 그런 표현이 의사 또는 다른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삶을 끝내는 행위를 부드럽게 표현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사안은 최근 뉴스에서 많이 다루어졌다. 영국 하원의 건강 및 사회복지 특별위원회(HSCC)도 최근 들어 조사에 착수했다. 영국의 인기 제빵 경연 프로그램 〈베이크 오프(Bake Off)〉의 진행자인 프루 리스(Prue Leith)는 이 사안을 두고 자신의 아들이자 보수당 하원의원인 대니 크루거(Danny Kruger)와 토론을 했는데, 이는 지난 2월에 채널4(Channel 4)에서 〈프루와 대니의 죽음의 여정(Prue and Danny’s Death Road Trip)〉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가장 최근에는 2015년에 조력 자살을 합법화하기 위해 관련 법률을 개정하려 표결에 부쳤지만, 상원은 그 시도를 기각했다. 이 캠페인은 든든한 자금과 든든한 인력들이 지원하고 있다. 이 운동을 전면에서 이끄는 곳은 ‘죽음의 존엄(Dignity in Dying)’이라는 단체이다.

반면 조력 자살에 반대하는 NDY UK에는 캠벨 의원실의 비정규 연구원인 제이납 알-케로(Zeynab Al-Khero)가 일주일에 며칠씩 근무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 남아 있는 예산은 올여름까지 그녀에게 일주일에 이틀 치의 급료만을 지원할 수 있는 정도이다.

“그들은 그런 걸 좋아합니다.” 여남작은 못마땅함을 표출했다. 그 단체에는 장애인들이 이끄는 전담 위원회가 있다. 그들은 “우리 없이 우리에 관해 아무것도 논의하지 말라(nothing about us without us)”는 장애인 당사자주의 구호를 내걸고 있는 단체이다. 그런데 캠벨은 “돈이라면 우리도 좀 더 쓸 수는 있다”고 털어놓았다.

당연하게도 NDK UK가 가진 최대의 강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캠벨 자신이다. 그녀는 조력 자살만이 아니라 장애인들의 더욱 일반적인 권리를 옹호하는 강력한 대변인이다.

그런데 조력 자살에 대한 옹호는 커다란 문제점을 갖고 있다. 그것이 장애인들의 일반적인 권리를 위태롭게 만드는 수단으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력 자살은 이 나라의 장애인들에게 매우 무서운 일입니다. 우리는 의사들과 간병인들에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원을 제공해 줍니다. 이러한 지원 덕분에 우리는 삶에 대한 믿음을 갖습니다. 지원 덕분에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우리 삶에서 부딪히는 장벽을 똑바로 마주해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잠에서 깨자마자 간병인이 오고 있는지 궁금해합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과연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을까? 내가 적절한 진통제를 구하지 못하면 고통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될까? 나에게 그런 처방을 내릴만하다고 생각하는 의사를 만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제가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퇴행성 질환을 가진 저를 살아있게 해주는 가능한 최고의 의료적 개입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서른 살에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4월에 64살 생일을 맞았습니다. 저는 척수근위축증(SMA)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도 최고령자에 속합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저의 치료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저의 치료를 위해서 캠페인을 벌이고, 평생 저의 치료를 위해 싸워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료 기술이 저와 함께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인공호흡기는 이제 작아졌습니다. 저는 병원 침대에 누워있을 필요도 없고, 철제 호흡장치(iron lung)에 들어갈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상원의 복도를 둘러볼 수 있고, 동료 의원들보다 가장 먼저 회의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적절한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지원이 없다면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짐이 됩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조차도 그것은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원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지원이 필요합니다.”

캠벨은 그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을 두려워한다. 권력과 영향력을 가진 지위에 오를 기회가 없는 사람들, 그녀처럼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우리는 장애인들에게 친절한 사회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녀의 말이다. 그것은 장애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는 정서이다.
©Adobe Stock

3. 누군가에게 조력 자살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캠벨은 의사들이 장애인들에 대하여 판단하는 환원주의적인 추정에 대하여 우려한다. 만약 조력 자살이 법적으로 허용된다면 그것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의사들이 그러한 관념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것이 ‘선택’의 문제인 것처럼 치장되지만 전혀 선택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건 잘못된 이분법입니다. 선택권을 가진다는 것은, 둘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걸 의미합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조력 자살을 하는 것, 아니면 위기에 처한 사회 복지 부문으로부터 정말 형편없는 지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인) NHS 역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병원에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지원할 간호사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통증 관리와 완화 치료는 불충분합니다. 먼저 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고 나면 우리도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겁니다. 그전에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캐나다 사례를 꺼냈다. 캐나다는 심각하게 어긋난 허울뿐인 자유주의적인 정책의 대표적인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그곳에서는 의료적 지원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퇴역 군인들에게 조력 자살을 제공한다.

