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보캉송은 생명 활동을 모방하는 자동 장치에 관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으며, 나아가 혈액 순환이 가능한 인조인간까지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보캉송의 열정과 달리, 사람들은 그의 자동 장치를 보고 공포를 느꼈다. 호흡과 소화 등 살아 있는 개체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겼던 행위, 즉 생물의 영역을 인공물이 침범했기 때문이었다.
19세기부터는 인공물의 이야기가 문학에 나타난다. 안데르센의 동화 《나이팅게일》에 등장하는 인조 새는 진짜 새보다 아름답고 지치지도 않는다. 이는 아무리 연주를 해도 지치지 않던 보캉송의 자동인형을 상기시킨다. 안데르센은 진짜 새가 생명을, 인조 새는 죽음을 상징한다고 주장하며 자연물과 인공물을 대비시켰다. 메리 셸리(Mary Shelley)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속 괴물은 인간을 위협하는 공포의 인공물을 대표한다. 공포로 인해 자신의 피조물을 거부하는 인간들에게 오히려 그 괴물이 배신당하고 소외되며 스스로 죽음을 택했지만 말이다. 로봇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Karel Čapek)의 희곡 《R.U.R(Rossum’s Universal Robots)》은 인간을 학살하는 인공물이 등장하는 공상 과학물의 시초다. 《R.U.R》에서 로봇은 지능과 힘 모두 인간보다 우월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처럼 대부분의 문학 작품은 인공물을 인간과 대립하는 존재로 그려 냈다. 작품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넘어선 인공물을 거부한다. 고대부터 내려오던 인식은 기계의 사용이 본격화되던 무렵에 문화 속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인공지능과 인간을 대립 구도로 그리는 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모방을 넘어 초월로
만약 어린아이가 당신에게 인공지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계산을 대신 해주는 기계? 목소리만으로 영화와 음악을 찾아 주는 기계? 당신은 아이가 이해할 수 있게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단순하게는 사람의 지능을 따라 한 컴퓨터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이 따라올 확률이 높다. “그럼 지능은 뭐예요?”
지능이 뭘까? 이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지능이 단순히 수학 문제를 잘 풀거나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지능(intelligence)은 이해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intelligentia에서 유래했다. 교육학이나 심리학에서는 지능을 더 구체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발달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는 지능을 “문제를 찾아서 해결하는 기술들의 집합”으로 정의했고, 심리학자 뢰벤 포이어스타인(Reuven Feuerstein)은 “생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인지적 기능을 변화시키는 인간 고유의 능력”으로 보았다. 이 정의들의 공통점은 지능이 문제 해결 능력과 연관된다는 것이다.
계산기는 복잡한 연산을 빨리할 수 있지만, 계산 이외의 다른 문제는 전혀 풀 수 없기 때문에 지능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 지능은 단순히 수학적, 논리적 문제를 푸는 능력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복잡한 의사 결정 능력, 즉 주체에게 이로운 결과를 선택하는 능력이다.[6] 계산기는 1+1, 2+2에 대해 절대로 틀린 답을 내지 않는다. 하지만 알파고는 자신에게 설정된 이로운 결과, 목표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라도 내놓을 수 있다. 물론 알파고는 스스로 목표를 설정할 수 없다. 그래서 현재 개발된 인공지능은 인간의 일부 행동을 수행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지만, 인공지능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분야에서 인간처럼 행동하는 인공 일반 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AGI)이다.
인공지능 연구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인공지능: 현대적 접근 방식》에서 스튜어트 러셀(Stuart Russell)과 피터 노빅(Peter Norvig)은 인공지능을 네 가지로 구분해 정의했다. 구분 방식은 이렇다. 첫 번째는 인간의 사고 과정과 추론을 기준으로 삼은 인간적 사고 접근 방식이다. 이 구분 방식의 목표는 사고, 학습, 의사 결정 등 인간의 활동을 자동화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합리적 사고방식, 사고 과정과 추론을 모방하되 인간의 사고방식이 아닌 이상적인 사고의 법칙으로 정의한 것이다. 세 번째는 인간의 행동을 얼마나 똑같이 모방할 수 있는지를 중요한 잣대로 삼는 인간적 행위 접근 방식이다. 그러나 러셀과 노빅은 지정된 형식이 없는 지식을 논리적인 법칙으로만 표현하기 어렵고, 어떤 문제를 원칙적으로 푸는 것과 실제로 해결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위의 접근 방식에는 모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위의 세 가지 접근 방식이 지닌 한계를 보완한 것이 합리적 에이전트 접근 방식이다. 에이전트(agent)는 ‘~를 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agere에서 유래한 것으로, 무언가를 수행하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러셀과 노빅은 에이전트를 “감지기를 통해서 자신의 환경을 지각하고, 작동기를 통해서 환경에 대한 어떤 동작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았다. 나아가 인공지능 연구를 “환경으로부터 지각을 받고 동작을 수행하는 에이전트에 대한 연구”라고 정의했다.[7]
에이전트는 기계와 동물, 인간까지 포함할 수 있는 개념이다. 인간 역시 눈, 귀와 같은 감지기가 있으며 손, 성대와 같은 작동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공지능 연구는 인간을 흉내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유롭게 지능이 가지는 특징을 분석하려는 연구로 확장되고 있다.
