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언론이 딥페이크 포르노그래피의 위험성과 불법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고 여러 웹사이트가 딥페이크 관련 정보, 동영상의 게재를 금지했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사이트는 딥페이크로 제작한 유명인의 포르노 영상을 배포하고 있다. 영상을 단순히 배포하는 것을 넘어 이용자들이 딥페이크 영상물 제작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경우도 있다. 불법성에 도 불구하고 딥페이크가 유명인 포르노그래피 제작에 활용되는 것을 완전히 막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딥페이크 기술로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의 얼굴을 합성한 포르노 영상을 제작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더 팩트(The Fact)’의 보도에 따르면, 상당수의 트위터 계정들이 ‘지인 능욕’, ‘지인 합성’과 같은 닉네임을 걸고 “돈과 사진을 보내주면 포르노에 해당 사진에 나온 인물의 얼굴을 합성해 주겠다”며 영업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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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학생들이 원격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의 모습을 캡처해 딥페이크 앱으로 합성 사진을 만들어 유포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준 바 있다. 딥페이크가 불법적인 범죄 행위에 악용되는 사례는 갈수록 늘어나는 중이다.
일반인 대상의 딥페이크 포르노를 합법적으로 사업화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미국의 포르노 제작 기업 ‘노티 아메리카 (Naughty America)’는 2018년 8월, 딥페이크를 이용해 고객이 원하는 이미지를 포르노 영상에 합성해 주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기업이 제공한 포르노 영상 속 인물의 얼굴을 자신과 바꾸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고객은 먼저 노티 아메리카에 딥페이크 합성에 필요한 본인의 얼굴 사진이나 동영상을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가격은 동영상의 길이에 따라 수백 혹은 수천 달러로 달라진다. 노티 아메리카는 이 사업이 포르노그래피를 개인맞춤화(customize)하는 계기이자 딥페이크를 상업화(monetize)하는 시도라고 설명했지만, 서비스의 합법성 여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고객이 보낸 영상이나 사진 속 인물이 딥페이크 포르노 제작 의뢰인과 동일인인지, 고객이 보내는 사진이나 영상 속 인물이 정말로 포르노 영상 제작에 합의했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온라인 매체 ‘더 버지(The Verge)’는 노티 아메리카의 사업은 불법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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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페이크 포르노그래피의 사례는 딥페이크가 정서적 측면에서 이전과는 다른 독특한 효과를 자아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인이나 평소에 내가 동경하던 스타가 일어날 수 없는 일의 주체로 등장하거나 포르노 영상처럼 의외의 맥락에서 나타나는 고품질의 영상은 보는 이에게 전과는 다른, 극대화된 정서적 경험을 가져다준다. 내가 모르는 이의 얼굴이 아니라 내게 익숙하거나 평소 좋아했던 얼굴이 등장하는 영상은 해당 영상을 시청하는 개인에게만 의미 있는 특별한 경험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딥페이크를 통한 영상 조작은 정보의 사실성과 신뢰성의 문제를 넘어 이용 수준에서 나타나는 정서적 효과와 밀접하게 관련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효과의 핵심은 영상 이용자가 조작하려는 대상과 평소에 맺어 왔던 ‘관계성’에 있다. 더 가깝고, 더 잘 알고, 더 좋아하고, 더 동경했던 사람이 영상에 등장할수록 수용자가 경험하는 정서적 효과는 커진다.
이를 고려하면, 영상에 딥페이크를 적용하는 것은 해당 이미지로부터 ‘푼크툼(punctum)’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푼크툼은 프랑스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제안한 개념이다.
[5] 그는 사진이 자아내는 정서적 효과를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의 두 차원으로 설명하면서, 사진이 전하는 ‘얼굴’의 분위기를 푼크툼의 전형적인 사례로 설명한 바 있다. 스투디움이 사진에서 느낄 수 있는 일반화, 범주화된(coded) “평균적 정서(average effec)t”를 의미한다면 푼크툼은 “나를 찌르는 사건”으로 다가오는 사진의 경험, 즉 개인의 경험이나 무의식과 상호작용하여 특정 계기에 강렬하게 발현되는 사진 경험의 속성을 뜻한다. 바르트는 흑인 가족사진을 보면서 그들이 사회적 신분을 상승시키기 위해 갖춰 입은 복장이나 치장보다 여자의 넓은 허리띠, 뒷짐 진 여자의 팔, 끈 달린 여자의 구두와 같은 세부적인 요소가 자신을 ‘찌르는’ 것들로 다가온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바르트가 사진을 보며 과거의 흑인 유모를 떠올리는 푼크툼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스투디움
- 내 지식, 내 문화의 결과로 내가 친근하게 지각하는 영역
- 평균적 정서(average affect)
- 지식, 시민성, 예의 등 교육의 산물
- 고전적인 정보체를 지시
- 의미화(to signify), 코드화(coded)
- 욕망의 자극(to waken desire)
푼크툼
- 스투디움을 깨버리거나 종결시키는 영역
- 나를 찌르는 사건
- 세부 사항, 부분 대상
- 비자발적인 깨달음
- 사실 이후에 드러나거나 추가되는 무엇
- 분위기
- 분석 불가능성
사진 속 얼굴의 분위기(air)는 도식적이지도 지적이지도 않으며 분석도 불가능한 푼크툼을 만들어 낸다. 이를 보는 것, 즉 사진 속 얼굴을 본다는 것은 곧 사진 속 인물의 정신과 혼(animula)을 경험하는 것이며, 스투디움을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푼크툼을 발견해 새로운 의미를 파악하는 계기가 된다. 푼크툼은 사진을 보는 이가 삶의 경험을 동원하게끔 하면서 스스로 사진의 의미를 구성해 가도록 한다. 바르트에 따르면, 사진의 진정한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딥페이크가 등장인물의 얼굴을 내게 친숙한 누군가의 얼굴로 바꾼다는 사실은 보는 사람을 ‘찌르는’ 푼크툼의 경험을 통제하고 전복하는 것이다. 누군가와 오랫동안 맺어 온 관계와 역사 덕분에 이들이 등장하는 영상은 원본 영상과 달리 이용자 개인의 특별한 기억을 불러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설령 조작됐더라도 말이다. 이 과정은 사실을 왜곡하거나 정치적 인물을 풍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영상이 기대하는 효과가 사실의 차원보다는 개인의 정서적 경험을 극대화하는 차원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딥페이크가 허위정보 조작이나 포르노그래피 제작뿐 아니라 영상 속 인물을 연예인이나 지인의 얼굴로 바꿔치기하는 ‘놀이’에 이용되는 것 또한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유튜브 검색창에 ‘Deepfake’라는 단어를 넣으면 매우 많은 영상이 검색되는데, 이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미국의 유명 영화배우 니콜라스 케이지(Nicholas Cage)의 얼굴을 온갖 사람의 얼굴과 바꿔치기한 영상이다. 이들 영상에서 합성의 자연스러움이나 영상의 사실성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 영상은 2000년대 말부터 케이지의 얼굴 이미지를 온갖 이미지와 합성하던 ‘밈(meme)’을 잇는 놀이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전혀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Twice and Red Velvet in Gang Fight – deepfake〉라는 제목의 영상
[6]처럼 좋아하는 연예인의 팬아트(FanArt)로서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거나 유튜브에서 유행했던 ‘다메다메’ 밈
[7]과 같은 사례도 마찬가지다. 이들 사례는 기술 가내화로 딥페이크 기술을 누구나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딥페이크가 이전 영상이나 조작의 대상이 되는 인물과의 관계성을 토대로 새로운 정서적 효과를 만들어 내는 도구가 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