“캐나다는 원래 메이드(MAID·Medical Assistance in Dying·죽음에 대한 의료적 지원) 정책이 생사를 오가는 질병에 대해서만 행해지도록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그렇게 엉망진창이 되는 데까지 불과 5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주변에 짐이 되고, 고통이 심해지고, 살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느끼면서 그들은 서서히 그 기준의 안쪽으로 조금씩 밀려 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 NDY UK가 보기에 그것은 적신호였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첫해의 조력 자살 숫자가 약 2800명에서 2021년에는 1만 명 이상으로 증가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제임스, 이건 제게 새로운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나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했는데, 그녀의 시선이 나를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저는 이미 네덜란드의 상황을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네덜란드에서 의사 한 명을 만났습니다. 네덜란드는 다른 사람이 생을 마감하는 걸 의사들이 도와줍니다. 그 의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 번째 사례를 맡았을 때는 밤새 잠을 못 이루면서 그 문제를 고민했고, 실제로 그 결정을 내렸을 때는 정말로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에는 잠시 시간을 갖고 그것에 대해 생각을 했고, 세 번째는 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세 번째는 식은 죽 먹기였답니다. 그게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정신없이 바삐 돌아가는 병동에서 매우 바쁘게 일하는 의사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세요. (조력 자살 결정에 동의하는) 서류에 서명해 줄 두 명의 의사 정도는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건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건 나태한 생각의 산물입니다. 이것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그 이야기는 정말로 소름 끼쳤다. 캠벨 의원이 언급한 또 다른 의사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럭비를 하다가 척추 부상을 당해서 그걸 교정하는 데만 3년이 걸렸던 남자였는데, 그렇게 재활하는 기간에 자살에 대한 생각을 여러 번 했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생사를 넘나드는 사고를 겪은 사람들에게서는 상당히 흔한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레미콘 차량에 치여서 인생 자체가 잔인하게 뒤바뀐 나 자신도 그것을 증언할 수 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조력 자살이 존재했더라면, 자신은 확실히 그 길을 선택했을 거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저도 제 인생을 바꾸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는 현재 210만 파운드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의료 분야의 고위직을 맡고 있습니다. 자, 어떤가요. 나쁘지 않죠. 하지만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기 위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영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장애인들의 삶은 중요하지 않다. 나 자신도 사고 직후 몽롱한 의식 상태로 깨어나서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기까지 나에게 잃어난 끔찍한 이야기들에 대해 얼마든지 말할 수 있지만, 그것도 그녀가 겪은 일들에 비하면 금세 퇴색하고 만다.

캠벨 의원은 병원에서 ‘소생술 금지(do not resuscitate)’ 명령을 받았었다. 정작 그녀 본인의 허락은 없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말이다.

“매우 심각한 폐렴으로 찾아간 병원이었는데, 그런 증상은 그전에도 많이 겪어봤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라면 저는 집중 치료실(ICU)이나 고도 치료실(HDU)에서 가서 라인을 꽂아야 합니다. 상태가 빠르게 악화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당시에 저는 저희 지역에 있는 병원에 갔는데, 그곳에는 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컨설턴트가 말하는 게 들리더군요. 그 사람은 저의 폐렴에 대해서 말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환자의 상태로 보아 그녀는 소생술을 원하지 않을 것이니 항생제를 투여하고 최선의 결과를 바라자’라고 말입니다.”

“다행히도 제 남편 로저(Roger)가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그녀는 이제 막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거대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병원 관계자들이 상당히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나의 증상에 대해서 그저 추정을 했고, 나의 생김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를 집중 치료실에 데려가서도 또 다시 그랬습니다. 당연히 저는 항의했습니다. 제인 캠벨이 괜히 유명해진 게 아닙니다.”

그렇다. 그녀는 당시에 잉글랜드의 의료 국장(CMO)을 알고 있었다. 덕분에 병원장들이 시청하고 더 나은 정책을 수립하라는 비디오가 거의 모든 병원에 전달되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닥치자 장애인들은 의료 우선순위 분류에서 다시 한번 맨 뒷줄로 밀려났고, 다른 사람들이 치료를 받는 동안 그들은 완화 치료를 받는 데 그쳤다.

“그들은 우리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습니다.” 캠벨이 좌절하며 말한다. “가끔은 저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도 앞으로의 삶이 있고, 친구들이 있고, 남편이 있고, 대자녀(代子女)도 있습니다. 저는 파티를 좋아합니다. 찰스 3세의 대관식이 있는 5월 6일에 저의 생일 파티를 할 겁니다.[4] 야외에는 바비큐와 와인이 있을 거고, 실내에는 대관식을 시청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텔레비전을 준비할 겁니다. 선택은 그들의 몫이 될 겁니다.”

상당히 거창한 계획으로 들린다. 다행히도 나는 캠벨이 포기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만족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1]
일대귀족(一代貴族)은 영국 귀족제에서 서훈 개념으로 수여하는 작위로, 세습되지 않고 본인 일대에 한하여 작위를 갖는다.
[2]
영국의 상원(House of Lords)은 선출직이 아니라 작위를 보유한 귀족(Lord)이나 고위성직자들로 구성된 기관이다. 세습귀족(hereditary peer)이 아닌 일반인들도 일대귀족(life peer)이 되면 상원에 들어갈 수 있다.
[3]
(역주) 이 글의 원문에 등장하는 ‘personal assistant’는 ‘개인 비서’가 아니라 ‘간병인’이라는 의미입니다.
[4]
그녀의 생일은 4월 19일이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