인공지능은 최근에야 낯설지 않은 기술이 되었다. 하지만 학문으로서의 인공지능은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진지하게 다뤄졌다. 논리적인 문제만을 해결할 수 있는 초기 인공지능은 조금 더 똑똑한 계산기에 불과했다. 최초의 인공지능 연구는 무려 194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연구는 인간의 뇌를 논리적 모델로 삼은 인공 신경망에 관한 연구였다. 수학과 과학 여러 방면에서 천재성을 보여 주었던 월터 피츠(Walter Pitts)와 신경학자 워런 맥컬록(Warren McCulloch)은 인간의 신경계를 구성하는 뉴런들이 서로 연결된 회로망을 통해 논리 관계를 구현할 수 있으며 학습도 가능할 것이라고 보았다.[8] 그들은 이러한 연구를 기반으로 인공 신경망 모델을 제안했는데, 이것이 인공지능 연구의 시초다.
인공지능의 개념적 기반을 제공한 인물은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이다. 1950년에 발표한 논문 〈계산 기계와 지능〉은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유명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튜링은 기계가 생각한다는 개념을 정의하는 것 대신 흉내 게임(Imitation Game)이라는 지능 검사를 제안했다. 이 검사에서 기계와 심문자(사람)는 5분간 다른 방에서 문자로 대화를 나눈다. 대화를 마친 후 심문자가 상대(기계)를 사람으로 오인한 경우가 30퍼센트를 넘으면 그 기계에게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고 간주하는 것이다.[9] 튜링은 50년 정도가 지나면 컴퓨터가 이 검사를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영화나 소설에서 인간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인공지능의 시작이 바로 튜링의 논문인 것이다.
인공지능 탄생 후 10년 동안, 사람들은 금방 인간처럼 사고하는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을 거란 희망에 차 있었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성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초기 인공지능은 기초적인 추론 단계들을 연결해서 답을 찾는 범용 검색 방식이었는데, 데이터 저장 기술의 한계로 문제의 범위를 확장하기 어려웠다. 성과가 나오지 않자 인공지능 연구 지원금이 끊겼고, 많은 연구소가 해체됐다. 이후 인공지능 연구는 인공지능의 겨울(A.I. winter)이라고 불리는 긴 암흑기를 겪는다.[10]
긴 겨울을 깨고 인공지능의 봄을 알린 것은 바로 신경망이었다. 신경망은 뇌의 뉴런 구조를 모방한 것으로, 당시에는 기술적 한계 때문에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 2006년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 교수가 머신 러닝의 일종인 딥러닝을 공개하면서 신경망은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구글 번역, 음성과 얼굴 인식, 이미지 생성 등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인공지능은 모두 머신 러닝의 결과물이다. 머신 러닝은 사람이 데이터와 분석 패턴을 인공지능에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직접 데이터를 분석하여 그 패턴을 찾아내는 것이다. 인간을 벗어난 지능 확장이 머신 러닝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사이버네틱스, 기술과 예술의 벽을 허물다
사이버 공간, 사이버 대학, 사이버 수사대 등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인 사이버(cyber)는 무슨 뜻일까? 아마도 가상 현실이나 인터넷, 컴퓨터 등을 떠올렸을 것이다.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는데 왜 사이버를 언급하는지 의문스러울 수 있겠다. 하지만 사이버와 인공지능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사이버의 어원인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를 번역하면 인공 두뇌학이다. 그리고 이는 근대의 기계-인간 논쟁과 현대의 인공지능 기술을 잇는 학문적 토대이기도 하다.
사이버네틱스라는 개념을 처음 만든 사람은 수학자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였다. 그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포탄이 떨어질 지점을 자동으로 계산, 예측하는 무기를 연구하면서 이러한 근대 기계가 과거의 결정을 바탕으로 새로운 결정을 내린다는 점에서 인간의 신경계와 근본적으로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너는 이 깨달음을 바탕으로 사이버네틱스를 인간의 신경계뿐 아니라 기계와 사회에서의 제어와 통신에 관한 연구라고 정의했다.[11]
인공지능이 태동했던 시기는 사이버네틱스가 번성했던 1940~1960년대와 일치한다. 기계, 동물, 그리고 인간을 비교하는 연구가 증가했고, 그 결과 복잡한 행동 패턴을 가진 동물과 인간의 유사성이 밝혀지기 시작했다.[12] 사이버네틱스 이후 인간은 지능을 가진 기계와 본질적으로 유사한 정보 처리 개체로 여겨지게 되었다.[13] 사이버네틱스에 이르러 인간과 기계, 자연과 인공의 구분이 이분법적으로 이루어 질 수 없음이 학문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사이버네틱스는 학문뿐만 아니라 예술을 포함한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그 영향력은 바이오 아트(bio art), 가상 현실(virtual reality),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을 이용한 예술, 그리고 인공지능의 창작으로 이어진다.[14] 따라서 최신 기술을 활용하는 인공지능 창작의 특징과 예술적 가능성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사이버네틱스 예술을 살펴봐야 한다.
사이버네틱스 예술은 시기에 따라 세 단계로 구분된다. 1단계 사이버네틱스 예술은 한 시스템 안에서의 정보 흐름에 집중하고자 했다. 키네틱 아트(kinetic art)가 바로 그 예다. 키네틱 아트는 관객과 기계 장치의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하는 예술 작품을 의미한다. 키네틱 아트의 움직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관객의 참여, 소리, 빛, 온도 등에 의한 움직임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의 힘이나 기계적 메커니즘에 의한 움직임이다.